가즈 나이트 – 605화
‘‥액션 연기는 어색하군.’
카메라 뒤에서 팔짱을 낀 채 노아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던 지크는 덤덤한 얼굴로 그렇게 생각했고, 다른 방송국 직원들은 숨을 죽이고 조용히 그녀의 전투 장면을 지켜보고 있었다. 현재 노아는 보통 총탄은 통하지도 않고 섭씨 150도의 열도 견딜 수 있는 피부를 화학물질로 형편없이 약화시킨 바이오 버그와 ‘쇼’를 하고 있었다. 물론 그렇다 해도 그 바이오 버그들이 위험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방송국에서 고용한 저격수들이 곳곳에 숨어서 비상사태에 대비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크가 나설 일은 ‘현재’ 없었다. 38구경 권총에 픽픽 쓰러져가는 바이오 버그들을 바라보며, 지크는 이상하게도 그들이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해 보았다. 죽지 못해 실험체가 된 것도 억울한데 스타 하나를 위해 생명을 바치고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결말이 뻔한 쇼를 가만히 보고만 있으려니 지크는 점점 잠이 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어라?”
순간, 지크는 눈을 번쩍 뜨며 주위를 두리번 거리기 시작했다. 무엇을 느낀 것일까. 진지한 얼굴로 주위를 돌아보던 지크는 옆에 있는 PD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고용된 나부랭이들이 몇명이죠?”
“‥? 모두 다섯명이오만‥?”
대답을 들은 지크는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옆에 세워둔 자신의 오토바이에서 무명도를 꺼내 허리에 찼고, 갑자기 카메라 앞으로 불쑥 나서며 앞에 있는 노아에게 소리쳤다.
“헤이, 어서 아저씨들하고 피신하시죠. 쇼 타임은 끝났으니까.”
그 순간, 방송 관계자들의 얼굴과 노아의 얼굴은 동시에 돌처럼 굳어지고 말았다. 잘 나가고 있는 녹화 장면에서 생각치 못한 NG가 나왔기 때문이었다. 노아는 너무나 화가 났는지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흥분한 PD는 팔을 걷어 붙이며 지크에게 성큼성큼 다가가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이봐!! 당신 뭐하는 사람이야!!! 지금 이 녹화에 들은 돈이 얼만지나 알아!!! 이건 다음 다음주 일요일에 내보낼 것이기 때문에 우린 시간이 촉박하단 말이야!! 알아듣기나 하‥는거요?”
지크는 말 없이 허리에 찬 블래스터의 끝을 PD의 이마에 갖다 댔고, 씨익 웃으며 말했다.
“공무집행 방해‥되겠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말 하는 모든 내용은 법정에서 증거물로 사용될 수 있으며, 선택에 따라 변호사도 선임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닥치고 있어. 지금 네명째 죽었단 말이야.”
“‥?”
PD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지크와 자신의 이마에 닿아 있는 블래스터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으아아아아악–!!!!!”
순간, 멀리 보이는 건물 옥상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고, 곧 누군가가 피를 흩뿌리며 길바닥에 추락을 했다. 노아를 비롯한 모든 방송 관계자들은 경악을 금치 못했고, 지크는 블래스터를 PD이마에서 치운 후 노아의 옆으로 다가서며 모두에게 소리쳤다.
“저격수 다섯명 다 당했으니 당신들 어서 도망쳐!! 아무리 나라도 수십명은 못지키니까! Come on, Move!!!!”
결국 그들은 장비를 챙길 생각도 하지 않고 차량에 탄 뒤 그곳에서 달아나기 시작했다. 자신은 거들떠 보지도 않고 사람들이 도망치는 모습을 본 노아는 멍한 눈으로 멀찌감치 가는 차들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때, 차 한대가 이리저리 비틀거리기 시작하더니 이내 건물에 충돌했고, 지크는 곧바로 노아의 눈을 손으로 가리며 중얼거렸다.
“‥차 안에도 한마리가 있었군. 빌어먹을‥.”
“예? 예?”
노아는 자신의 눈을 덮은 지크의 큰 손을 떼고 무슨 소린지 알아보려 했으나, 지크는 결코 그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건물에 충돌한 자동차에서 곧 끔찍한 모습으로 변한 사람 몇명이 고통에 괴로워하며 길거리로 나왔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들도 곧 차에서 튀어나온 바이오 버그에 의해 목숨을 잃었고, 지크는 그 장면이 있기 전에 노아의 귀까지 막아 그녀가 아무것도 보고 듣지 못하도록 했다. 그 상황이 끝난 후, 지크는 노아의 한쪽 귀를 살짝 열어주며 그녀에게 물었다.
