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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 나이트 – 673화


“… 많이 지쳐 보이는군요, 리오.”

아란은 자신의 앞에 거의 쓰러져있다시피 한 리오를 바라보며 그렇게 물었고,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리오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피식 웃어보였다.

“후웃… 표현이 너무 가볍군…. 지금 죽는다 해도 이상할 건 없어. 그건 그렇고… 드래고니스는 탈출에 성공한 건가. 진짜로.”

“… 물론이죠. 지금은 대기권 밖에 있을 테니 안심하세요.”

아란의 대답을 들은 리오는 다행이라는 듯 고개를 숙였다. 리오의 그런 처참한 모습을 내려다보던 아란은 곧 자신의 검, 디스파이어를 꺼내 들었다. 붉은색의 광체가 요사스럽게 흐르는 검…. 그러나, 현재 리오는 아란이 검을 꺼내 들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 정도로 리오는 현재 지쳐 있었다. 수만의 동룡족 병사들과 장군들, 대형 바이오 버그, 전함, 그리고 군주 올파드…. 그 모든 것을 홀로 막아내고 대한민국 전체를 뒤덮은 차원 결계를 지하드까지 써서 깨 버린 리오는 드래고니스가 워프하여 동룡족이 혼란스러운 틈을 타 전장에서 겨우 탈출한 상태였다.

지금 이곳은 숲 속, 리오는 나무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마치 리오를 모르는 사람이 그의 그런 모습을 보았다면 죽기 직전의 사람과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아란이 디스파이어를 꺼내 든지 얼마 후, 리오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아란에게 물었다.

“… 그런데, 어째서 당신이 여기 있는 거지. 당신은 중동 지역으로 동료들과 함께 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 음?!”

천천히 고개를 들던 리오는 아란이 디스파이어를 든 채 살기를 뿜어내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아란은 눈을 가늘게 뜬 채 디스파이어를 위로 올리며 리오에게 말했다.

“이것이 우리들의 진정한 목적…. 가즈 나이트들을 하나씩 제거해 나가는 것이죠. 이번엔 정말 거물이 걸려들었군요. 가장 강하다는 세 명의 가즈 나이트 중 한 명인 당신… 말이죠.”

“… 지금 날 죽여 봤자 3개월 후에 다시 나타날 텐데?”

“… 후, 그런 것까지 미리 계산해 두었죠. 이 검으로 당신의 목을 치는 순간, 당신의 영혼은 명계에 가지 못하고 이 검에 흡수되어 버린답니다. … 자, 각오하세요.”

리오는 힘겹게 팔을 들어 자신의 눈가에 묻은 피를 닦아내었다. 그런 뒤,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아란에게 말했다.

“… 이상한 취미가 또 있군…. 사람 목을 치기 전에 우는 건 또 뭐지….”

“….”

아란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의 눈에서 흐르는 눈물은 뺨을 타고 갸름한 턱 아래로 떨어지고 있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리오는 다시 빙긋 웃어주며 말했다.

“… 100년 전, 내가 네 목을 친 것은 씻을 수 없는 일이었어.”

“…!!”

리오의 입에서 순간 그런 말이 나오자, 아란은 움찔하며 뒤로 주춤거렸다. 하지만 리오는 도망치지도, 숨지도 않았다. 그저 반가운 사람을 만난 사람처럼 미소를 짓고 있었다.

“내가 가즈 나이트가 됐을 때… 네가 내 첫사랑이었을 때부터 이런 기가 막힌 운명은 시작됐지. 난 기다렸어… 언제건, 어떤 모습이건 간에 다시 환생했을 널 찾으러 다녔어. 하지만 겨우 만났다 생각했을 땐 이미 할머니가 되어 있었고, 또 겨우 만났다 생각했을 땐 갓난 아이였고, 또 겨우 만났다 했을 땐 내가 네 생명을 끊어버렸지. 신께서 어떤 이유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지 알지 못하겠지만, 그래도 수백 년간 수십 번 널 만났어도 변하지 않는 게 있어. 지금도 그렇고….”

리오는 곧 자신의 머리를 묶은 끈을 풀어낸 뒤 아란에게 내밀었고, 아란은 검을 들지 않은 손으로 그 머리끈을 받았다. 그리고 리오의 얘기는 계속되었다.

“… 언제, 무슨 모습으로 만났어도 넌 아름다웠어…. 후훗, 어쨌거나 다행이군. 이제 너와 내가 언제나 함께 있을 수 있게 됐으니까…. 100년 전 내 머리를 처음 묶어준 끈이야. 다시 돌려주기엔 너무 더러워졌지만….”

리오의 머리끈을 손이 불끈 쥔 아란은 손등으로 눈물을 훔치며 다시 검을 거머쥐었다. 그리고, 흐느낌이 섞인 목소리로 리오에게 물었다.

“… 마지막으로… 할 말은 없나요.”

“….”

