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2화
스튜디오에 끔찍한 악취가 퍼졌다.
조명의 한가운데로 걸어 나온 것은 돼지머리의 이족보행을 하는 무언가.
앙상하게 마른 몸.
머리 대신 달린 거대한 죽은 돼지의 눈에서 피가 흘러나왔다.
[잠시만요. 과묵한 예술가시라…… 아! 지금, 선생님의 장비가 들어옵니다!]
은쟁반 열세 개가 허공에부터 와이어에 걸려 내려왔다.
둥그렇고 거대한 은쟁반은 굵직하고 섬세하게 장식 세공되어 있다.
비명을 지르는 얼굴들. 수도 없이 포도송이처럼 매달린.
[그럼 합창단의 멤버로 지원한, 우리의 열정 가득한 참가자들을 만나볼까요?]
단상마다 불이 들어왔다.
여섯 개의 단상에 선, 창백하게 질린 인간들의 모습.
[지난주에 본 얼굴도 보이죠? 하하, 과연 99번째 연승 기록을 지킨 우리의 참가자들이, 새 코너에서 100번째 기록을 세울 수 있을까요?]
[채널을 고정해 주세요! 곧 공개됩니다!]
와아아!
관객석은 비었다. 그러나 녹음된 소리가 기계적으로 현장을 채운다.
[하지만 첫 영광은 첫 참가자에게 가야겠죠?]
사회자가 모르는 직원의 앞에 선다.
두더지 가면을 쓴 직원은 고개를 움츠렸다.
[질문입니다.]
번뜩.
[다음 중 수명이 가장 긴 생물은?]
1. 돼지
2. 인간
3. 토끼
4. 벼룩
“이, 인간. 2번, 인간입니다…!”
[정답!]
두더지 가면의 눈에 안도감이 스쳤다.
그래. 본래의 화요 토크쇼에서라면 환호와 함께 순서가 넘어갔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코너에서는 새로운 단계가 추가되었다.
[합격을 축하합니다, 두더지 씨!]
피 흘리는 돼지머리의 지휘자가 앙상한 팔을 들어 올려 은색 지휘봉을 휘둘렀다.
두더지 가면이 머리째로 뜯어져 나왔다,
[아름다운 하모니를 이루겠군요!]
털썩.
머리 없는 참가자의 몸이 줄 끊어진 인형처럼 단상 아래 바닥에 떨어진다.
“…!”
목만 남은 직원이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은쟁반 위에 전시되었다.
여전히 입을 뻥긋거리고 있다.
[각 참가자에게 알맞은 재능을 일깨워 줄 겁니다. 오, 놀라워요. 놀라워….]
돼지가 양팔을 들자, 뻥긋거리던 직원의 입에서 갑자기 맑고 투명한 비명이 음을 타고 울리기 시작했다.
“이. 인간입니다. 인간, 인간입니다아아악!”
마치 누군가 성대를 억지로 쥐어짜서 목관악기의 선율을 만드는 듯한 소리.
[드디어 첫 단원이 자리에 올랐습니다!]
합창 연습이 시작되었다.
목이 잘리기 전, 마지막으로 했던 말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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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제물의 합창가’는 한 명의 지휘자와 그가 소환한 13개의 은쟁반으로 이루어져 있다.
은쟁반에는 토크쇼 참가자의 목이 올라가며, 그 선정 방식은 그날의 방송 코너를 통해 결정.
은쟁반과 합체된 목은 각각 다른 문장과 악기 소리를 내며 아카펠라를 구성한다.
기록에 남은 최대 목 개수는 7.
목 하나 : 약한 두통, 불안, 갑작스러운 감정 기복의 유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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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을 읽기만 하는 안락한 입장이라면.
아직 목 하나니까, 무시무시한 상황치고는 견딜만한 효과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 미친 상황에 직접 처하면 그 소리가 안 나올 것이다.
저기 직통으로 영향을 받은 직원처럼.
“아아악!! 시, 시연아, 시…!”
소각.
또 한 단상의 불이 꺼졌다. 재가 된 시체가 그 아래 바닥에 눌어붙었다.
머리만 남은 뻐끔거림은 여전히 괴상한 선율을 노래한다.
“이, 인간입니다. 2번. 인가아아안!”
[다음은… 아, 또 새 얼굴이군요. 해파리 씨! 합격한 참가자와 멋진 합창 하모니를 만들어 낼 수 있을지 기대해 봅시다!]
[그럼 질문을….]
“몰라요! 답, 모릅니다!”
이름 모를 해파리 가면을 쓴 직원은 질문을 읽기도 전에 외쳤다.
차라리 퀴즈를 틀리고 벌칙을 받는 게 낫겠다고 본능이 판단한 것 같았다.
[이럴 수가!]
놀라운 판단력이었다.
…의미없는, 짓이지만.
[탈락]
머리가 터졌다.
마치 폭죽처럼 스튜디오에 반짝이는 미러볼의 빛과 꽃보라가 날렸다.
