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1화
괴담 속 어두운 환풍구.
공포를 피해서 숨을 죽이는 상황.
사실상 내가 목숨을 보전해 준 게 백사헌이라는 것까지 환장할 상황이다.
‘하필 너냐.’
게다가 상대는 이제 필사적으로 내 시선을 피하고 있다.
“……?”
이럴 인간상은 아닌데…….
‘아, 설마.’
퍼뜩 떠오르는 게 있다.
-연쇄살인마 조심해
내가 매일 친절하게 연쇄살인마 알림을 보내서 그런가.
좀 쫄아 있는 듯했다. 음, 섬뜩할 만하지.
‘오히려 좋아.’
사실 약간 의도한 바이기도 했다. 굳이 익명으로 안 보낸 건 이 효과를 노린 거지.
사이코 같지? 그러니까 엮이지 말자.
강약약강이 뚜렷한 저놈의 인성을 볼 때, 기회를 틈타 나를 없애려 들기보다는 그냥 보신하며 최대한 안 엮이려 들 것이다.
‘그건 대환영이지.’
…문제는, 지금은 잠시 이 환풍구에 같이 끼어 있어야 한다는 점이지만.
나는 숨을 죽였다. 다행히 백사헌도 쥐죽은 듯이 조용했다.
바깥에선 도망치는 것에 실패한 사람들의 그림자가 어둠 속에서 촛불에 비춰 희미하게 보인다.
끼이이이익, 쿵.
기계가 멈췄다.
막다른 길목에 몰린 사람들의 그림자 앞으로 가느다란 뭔가가 쑥, 빠져나온다.
거미 다리 같은 실루엣의 그림자.
그리고 정적.
“…….”
“…….”
알 수 없는 기계의 소음만 울리더니.
훅.
거미 다리 같은 실루엣이 인간의 눈앞에서 쫙 펴졌다.
히으으으윽!!
여덟 개의 날카롭고 섬세한 무언가가 사람 몸통을 움켜쥐는 것이 흔들리는 그림자로 보인다.
살려주, 살려주세…… 아아아악!!!
푹.
거미 다리 한 가닥이 인간 머리 틈으로 파고들었다.
그리고 툭, 하고 머리에서 뭔가를 잡아 뽑았다.
“…….”
그리고 이미, 난 무엇을 뽑았는지 알고 있다…….
‘…안구.’
저거다.
이 전시회가 ‘눈먼 자들의 저택’으로 불리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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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관람객이 안내원에게 인간의 신체 부위를 상실했다고 증언했으며, 그중 보편적으로 먼저 상실되는 부위는 ‘안구’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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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원’.
여기서 저 기계를 만나면 눈을 뽑힌다.
그다음에 만나면 주로 사지 중 하나, 혀, 귀일 때도 있다.
그리하여 최종적으로는 눈멀고 말 못 하고 굼벵이 같은 꼴이 된 사람들이 어두운 전시회장을 기며 배회하게 되는, 그런 미친 이야기다….
이것이 단번에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게 더 잔인하고 말이다.
놀랍게도 이 전시회가 친절하기 때문이다.
요청하지 않아도 알아서 ‘편의’를 봐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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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객의 편의를 위해, 감각 보정 기기가 언제나 무료로 대여가 가능합니다.
(현재 지원 기기 :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미각, 전각, 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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끄윽, 끄으으윽.
눈이 뽑힌 사람의 눈에 다시 거미 다리 같은 실루엣 하나가 우아하고 섬세하게 접근한다.
그것이 다리 끝에 달고 있는 형체가 순간 촛불 아래 선명한 그림자를 드러난다.
가느다란 실과 바늘.
‘X발.’
나는 모든 소란이 잦아들 때까지 숨을 죽이고 더 기다렸다.
전신에서 식은땀이 났다.
잠시 후.
툭, 툭, 툭….
기계 소리가 멀어진다.
……곧 눈을 뽑힌 사람은 비틀비틀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하필 환풍구 쪽으로 다가오며, 피에 젖은 얼굴이 선명하게 드러났다가 사라졌다.