“‥오토바이 운전할 줄 알아?”
“아, 아뇨‥.”
“‥젠장, 하는 수 없군. 잘 들어, 이건 절대 쇼가 아니야. 지금부터 서바이벌이라구. 자존심이 상하겠지만, 영화 말고는 사람이 죽는 모습을 본 것 같지 않길래 아까 눈과 귀를 막은거야. 봐도 그리 나쁠 것은 없지만 여자라면 정신 건강상 좀 해롭거든. 연예인들이 사람들 앞에 나서는 담력과는 차원이 틀려, 지금은 사신과 키스할 수 있을 정도로 죽음이 가까운 상태니까. 내 옆에 가만히 있어. 한발자국이라도 움직이면 당신과 나, 둘 다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워.(거짓말) 알았지?”
“예, 알았어요! 시키는대로 하겠어요!!”
“좋아, 그럼 심의 삭제로 생각하고 이거나 좀 쓰고 있어.”
지크는 자신의 고글형 선글라스를 노아에게 건네주었고, 그녀는 그 선글라스를 쓴 뒤 지크가 말 한 대로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지크는 곧 무명도에 손을 가져간 후 사방에 대고 소리치기 시작했다.
“Come on, Man!! 나와 봐라 얼간이들아–!!!!”
이윽고, 미리 통행을 금지시킨 거리는 이곳 저곳에서 나타나기 시작한 바이오 버그들에 의해 가득 차게 되었다. 맨홀 밑에도, 문을 닫은 상점 안에서도 바이오 버그들은 존재했다. 상당히 숫자가 많은 것을 느낀 지크는 심호흡을 한 후 주먹을 쥐며 말했다.
“‥돈 내고도 볼 수 없는 멋진 광경을 보여주지‥헤헷. 자자, 더 가까이 와 봐 형씨들!! 단숨에 구워주마!!!”
순간, 노아는 선글라스를 통해 지크의 양 주먹에서 스파크가 일기 시작한 것을 볼 수 있었다. 초능력으로 물체를 움직이는 것은 한두번 본 일이 있는 그녀였지만 사람의 몸에서 스파크가 일어나는 것은 처음 봤기 때문에 그녀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지크의 팔에서 일기 시작한 스파크는 곧 그의 팔 전체로 퍼졌고, 바이오 버그들 역시 그 순간 노아와 지크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키아아아아아아앗–!!!」
“어라‥안돼지!”
한마리가 노아에게 달려든 순간, 지크는 팔꿈치로 바이오 버그의 머리를 찍어 내렸고 바이오 버그는 기형의 입에서 체액을 잔뜩 토한 뒤 감전된 듯 몸을 쭉 펴고 바닥에 쓰러졌다. 다른 바이오 버그들도 마찬가지였다. 바이오 버그들의 시체는 노아와 지크를 중심으로 점점 쌓여 갔고, 노아는 바이오 버그들을 무더기로 쓰러뜨리고 있는 지크를 보며 잠시 패닉(Panic)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자신들의 동료 반 이상이 지크 한사람이 만든 벽을 넘어서지 못하고 쓰러져만 가자, 그들은 점차 뒤로 물러서기 시작했고 지크는 무명도를 뽑은 뒤 방어 자세를 취하며 주위의 바이오 버그들을 쏘아 보았다.
“저어‥저들이 왜 물러서고 있나요?”
“진형 정비, 별 것 아니야. 보기엔 원거리 공격을 하려는 것 처럼 보이지만‥그래도 당신은 다치지 않으니 걱정 말아. 조금 있으면 올테니까.”
“‥오다니요?”
퍼억–!
순간, 맨 후열에 있던 바이오 버그 두마리의 머리가 일렬로 관통을 당했고 바이오 버그들은 시선을 도로쪽으로 돌렸다. 두대의 순찰차가 급속으로 이쪽을 향해 달려 오는 것을 본 지크는 씨익 미소를 지었고, 안심하라는 듯 노아의 어깨를 두드려주며 말했다.
“자아, 왔습니다. 예상보다 좀 늦게 도착하긴 했지만 충분해.”
“예? 그럼 설마‥.”
“아까 그 직원들이 도망치면서 본부에 연락을 했겠지. 우리들의 인기 스타께서 위험에 처해 있으니 도와달라고 말이야. 자아, 순찰차에만 타면 좀 괜찮겠군. 휘유, 오늘도 이걸 뒤집어 썼으니 혼나게 생겼구만‥.”