리오는 그 말을 들은 즉시 몸을 힘겹게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의 다리는 후들거렸고 뒤틀린 내장에 의해 입에선 선혈이 다시금 흘러내렸다. 팔에 난 상처 역시 아물고 있긴 했지만 피가 멈추진 않았다. 리오는 그런 만신창이의 몸으로 겨우 일어나 아란에게 다가갔고, 피 묻은 손으로 아란의 양 볼을 감싼 뒤 조용히 입을 맞추었다.

“….”

아란은 아무런 말이 없었다. 모든 힘을 쏟은 리오는 다시 뒤로 주저앉았고,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 사랑하고 있어…. 부끄러워서 지금까진 제대로 말 못했지만….”

그 직후, 아란의 디스파이어는 붉은 잔광을 남기며 리오의 목으로 향했다.

…………………….. . . . . .

“왜 그래 아란? 정신 차려.”

멍하니 생각을 하고 있던 아란은 레베카가 자신을 흔들며 부르는 소리에 움찔하며 정신을 차렸다. 아란은 곧 한숨을 길게 쉬며 레베카에게 말했다.

“… 후훗, 미안. 디스파이어에 갇혀있는 리오·스나이퍼의 영혼 때문에 그랬어. 여기에 집어넣을 때 너무 고생했거든.”

“음… 이해해. 그 남자 강해도 지나치게 강했으니까. 어쨌든 한 달 전의 일인데도 참 신기하다. 어떻게 그 남자를 이기고 영혼을 흡수한 거야?”

“… 후, 글쎄.”

아란은 고개를 저으며 자리에서 일어나 집 밖으로 나가버렸고, 레베카는 입을 비죽 내밀며 가볍게 중얼거렸다.

“… 말도 못 할 만큼 어려웠나 보네…?”

※※※

쥬빌란과 올파드를 비롯한 동룡족 장성들은 드래고니스 격퇴 한 달을 기념하여 한참 연회를 열고 있었다. 드래고니스는 모든 용족에게 있는 군사시설 중 난공불락이라는 단어의 화신이라 불렸던 것으로서, 지금까지 번번이 드래고니스를 노리다가 격파당했던 동룡족으로선 기념하여 연회를 열어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 연회가 열리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쥬빌란의 얼굴은 밝지 않았다. ‘정정당당’을 좋아하는 그로선 와카루가 제공해 준 스텔스 장치와 차원 결계를 이용해 드래고니스와 제일 귀찮은 존재인 리오를, 그것도 용신제가 끝난 다음 날 전군을 돌려 급습해 승리했다는 것은 그의 기분을 상당히 가라앉게 하는 것이었다. 와카루의 그런 제의를 처음엔 거절했던 그였지만, 올파드의 강력한 찬성과 설득에 의해 그 작전을 지시한 쥬빌란은 씁쓸한 얼굴로 올파드의 술을 받고 있었다.

“… 마마, 아직도 기분이 편하지 않으십니까.”

올파드의 물음에, 쥬빌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 솔직히 그렇습니다. 한 달 전 그 급습 작전은 아무리 생각해도 정당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용신제가 끝난 뒤 브리간트님께서 정하신 정전 시간이 끝난 1초 뒤 포격을 개시했다는 것은 상식적으로도 비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묵묵히 쥬빌란의 말을 듣고 있던 올파드는 다시 쥬빌란의 잔에 술을 따르며 말하기 시작했다.

“마마, 저도 솔직히 그 작전이 정정당당하지 못한 작전이었다고 생각을 하옵니다. 하지만, 이번 작전으로 인해 얻은 것은 더 많사옵니다. 연전연승으로 하늘을 찌를 것 같던 서룡족의 사기도 완전히 꺾어 놓았고, 드래고니스에도 상당한 피해를 입혔으며 제일 귀찮은 존재인 리오·스나이퍼도 제거하는 데 성공했사옵니다. 비록 인간 과학자 와카루의 제공을 받아 작전을 성공시켰지만 어쨌거나 승리한 것은 우리 동룡족이옵니다. 너무 마음에 두지 마시길 바라옵니다.”

“….”

올파드의 말을 들으며 술을 넘기던 쥬빌란은 곧 한숨을 길게 쉬며 올파드에게 말했다.

“… 아무래도 이번 연회가 끝난 뒤 용제에게 사신을 보내어 저번 일의 사과를 해야 하겠습니다. 사과가 받아들여질지 의문이지만….”

“… 마마!!”

순간, 올파드는 크게 쥬빌란을 부르며 의자에서 일어나 바닥에 무릎을 꿇었고, 올파드의 목소리가 터짐과 동시에 연회장은 순간 침묵의 도가니로 변했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쥬빌란과 올파드에게 집중되었고, 올파드는 비장한 목소리로 쥬빌란에게 말하기 시작했다.

“마마! 한 나라의 왕은 물론 한 종족의 왕이라 함은 덕과 의를 바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하지만, 때에 따라선 악마와 같은 비정함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도 있는 것이옵니다!! 그리고 지금은 전쟁 중이옵니다!!! 어떻게 졌건 전투에서 패배한 적의 우두머리에게 마마께서 머리 숙여 사과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음이옵니다!!! 조금 더 비정해 지시옵소서 마마!! 소신은 패배해도 좋지만, 마마만은 패배를 모르셔야 하옵니다!!! 고개를 숙이시면 아니 되옵니다!!!”

