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08화
“‥못먹겠니?”
“….”
노아를 데리고 패스트 푸드 점으로 간 지크는 몇일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그녀에게 햄버거라도 먹게 하려 했으나, 노아는 결국 먹지 못했다. 지크의 물음에 녹색 모자를 깊게 눌러 쓰고 있는 노아는 고개를 도리도리 저을 뿐이었다. 결국, 지크는 자기의 것을 포함한 햄버거 다섯개를 모두 먹어 처리한 후, 그녀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 지크는 어떻게 할까 생각을 하다가, 결국 마지막 방법을 쓰기로 하고 노아에게 말했다.
“자, 그럼 우리집으로 가 볼래? 이런 음식점에서 요리하는 사람보다 음식을 훨씬 잘하는 사람이 옆집에 살거든. 정말 음식을 잘 한다구.”
“‥하지만‥전‥.”
노아는 역시 사양을 했으나, 몇일 전보다 핼쑥해진 그녀의 얼굴을 보고 있는 지크에겐 그 말이 통하지 않았다. 결국, 지크는 그녀와 함께 자신의 오토바이를 타고 집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
“내가 왜 여기 있어야 하지.”
바이칼은 냉랭한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물었고, 리오는 미안하다는 얼굴을 하며 그에게 설명을 해 주었다.
“지금 동룡족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은데 너 혼자 보냈다가 무슨 봉변이라도 당하면 어떡해. 게다가 저 바이칼과 너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아직 밝혀지지도 않았잖아. 안그래?”
순간, 바이칼은 자존심이 상했는지 리오를 쏘아보며 언성을 약간 높여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그런 지렁이 몇마리 따위에게 당할거라 생각하나? 그리고 분명히 말하지만 저 돌연변이 용족과 난 아무런 상관이 없어. 저 녀석과 같이 있는 것 조차 싫어.”
그가 그렇게 나오자, 리오는 계속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설득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아, 그러지 말고 좀 참고 있어봐. 그리고 동생 하나 생겼다고 치고 잘 좀 대해 주라고. 수백억 서룡족의 제왕이라면 이런 정도의 일은 참아줄 수 있잖아. 게다가 동룡족에 관련된 일인데‥.”
“그래도 난 싫어. 난 분명히 말했다.”
그가 계속 그렇게 반응을 보이자, 리오는 한숨을 후우 쉬며 자기가 바이칼이라 이름을 붙여주었고 지금도 계속 그렇게 부르고 있는 용족 소녀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고개를 푹 숙인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다. 성격이 여린 편의 그녀가 그렇게 있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결국, 리오는 표정을 굳히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그래? 그럼 돌아가.”
“‥?”
바이칼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으나, 그가 의외의 일을 당하면 어깨가 움찔거리는 버릇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리오는 바이칼의 어깨가 약간 크게 움찔거리는 것을 보고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했다.
“난 저쪽 바이칼을 돌봐줘야 할 책임이 있다. 네가 그렇게 나온다면 할 수 없지. 드래고니스의 일이 그렇게 바쁘다면 돌아가. 이 이상 싫다는 얘기 듣기도 싫으니까.”
리오와 바이칼 사이엔 잠시간의 침묵이 흐르기 시작했다. 리오는 바이칼을 보려고 하지도 않았고, 바이칼 역시 리오를 보려고 하지도 않았다. 그런 냉전 상태가 계속 되자, 갑자기 리오의 옆에 앉아 있던 여자 바이칼쪽에서 우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둘의 시선은 그쪽으로 돌려졌다.
“죄, 죄송해요‥. 저 때문에 두분이‥모두 저 때문이에요‥. 제가 나갈께요 리오씨. 그러니 두분 싸우지 마세요‥흐흑‥.”
그런 상황에서도, 리오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바이칼의 성격을 충분히 알고 있는 리오로서는 더 없이 좋은 반응이기 때문이었다. 결국, 바이칼은 눈을 딱 감고 쓰디쓴 표정을 지으며 리오에게 말했다.
“‥너라는 녀석을 알게 된 그날 부터 내 운명은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었다‥. 네 맘대로 해. 굽든 삶든.”
결국, 작전에 성공한 리오는 빙긋 웃으며 바이칼에게 말했다.
“후훗, 역시 마음 넓은 용제님이라니까. 자, 그럼 둘이 얘기나 나누고 있어. 난 샤워나 하고 오지.”
리오는 곧바로 샤워실로 향했고, 그에게 뭔가 속은 듯 한 느낌을 받은 바이칼은 쓰디쓴 표정을 유지한채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를 말없이 바라보고 있던 여자 바이칼은 그를 흘끔흘끔 바라보며 자신 없는 목소리로 슬그머니 바이칼에게 말을 걸어 보았다.
“저, 저어‥두분 화해하셨나요‥?”
“시끄러워.”
“‥네.”
그렇게 침묵이 흐르고 있는 중, 갑자기 현관문이 열리며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고, 바이칼은 현관쪽에 시선을 돌려 보았다.
“자자, 어서 들어와. 친구들도 많이 있으니 심심하진 않을거야.”
“예? 예‥. 저어, 실례합니다‥.”
바이칼은 지크가 녹색 모자를 눌러쓴 소녀를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오자 눈을 감으며 시선을 돌려 보았고, 여자 바이칼은 지크를 맞이하기 위해 소파에서 일어나 현관으로 향했다.
“어서오세요 지크씨. 어머, 손님하고 같이 오셨네요?”
