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 나이트 – 672화
6장 [사별. 그리고 새로운 힘]
용신제가 펼쳐진 지 한 달 뒤, 아무도 드래고니스를 대한민국의 상공에서 볼 수는 없었다. 호주로 정박 위치를 바꾼 드래고니스의 주변은 각종 수리함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드래고니스의 파괴된 부분을 수리하고 있었고, 드래고니스의 주거지역 주민들 역시 자신들의 집과 도시를 수리하는 데 여념이 없었다.
다행스럽게도 부서지지 않은 지크의 집과 세이아의 집에선 예전과 달리 보이지 않는 사람이 두 명 있었다. 하지만 두 집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예전부터 그들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고 있었다. 아니, 자신들의 마음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그러는 것일 수도 있었다.
제궁 안에 있는 바이칼은 보통 때완 다른 침통한 얼굴로 옥좌에 앉아 장로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보고를 하는 장로 역시 그리 좋은 표정은 아니었다.
“… 그렇게 해서, 중동 일부 지역과 러시아, 동남아시아 일부 지역을 제외한 모든 지역은 다시 동룡족의 수중에 들어갔사옵니다.”
말을 맺은 장로는 한숨을 길게 쉬며 고개를 푹 숙였고, 보고를 다 들은 바이칼은 눈을 감으며 장로에게 물었다.
“… 아버지께서 계실 때도 서룡족이 이렇게 전패한 예가 있었소? 아니면 그 이전에라도….”
“…!”
장로는 바이칼의 그 질문이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 알고 있었다. 장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렇게 수세에 몰린 적이 한두 번은 아니었지만 지금의 바이칼에겐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괜히 예를 들어 설명했다간 자신은 어리석은 자가 되고 바이칼은 지금의 상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아서였다. 그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자, 바이칼은 고개를 끄덕이며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 됐소. 가보시오.”
“… 예. 그럼, 조금이라도 쉬시길….”
장로가 무거운 발걸음으로 알현실을 나간 직후, 바이칼은 옥좌의 팔걸이를 강하게 내려쳤고 팔걸이는 간단히 부서져 바닥으로 흩어졌다. 바이칼은 곧 양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린 채 흐느끼기 시작했다. 지금 알현실엔 누구도 들어오지 못한다. 그런 사실이 바이칼의 마음을 흔든 것일지도 모른다. 바이칼은 나머지 하나 남은 팔걸이에 손을 내려놓으며 비통히 중얼거렸다.
“… 누가 네 녀석보고 그런 영웅이 되라고 했어…!! 그런 것도 아닌데 왜…! 왜 우릴 버리고 떠난 거야 멍청한 녀석아…!!!”
파앙–!!
순간, 보통 땐 마법으로 봉쇄되어 있는 알현실의 문이 무언가에 튕겨지듯 열려 버렸고, 바이칼은 움찔하며 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그런 바이칼의 모습을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금발의 남자–휀은 눈을 감으며 손을 뒤로 뻗어 알현실의 문을 다시 닫았다. 문은 다시 마법으로 봉쇄되었고, 휀은 천천히 바이칼에게 다가가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등장한 휀에 의해 당황한 바이칼은 최대한 휀으로부터 얼굴을 돌리며 그에게 물었다.
“… 무, 무슨 일로… 또… 온 건가….”
바이칼이 계속 흐느끼며 자신에게 물어오자 휀의 눈은 한층 더 가늘어졌다. 이윽고, 바이칼의 바로 앞에 선 휀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 리오가 죽은 것은 확실하다. 하지만, 어디에도 그의 영혼은 찾을 수 없었다. 3개월 후에 부활을 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차원의 틈새로 영혼이 튕겨져 날아가 버렸다면 주신께서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
바이칼은 고개를 숙인 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를 가만히 내려다보던 휀은 한숨을 짧게 쉬며 계속 말했다.
“걱정하지 말도록. 비어버린 무속성 가즈 나이트의 자리는 얼마든지 신인으로 메꿀 수 있으니까 곧 다른 인물로 대치해 주지.”
