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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26화


“아아, 어서 오십시오, 동룡족의 제왕 ‘주룡’이시여! 오시는데 정말 수고 많았습

니다.”

와카루는 접대실에 앉아 있는 주룡, ‘쥬빌란’에게 허리를 굽히며 인사를 했고, 쥬빌란은 입에 물고 있던 긴 담뱃대를 내려놓으며 와카루에게 말했다.

“아닙니다. 시간에 맞춰오지 못해서 미안할 따름입니다. 지금 제 심기가 그리 좋진 않으니 중요한 사항만 말해 주십시오.”

“예? 흠‥알겠습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씀드려서, 제가 여러분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바로 ‘가즈 나이트’와 ‘용제’라고 불리는 드래곤에 대한 것입니다.”

와카루의 말에, 쥬빌란은 가만히 와카루를 바라보다가 불쌍하다는 듯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훗, 그런 대단한 부탁을 하는데 쓴 뇌물이 고작 인간의 여성 5000명이란 말입니까. 용제는 몰라도, 가즈 나이트를 우리들이 건드는 것은 위험하다 못해 거의 자살 행위입니다. 게다가, 제가 들은 정보에 의하면 이 세계에 온 가즈 나이트 중에 ‘리오 스나이퍼’라는 남자가 있는 것으로 압니다. 최근‥이라고 해도 300년 전의 용족 전쟁에서, 그 리오라는 남자의 최종기, ‘오메가 선샤인’ 한 발에 잃은 우리 용족의 숫자가 몇이나 되는 줄 아십니까.”

쥬빌란은 웃음을 띄운 채, 수정과 같이 투명한 자신의 소울스톤을 왼손으로 매만지며 와카루에게 물었다. 와카루는 대략 생각을 해 보았지만 한 용족의 우두머리가 던진 질문이어서 숫자를 정확히 가늠할 수는 없었다.

“음‥한, 만 명 정도‥?”

그러자, 쥬빌란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고개를 저으며 대답해 주었다.

“대략 추정하여 6만 정도입니다. 당신이 우리에게 바친 여성들의 열두 배에 달하는 숫자지요. 그때 리오 스나이퍼가 안전 주문이라는 힘의 제약이 3단계까지 풀린 상황이었다지만, 두렵지 않을 수 없겠지요. 다른 가즈 나이트들도 같진 않겠지만 그들에 대해 알고 있는 우리 용족의 장로들이나 신하들이 고작 인간 하나 때문에 군대를 파견할 이유가 없다며 반대를 하겠지요.”

그때, 와카루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고 자신의 호주머니에서 작은 수첩과 기계장치 하나를 꺼내었고, 그는 곧바로 수첩을 공중에 던진 후 기계장치의 스위치를 눌렀다. 그 순간, 수첩엔 녹색의 장막이 생겼고 그것을 본 쥬빌란은 미소를 지으며 와카루를 바라보았다.

“‥차원 결계‥?”

“‥그렇습니다. 작년, 이 세계에 작은 사건이 있었죠. 그 당시 이 세계에는 이것과 같은 종류의 차원 결계가 여신 세 명에 의해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때, 가즈 나이트들은 마음대로 다른 세계에 오가지 못했죠. 그 여신들의 말에 의하면 신계로 통하는 모든 것이 차단된다고도 합니다. 하지만‥아직 이 세계의 기술력으로는 이런 작은 것밖엔 만들지 못한답니다. 전투는 몰라도 이것을 확대하는 데 필요한‥기술만이라도 도와주신다면‥.”

와카루의 미소는 점점 더해만 갔다. 쥬빌란이 확실히 흥미 있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었다.

“‥잠깐 생각을 다시 해 보겠소.”

※※※

그날 저녁, 리오는 전기가 끊어진 지크의 집 밖에서 모닥불을 피워놓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곳엔 다행히 모두가 있었다. 게다가 추가로 그 대화에 참가해 있는 것은 아란을 비롯한 데스 발키리였다.

사람들이 다 모였을 때, 침묵을 깨고 맨 처음 말한 사람은 다름 아닌 세이아였다. 그녀는 평소와는 다른 분위기로 리오를 비롯한 모두를 바라보며 말했다.

“‥먼저 리오 씨와, 절 알고 계셨던 모든 분들께 사죄를 드립니다. 전 사실 기억을 잃은 것도 아니었고, 이런 일을 예견하지 못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

지크를 필두로, 티베와 마키, 시에, 그리고 넬은 그 말을 들은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러나 리오와 바이칼은 팔짱을 낀 채 묵묵히 세이아를 바라볼 뿐이었다. 리오는 곧 한숨을 내쉬며 세이아에게 물었다.

“‥바이칼에게 들었습니다. 당신이 이 행성의 성계신이 되어 계시다고요. 어째서 그렇게 되셨는지 대답을 들을 수 있겠습니까. 물론 주신께서 결정하신 일이기 때문에 제가 뭐라 할 말은 아니겠습니다만‥.”

