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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39화


리오는 드래고니스에 머무를 때면 사용하는 자신의 지정 침실 안에서 혼자 길게 한숨을 쉬어 보았다. 그의 방은 드래고니스의 크기 만큼이나 컸기 때문에 한숨 소리 마저도 공명이 되어 들릴 정도였다. 게다가 침대는 더블 침대라고 하지 못할 정도로 넓은 침대였다. 하지만 드래고니스에 머물 때마다 리오는 그 드넓은 침대에서 혼자 잠을 잔 일이 없었다. 클래식한 장식으로 뒤덮인 천장을 침대에 누운 채 바라보며 시간을 보내던 리오는 어느덧 자신의 손가락을 바라본 뒤 하나 하나 꼽아 보기 시작했다. 마치 무언가를 기다리는 사람 처럼. 그의 마지막 손가락이 마침내 구부려지자, 곧 그의 침실 문이 열렸고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상반신을 살짝 일으킨 뒤 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을 바라보았다.

“‥왜, 또 잠이 안오는거야?”

“….”

자신의 가슴과 복부를 충분히 뒤덮을 정도로 커다란 베개를 안은 채 들어오던 바이칼은 묵묵히 리오의 옆에 쓰러지듯 누웠고, 리오는 금방 잠이 들어버린 바이칼의 머리를 약간 강하게 매만져 준 후 자신도 잠을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다.

똑–똑–

“‥음?”

그때, 갑자기 그의 방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리오는 의아한 얼굴로 몸을 일으키며 고개를 갸웃거려 보았다. 비상시 외에 이 시간에 자신의 방을 찾을 사람은 바이칼 외엔 없었기 때문에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방문 쪽으로 향해 보았다. 그는 방문에서 두발자국 떨어진 지점에 선 뒤–만약의 경우를 대비해–밖에 있는 누군가에게 정체를 물었다.

“이 시간에 누구시죠?”

“‥후훗, 역시나 무드 없는 사람이군요. 당신을 해칠 생각은 지금 없으니 문이나 열어 주실래요?”

아란이다. 리오는 쓴웃음을 지으며 방 문을 열어 주었다.

“흐음‥이런 시간에 또 무슨 볼 일‥음?”

방문 밖에 있는 아란의 모습을 본 리오는 순간 숨을 멈추고 말았다. 그녀의 차림이 너무나도 간편했던 탓이었다. 리오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그런 차림으로 여기까지 잘도 왔군. 하긴, 당신 정도의 능력이라면 경비병의 눈을 피하는건 쉬울테니까. 다시 묻지만‥무슨 볼일이지?”

그러자, 아란은 살며시 방 안에 들어온 뒤 리오의 두꺼운 어깨에 자신의 손을 가져가며 특유의 요염한 미소를 띄운 채 살며시 속삭였다.


“‥훗, 어린아이 같은 말을 하는군요. 지금부턴 어른들의 시간이라고요. 후훗‥.”

그러나, 리오는 별로 생각이 없는 듯 머리를 긁적이며 아란에게 말했다.

“흠, 미안하지만 아직 어른들의 시간엔 익숙하지 못해. 게다가 지금은 먼저 온 손님이 있지.”

리오는 그렇게 말하며 자신의 침대에 누워 잠을 자고 있는 바이칼을 시선으로 가리켰고, 그것을 본 아란은 약간 실망스런 눈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말했다.

“‥후훗, 그렇군요. 당신에게 그런 취미가 있을 줄은 몰랐어요. 후후훗‥. 자아, 그럼 하는 수 없군요. 나중에 기회가 나면 또 오지요. 안녕히‥.”

아란은 살짝 윙크를 하며 리오의 방을 나섰고, 리오는 방 문을 닫으며 살며시 고개를 저었다. 다시 바이칼의 옆에 누운 리오는 바이칼에게서 등을 돌리며 나지막히 중얼거렸다.

“‥그런 취미도 없다고‥.”

※※※

다음날, 드래고니스의 메인 브릿지에선 아침부터 비상 경계령이 내려져 있었다. 이유인 즉, 소수의 동룡족 함대가 일본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봐요 할아범, 저 녀석들이 갑자기 방향을 바꿔 이쪽으로 향하면 어떻게 해요?”

지크는 상황판을 바라보며 장로에게 물었고, 장로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지크에게 말했다.

“저정도 숫자의 함대로 드래고니스를 노린다면 동룡족으로선 자살 행위에 가깝답니다. 드래고니스의 사정권 내에 들어와 무력 도발을 한다 해도 문제가 없고, 드래고니스의 사정권 밖에서 도발 행위를 한다 해도 대기권 밖에 있는 장거리 공격용 구축함 함대에 의해 원거리 공격을 받기 때문입니다.”

