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5화
<백일몽 주식회사>는 끔찍한 괴담에 현장탐사팀 직원을 밀어 넣고 포션 원액을 뽑아내는 으스스한 회사다.
여기서 의문점이 생긴다.
-고등급이라 엄청 위험한 괴담에 무작정 직원 밀어 넣으면 다 죽고 원액도 못 뽑는 것 아닌가?
이 의문점과 괴담 전개의 편의성을 잡기 위해, ‘직원들은 승진할수록 강화가 가능한 특수 장비를 가지고 있다’라는 설정이 나오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 구체적이진 않다.
장비를 일일이 하나하나 등급과 표로 나누기 시작하면 이미 인터넷 괴담이 아니라 초대형 게임 설정이 됐겠지.
그래서 누구나 창작에 참여하기 편하도록, 더 편의적인 설정이 붙은 것이다.
-커스텀된 전용 장비
어느 정도 쓰임새를 인정받은 직원은, 회사의 지원으로 자기만의 초자연적 장비를 가지게 된다.
물론 일반 사원이 만화영화 같은 능력을 쓴다는 건 아니고, 약간의 특수 능력치가 플러스 되는 정도다.
편리한 상황을 조성해 주는 정도랄까.
‘그래도 있는 게 어디야.’
나도 모르게 이자헌 조장을 기대에 찬 눈으로 보았다가 도마뱀과 눈 마주쳐서 조용히 숙였다.
진짜 적응 안 된다.
“아, 제가 커스텀 장비를 만들 수 있는 겁니까?”
“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예.”
세 번 되물은 끝에 자세한 설명이 이어졌다.
그래도 흥미롭다.
‘이건 나도 조각조각 부분적으로만 알고 있던 건데.’
<어둠탐사기록> 여기저기서 산발적으로 언급만 되었던 것들이 정리되어 과장의 입을 통해 나왔다.
“커스텀 장비는 회사가 보유한 특정 어둠들을 통해 제작할 수 있습니다.”
그래. 괴담을 이용하겠지.
[유쾌연구소의 장난감 메이커 /Qterw-E-07]
[친절한 씨앗 키트 / Qterw-E-99]
[제사를 드리오니 / Qterw-E-404]
내 기억에,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들이 장비를 만들었다는 묘사가 있는 건 이 세 가지 괴담이다.
그중에 현장탐사팀이 주로 쓰는 건….
“…입니다.”
오!
* * *
“마침 달밤에만 쓸 수 있는 어둠이네!”
조원들이 구경 겸 기꺼이 따라와 주는 가운데, 나는 과장과 회사 옆의 별관으로 향했다.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가보자고 상사들이 부추긴 덕이었다.
“아… 여긴, 비교적 안전하고 쓸모 있는 괴담을 격리 보관하는 곳인데.”
대리의 설명이 따라왔다.
“회사에선 이런 걸 주로 ‘황혼 등급’이라고 부른다.”
알고 있다.
공식적으론 E등급에 해당하는 괴담.
그러나 단순히 E등급이라고 말하기엔 분류법이 좀 다르다.
‘유용한 것만 추려놓은 거니까.’
D보다 훨씬 강력하거나 F보다도 위험이 덜한 괴담들도 있어 다들 ‘황혼’이라는 고유 명칭을 더 자주 쓰는 어둠이기도 했다.
“노루, 첫날에 그… 라디오 봤지? 그게 오늘 하루의 운세를 알려줘서 유용하거든. 그런 식이야.”
사원증을 대고 별관 1층에 입장하자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보였다.
그리고 계단을 내려가니… 어두컴컴한 안내데스크에 누군가 앉아 있었다.
전신에 검은 옷을 입고 마스크와 선글라스, 모자까지 쓴 기묘한 인영이었다.
직원인가?
주임이 바로 튀어 나갔다.
“안녕하세요! 현장탐사반 D조인데, 신입 교육 겸 방문했습니다.”
“…….”
“아, 저희가 접근 허가받으려는 건 황혼 등급 99번 어둠이고요.”
