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0권 7화 – 마천각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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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0권 7화 – 마천각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마천각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모릅니다, 손님

백도의 천무학관과 쌍벽을 이루는 또 하나의 기관, 마천각. 그곳의 소재는 그 유명세에 비해 놀라울 정도로 아리송한 안개에 싸여 있었다. 그 정도 유명세면 당연 히 누구나 알 법도 한데 막상 확인해 보려 할라 치면 모호함의 안개 뒤로 모습을 감추고 마는 것이다.

‘마천각이 어디 있을 것 같습니까?”

지나가던 무림인을 붙잡고 이와 같이 물으면 열이면 열, 변경 외딴곳 심산유곡 깊숙히 은밀하게 틀어박혀 있는 거대한 검은 성채를 떠올리곤 한다. 그러나 그것은 흑도의 생리를 잘 모르기 때문에 나올 수 있는 대답이라 하겠다. 평생 손에 꼽을 정도밖에 쓰지 않았던 녹슨 뇌에 기름칠하고 조금만 굴려주면 이 대답이 제법 그럴 듯하지만 현실과 얼마나 멀리 동떨어진 정신적 인습의 산물인 것인지 금방 알 수 있다.

흑도는 폭력을 통해 이윤을 추구하는 자들이다. 그러자면 그 대상이 필요한데, 변경의 외진 땅에서는 좀처럼 인간의 흔적을 보기 힘든 게 인지상정이다. 한마디로 인구 유동성이 극히 낮아 시장성이 극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겉으로 이윤 추구에 관심이 없고 땅 부자라 농지 대여나 소작농을 고용해 합법적 고수익을 보장받을 수 있는 백도의 명문정파라면 산 깊은 곳, 물 맑은 곳에 틀어박혀 풀뿌리나 씹으며 버틸 수 있을지 모르나, 불법 영업이 주 수익원인 흑도방파는 절대 그럴 수가 없다. 그들은 고매한 정신이나 지식보다는 권력과 황금을 추구하는 자들이었다. 때문에 흑도방파는 심산유곡이 아닌 가장 많은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 있는 번화한 도회지의 한가운데를 당연히 선호할 수밖에 없다.

밤의 세계에서 자리 싸움은 언제나 살벌하고 치열하다. 하지만 좋은 자리, 소위 돈을 갈퀴로 끌어 모은다는 명당을 차지할 수 있는 것 또한 그 방파의 능력을 상징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사리 포기하는 이들은 없다. 그들은 자리를 틀 때면 언제나 보통―항상이라고 해도 좋을 만큼 자주ᅳ위장 신분을 전면에 내세운다. 흑도방파 중에는 의외로 상업에 종사하는 자들이 많은 것도 그런 연유에 기인한다. 숙박업, 주류업, 마상업, 그리고 가장 오래된 직업인 매춘업까지. 그들이 손대지 않는 직업 은 거의 없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니 흑도의 후예들을 가르치기 위한 장소인 마천각이 인구의 유동성이 매우 크고, 관광지로서의 명성 또한 높아 언제나 번화하며, 수로 교통의 요지라고 할 수 있는 동정호에 위치한다 해도 그것은 크나큰 잘못이 아닐 것이다. 영령이 몽환쌍무夢幻雙霧) 두 시녀와 함께 이곳에 온 것은 결코 관광이 목적이 아니라 이곳에 마 천각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오자마자 문제가 생겼다.

“예, 뭐라고요?”

“모른다고 했습니다, 손님.”

“아니, 당최 모른다는 게 말이나 돼요? 그런 큰 곳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어요?”

“하지만 마천각이라는 이름은 금시초문이구먼요. 모르는 걸 모른다고 하는데 별수있나요.”

“말도 안 돼…….?”

몽무는 그만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 벌써 몇 번째 허탕이란 말인가! 비단 이곳뿐만이 아니었다.

“몰라요.”

“모릅니다.”

“글쎄요? 그런 데가 있었나요?”

“처음 듣는뎁쇼!”

마천각의 위치를 물을 때마다 들려온 대답은 크게 이 네 가지 범주를 넘지 않았다.

“이상하네요, 아가씨. 왜 아무도 모를까요? 마천각이라고 하면 엄청 유명한 곳이잖아요?”

한참 실갱이를 벌이던 몽무가 돌아와 이상하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긴 이상하긴 이상하구나. 하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하나도 안 이상할 수도 있지.”

“다르게라뇨? 어떻게요?”

몽무가 그 속뜻을 모르겠는지 다시 되물었다.

