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6화
2층.
고영은 씨가 이제 익숙하게 안내 기계에게 질문했다.
“관람을 끝마치고 귀가하는 손님들은, 이 지상 2층에서 아래층으로 가셨나요?”
끄덕.
“…!”
끝났다.
이걸로 사실상 답안지가 도출된 것이다.
‘출구가 지상층 중에 있고, 2층 밑이라면….’
남은 건 1층뿐이니까.
“그럼, 이제 1층에 가서 출입구를 물어보기만 하면…!”
“빨리 가죠!”
“네!”
백사헌과 고영은이 처음으로 의견이 일치했다.
‘진짜 현대인 상식처럼 출입구가 1층에 있었다니. 이게 우연찮게 이렇게 들어맞네.’
어쩐지 먼 길 돌아온 느낌에 살짝 허탈하기도 했으나, 그보다 큰 기대감에 나도 발을 재촉했다.
이제 출입구를 알아내서 테라스에 대기 중인 상사들에게 말하기만 하면 모든 게 준비된다.
-이런, 전시회 관람은 끝입니까? 아쉽군요. 아직 제대로 돌아본 홀이 다섯 곳도 안 되는 것 같은데….
허허. 더 둘러보다가 네 친구 눈코입이 사라질 수 있단다.
그전에 기절할 수도 있고!
‘지금도 사람 셋이 불빛 들고 붙어 다녀서 버티고 있구만.’
나는 브라운이 든 주머니를 달래듯 툭툭 두드린 후 발을 옮겼다.
양초를 들고 있는 고영은 씨의 발걸음이 씩씩해졌다.
그 기세는 1층에서 안내 기계를 만나도 움츠러들지 않았다. 빨리 나가고 싶은 마음이 모든 두려움을 압도한 모양이다.
“안녕하세요!”
이번에도 기계는 양초의 영향을 받아 정중히 응대했고, 고영은은 심호흡을 한 후 힘차게 요청했다.
“출입구로 안내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
정적.
기계는 미동도 없이 서 있다.
“……?”
응답은 없다.
“서, 설마.”
고영은이 시허옇게 질린 얼굴로 촛불을 들여다보았다. 혹시라도 촛불이 통하지 않는 건지 염려하는 모양이었다.
촛불은 멀쩡히 잘 빛나고 있다.
몇 번 더 눈을 내려 확인한 고영은이 떨리는 목소리로 재차 말했다.
“출입구로… 안내해 주세요.”
다시 정적.
“…….”
“…….”
분위기가 싸늘하게 얼어붙었다.
‘망할.’
나는 입을 열었다.
“……산양 씨.”
“네, 네….”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익숙한 문장을 말했고, 그 문장을 따라 발음하며 고영은 씨의 눈이 꺼멓게 죽어갔다.
“관람을 끝마치고 귀가하는 손님들은, 이 지상 1층에서…… 아래로 가셨습니까? …맞다면, 고개를 끄덕여주세요.”
끄덕.
“…!!”
안내 기계의 증언이 엇갈렸다.
“왜….”
고영은이 침을 삼켰다.
“분명, 지하 1층 안내 기계는 나가는 사람들이 올라갔다고…!”
“맞습니다.”
등골이, 서늘하다.
‘대체 어떻게 된 거지?’
앞뒤가 안 맞지 않는가.
지하에서는 위로 가라고 하고, 지상에서는 아래로 가라고 하고.
출입구가 근처에 두 곳 이상이라고 해도 이건 말이 안 된다. 아예 모순으로 엇갈리는 신호니까.
‘어쩐지 출입구가 뻔하게 1층에 있는 것치고 <어둠탐사기록>에 생존자가 너무 적더라니.’
“쓸데없이 똑같은 말할 시간에 지하에 가서 직접 한번 물어보죠? 촛불도 남았는데 낭비하지 말고.”
“……아.”
백사헌의 재촉에 우리는 지하로 가는 계단을 찾아 발걸음을 옮겼다.
지하로 내려가는 그 길은 어쩐지 길고 무겁게 느껴졌다…….
그리고 결과는.
끄덕.
“위로 올라가라고? 하…….”
내가 물어봤던 것과 똑같은 응답이 돌아왔다.
안내 기계에 따르자면, 지하 1층에서 관람을 마친 관람객들은 분명 위로 올라간 것이다.
“…….”
“…….”
이제 백사헌까지 말이 없어졌다.
모두의 머리가 복잡해질 시점이었다.
“저기.”
고영은이 고개를 푹 숙였다.
“사실… 출입구 같은 건, 없는 거 아닐까요.”
“…!”
“그냥 속이고 괴롭히는 곳인데, 괜한 희망 가지게 해서 더 고통스럽게 만드는… 그런 괴담들, 많잖아요.”
맞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다.
“출구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건 내가 <어둠탐사기록>을 읽었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었다.
“기억나십니까? 여기 들어오기 전에 간이 매뉴얼을 받으시지 않았습니까.”
비록 정보가 오염되어서 전시회 초대장이 되었지만 말이다.