안타까운 탄성과 환성이 섞인 듯한, 녹음된 관객의 반응이 스튜디오를 채웠다.
[이런, 불합격입니다! 안타깝습니다….]
[그는 위대한 합창단에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
그래.
‘벌칙 제도는 없어지고, 퀴즈를 못 맞히면 무조건 탈락이야.’
나는 눈을 깜박였다.
현실감이 들지 않는다.
녹화 시작 5분 만에 사람 절반이 죽었다는 게.
그리고, 탈출구는 없다는 게.
남은 건 다시 셋.
D조의 대리와 주임.
그리고 나.
[그럼 다음 참가자를 만나볼까요? 오, 익숙한 얼굴들입니다!]
“…….”
외면하고 있던 사실 하나를 떠올렸다.
…이 상사들의 이름도 <어둠탐사기록>에서 본 적이 없다는 것을.
동기였던 고영은과 똑같다.
나는 고영은의 이름을 들었을 때 했던 생각을 떠올렸다.
-비교적 수월하게 괴담들을 처리하고 일찍 퇴사했거나.
-빨리 죽었거나.
[오소리 씨!]
우리 중 주임이 먼저 불렸다.
박민성.
나와 가장 먼 단상에 선 주임의 턱이 창백하게 질렸다.
죽음의 선고, 곧 나도….
[당신이 답을 맞힐 차례입니다!]
아니지.
‘정신 차려!’
단상에 가려진 내 배를 주먹으로 쳤다.
통증이 조금 머리를 맑게 만든다.
‘쫄보고 뭐고 변명거리가 안 돼.’
이건 그런 류의 공포가 지배하는 상황이 아니다.
‘재난이야.’
말하자면, 천재지변을 코앞에서 목격했을 때의 압도감.
나는 예상치 못한 자연 재난에 휩쓸린 것이다. 그래, 그렇다…. 여기서 패닉에 빠지면 답이 없다. 살 것도 못 산다.
잊으면 안 된다. 여기서 그나마 가장 살아남을 확률이 가장 높은 건 너라는 걸!
생각해야 한다.
‘그래.’
정보도 아이템도 있다.
[오소리 씨, 준비가 됐나요?]
사회자와 스탭의 시선이 내게서 떨어진 이 순간을 노려서, 시도할 수 있는 게 없나? 정말로?
필사적으로 내가 가진 물건들을 떠올려 보았다. 이 괴담의 특성도 미친 듯이 복기했다.
‘다른 건 안 바란다.’
빠져나갈 수만 있다면.
이 미친 토크쇼가 폐지되거나 그런 걸 노리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잠깐, 잠깐만 멈춰서….
아.
나는 고개를 들었다.
바로 옆에 사회자의 뒷모습이 보였다.
주임에게 퀴즈를 내려는 모습이.
[준비가 되셨나 보군요! 좋습니다….]
가깝다.
‘…그렇다면!’
나는 떨리는 손을 단상 아래로 숨겼다. 그리고 몸을 살짝 낮춰, 정장 재킷 안쪽 포켓에 넣어둔 물건 두 개를 꺼냈다.
웃는 이모티콘이 그려진 싸구려 스티커와 ‘Drink me’가 붙은 캔보틀.
‘빨리.’
캔보틀을 땄다.
그리고 포장을 뜯은 스마일 스티커를 그 캔보틀에 처박았다.
빨리, 빨리.
“…아. 대답 전에 시청자들에게 한마디 해도 될까요?”
[오, 그럼요!]
주임이 카메라를 쳐다보는 척하며, 이쪽을 쳐다보았다.
나와 대리가 서 있는 단상들을.
“…입원한 가족이 있는데, 누가 이 촬영이 끝나면 한번 들여다 봐줬으면 좋겠네요! 가능하다면요.”
[이야, 감동적입니다!]
[그래서, 정답은?]
주임은 식은땀을 흘리며 씩 웃었다.
“모르겠…….”
“잠시만.”
나는 왼손을 들었다.
“사회자님.”
그렇게 시선을 끄는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축축해진 스마일 스티커 서너 개를 통째로 사회자의 머리인 구형 TV 밑에 붙였다.
“…….”
찰팍, 물이 바닥에 한 방울 떨어졌다.
카메라에 잡혔나? 눈치챘나?
아니, 그랬으면 내 머리통이 벌써 터졌을 것이다.
[오, 노루 씨! 할 말이 있나요?]
눈치 못 챘다.
나는 침을 삼켰다.
고개를 돌리자, 주임이 당황한 눈으로 나를 보고 있다.
내가 사회자에게 흐름을 끊고 멋대로 말을 걸고도 소각당하지 않은 것에 놀란 것 같았다.
확실히 도박이었다.
‘하지만 근거는 있어.’
아까 분명 사회자가 말했지 않은가.
-심지어 녹화 방송이라 전보다 더 수월할 겁니다! 하하!
즉, 지금 촬영은 생방송이 아니란 뜻이다.