“그들은 정말 모르는 게 아니다. 다들 숨기고 있는 것뿐이다… 이렇게 말이야.”

“한마디로 알면서도 모른 척하고 있단 얘기잖아요!”

“그런 거지. 그것이 무림에 속하지 않으면서도 무림의 영향을 받는 자들의 선택이 아니었을까?”

영령이 친절하게 자신의 짐작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그럼 저치들이 지금 시방 우릴 속였단 말이에요?”

발끈한 몽무가 앙칼진 목소리로 외쳤다.

“웁…….”

길 한복판인지라 사람들의 눈도 많아 영령은 화급히 시녀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았다.

“왜 소린 지르고 그러느냐. 깜짝 놀랬잖느냐.”

“정말 같은 동기로서 부끄럽습니다, 아가씨! 원하신다면 제가 당장 이 녀석 입을 꿰매놓지요.”

환무가 정말 한심하다는 듯 한마디 했다.

“우부부붑!”

몽무가 항의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열을 내고 그러느냐? 그것이 규칙일 게다. 법 밖에 존재하는, 때때로 법 위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규칙. 어기면 반드시 무력의 제재를 받게 되는 그런 암규(暗規) 말이다. 외지인인 우리들이 그 암규를 가지고 왈가왈부할 수야 없지. 게다가 정말로 어디 있는지 모를 수도 있고.”

“그건 또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시네요, 아가씨.”

영령이 손을 떼자마자 몽무가 입을 삐죽 내밀며 말했다.

“그건 몽무 네가 멍청해서 못 알아듣는 거다. 이상.”

옆에서 환무의 가차없는 한마디가 튀어나왔다. 몽무가 발끈해서 외쳤다.

“뭐라고? 그럼 넌 이해했단 말이니?”

“물론이다. 이런 평민들의 입쯤은 직접 나설 것도 없이 대리인만으로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상.”

“그런 얘기지.”

영령이 환무의 해석에 전적인 동의를 표했다.

“하, 하지만 마천각이라면 흑도에서 가장 큰 조직 중 하나잖아요. 학생들까지 합치면 그곳 상주 인원만도 천 명은 족히 넘을 텐데 그 큰 곳을 어떻게 숨기겠어요?” 한순간에 자기만 바보의 자리에 남게 된 몽무는 어떻게든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은 듯 보였다.

“여기가 어딘지 잊었느냐?”

“동정호요.”

쀼루퉁한 목소리로 몽무가 대답했다.

“그럼 동정호는 어떤 곳이지?”

“물이 많은 곳이죠. 게다가 더럽게 넓고, 호수 주제에 수평선 보이는 데는 이곳밖에 없을걸요?”

“그래, 엄청 크고 넓은 곳이지. 바다를 옮겨놓은 게 아닐까 할 만큼.”

“그러니깐 아가씨 말씀은…….”

그제야 몽무도 감이 잡히는 모양이었다.

“그래. 몰래 거점을 만들고자 한다면 난 이곳보다 더 조건이 좋은 곳을 찾기 힘들 것 같구나. 저 넓은 호수 어딘가에 둥지를 틀고 있다면, 물새처럼 날개가 있거나 물고기처럼 지느러미가 없는 한 그곳을 침범하긴 매우 지난한 일이 될 테니 말이다.”

“그럼 우린 어떻게 해야 하죠? 헤엄이라도 쳐야 하나요?”

“익사가 꿈이라면 그래도 좋겠지. 하지만 우리는 조금 더 기다려 보도록 하자꾸나. 난 아직 물고기들 점심상에 오르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말이다. 우선 머물 곳 을 찾아야겠다.”

“제가 지금 가서 알아볼까요?”

“아니다. 오다 보니 환상객잔이란 이름의 객점이 하나 보이더구나. 우선 그곳에다 여장을 풀고 간단히 요기나 하자꾸나.”

“와~ 밥이다.”

때마침 시장기가 돌던 몽무가 두 손 들어 환영했다. 조금 전에 받던 구박은 몽땅 꿈속으로 던져 놓은 모양이다.

“몽무, 주책이다!”

환무가 한마디 쏘아붙여 주었다.

“남이사!”

혀를 비죽 내밀며 몽무가 대꾸했다.

“자자, 그만 싸우고 어서 가자꾸나. 이러다 날 어두워지겠다.”

들불처럼 번지려는 두 시녀의 싸움을 영령이 말렸다. 여기까지 오는 내내 몇 번이고 봐왔던 모습인지라 이제는 익숙한 풍경이었다.

“예, 아가씨.”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던 것을 멈추고 일제히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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