리오를 가만히 바라보던 세이아는 조금 후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해 주었다.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이미 신의 힘을 잃으시고, 빛의 정령으로 강등을 당하신 어머니를 편하게 계실 수 있게 하기 위해 저와 제 동생 라이아는 주신께 부탁을 드렸습니다. 어머니 대신 저희들이 성계신을 맡을 테니 제발 어머니를 편히 계시게 해 달라고‥부탁을 드렸습니다. 주신께선 선뜻 저희 자매의 부탁을 들어주셨고, 저와 라이아는 저희들이 가진 힘에 대한 일깨움을 주신께 받은 뒤 이 세계에 내려왔습니다. 처음엔‥지크 씨를 비롯한 모두와 함께 성계신으로서의 일을 하고 싶었으나, 여러분들의 부담이 더 커지실까 봐 그럴 순 없었습니다. 결국, 모든 것을 속이고 기억을 잃은 사람처럼 행동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세이아는 허리를 굽히며 그 자리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사과를 하였다. 그러나 그때, 지크가 재빨리 일어서며 세이아에게 말했다.

“‥잠깐만요. 저희들을 위해 그러셨는데 꼭 사과하실 필요는 없다구요. 조~금 섭섭하긴 해도, 제가 세이아 양의 처지가 되었다면 그랬을지도 몰라요. 헤헤헷‥.”

“‥그럴 리가‥.”

바이칼이 다른 곳에 시선을 돌리며 그렇게 중얼거리자, 지크는 그를 쏘아보며 다시 잔디 위에 앉았다. 그 사이, 리오는 가만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하늘에 뜬 달이 피에 젖은 것처럼 붉게 보일 정도로 공기가 탁해져 있었다.

‘‥폭발에 의해 대기 중에 먼지들이 올라가 있군‥. 어쩐지 숨 쉬기 좀 곤란하다 생각했는데‥.’

리오는 다시 시선을 세이아에게 돌렸고, 진지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며 물었다.

“‥이 행성의 중요성을 당신도 알고 계시겠지요.”

“‥예.”

세이아는 자신이 없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곧, 리오는 빙긋 웃으며 그녀에게 말했다.

“그럼 됐습니다. 이 일의 주범으로 보이는 와카루에 대한 것은 저희들이 처리해 볼 테니‥.”

그때, 세이아는 고개를 저었고 리오는 순간 말문을 닫았다. 세이아는 걱정 어린 얼굴로 바이칼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 일은 자칫 잘못하면 용족 전쟁으로 번질 수 있습니다. 바이칼 님도 알고 계시겠지만 현재 이 세계엔 서룡족의 최고 책임자이신 바이칼 님과 동룡족의 최고 책임자이신 주룡, 쥬빌란 님이 함께 계십니다. 만약, 와카루 박사가 자신의 일에 동룡족을 끌어들인다면 또 한 번의 용족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어버립니다.”

그러자, 지크는 이해가 안 간다는 얼굴로 세이아에게 말했다.

“자, 잠깐. 동룡족 녀석들도 생각이 없지는 않을 텐데 왜 하필 와카루 같은 노인네에게 들러붙는단 말이죠? 그들도 잘못했다간 생체 실험용 도구가 될 텐데‥.”

지크의 물음에, 세이아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서룡족이든 동룡족이든, 두 종족은 신을 제외한 모든 생명체 중 가장 신에 근접한, 그리고 신을 능가하는 생명체입니다. 와카루 박사가 그들을 끌어들인다는 가정은 여러분들, 가즈 나이트들께서 이곳에 계시다는 사실에 바탕을 두고 있습니다.”

그 말을 들은 슈렌은 일리가 있다는 듯 눈을 뜨며 말했다.

“‥만약 우리들의 힘을 제어하고 있는 안전 주문이 풀리지 않은 상황이라면 동룡족의 힘으로 우리를 누르는 것은 어렵지 않아. 현재 이 자리에서 바이칼을 정상적으로 상대할 수 있는 사람은 리오 한 명뿐‥리오는 스스로 안전 주문을 두 단계까지 풀 수 있으니까. 만약 와카루가 이런 사실까지 알고 있다면 동룡족을 부르고도 남겠지. 물론 그들을 부를 만한 엄청난 조건이나 뇌물이 있어야 하겠지만.”

“….”

가만히 슈렌의 말을 듣고 있던 바이칼은 말없이 자리를 떴고, 바이칼의 그런 모습을 본 리오는 옆에 있는 지크의 어깨를 툭 친 후 슬그머니 자리를 비웠다.

그러나.

“어이 리오–!! 어디가?”

지크는 슬그머니 바이칼을 따라가려 했던 리오를 별생각 없이 큰 소리로 불렀고, 모두의 시선은 리오에게로 집중이 되었다. 리오는 앞에 시선을 둔 채 인상을 찡그리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저런 눈치 없는 녀석‥!!!’