눈 대신 망원렌즈가 달려 있었다.
“…!”
백사헌이 옆에서 작게 입 모양으로만 욕을 하는 게 보였다.
남 일 같진 않다.
‘저걸 끼고 짧으면 몇 시간, 길면 하루이틀은 앞을 볼 수 있단 말이야.’
하지만 대여 기기인 만큼, 서서히 기능을 상실해 가면서 더 공포에 질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음에 만나면 저것도 ‘수거’ 당한다.
대여니까.
‘미치겠다.’
앞으로 볼 끔찍한 일에 서막 같아서 절로 눈이 질끈 감기지만….
‘쫄보인 걸 들키면 안 되니 참아야 한다니.’
나는 옆의 백사헌을 의식해, 사방이 조용해진 것을 확인하자마자 밖으로 나왔다.
‘계속 여긴 있을 순 없어.’
빨리 이동해서 탈출해야 했다. 탐사 기록과 매뉴얼은 일단 백사헌과 헤어진 후에 정리….
“저기.”
음?
“감사합니다.”
갑자기 백사헌이 존댓말로 말을 걸어왔다.
마치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 제법 예의 바르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이다. 마치 지하철에서 처음 만났을 때처럼 말이다.
그리고 슬그머니 달아나려 한다.
“그럼 전 이만….”
“잠깐.”
백사헌이 발을 멈췄다.
나는 물었다.
“진입한 지 몇 시간이나 지났지?”
“…….”
“대답하기 싫어?”
“…두 시간 정도 지났는데요.”
나보다 꽤 앞서서 들어왔잖아.
시간 개념이 이상해지는 괴담은 아니니까 신입인 백사헌도 아침부터 불려 왔다는 건데…….
‘D조 상사들이 날 빼줬던 거구나!’
순간 뭉클해질 뻔했다.
얼른 조원들 찾아서 나가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될 정도다.
‘도마뱀 조장은 원래도 최후생존 7인에 들었겠지만.’
다른 D조 사람들은 얼른 찾아야겠다.
…솔직히 막상 환풍구에서 나와서 복도를 보니 한숨부터 나오긴 했지만 말이다…….
‘와, 여길 내가 혼자 들쑤시고 다녀야 한다고.’
여길 구석구석 살피면서 단서를 찾아야 한다고? 안내원 괴물과 술래잡기하면서?
오죽했으면 이 어둠을 소재로 한 공포 게임도 나왔던데, 플레이는 안 해봤지만 위튜브에서 영상을 본 적은 있었다.
…화면을 반쯤 손으로 가리고.
“…….”
음. 역시 인성에 문제가 있어도… 누구라도 같이 가는 편이… 좋지 않을까?
나는 백사헌을 돌아보았다.
* * *
어둠 속.
김솔음 옆에서 백사헌은 침을 삼켰다.
‘X발.’
하필 이 미친놈에게 걸리다니.
개또X이 새끼가 사택 룸메이트로 걸렸을 때부터 풀리는 일이 없었다.
야밤에도 절대 취객에게 시비 안 걸릴 것 같은 냉소적인 인상으로 미친 소리를 하는 걸 듣자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다.
‘정말 이놈한테 붙어야 하나.’
같이 진입한 직원들은 이 괴상한 저택의 곳곳에 다 떨어져서 정신을 차린 것 같았고, 그나마 마주친 다른 민간인도 방금 일로 작살 났다.
그래도 이 정신 나간 자식이랑 가느니 혼자 다니는 게 나을지도….
미친 듯이 저울질할 때였다.
갑자기 김솔음이 입을 열었다.
“존댓말을 쓰네? 갑자기.”
X발.
등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전에는 워낙 긴급 상황이다 보니 어쩌다가 말을 놓았는데… 이젠 다시 서로 예의 있게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서요.”
김솔음은 자신을 빤히 보더니, 곧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그렇군요. 알겠습니다.”
“…네.”
도망…쳐야 하나?