“…!!!! 이 자식–!!!!!”
순간, 바이칼의 주먹이 휀에게 날아들었다. 그러나, 휀은 피하지 않고 바이칼의 주먹을 맞아주었다. 하지만, 그의 몸은 잠깐 움찔할 뿐이었다. 휀이 자신의 주먹을 맞은 것에 바이칼은 약간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고, 휀은 곧 자신의 왼 뺨에 꽂혀있는 바이칼의 주먹을 아래로 내리며 바이칼에게 물었다.
“… 리오란 녀석이 그렇게 소중했나.”
“….”
“솔직히 말하도록.”
바이칼은 묵묵히 서있다가,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그를 여전히 싸늘한 눈으로 바라보던 휀은 손수건을 꺼내 바이칼에게 건네준 뒤 돌아서서 알현실을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 네 눈물은 하늘까진 움직이지 못했지만 빛을 움직이기엔 충분했다. 얼굴이나 잘 닦도록.”
“…!”
휀이 알현실 문을 연 순간, 문밖에서 조마조마한 얼굴로 걱정하고 있던 리디아가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다른 전룡단 단장들도 안으로 들어오려 했으나 휀이 통과시킨 사람은 리디아 한 명뿐이었다. 릭, 레소드를 비롯한 전룡단 단장들은 침울한 표정으로 고개를 떨굴 뿐이었다. 어떤 단장은 눈물까지 떨구었다. 그런 모습을 본 휀은 전룡단 단장들을 훑어보며 짧게 말했다.
“일렬 횡대로 집합.”
“… 예?”
“….”
“… 아, 예!”
곧, 알현실 앞에 서 있던 전룡단 단장들은 휀의 앞에 일렬로 정렬했고, 그들이 차렷 자세를 취하자마자 휀의 주먹이 전룡단 단장들의 얼굴에 꽂히기 시작했다. 단장들은 누구 할 것 없이 바닥에 쓰러졌고, 휀은 그들을 내려다보며 다시금 말했다.
“지금 시각은 오후 열두 시 20분. 정각 한 시까지 드래고니스의 모든 전룡단 단장들은 작전 회의실로 집합한다. 1초라도 시간을 어기는 전룡단 단장들은 명령 불복종으로 취급해 사형을 내리겠다. 내가 직접. 그럼 해산.”
휀이 그렇게 말하고 다른 곳으로 걸어가려 하자, 순간 릭이 몸을 일으키며 휀에게 소리쳤다.
“휀 님!! 그 명령은 이행할 수 없습니다!! 동남아시아를 비롯한 일부 지역의 보급이 끊겨 그쪽 역시 언제 점령당할지 몰라 혼란스러운 상황에 다시 회의를 한다 해서 무슨 효과가 있겠습니까!!! 철회해 주십시오!!!!”
릭의 말을 들은 휀은 복도에 가만히 멈춰섰다. 그러나 그의 시선은 돌려지지 않았다. 릭을 뒤로한 채 휀은 조용히 그에게 물었다.
“… 레인메이커(Rainmaker)가 무슨 뜻인지 알고 있나.”
“예?”
“… 비를 만드는 사람… 다른 뜻으로 불가능을 가능하게 만드는 사람을 뜻한다. 하지만 난 그렇지 못해. 가능성이 없는 일은 시도하려고 하지 않는다. 리오완 달라.”
“… 그렇다면 현재 가능성이 몇 %라고 보십니까.”
“알현실 앞에서 자신들의 왕을 걱정하며 징징대는 전룡단 단장들을 데리고 작전을 수행한다면 0.01% 정도…. 하지만, 이 휀·라디언트에게 대들 용기를 지닌 전룡단 단장들을 데리고 한다면 99.9% 이상이다.”
휀은 그 말을 남기고 복도 저편으로 사라져갔고, 휀에게 맞은 뺨에 손을 댄 채 그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던 전룡단 단장들은 하나같이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릭은 고개를 들며 가만히 중얼댔다.
“… 후, 과연 휀·라디언트님…. 반박할 여지가 없군. 자, 모두 다른 전룡단 단장들에게 연락하도록. 사형당하는 동료는 보고 싶지 않으니까.”