검은 인영이 잠시 검증하듯이 주임을 바라보는 것도 잠시.
끄덕.
고개를 주억거린 인영은 데스크에 설치된 버튼을 눌렀고, 뒤편의 비상문 중 하나가 개방되었다.
끼익.
그 뒤는 무수한 문이 늘어선 복도였다.
“다른 방은 실수로라도 열면 안 돼. 아니, 어차피 잠겨 있겠지만 손잡이도 잡지 말자고.”
정말 옳은 말씀이다.
나는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발을 움직였다.
곧 ‘99’가 붙은 문 앞에서 우리는 멈추어 섰고, 대리가 자신의 사원증을 리더기에 올렸다.
철컥.
“들어가자.”
나는 고개를 들었다.
잡초가 무성한 온실에 달빛이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정 가운데, 녹슨 기기 하나가 달빛을 받으며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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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친절한 씨앗 키트]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E-99.
물건을 식물로 취급하여 유전 정보를 뽑아 교배 및 파종 해주는 괴담. 달빛을 에너지원으로 삼아 작동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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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물건 두 개를 넣으면 두 특성을 섞어서 새로운 물건을 만들어주는 괴담.’
현장탐사팀에서 커스텀 장비를 만드는 데에 거의 주력으로 쓰는 어둠은, 바로 이 제법 분위기 있는 괴담이었다.
“우리 부서에서 거의 전용으로 쓰는 어둠이지!”
나는 녹슨 기기 앞에 서서 물었다.
“이걸 쓰는데 포인트가 드는 겁니까?”
“어. 별관에 보관하는 황혼 등급 어둠들은 사용료를 내야 작동시킬 수 있거든.”
“아….”
“참고로 이건 1회에 1000p야.”
잠깐.
근데 이거 좀 이상하지 않나.
“어둠 탐사에 필요한 장비라면, 회사에서 비용을 받는 게 아니라 지원을 해줘야 하는 것 아닙니까?”
아무리 이 회사가 노답이라도 그 정도는 해야 뭐가 돌아가지 않겠…….
“아, 그거 주임되면 연 2회 공짜로 돌릴 수 있어.”
“…….”
승진… 역시 됐어야 했나.
“그래서 다들 주임될 때까지 기다렸다 돌리는 분위기긴 해. 보통 늦어도 1년만 버티면 되니까.”
으음.
나는 고민했다.
‘이자헌 과장이 포인트를 사용하는데도 ‘유용하다’라고 판단한 거엔 분명 이유가 있을 텐데.’
도마뱀, 그러니까 직원 D가 무력 원툴이라고 하지만, 그 안에는 분명 본능적 수준의 직감도 포함되어 있었다.
생존율 높은 직원이 특수한 조언을 했다면….
‘역시 받아들이는 게 맞는 것 같다.’
1000p, 투자해서 초기 생존율을 높일 수 있다면 그게 정답이겠지.
…손이 좀 떨리긴 하지만!
“저는 지금 써보고 싶습니다.”
“오케이!”
주임은 흔쾌히 리액션해 주다가 뭔가를 깨달았는지 숙덕였다.
“…근데 일단, 투입할 기존 장비가 있어야 하는 건 알지? 인자로 쓸 만한 능력 있는 물건 말이야.”
“아… 그렇죠.”
그거야 이미 이 괴담 탐사기록에서 다 확인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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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록 #05
직원 N이 텀블러*와 백팩을 투입.
해당 텀블러*는 특수 장비(해가 뜬 후 담은 액체가 해가 지기까지 바닥을 보이지 않음. 최■■ 과장 소유), 백팩은 특이사항 없음.
씨앗 결과물 : 백팩.
(특이사항 : 텀블러와 유사한 특수 능력을 보유. 단, 87L 이상 액체를 꺼낼 시 바닥을 드러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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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걱정 마! 조원이 첫 커스텀 장비를 맞출 때 조 내에서 한번은 무상으로 자기 장비 빌려주는 관행이 있거든.”