백사헌은 김솔음을 훑어보았다.
상대의 말도 안 되는 거창한 사내 소문에 대해선 이미 다 접했다.
현장탐사팀의 말도 안 되는 괴물 신입.
-A등급 어둠을 자기 혼자 클리어했대.
-정예반에 스카웃될 뻔했다더라. 근데 본인이 거절했다는데?
-와, 무슨 실종된 과장까지 찾아왔다며. 그거 신입 맞아?
-매뉴얼 심사 개정이 두 건? 이거 무슨 직원들 등쳐먹으려는 선전용 신입….
나중에는 하도 거창해서 회사의 프로파간다 아니냐며 술렁이는 사람도 몇 명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백사헌은 소문을 의심하지 않았다.
‘미친놈이라 그런 거 아닌가?’
저 새끼가 실적이 괴물처럼 잘 나오는 건… 사고방식이 괴물과 닮아서가 아닐까?
사고방식이 일반 사람과 다르니 괴담 속에서도 사람은 못 할 발상 같은 걸 했겠지!
백사헌은 스스로가 실익에 집착하고 이기적인 인간상인 건 알았다.
하지만 예측이 안 되는 상대가 주는 위압감은 달랐다.
미지가 주는 공포.
‘그냥 저 새끼가 괴담이라고 해도 믿겠어.’
백사헌은 식은땀을 흘렸다.
그래도 정보는 얻고 싶었기에, 입을 뗐다.
말해준 만큼은 들어야지.
“어디로 가실 거죠? 저 괴물이 사람을 습격하는 걸로 봐서는, 아마 우리가 불청객으로 취급받는 어둠 같은데….”
“아닙니다.”
“예?”
“이 전시회는 우리를 확실히 관람객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이건 또 무슨 개소리인가.
백사헌은 김솔음을 보았다.
상대는 아무렇지도 않게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그래서 요금을 징수하러 오는 겁니다. 눈만 뽑아가잖습니까. 이용 요금만 징수하는 겁니다.”
“…….”
“매뉴얼 안 읽어보셨습니까?”
읽었다.
전시회 초대장으로 오염된 그 괴상한 문서.
“초대장이잖습니까. 초대받고 온 사람이 불청객이 될 리가요.”
“……하지만 요금에 대한 말은 없었죠.”
“다시 읽어보십시오. 3페이지 마지막 부근.”
백사헌은 종이를 폈다.
+++
이번 전시는 예술을 흠모하는 열린 마음하에 한 시간 무료로 진행됩니다.
+++
“한 시간 무료 관람이라는 건, 그 이후로 요금을 징수하거나 쫓아낸다는 뜻이 내포되어 있습니다.”
“…!”
“하지만 쫓아내는 대신 눈을 뽑는 걸로 봐서는 요금 징수란 겁니다. 아까 그건… 이 전시회에서 일종의 ‘직원’인 거겠죠.”
놀랍게도 설득력이 있었다.
백사헌은 무심코 물었다.
“왜 하필 인간 눈이 요금인 것 같아요?”
“글쎄요. 인간이 가진 것 중 그나마 신체 부위가 가장 가치가 있어서?”
“……!”
“우리가 가진 물건은 다 저쪽 입장에서는 가치가 없나 봅니다.”
“…‘저쪽’이라는 건?”
김솔음은 무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모르죠.”
그리고, 휘말려 들어온 사람 그 누구도 모를 것이다….
등 뒤가 서늘해졌다.
“어쨌든, 이 전시회를 운영하는 누군가는 인간의 신체가 그나마 사람들이 가진 것 중에 가장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합니다.”
“…….”
“처음에는 눈이 가장 적당한 가치인 것 같고.”
눈.
자신에겐 하나만 있다.
백사헌은 무심코 안대 쓴 자기 한쪽 눈을 누를뻔했다.
아직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나간 자신을 빤히 쳐다보며, ‘정답지’인 다른 안구를 들어 올리던 김솔음의 모습을.