결국, 쥬빌란은 고개를 끄덕이며 올파드에게 앉으라는 손짓을 했고, 올파드는 감사를 표하며 자리에 앉았다. 연회는 곧 다시 시작되었고, 쥬빌란은 미소를 띄운 채 올파드에게 술을 권하며 말했다.

“… 당신과 같은 신하가 만약 서룡족에 있었다면, 우리 동룡족은 몇 번의 패배를 더 했을지 모르겠습니다. 역시, 신은 공평한 모양입니다.”

“… 과찬의 말씀이시옵니다. 그런데 마마. 리오·스나이퍼 말씀이온데….”

“… 아. 정말 두려웠습니다. 그 가즈 나이트가 동룡족 병사들을 그렇게 휩쓰는 모습은 과인이 세상에 눈을 뜬 지 처음이었고, 와카루 박사가 제공한 기계병들이 그렇게 부서지는 것은 또 처음이었고, 올파드 당신까지 그렇게 밀리는 모습은 처음이었습니다. 결국 혼자서 우리 대군을 모조리 막아내고 드래고니스까지 탈출시킨 것 아닙니까.”

“… 그렇사옵니다. 아무리 적이라지만,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담긴 눈으로 그 거대한 드래고니스를 홀로 지키며 우리와 맞서 싸운 그 가즈 나이트의 모습은 절 뒤흔들기에 충분했사옵니다. 팔이 부러지면 다시 맞추고, 피가 흐르면 불로 지져서라도 출혈을 막으며 싸우는 그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힘도, 기도 모두 떨어졌을 거라 생각된 시점에서 그 살신기, 지하드까지 발동시켜 차원 결계를 깨고 드래고니스를 탈출시킬 줄은 정말 몰랐사옵니다.”

“… 자, 그를 추모할 겸 한 잔 더 합시다.”

쥬빌란과 올파드는 다시 술잔을 기울이기 시작했다.

※※※

“드, 드래고니스를 동원한 전격 작전이라니요, 그건 말도 안 됩니다!!”

휀의 지시에 따라 작전 회의실에 모인 전룡단 단장들은 휀이 설명한 작전을 듣고 크게 동요하고 있었다. 레소드가 몸을 일으키며 자신에게 그렇게 소리치자, 휀은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

“아시아 각지에 널리 퍼져 보급도 끊기고 연락도 안 되고 모을 수도 없는 함대를 기다리는 것보다, 현재 서룡족 최고 전력인 드래고니스를 동원해 인도를 따라 일직선으로 보급로를 다시 뚫어버리는 게 더 빠르다. 그리고, 동룡족이 드래고니스 하나를 상대할 만한 전력을 지역적으로 배치했을 거라 생각하나. 소형 함대라면 모를까, 드래고니스를 상대할 정도의 전력은 주 전력이 있는 미국과 영국 외엔 존재하지 않는다. 이 작전이 성공하면 한 달 전 빼앗긴 땅들을 거의 다 되찾을 수 있고 보급로 역시 뚫리게 된다. 그리고 지금보다 훨씬 더 많은 전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

“…?!”

휀의 말을 듣던 릭은 휀의 마지막 말, ‘더 많은 전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라는 것을 들은 순간 이해가 안 간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들고 휀에게 질문을 던졌다.

“휀 님, 왜 지금 작전이 성공하면 더 많은 전력을 보유할 수 있게 된다는 말씀이십니까? 설명해 주십시오.”

휀은 곧바로 뒤쪽 스크린에 펼쳐진 인도 지도 중 한 부분을 포인터로 가리킨 뒤 그 이유를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설명하기 전에 묻겠다. 지금 4대 용왕이 보유한 군대가 왜 이 차원으로 들어오지 못하나 이유를 알고 있는 단장은 손을 들어 설명해 보도록. … 없는 게 당연하다. 한 달 전 드래고니스가 급습당하는 것과 동시에 인도 상공 위에 존재하는 ‘차원 회랑’, 즉 군대가 통과할 수 있을 정도의 길이 두꺼운 차원 결계에 의해 막히고 말았다. 4대 용왕들과 연락이 끊긴 것도 그때부터일 것이다. 내가 인도를 작전 루트에 포함시킨 이유는 그 차원 회랑을 막고 있는 결계의 생성 장치가 인도의 수도 ‘뉴델리’에 있기 때문이다.”

“….”

릭은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오늘 갑자기 드래고니스에 찾아와 자신들도 상상하지 못한 정보를 이용해 드래고니스를 이용한 거국적인 작전을 설명하는 휀이라는 남자…. 지금껏 리오와 슈렌, 그리고 장로에게 작전 설명을 듣던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는 생각을 릭을 포함한 모든 전룡단 단장들은 느끼고 있었다. 그 안에 포함된 플루소 역시 슈렌에게 듣던 것과 실제가 틀리다는 것을 몸으로 느끼며 감탄을 마다하지 않았다.

“… 저 남자가 진짜 휀·라디언트…. 아버님께 듣던 것과는 차원이 틀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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