리오는 미안하다는 듯 손을 흔들며 바이칼을 따라 지크의 집 안으로 들어갔고, 아란은 빙긋 웃으며 건너편에 있는 지크에게 넌지시 물어보았다.

“흐음‥리오 씨가 왜 저렇게 용제님에게 신경을 쓰시는 거죠? 그렇게 친하신가요?”

그러자, 지크는 킥킥 웃으며 농담조로 대답해 주었다.

“헤헷, 둘이 사귀거든.”

“…!!”

…………………………. . . . . . . . .

바이칼은 지크의 방에 잠들어 있는 리디아를(이제부터 이 이름으로 표기함) 말없이 바라보며 서 있었다. 잠시 후, 그는 긴 한숨을 쉬며 벽에 기대어 앉았고 고개를 푹 숙이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600년 동안 떨어져 있었는데‥다시 그 녀석에게 널 빼앗긴다는 것은 말도 안 돼‥. 안 된다고‥.”

“‥확실히‥비밀이 있었군.”

바이칼은 문 뒤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러다가, 다시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들어와라. 다 말을 해 주지. 너라면‥.”

곧, 문을 열고 리오가 들어왔고 그는 빙긋 웃으며 바이칼의 앞에 앉았다. 그러나 바이칼은 눈짓으로 리디아가 깨어 있는지 확인하라 했고, 리오는 고개를 슬며시 끄덕이며 리디아의 상태를 보았다.

“‥좋아, 안심해. 자아‥그럼 어째서 이산가족이 되었는지 한번 설명해 보실까.”

리오는 망토를 벗으며 다시 바이칼의 앞에 앉았고, 바이칼은 손으로 입을 가린 채 천천히 얘기를 시작했다.

“‥이건 너만 알고 있도록 해. ‥부탁한다.”

“‥네가 나에게 부탁한다는 말은 거의 안 했던 기억으로 보아 상당히 중요한 일 같은데‥좋아, 약속하지.”

리오는 바이칼의 어깨를 두어 번 두드려준 후 진지한 표정으로 얘기를 들으려 했고, 바이칼 역시 차가움이 사라진 목소리로 리오에게 말했다.

“‥나의 아버지‥전대 용제께선 사랑하는 여성 두 분이 있었다. 이 사실은 신룡 ‘브리간트’ 님과 주신만이 알고 있지. 두 분의 여성 중 한 분은 주신계에선 꽤 상류에 속하는‥별을 주관하는 여신 ‘빌라이저’고, 다른 한 분은 동룡족 중 세 번째의 권력을 가지고 있는 대장군 ‘구르칸’의 딸 ‘이베린’이다.”

그 말에, 리오는 약간 놀란 얼굴로 중얼거렸다.

“‥서룡족의 용제가 동룡족의 여성을‥?”

“‥그래. 하지만, 그런 금단의 사랑은 잘 이뤄지지 않는 법‥. 이베린은 사실 아버지를 사랑하고 있었으나, 구르칸의 권력욕에 의해 그 당시 동룡족의 우두머리와 반강제로 결혼했고, 이베린이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헛소문을 퍼트렸다. 아버지께선 믿고 계시지 않았지만 결국 현재 나의 어머님이신 빌라이저와 결혼했고, 두 용족은 1년의 차이를 두고 태자를 얻게 되었다. 먼저 태어난 자가 현재 동룡족 우두머리인 쥬빌란이고, 이후에 태어난 게 바로 나지. 얼마 후, 이상한 사건으로 인해 용족 전쟁이 다시 터졌고 그때의 전쟁은 우리의 승리로 끝났다. 아버지께서 대장군 구르칸과 그때의 주룡을 직접 없애신 덕분이었다. 그때 내 나이는 50세‥인간의 아이로 치자면 두 살 정도 되었을 나이였지. 어쨌거나, 전쟁에서 승리하신 아버지께선 동룡족의 대비였던 ‘이베린’을 우리 쪽으로 데려오셨다. 모든 포로를 풀어주시고, 모든 전리품을 포기하신 채‥. 결국 이베린은 아버지의 후처로 되었고 몇 년 후 이베린은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그 아이가 바로‥지금 침대에서 자고 있는 리디아다.”

바이칼은 거기까지 얘기한 뒤 잠시 말을 끊었다. 눈을 가늘게 뜬 채 바이칼의 말을 듣고 있던 리오는 한 가지 의문점을 가지게 되었다. 물론 바이칼이 막 얘기하려고 했던 것이었지만.

“‥그런데, 왜 네 동생이 다시 동룡족 쪽으로 가게 되었지? 게다가 그 이베린이란 동룡족 여성도 드래고니스에선 본 일이 없는데‥? 빌라이저 님께도 들은 일이 없었고‥.”

리오의 질문을 들은 바이칼은 순간 주먹을 불끈 쥐고 말았다. 곧, 그는 쓰디쓴 표정으로 말하기 시작했다.

“‥그 쥬빌란이란 녀석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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