“음, 그래. 자, 인사해. 노‥.”
“노윤아라고 해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노아 스스로 자신을 ‘윤아’라는 이름으로 소개하자, 지크는 눈을 휘둥그래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여자 바이칼과 인사를 나눈 노아는 오래간만에 미소를 띄우며 지크에게 말했다.
“‥제 본명이에요.”
“아‥그래? 자, 그럼 저 둘하고 얘기좀 나누고 있어. 아 참, 바이칼. 리오 녀석은 어디 갔니?”
“샤워실.”
“샤워하신다고‥.”
두명의 바이칼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잠시 머리가 공백상태가 되었던 지크는 곧 킥킥 웃기 시작했고, 노아 역시 영문도 모른채 웃기 시작했다. 여자 바이칼은 우물쭈물할 뿐이었고, 바이칼은 얼굴이 약간 붉어진채 고개를 다른쪽으로 돌리고 말았다.
“자자, 그럼 잠깐만 기다리고 있어. 요리사를 초빙해 올테니까. 알았지?”
“네, 그럼 다녀오세요.”
노아는 곧 여자 바이칼과 함께 소파에 앉았다. 얘기를 하고 있으라고는 했지만 적당히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던 노아는 자신의 앞에 앉은 두명의 바이칼을 번갈아 바라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도대체 뭐지? 왠만큼 얘쁘다고 소문난 탤런트들도 무색할 정도잖아‥? 둘 다 기본적으로는 비슷하게 생겼지만‥남자쪽도 남자라고 생각되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여자쪽도 저렇게 얘쁜 얼굴을 한 사람이 본 일이 없을 정도야‥!’
노아는 정신을 잃을 정도로 둘의 아름다움에 심취해 있었다. 결국, 노아는 두 바이칼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저어‥두분 혹시 일란성 쌍둥이‥아니신가요?”
그러자, 바이칼은 손으로 얼굴을 덮고 최대한 분노를 가라앉히며 중얼거렸다.
“‥맘대로 생각해.”
여자 바이칼은 그냥 웃을 뿐이었다.
“아아, 시원하군. 그런데 아까 들어보니 지크가 손님을 모셔온 것 같은데‥.”
멀리서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노아는 그쪽을 흘끔 바라보았고 또다시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런닝셔츠를 입었기 때문에 대부분이 보이는 숨이 막힐듯 한 적동색 피부, 타오르는 듯 한 붉은색의 장발에 눈에 띌 정도의 얼굴, 머리를 수건으로 말리기 위해 움직일 때 마다 크게 꿈틀거리는 팔의 단단한 근육질. 그녀는 그런 리오의 모습에서 시선을 뗄 수 없었다. 그녀에게 다가온 리오는 빙긋 웃으며 인사를 해 왔다.
“리오·스나이퍼라고 합니다. 편히 계세요.”
“아, 안녕하세요. 노윤아라고 합니다.”
인사를 마친 리오는 거실에 있는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기 시작했고 노아는 넋이 나간 사람처럼 계속 리오만을 바라보았다. 노아의 그런 모습을 본 여자 바이칼은 약간 인상을 찡그렸고, 그걸 흘끔 목격한 바이칼은 한숨을 푸욱 쉬며 고개를 저었다.
“자자, 들어오세요 세이아씨. 오늘 일은 세이아씨의 솜씨에 달렸다니까요.”
“예예. 호홋‥. 아, 리오씨도 계시네요?”
세이아는 지크와 함께 현관으로 들어오며 맨 처음 리오에게 인사를 했고, 드라이어로 머리를 말리느라 완전히 산발이 되어 버린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야 계속 집에 있는 신세죠. 후훗‥.”
세이아가 집에 들어오자, 약간 찡그러져 있던 여자 바이칼의 얼굴은 완전히 퉁명스럽게 변했고, 세이아 역시 그리 달갑진 않은 얼굴로 인사를 할 뿐이었다.
“아, 안녕하셨어요 바이칼씨.”
“네.”
“네.”
“‥?”
두명의 바이칼이 동시에 대답을 하자, 이번엔 리오가 그 둘을 바라보았고 지크는 재미있다는듯 계속 웃을 따름이었다. 세이아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지크의 안내로 부엌에 향했고, 그녀를 부엌에 밀어 넣은 지크는 다시 거실로 나와 노아의 옆에 앉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자자, 이제 조금만 기다리면 고급 호텔에서나 먹을 수 있는 멋진 요리가 나온다구. 헤헷‥기대하시라!”
그러나, 노아의 신경은 이미 ‘멋진 요리’와는 동떨어져 있었다. 그녀는 지크를 바라보며 미안한 표정을 지은채 말했다.
“저어‥저는 지크씨도 상당히 잘생긴 분이시라고 생각했거든요‥?”
“‥무슨 의미지?”
※※※
“아아, 그러셨군요 리오씨. 호홋, 정말 멋진 분이시네요.”
“아, 그렇진 않아요. 하하핫‥.”
지크는 리오와 즐겁게 담소를 나누고 있는 노아를 그리 즐겁진 않은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이상하게도 또 한명의 여자를 마귀의 손에 쥐어주게 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음식의 마무리를 하고 있던 세이아 역시 그리 탐탁치 않은 얼굴로 리오를 바라보고 있었고, 여자 바이칼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런 광경을 제 3자의 시각으로 바라보던 바이칼은 한숨을 쉬며 생각했다.
‘‥우리 용족이나 동룡족에 관한 진지한 얘기를 나누자는 녀석이 누구였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