“어어. 둘 다는 아니고 하나만. 다른 하나는 자기 물건 넣고 돌리거나, 돈 주고 빌리는 거지.”
대리가 힐끔 조장을 보았다.
“그리고 조장님… 장비가 우리 중에 가장 좋긴 한데.”
예상했다. 아무래도 상급자니까.
“혹시 괜찮으시다면 조장님의 장비를 보고 싶습니다.”
“예.”
도마뱀이 자신의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냈다.
잿빛으로 빛나는 작은 나이프였다.
“버터나이프입니다. 어둠에 진입하는 매개체를 베면, 공간을 가르고 작은 물건을 이송할 수 있습니다.”
오.
“AAA 건전지를 던져주실 때 쓰셨던 장비가 이거군요.”
“예.”
나는 새삼스러운 눈으로 버터나이프를 보았다.
‘방어 관련 장비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그렇게 쉽게 풀리진 않나.’
아쉽지만 다른 상사들의 장비들도 방어와 관련된 건 없었다.
속임수 관련 하나, 통신 관련 하나 정도.
‘여차하면 저 정도는 외계인 상점에서 비슷한 효과의 물건을 구할 수도 있을 것 같으니….’
마음을 정했다.
“그럼 조장님 장비를 넣을 거지?”
“네.”
나는 사회적 예의를 위해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조장님.”
이자헌 과장이 살짝 고개를 끄덕이더니, 기기에 접근했다.
낡은 액정 스크린에는 예스러운 글자가 보였다.
[제게 식물을 주세요 0/2]
나는 과장이 자신의 장비를 기기에 들이대 ‘유전정보’를 스캔하는 것을 바라보았다.
[식물 정보 저장 완료]
[제게 식물을 주세요 1/2]
“이제 다음으로 네가 넣고 싶은 물건 넣으면 돼. ……아, 잠깐만.”
대리가 황급히 말했다.
“이 기기가 진짜 이상한 게 아니라면 어지간한 건 넣어도 괜찮거든? 근데 딱 하나 안 되는 게 있다.”
대리가 기기 앞에 붙어 있는 표지판을 툭툭 쳤다.
※식물 투입 절대 금지
“절대로, 달라는 대로 진짜 식물을 넣으면 안 돼.”
“…….”
“어차피 문 앞에서 감지 센서가 식물은 다 거르고 있긴 한데, 그래도 혹시 몰라서 말해두는 거다.”
어둠에 익숙해진 눈으로 다시 보니, 이 주변에 무성한 잡초들의 정체가 보였다.
다 가짜. 조화였다.
…탐사기록 하나가 절로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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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사기록 #14 (이레귤러)
직원 R이 어둠 주변에 자생하는 잡초(민들레 추정)를 뜯어서 기기에 두 번 투입.
결과물로 [검열 삭제] 괴성과 함께 튀어나온[검열 삭제][검열 삭제]
-경비팀의 진압 완료까지 7일 소요.
직원 R 포함 현장에 있던 3인 전원 사망 확인. 모든 식물 제거 확인.
※알림 : 재발 시 징계 및 퇴사 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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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무조건 숙지해야지.
“예.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까지야.”
그사이 장비 등록을 끝내고 나이프를 도로 정장 포켓에 회수한 과장이 몸을 일으켰다.
“다른 칸에는 주로 쓰기 편한 일반 물건을 넣습니다만, 그 경우 장비로서의 초자연적 특성이 약하게 유전되거나, 낮은 확률로 아예 유전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여 리액션했다.
“어쩔 수 없죠. 만일 그렇더라도 받아들이겠습니다.”
나는 주머니에 손을 넣어서 뭔가를 꺼냈다.
“오~ 아까 사택 들렀다 온다더니, 넣고 싶은 물건이 있었나 보구나?”
“예.”
내 손에 들린 것은 은빛 동전이다.
-은화 뱀
외계인 상점에서 대폭 할인해서 팔던 바로 그 아이템이었다.
“이걸 넣으려고 합니다.”
