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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06화


뭔가 대단한 방법으로 알아낸 줄 알았던 (대단한 거 맞다) 동천은 ‘그러면 그렇지.’ 하는 듯한 얼굴로 중소구의 위아래를 꼬나보았다. 그러나 그것은 극히 찰나적이었고 동천은 금세 얼굴을 폈다.

“오오, 중 대인께서는 역시 대단하신 분이십니다.”

중소구의 콧대가 하늘을 찌르는 순간이었다.

“네놈이 잘 알긴 잘 아는구나. 으하하핫!”

괜히 추켜세워 줬다고 생각한 동천은 재빨리 본론으로 들어갔다.

“제가 그 허파에 피 묻은 놈을 해치운 게 아니고요. 그 사이 잔챙이들을 다 해치운 외팔이가 그놈의 등 뒤에서 암기를 던지듯 철경을 던져서 한방에 보내버린 거예요.”

그제야 중소구는 폐혈서생의 등뼈를 아작 낼 때 사용했던 물건이 무엇이었는지를 깨달았다. 동천은 혼자 고개를 끄덕이고 있던 중소구에게 한마디 더했다.

“제가 그 철경을 가져온 이유는 그때 당시 어떻게 될지 몰라 방어용으로 잽싸게 집은 건데 도망쳐 나올 때 의식하지 못해서 계속 들고 왔기 때문이었어요.”

“잘 알았다. 그럼, 같이 들고 온 그 양피지는?”

동천은 뜨끔했다. 주의를 철경 쪽으로 돌려놨는데 중소구가 그것을 거론하자 당황했던 것이다.

‘씨팔 놈, 욕먹은 건 까먹어도 그런 건 까먹지도 않지?’

아무 잘못도 없는 중소구에게 기어코 욕을 퍼부은 동천은 심각한 이야기를 앞둔 사람처럼 굳어진 얼굴로 중소구와 시선을 마주쳤다.

“조금 있으면 도연이 올 겁니다.”

중소구는 고개를 저었다.

“지금 대답해도 밥 먹는데 지장은 없어.”

동천은 중소구의 멍청함을 새삼 확인했지만 직접 본인에게 가르쳐줄 수 없는 이 현실이 안타까웠다.

“나 참, 그게 아니라요. 이런 이야기는 걔도 같이 들어야 두 번 말하는 일이 없잖아요.”

“그렇군! 네놈이 간만에 올바른 소리를 하는구나!”

동천은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뒤로 젖히며 어깨를 으쓱거렸다.

“훗, 그걸 지금에야 아셨어요?”

느끼한 동천의 행동에 방금 해준 칭찬을 없던 걸로 하고 싶은 중소구였다. 어차피 도연이 오는 것을 기다리기로 한 그는 가만히 기다리는 대신 밖으로 나가서 바람을 좀 쐬기로 마음먹었다.

“일각 후에 돌아오마. 그 사이 식사를 하려면 하든지 마음대로 해라.”

동천은 싱글거리며 알겠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양피지에 대해 고민을 하고 있었다. 사실대로 말하자니 황룡세가로 가야겠고, 거짓으로 말하자니 뭔가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던 것이다. 인편(人便)으로 황룡세가에 보내자니 아는 사람이 없을뿐더러 위험하기까지 했고, 표국(驃局)에 의뢰를 하자니 돈이 아까웠다.

‘증말 고민되네? 차라리 없애버리면……. 응? 맞다! 내가 왜 그 생각을 못했지? 이히히, 내가 나서지만 않으면 되는 거잖아?’

동천의 말인즉, 황룡세가에 양피지를 건네주되 자신은 멀찌감치에서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이라는 소리였다. 양피지는 자신이 아니더라도 도연이나 중소구가 건네주면 되는 거니까 말이다. 동천이 열심히 머리를 굴리고 있는 사이 큰 쟁반 위에 점심 식사를 들고 온 도연은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는 주군 앞에서 묵묵히 기다렸다.

‘도연을 앞세울까? 아냐, 그랬다가 주변머리 없는 그 자식이 무슨 일을 저지를지도 몰라. 그렇다면 남은 건 소구 자식인데, 그 자식은 좀 맛이 간 놈이라 그곳에서 난리를 피울 게 분명해. 물론, 그렇게만 해준다면 이 몸께서는 대환영이지만 문제는 그 자식이 주변에서 기다리고 계시는 이 몸까지……. 가만, 내가 왜 그놈을 기다리고 있지?’

그랬다. 그 상황이 된다면 밖에서 기다린다는 핑계로 중소구 혼자 들여보낸 다음 도연과 둘이서 톡끼는 방법이 있었던 것이다.

‘흑흑! 하늘님이 보우하사, 마침내 소구 자식을 떼어놓을 방도가 생각났구나. 만세! 만만세!’