“‥흐음‥.”

지크는 고개를 끄덕이며 뒤로 물러섰고, 곧이어 리오가 장로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그럼, 만약 동룡족이 일본을 공격한다 해도 서룡족으로선 도와주실 수 없다는 말씀과 같군요.”

“‥예, 그렇습니다만‥.”

결국, 리오는 하는 수 없다는 듯 브릿지를 나서며 지크에게 말했다.

“자아, 여길 부탁해 지크. 상황을 아는 이상 저 나라 사람들이 그대로 동룡족에게 당하게 할 수는 없지.”

순간, 지크는 인상을 구기며 리오에게 말했다.

“자, 잠깐!! 저 나라 사람들은 도와줄 가치도 없다구!!!”

리오는 지크의 말이 믿겨지지 않는다는 듯 깜짝 놀라며 그를 바라보았다. 지크가 도와줄 가치가 없다는 말은, 그것도 아무 죄 없는 사람들에게 그런 말을 하는 것은 처음이기 때문이었다. 리오는 곧바로 돌아선 후, 지크에게 이유를 물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들어볼 수 있을까?”

“‥쳇.”

리오의 물음에, 지크는 아무 대답 없이 돌아설 뿐이었고, 그런 지크의 행동을 본 리오는 결국 인상을 찡그리며 그에게 말했다.

“‥좋아, 그럼 이번 일은 지크, 네가 나서도록 해. 너도 지금은 하늘을 날 수 있으니 일본까지 가는 것은 가능하겠지.”

“‥무, 무슨 소리야!! 내가 왜 네 명령을 들어야 해!!!”

순간, 지크는 크게 반발하며 리오에게 소리쳤고, 리오는 묵묵히 지크를 바라보기만 하였다. 결국,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빌어먹을‥알았어, 내가 가도록 할께. 그 나라 사람들에겐 빚이 하두 많아서 그런거니까 악의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마. ‥근데, 진짜 나 혼자 보낼 생각이야?”

평소와 같은 지크의 물음에, 리오는 머리를 긁적이며 자신도 같이 간다는 말을 하려 했다. 그러나, 그보다 빨리 지크를 도와주는 이가 있었다.

“후훗, 그럼 우리가 같이 가 드리죠.”

그때, 메인 브릿지 밖에 있던 아란과 알테미스가 안에 들어왔고, 아란은 얘기를 다 들었다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지크도 잘 됐다는 듯 씨익 웃으며 말했다.

“호오, 언니들이 같이 가 주려고? 헤헷, 이거 재미있겠는데? 그건 그렇고 무슨 바람이 불어서 같이 간다고 그러는거야?”

“‥피가 보고 싶어서‥.”

알테미스의 조용한 대답을 들은 지크의 안색은 순간 바뀌어 버리고 말았다. 그녀의 차가운 외모 이상의 냉랭한 말투에 지크도 약간은 질리고 말았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크는 바이론의 경우를 생각하면서 다시 안색을 바꾸었다.

“‥뭐, 맘대로 해. 자자, 그럼 우린 가 볼테니까 여길 자알 부탁해 리오씨.”

“아아, 걱정 말아. 그럼 수고해줘 지크.”

리오는 데스 발키리 두 명과 함께 브릿지 밖으로 나가는 지크에게 손을 흔들어 주었고, 그는 다시 착석을 한 뒤 다른 세계의 상황을 보기 시작했다. 그때, 옆에 말없이 있던 슈렌이 진지한 표정으로 리오를 바라보며 물었다.

“‥괜찮겠어? 저 데스 발키리들을 너무 신용하지 않는게 좋을 듯 싶은데‥.”

그러자, 리오는 빙긋 미소를 지은 채 슈렌을 바라보며 말했다.

“물론‥나도 믿고 있진 않아. 안전 주문이 풀리지 않은 상황의 우리와 맞먹을 정도의 전투력을 가진 악신계의 전사들이 괜히 우리를 도와줄 이유가 없겠지. 물론 그게 아니라 우리의 오해라면 사과나 해 주지 뭐.”

“‥흠‥.”

슈렌은 다시 눈을 살짝 감으며 고개를 숙였다. 고정된 그의 자세였기 때문에 뭐라 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

란바랄은 자신의 거대한 대검을 옆으로 휘둘렀다. 그러자, 부숴진 건물의 잔해엔 그의 검에 묻어있던 누군가의 피가 흩뿌려졌다. 그는 입술을 치켜 올린 채 웃으며 자신의 앞에 있는 몇 명의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지금까지 자신들의 염동 능력으로 상대해온 보통의 용족과는 차원이 틀렸다. 란바랄은 천천히 앞으로 걸음을 옮기며 그들에게 말했다.