다른 칸엔 아이템 넣으면 되지.
내 수중에 초자연적 아이템들이 꽤 있었으니까!
사실 이래서 현장탐사팀이 쓰는 괴담이 ‘친절한 씨앗 키트’인 걸 알았을 때 기꺼웠던 것이다.
‘내가 아이템 수급처가 다른 사람보다 많으니까.’
굿즈를 주는 저 허공의 검은 메모장부터 외계인 상점까지 말이다.
여기 들어오는 순간부터, 나는 내가 가진 아이템들의 라인업을 쭉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 등급이 높을 만한 건….’
역시 이거지.
나는 손안에서 뱀이 그려진 동그란 동전을 굴렸다.
‘정가로 따졌을 때 제일 비쌌으니까.’
게다가 이자헌 과장의 버터나이프가 ‘물자보급용’인걸 생각했을 때, ‘화폐’로 추정되는 이 동전과 묘한 시너지를 일으키지 않을까…하는 기대도 있고 말이다.
나는 기기에 동전을 가져다 댔다.
은빛을 본 도마뱀의 동공이 커졌다.
“그건?”
“기념주화입니다. 여행 중에 기념품으로 샀는데… 묘하게 느낌이 좋아서요.”
“…그렇군요.”
…아이템인 걸 알아차렸나?
그래도 상관없었다. 워낙 괴담 접하기 쉬운 세계관이니까. 나도 모르게 초자연적 물건을 가지고 다니는 것도 제법 개연성이 있지….
‘동전이면 그렇게 의심스럽지도 않고 말이야.’
일상적이고 작은 물건이니까.
“휴대하기 좋아 보이네. 궁합이 괜찮을 것 같다.”
“감사합니다.”
나는 상사들의 덕담을 들으며, 스캔을 마쳤다.
[식물 정보 저장 완료]
[제게 식물을 주세요 2/2]
“아, 이제 마지막 단계야.”
[정원사의 정보를 알려주세요]
이래서 ‘커스텀 장비’이다.
대체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꼭 이 식물을 돌볼 보호자의 유전정보를 요구하는 것 같다.
‘이게 다양한 변수로 작용하던데.’
나는 갈등하면서도 스캔을 마쳤다.
[확인 완료]
온다.
[유전정보 결합 중]
[키트 생성 중….]
기기에서 오색의 연기가 뿜어져 나오고, 톱니바퀴가 돌아가는 소리가 삐걱거리며 들리더니….
[파종 완료]
치익.
기기의 맨 앞 서랍이 열리며 작은 물건 하나가 모습을 드러낸다.
회색 동전.
정확히는 오락실에서 쓸 법한 장난감 코인. 그 반들거리는 앞면에는 장갑 그림이 양각되어 있다.
“오, 나왔다.”
“축하한다, 노루야.”
나는 조심스럽게 손을 뻗어서 해당 물건을 잡아들었다.
첫 커스텀 장비였다.
* * *
곧장 그길로 사택으로 돌아왔다.
상사들도 ‘푹 자고 내일 보자’라며 헤어졌다.
아무래도 어둠에 진입한 상태에서 장비 능력을 테스트하는 멍청한 짓을 시키고 싶진 않았던 것 같다.
“…좋아.”
나는 침대에 앉아 두 동전을 꺼냈다.
하나는 외계인 상점에서 사서 ‘부모 식물’로 쓴 은화 뱀.
다른 하나는 그 은화 뱀과 부장의 버터나이프 유전정보를 혼합해 탄생한 회색 코인이다.
다 좋았다. 그런데 말이다.
“…어떻게 작동시키는 거지?”
미동도 없네.
‘생각해 보니 은화 뱀도 딱히 초자연적 능력이 명시된 류의 아이템은 아닌데.’
설마 진짜 화폐처럼 써야 하는 장난감 코인이 장비랍시고 나온 건 아니겠지… 식은땀이 난다.
다행히 이 우려는 곧 종식된다.
“역시 동전은 이거긴 한가.”