조용히 기다리려고 했던 도연은 갑자기 두 손을 번쩍 치켜드는 주군의 이상한 행동을 보고,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는 식탁 위에 쟁반을 내려놓고 동천의 상체를 흔들었다.

“주군, 괜찮습니까?”

동천은 상념에서 깨어났다.

“응? 으응, 괜찮아. 벌써 왔냐?”

별일이 없어 안도한 도연은 자신이 가져온 점심 식사를 가리켰다.

“예, 명하신 대로 식사를 준비해왔습니다.”

스윽.

미세한 파공음이 들리고 동천의 신형은 어느새 식탁을 점거했다.

“와구와구. 아드득, 쩝쩝.”

엄청난 속도로 순식간에 식사를 마친 동천은 예의상 도연에게 말했다.

“어이 잘 먹었다. 너도 앉아서 같이 먹지 그러냐?”

찌꺼기를 가만히 주시하고 있던 도연은 다 먹고 난 쟁반을 들어 올리며 고개를 저었다.

“아까 들어올 때 중소구님과 마주쳤는데 점심 식사를 같이 하자고 하셔서 그러기로 했습니다. 전 내려가서 먹고 올 터이니 그동안 누워서 좀 쉬시지요.”

예전 같으면 둘이서 무슨 진수성찬을 차려 먹을 거냐고 비꼬았겠지만 정리할 것이 있었던 동천은 쾌히 승낙했다.

“그래? 약속을 했으면 당연히 가야지! 히히, 갔다와.”

도연은 자신이 생각했던 반응이 아니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그런 이유로 시간을 지체할 수 없어 기다리고 있을 중소구에게로 내려갔다. 도연이 문을 닫고 나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본 동천은 손으로 입가를 가리고 쿡쿡 웃어댔다.

“그놈이랑 같이 밥 처먹을 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이 몸께서 넓은 마음으로 봐주지 뭐. 히히!”

한 식경 뒤 식사를 마치고 돌아온 도연과 중소구는 그새 자고 있던 동천을 흔들어 깨웠다.

“이놈아, 그만 일어나.”

동천은 신경질을 내며 일어났다가 상대를 알아보곤 실실 웃음을 쪼갰다.

“헤헤, 오셨어요?”

중소구는 한심하다는 어투로 말했다.

“그새를 못 참고 잤냐?”

괜히 시비를 건다고 생각했지만 동천은 꾹 참았다.

“그럴 수도 있죠, 뭐.”

중소구는 의자를 끌고 와 동천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잔말 말고 아까 해주다가 멈춘 이야기나 계속 하거라.”

동천은 도연에게 시선을 옮겼다.

“중 대인께는 이미 말씀을 들었지?”

“예, 주군.”

도연에게 초점을 맞춘 동천은 자신이 뭐라도 된 듯 팔짱을 끼고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무서워진……이 아니라. 성가신 일을 피해보려고 그 서점을 급히 나오는데 다 죽어가던 외팔이가 나를 부르더라고. 처음에는 일이 꼬일 것 같아서 그냥 가려고 했지만 잠깐 생각해보니까 그러면 안 되는 거였어. 적어도 죽어가는 사람의 마지막 이야기는 들어줘야 예의니까 말야. 그래서 다가갔는데 그 외팔이가 양피지를 꺼내주며 황룡세가에 부탁한다고 했던 거야. 그 양피지가 바로 이거고.”

중소구는 양피지를 꺼내든 동천에게 말했다.

“그걸 본 대인이 좀 봐도 되겠냐?”

이렇게 된 거 안 보여줄 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동천은 별 말없이 허락했다.

“보세요.”

양피지를 건네 받은 중소구는 어지럽게 이어진 붉은 선들을 보고 눈살을 찌푸리다가 ‘천마도해’ 라는 글씨를 발견했는지 격한 소성을 터트렸다.

“헉? 처, 처, 처!”

천마가 대단한 자라는 것은 사부에게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동천에게 천마는 남들이 생각하는 것만큼 그리 큰 비중을 차지하지 못했다. 오히려 한 끼의 식사를 거르는 것이 동천에게는 경악할 만한 일이었던 것이다.

“혹시, 그 글씨를 몰라서 그래요? 거기 천마도해라고 쓰여져 있잖아요.”

도연이 흠칫하는 가운데 중소구가 냅다 소리쳤다.

“나도 알아 이놈아! 누가 이걸 못 읽어서 그러는 줄 아느냐?”

동천은 기껏 가르쳐줬더니 괜히 화를 낸다고 생각했다.

‘씨팔, 알면서 말은 더듬고 지랄이야.’

동천이 불만에 가득 찬 얼굴을 했지만 너무도 큰 충격에 사로잡혀 있던 중소구는 그것까지 상관할 여유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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