자신이 의미 없이 눈이 뽑혔다는 것을 깨닫기까지 기다리던 그 기묘한 침착함과 관찰을.
그 조롱 어린 시선을.
이 어둠은 요금으로라도 쓴다는데, 저 새끼는 대체 뭘 처먹고 자랐기에 저렇게 섬뜩하게 군단 말인가.
“근데….”
“…!”
김솔음이 백사헌을 빤히 쳐다보았다.
“말을 도로 놓았네.”
소름이 쭉 올라왔다.
백사헌은 애써 침착한 목소리를 냈다.
“그래. 차라리 편하게 할까? 동기인데, 같이 탈출….”
“싫은데.”
“…….”
순간 울컥했으나 애써 미소를 지었다.
“그러지 말고. 너도 날 환풍기에 숨겨준 걸 보면 동기 살리겠다는 마음이 있었던 거 아니야?”
“응. 여차하면 미끼로 쓰려고.”
“…….”
백사헌은 가스라이팅을 전면 포기하고 설득조로 말을 전환했다.
생각보다도 김솔음이 이 끔찍한 전시회 괴담을 잘 파악한 것 같았기 때문에.
“한 명이 더 있다면 탐사도 더 쉬워질 거잖아. 이렇게 어두운 곳에서.”
“딱히 필요 없어.”
“…….”
“하지만 도파민을 위해 동행하자. 사람이 많으면 변수가 많아지잖아.”
미친놈이다.
백사헌은 확신했다.
이렇게까지 대놓고 미친놈은 자신의 파란만장한 인생에서도 처음이었다.
하지만…….
‘저런 인간이어야 이 회사에 적응할 수 있는 건가.’
어쩐지 느껴지는 패배감에, 그는 검은 염소 가면 아래로 이를 물었다.
“이동한다.”
김솔음은 딱 굳은 백사헌을 무시하고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대뜸 말했다.
“고마워. 그렇다면 다행이고.”
“뭐?”
뭐가 고맙다는 거지?
그가 혼란스러움에 뭐라고 말을 더 붙일뻔할 때였다.
김솔음이 입가에 손을 댔다.
“조용. 브라운이랑 이야기 중이잖아.”
“…….”
백사헌은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브라운?”
“그래.”
김솔음이 자기 정장 주머니에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귀엽고 폭신한 토끼 인형이 달린 키링이었다.
“지금 브라운이 너한테 인사하고 있어.”
“…….”
백사헌은 이제 슬슬 도망가고 싶어졌다!
물론 브라운이 정말로 ‘오, 안녕하십니까, 옆방의 곧 죽을 희생양 씨로군요!’ 같은 소리를 하고 있다는 것은 꿈에도 짐작하지 못한 채였다.
그리고 김솔음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도.
‘휴. 그래도 사람이 하나 더 있으니까 조금이라도 덜 무섭긴 하네.’
여길 인형인 브라운과 둘이서 다닌다고 생각하니까 창귀 때만큼 오싹했던 것이다.
‘괜찮은 선택이었던 것 같다!’
“여길 뒤져서 아까 그 환풍구 같은 장소를 더 확보할 거야?”
“아니.”
김솔음은 일부러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사람을 본다는 눈으로 백사헌을 쳐다보았다.
“나가는 문을 찾아야지. 왜 환풍구를 찾아.”
“…….”
“넌 환풍구가 마음에 들면 계속 들어가 있어도 돼. 그러다 걸리면 요금 지불하고.”
김솔음은 알고 있었다.
‘저거 저거, 풀어주면 안 되는 인간상이야.’
백사헌은 조금만 틈이 주어지면 인성질할 사람이라는 것을!
초면인 사람을 갑자기 눈 하나 깜짝 안 하고 눈알 터지도록 공격한 백사헌이었다.
저 자식 <어둠탐사기록>에서 별명이 독사인 것을 잊지 말자.
방심은 금물인 법!
‘나도 미친놈처럼 굴자.’
그렇게 미친놈 두 사람의 불편한 어둠 탐사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