나는 전형적인 동작을 하나 시도해 보았다.
엄지로 코인 튕기기.
그러자 코인 앞면에 양각되어 있던 장갑 그림이 실제로 튀어나왔다.
“…!”
반투명한 은색의 장갑이 허공에 나타난 것이다.
장갑이 마임을 하듯이 움직여서 허공에 글자를 그린다.
[Insert coin]
…동전을 넣어달라고?
나는 지갑을 뒤져서 백 원짜리 동전을 하나 꺼내어, 장갑에게 내밀었다.
하지만 장갑은 거부했다.
“뭐야.”
다른 화폐를 요구하는 건가? 아니면….
“이건 어때.”
나는 오백 원을 내밀었다.
손은 반갑게 동전을 받아 손가락 사이에 끼우더니, 마술 동작처럼 없앴다.
‘금액 문제였냐.’
자본주의 논리에 철저한 장비다.
내가 황당하게 보고 있으니, 반투명한 장갑은 내 손에 다가와 마치 착용되듯 합체되었다.
“…!”
기묘한 감각이 느껴진다.
‘세 번째… 손?’
눈앞에 내 손의 그림자 같은 형상이 떠올랐다.
내 의사대로 움직였다.
벽을 밀거나 화장실 문을 열거나, 필기도 가능하다.
‘힘이나 섬세함은… 딱 나 정도.’
정리하자면, 동전 주면 몇 초간 움직일 수 있는 제3의 염력 손이라는 건가.
범위는 대략… 반경 3m쯤이다.
“이게 오백 원에 5초면 괜찮지.”
곧 허공의 그림자 손 모양이 사라지더니, 반투명한 장갑은 내 손에서 자연스럽게 벗겨졌다.
그리고 인사하듯 손을 움직이며 다시 동전 앞면에 양각되었다.
“음.”
꽤 괜찮은걸.
이건 조장의 버터나이프처럼 괴담과 현실 사이의 공간 제약을 극복하는 방식은 아니다.
하지만 그 대신 괴담 속에서의 운용 범위가 커진 느낌이라, 오히려 큰 범용성이 있을 것 같았다.
비록 정장 속에 오백원짜리를 몇 개나 가지고 뛰어다닐 수 있는가, 하는 공간적 제약의 문제로 탄환 제한이 있긴 하지만….
‘이 정도면 뽑기 성공이야.’
동전이 아이템이었던 것도 드러나지 않고 자연스럽게 넘어갔으니, 아주 좋다.
“1000p 투자한 만큼 일해줘라.”
나는 동전을 다른 아이템들과 함께 포켓에 챙겼다.
그 김에 다 쓴 ‘스마일 스티커’도 리필하고, ‘캔보틀’도 하나 더 챙겼다.
‘역시 사람은 적응의 동물인가.’
나는 침대에 누웠다.
의외로 컨디션이 좋았다.
눈을 감으면 그 끔찍한 토크쇼가 선명히 떠오르긴 하지만, 불 켜놓고는 그럭저럭 잘 수 있을 정도라고 해야 하나.
마무리가 괜찮아서일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악운이 좋았긴 해.’
조별 과제 운도 괜찮았고 말이다.
‘포인트를 한방에 벌어서 그런가, 왠지 희망적으로 사태가 느껴진다….’
졸음이 쏟아져서 눈을 꿈벅였다.
그래도 소원권까지 벌어야 할 남은 포인트는 아직 태산 같고, 대체 괴담을 몇 개나 더 클리어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그 기간을 잘 헤쳐나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처음으로 든다….
‘조용히 버틸 수 있을지도.’
* * *
…라는 가당치 않은 행복회로를, 다음날 출근했더니 ‘이야 입사 2일차 신입이 A급 대사태 클리어!’라는 공문이 떴다는 미친 사실을 알게 되기 전까지는 잠깐 돌려봤습니다.
“노루야, 앉아 봐라. 우리… 음, 보직이 좀 변경될 것 같다.”
“예?”
저 입사 3일 차인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