“‥인간 주제에 여기까지 잘도 버텨왔다. 그것만은 칭찬해 주지. 그러나‥이것으로 끝이다.”

란바랄은 자신의 검을 높이 치켜 들었다. 곧, 그의 검 끝엔 용 모양의 투기가 모이기 시작했고, 그의 앞에 있던 일본 초능력자들은 이를 악물며 방어 결계를 쳤다.

“쓸데 없다!! 죽어라 하등 동물들!!!!”

란바랄은 곧 투기가 실린 검을 강하게 휘둘렀고, 그와 동시에 그의 검에 모여있던 용 모양의 투기들이 살아 숨 쉬는 듯 꿈틀거리며 초능력자들을 향해 빠르게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으아아앗–!!!!!”

란바랄의 일격에, 초능력자들이 만든 결계는 힘없이 찢어졌고 전열에 있던 초능력자들은 직접적으로 부상은 입지 않았지만 그들의 염력이 역류하는 바람에 귀와 코, 그리고 눈에서 피를 뿜으며 처참히 바닥에 쓰러져갔다. 남은 사람은 단 세 사람 뿐. 란바랄은 여전히 미소를 지은 채 그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후훗, 여자 하나에 남자 둘이라‥. 너희들, 생각보다는 수준이 높은 염동 능력 사용자인 모양이군. 앞에 있던 얼간이들과는 좀 다른 것 같아. 그래도‥봐줄 생각은 없으니 각오해라!!!”

란바랄은 곧 검을 부여잡고 빠르게 내달리기 시작했다. 엄청난 스피드‥그리고 가공할 만한 힘 앞에 남자 두 명은 힘없이 쓰러져 버렸고, 결국 남은 것은 여자 한 명 뿐이었다. 그녀 역시 저항 한 번 하지 못하고 란바랄에게 잡혀 버렸고, 그는 그녀의 얼굴을 잡은 채 위로 들어 올리며 중얼거렸다.

“후훗‥색을 밝히는

‘도돔브’

장군에게 선물로 드릴까? 뭐, 그러기엔 약간 아깝긴 하지만‥후후후훗‥.”

“읍‥!! 으으읍‥!!!!”

“‥호오, 혀를 깨물고 자살할 생각인가? 그것도 안돼지, 어차피 네 턱은 내 손의 힘을 이길 수 없으니까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 좋아, 결정했다. 넌 내 시녀로 쓰도록 하지. 하하하하하핫–!!!!”

순간, 란바랄의 머리 위로 무언가가 빠르게 스쳐 지나갔고, 그 물체는 땅바닥에 힘없이 널브러졌다. 그는 깜짝 놀라며 자신의 앞에 떨어진 그 물체를 바라보았고, 그는 오래 지나지 않아 그것이 자신의 부하들 중 한 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게 되었다. 란바랄은 피 떡으로 변한 자신의 부하를 보며 이를 갈았고, 곧 잡고 있던 여자를 내려 놓은 뒤 자신의 뒷 쪽을 바라보았다.

“어떤 녀석이냐!! 감히 누군데 비겁하게‥허억!?”

란바랄은 뒤를 돌아본 순간 전율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앞에 떨어졌던 부하가 다른 부하들에 비해 가장 정상적인 모습으로 죽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란바랄은 침을 꿀꺽 삼켰다. 공포감이었다. 그는 자신의 앞에 벌려진 참혹한 상황과, 그리고 부하들의 시체 더미 중앙에 서 있는 엄청난 몸집의 회색 거인에게 그는 생전 처음 무시무시한 공포감을 느끼고 있었다.

“크크‥크크크크‥몰래 하던 놀이가 들켜버렸군‥크크크크크‥.”

소름이 돋을 정도로 낮게 깔리는 목소리, 그리고 시뻘건 빛을 내는 눈, 그리고 몸에서 뿜어내는 검은색의 투기‥. 란바랄은 자신도 모르게 무릎을 꿇고 말았다.

“‥아앗?”

란바랄은 깜짝 놀라며 다시 몸을 일으켰다. 그 순간, 그의 몸에선 대량의 땀이 흘러 나왔고, 그는 손으로 땀을 닦으며 생각했다.

‘‥저 괴물은 뭐지? 게다가 이 느낌은‥!!’

그 회색 거인은 천천히 란바랄을 향해 걸어오기 시작했다. 한발자국 움직일 때 마다 꿈틀거리는 회색의 거대한 근육질은 란바랄에게 잡혀 있던 여자에게도 공포감을 한껏 심어주고 있었다.

“‥크크큭‥죽는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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