“… 음!”
………………………. . . . . . . .
“이런, 뭐야~ 바람의 가즈 나이트 씨가 이렇게 빌빌대면 재미없지. 하하핫….”
“… 제가 보기에도 안쓰럽습니다 지크 씨.”
지크는 한창 TV를 보고 있던 자신의 앞에서 중얼대는 두 명의 남자, 사바신과 레디를 짜증스러운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크는 곧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며 그들에게 물었다.
“이봐, 그 회색분자는 왜 안 와? 아까 전에 우주 황태자(휀)까지 등장했으니 남은 건 그 인간 하나 아니야?”
그 질문에, 집 구석에 있던 중력 역기를 집어 올리던 사바신이 눈을 동그랗게 뜨며 대답해 주었다.
“아아, 바이론? 그 아저씨 지금 나도 어디 있는지 몰라. 아직 임무가 끝나지 않았나 보지 뭐. 그건 그렇고 이 역기 8톤밖에 안 되잖아? 어허, 남자가 이런 걸 쓰면 안 되지!!”
사바신은 역기의 중력 하중을 20톤으로 올린 뒤 마치 아령처럼 들고 힘을 쓰기 시작했고, 그런 모습을 보던 레디는 머리를 긁적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 음, 난 1톤도 겨우 들어 올리는데…. 아, 지크 씨. 그런데 말이죠….”
“말 놔 임마. 소름 끼쳐.”
“아, 미안…. 세이아님은 괜찮으신 거…야?”
레디가 세이아의 일을 물어오자, 지크는 눈을 감으며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 리오가 드래고니스를 습격한 동룡족과 바이오 버그들을 홀로 물리치며 드래고니스를 탈출시킨 이후, 세이아는 리오의 기가 이 세상 어디에도 느껴지지 않는다며 실의에 빠진 채 한 달을 보내고 있는 상태였다.
“… 모르겠어. 아란이라는 데스 발키리가 리오의 사망 소식을 직접 우리에게 전해준 뒤 세이아님의 상황이 더 심각해졌지. 근데 이해가 안 가. 어째서 우리보다 일찍 아란이 리오의 사망을 알게 된 건지…. 그 여자 말로는 리오가 죽는 모습을 직접 봐서 녀석의 망토와 디바이너, 파라그레이드를 회수해 왔다고 하는데, 도저히 믿음이 안 가. 같은 가즈 나이트인 우리가 훨씬 더 빨리 알 수 있는데 말이야.”
한참 역기로 땀을 빼던 사바신은 지크의 그 말을 들으며 역기를 다시 내려놓았고, 레디가 던져준 수건으로 땀을 닦으며 말했다.
“… 게다가, 리오의 영혼을 명계에서 찾아볼 수 없다고 휀이 그랬잖아. 분명 죽었다면 명계에 영혼이 갈 텐데…. 그래서 실종이라고 그러는 거야?”
지크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뭐, 말하자면. 그리고 또 한 명이 실종됐어. 넬이라는 여자아이 말이야. 혼자 싸우는 리오를 두고 볼 수 없다며 웨드를 타고 밖으로 뛰쳐나갔다는데, 그 이후 소식이 없어. 동룡족에게 잡혀간 건지, 아니면 대한민국 어디에 있는 건지… 제기랄…!”
지크는 눈을 질끈 감으며 진정하려는 듯 한숨을 길게 쉬었다. 그런 그를 묵묵히 바라보던 사바신과 레디는 곧 다른 사람의 일을 물었다.
“… 슈렌은?”
“… 음, 좀 있으면 올 거야. 따님하고.”
순간, 사바신과 레디의 얼굴은 굳어져 버렸고 사바신은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은 채 지크에게 다시 물었다.
“… 무슨 님?”
“따님. 이해가 안 가냐? 딸+님의 합성어로서, ㄹ이 탈락되어 ‘따님’이라 하지.”
“….”
그 이후 사바신과 레디의 소동은 슈렌이 돌아올 때까지 멈추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