그때, 다른 곳에 정신이 팔려 있던 노아는 지크의 몸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녀는 코를 막으며 지크를 바라보았고, 지크의 몸이 바이오 버그의 체액으로 뒤덮여 있는 것을 보고 흠칫 놀라고 말았다. 그녀 자신의 몸엔 체액이 한방울도 묻어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설마‥나 대신 저 체액을‥?’
한편, 바이오 버그들은 지크와 노아에게 신경을 끄고 자신들에게 오는 순찰차를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고, 순찰차가 멈추자 마자 한명의 사이보그와 한명의 남자가 각각 내리며 사격을 가하기 시작했다. 사이보그는 팔의 레이저 게틀링건으로, 다른 한 사람은 대형 머신건으로. 곧 차에선 다른 사람들도 나왔고, 그들 역시 권총으로 사격을 펼쳐 나갔다.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수가 급격히 감소한 바이오 버그들은 흩어져 사라졌고, 몸에 묻은 체액을 대충 털어낸 지크는 지원을 나온 자신의 동료들에게 손을 흔들며 소리치기 시작했다.
“오오, 헤이그 선배님! 역시 와 주셨군요!!”
팔의 게틀링건을 다시 원래대로 변형시킨 헤이그는 피식 웃으며 고개를 저을 뿐이
었다. 그러다가, 그는 지크와 노아의 주위에 쌓인 바이오 버그들의 사체를 보며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지크에게 물었다.
“‥음? 이봐 뻠(헤이그는 지크를 가끔씩 줄여 부른다). 우리가 올 동안이라면 혼자 이정도 숫자는 다 처리할 수 있지 않았나? 게다가 전부 E급 뿐이었는데 말이야. 오늘 컨디션이라도 좋지 않은거야?”
그러자, 지크는 자신의 뒤에 서 있는 노아를 엄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대답했다.
“해헷, 홀몸이 아니었잖아요. 자자, 전 먼저 본부에 돌아갈테니 저 아가씨나 잘 처리해 주세요 선배님.”
뒷일을 헤이그에게 맡기고 오토바이로 향하던 지크는 그 상황에서도 자신의 오토바이 옆에 있는 카메라가 돌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가만히 그 카메라를 보던 지크는 피식 웃으며 스위치를 껐고, 카메라에 있는 동화상 램 카트릿지를 뽑아 들고 조용히 그곳에서 사라져 갔다.
※※※
침대에 바이칼을 눕혀준 뒤 거실 소파에 앉아 조용히 생각을 하던 리오는 어떻게 해서 동룡족이 바이칼에 대한 정보를 얻은 루트를 도저히 짜 맞출 수가 없었기에 결국 머리를 흔들며 생각을 지워 보았다.
“‥우연히 알게 된 것일까? 흠‥바이론이 그들의 뇌를 모조리 날려 버려서 ‘브레인 스토커’ 조차 못쓰니 알 수가 있나. 하여간 걱정이군. 만약 바이칼 녀석이 저 상태로 동룡족에게 납치라도 당하는 날엔 서룡족은 끝장인데‥.”
띵동– 띵동–
“‥누구지?”
갑자기 들려온 초인종 소리에 리오는 언제나 변함 없이 현관으로 향했고, 그는 상당히 의외의 인물과마주치게 되었다.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고 있던 리오는 반가움 반, 놀라움 반의 표정을 지으며 인사를 했다.
“아, 아아‥. 이거 챠오씨 아니세요. 그때 이후 정말 오래간만인데요?”
챠오는 고개를 약간 숙인채 말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리오는 문을 닫고 현관에 기대어 서며 챠오에게 용건을 물었다.
“음‥지크는 이곳에 도망오지 않았는데‥하여간 왠일이시죠?”
리오는 그렇게 물으며 챠오의 뒷쪽을 바라보았다. 길가엔 BSP순찰 차량이 주차되어 있었고, 그 안엔 마키와 티베가 못마땅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리오는 저 둘이 왜 표정이 저런가 생각하며 다시 챠오를 바라보았다. 챠오는 계속 말 없이 우물쭈물 하다가, 뒤에 감추고 있던 하트 모양의 작은 상자를 리오에게 건네준 후 역시 아무 말 없이 돌아서서 빠른 걸음으로 순찰차에 돌아갔다. 곧 순찰차는 바람 같이 출발했고, 리오는 멍하니 순찰차쪽을 바라보다가 쓴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후우‥이런 이런. 지크 녀석이 알면 난리 정도가 아니겠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