‘그렇다면 아예 흐름을 망치거나 비협조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면, 방송을 방해하는 게 아닐 수도 있다.’
단순히 손을 들고 개인 멘트를 하는 정도는!
[노루 씨?]
넘어가 준 것이다.
“예.”
나는 물이 떨어지던 사회자의 TV 아래를 스치듯 보았다.
그리고 사회자에게만 들릴 정도로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저기, 머리가 너무 어지럽습니다. 잠시만… 쉴 수 있을까요.”
[…….]
지금 내가 한 짓은….
스마일 스티커
지성이 있는 존재에게 부착하면 약한 친밀감을 불러일으키는 아이템을,
앨리스 피크닉 세트 / 캔 음료
효과를 2배로 키워주는 아이템에 절여서 상대에게 붙였다.
…물론 여기서도 논쟁의 여지가 있다.
-사회자를 지성이 있는 존재로 볼 수 있는가?
사회자는 분명 인간이 아니다.
그래도 지성을 가지고 있는 건 맞지 않을까.
아니, 맞아야 한다. 내가 거기 목숨을 배팅했으니까.
그리고 이젠 돌이킬 수 없다.
방송을 방해하지 말라고 소각되면 어떡하냐고? 어차피 죽는 거 편하게 죽는 게 차라리 낫겠지.
등을 감싼 와이셔츠가 식은땀으로 축축했다.
사회자가 소리를 낸다….
[이런!]
“…….”
[방송에 대한 열정이 너무 과했나요? 그래, 그럴 수 있죠, 이해합니다…. 음. 노루 씨가 열심히 하긴 했죠.]
[그렇다면야.]
사회자의 모니터가 검게 물들었다.
그가 오른손을 치켜들며…….
[컷! 잠시 휴식합시다!]
밴드 사운드가 멈췄다.
스탭이 웅성거렸다.
[하하, 미안합니다. 내 화면이 불투명해졌거든요. 메이크업!]
다급히 카메라의 불이 꺼졌다.
[조심스럽게 닦아줘요. 음, 훌륭하군요!]
메이크업 도구를 든 얼굴 없는 스탭이 뛰어 올라와서 구형 TV 화면을 열심히 뽀득뽀득 닦아줬다.
그리고 사회자는 일을 마치고 떠나는 메이크업 담당자를 붙잡더니 나를 가리켰다.
[아, 가는 길에 저 참가자를 대기실로 안내해 주면 정말 고맙겠어요. 제 물을 가져다주기로 했거든요.]
그리고 내게 TV 속 이모티콘 눈을 찡긋거리더니, 글을 슬쩍 띄웠다가 지우는 것이다.
[물 한잔하며 쉬고 오기!]
“……감사합니다.”
성공했다.
‘일단 됐다.’
나는 당장 메이크업 담당자를 따라가기 위해 비틀거리며 단상에서 내려와 걸었다.
촬영이 중단되었는데도, 불길하고 끔찍한 돼지의 머리가 여전히 스테이지 중앙에 서서 미동도 없이 서서 지휘봉만을 휘두르고 있다.
기괴한 은쟁반에서 사람 머리로 기괴한 노래를 뽑아내면서.
‘참자.’
보지 말자.
나는 굳은 다리로 스테이지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갔다….
[녹화는 30분 후에 재시작합니다!]
그렇게 반대편 단상을 스쳐 지나갈 때였다.
그곳에 서 있던 대리가 지나가는 내 손에 뭔가를 휙 찔러줬다.
“……!”
나는 재빨리 대리를 쳐다보았다.
입 모양이 보였다.
-혼자서, 확인.
뭐지?
* * *
나는 바로 스테이지 뒤편의 문으로 안내되었다.
그 안은 전형적인 옛 할리우드 스타일의 대기실이다.
기괴할 정도로 많은 흑백 방송 포스터가 덕지덕지 부적처럼 붙어 있다는 점을 제외하면.
“감사합니다.”
메이크업 담당자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이고 휙 사라졌다.
달칵.
“후우.”
…살았다.
30분뿐이지만, 예정된 사망을 연기한 것이다.
‘이 사이에 뭐든 해야 한다.’
그리고 단서가 새로 생겼다.
나는 곧바로 손가락을 펴서 대리가 찔러준 물건부터 확인했다.
이 급박한 상황에 내게 어떻게든 전달해 주려던 물건은 바로….
“…단추?”
정장에 다는 단추였다.
동시에 누를 수 있는 버튼이라는 의미의 단추이기도 했다.
안에 공간이 있어서 누르면 눌릴 것 같았다는 뜻이다.
“…….”
알아볼 방법은 하나뿐이고, 시간은 없었다.
‘도움이 될 거라 판단해서 준 거야.’
나는 당장 단추를 눌렀다.
삐리리리….
…….
달칵.
[이자헌입니다.]
“…!”
[누구십니까? 그건 은하제 대리의 콜버튼인데.]
이자헌 과장.
외근을 나갔다던 D조의 조장이, 단추를 통해 연결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