“출입구로 탈출에 성공했으니 생환 기록이 생긴 걸 테고, 어둠으로 백일몽 주식회사에 등록된 거죠.”
“아…!”
고영은이 고개를 들었다.
“그렇네요. 맞아요.”
그리고 심호흡하더니, 한결 또렷해진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후! 죄송해요. 이럴 때일수록 괜히 감정에 매몰되면 안 되죠. 분명 정답이 있을 거예요.”
“예.”
모순처럼 보이지만, 우리가 떠올리지 못한 뭔가가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에 잠길 때였다.
“이봐.”
백사헌이 오묘한 표정으로 나를 보며 물었다.
“너 인형.”
“브라운?”
“그래. 브라운…은 뭐라고 하는데?”
-내 친구의 멋진 답을 기다리고 있죠!
물론 저건 진짜 브라운이 말을 한다고 생각해서가 아니라, 내가 인형과 대화하는 미치광이라고 생각해서 질문한 거겠지….
‘색다른 아이디어를 듣고 싶은 건 알겠지만.’
나는 일부러 백사헌을 빤히 바라본 후에 말했다.
“인형이 말을 어떻게 하냐.”
“…….”
“생각을 좀 하고 말을 해.”
백사헌이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하지만 아이디어를 던져 보자는 것 자체는 괜찮은 발상인데.”
“…!”
“산양 씨, 혹시 떠오르는 생각 있으십니까?”
“아, 음…….”
“최대한 긍정적으로. 반드시 근처에 출구가 있다고 가정하고 말입니다.”
“그럼… 비밀공간이죠.”
고영은 씨가 눈을 찌푸렸다.
“꼭대기 층 위에 다락방 있는 것처럼, 어디 지하랑 지상 사이에 다른 공간이 있는 거 아닐까요? 주차장 같은….”
이 전시홀에 그런 류의 비밀공간이 있다는 기록은 본 적이 없는데.
물론 가능성은 있다. 직접 경험하는 것과 활자로 묘사된 걸 읽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알아도 매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창문도 사실 테라스로 통하는 문인 줄 몰랐잖아.’
하지만… 출입구는 그보다 분명한 위치에 있을 것 같은데.
‘관념적으로 봤을 때, 정식 입구가 비밀공간에 있는 건 이상하지.’
그러니까, 출입구는 정상적으로 잘 있지만 우리가 눈치채지 못한다는 거다.
편견이나, 사고방식, 문화적 요인…….
“…!”
잠시만.
“노, 노루 씨?”
나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놀란 눈으로 일어난 나를 보는 백사헌과, 촛불 효과 때문에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고영은 씨를 내려다보았다.
“혹시 계단을 몇 번 더 왔다 갔다 하실 만큼 체력이 남아 있습니까?”
“뭐?”
“이, 있긴 한데.”
“그럼 움직입시다.”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꼭대기 층까지 올라가 봐야겠습니다.”
“…??”
다시 온 계단.
“…그냥 올라가면 되는 거죠?”
“예.”
나는 발걸음을 옮겼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이 다음 층이 나타날 때까지 오르는 대신, 카운트를 한다.
한 층.
두 층.
세 층…….
아예 계단이 나타나지 않을 때까지.
“허억.”
“훅.”
나는 고개를 들었다.
“여기가, 끝입니다.”
우리는 이 거대한 저택의 맨 위층까지 올라왔다.
올라오는 길에 안내 기계를 세 번쯤 만났고, 그때마다 동기들은 기계에게 질문했지만 결과는 똑같았다.
아마 이런 생각이 들 것이다.
‘아래로 내려가라고 하는데 대체 왜 올라온 거지?’
그 의문에 대한 대답은 이 꼭대기 층 자체에 있었다.
“산양 씨. 저희가 몇 층을 올라왔다고 생각하십니까?”
“예? 그러니까……. 어?”
“…….”
“잠깐만요. 제가 카운트한 게 잘못되지 않았다면…….”
“6층.”
백사헌이 말했다.
“7층이 아니라 6층이잖아, 여기!”
그렇다.
“네가 이 저택은 7층까지 있다며!”
-또한 이 유서 깊은 대저택은 지상 7층과 지하 7221층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이번에는 브라운의 설명과 모순된다.
하지만 브라운은 ‘착한 친구’이기 때문에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러니까… 모든 게 진실이라면.
“…….”
역시 그렇군.
“너 일부러 7층이라고 거짓말한….”
“산양 씨, 그거 아십니까?”
“야!”
그런 괴담도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합리적으로 정답이 도출되는 상황이, 어떤 사람에게는 불합리하도록 정답이 나오지 않는 것 말이다.
문화적, 환경적 차이로.
거기서 오는 오싹함 즐기는 괴담.
종류는 다르지만, 마치 내가 삐에로와 광대의 차이를 알아서 삐에로 그림을 찾아냈던 예전 그 어둠처럼 말이다.
환경적 지식.
“건물 층수를 세는 방식은 문화권에 따라 다릅니다.”
“……어?”
“미국, 그리고 우리가 사는 한국을 포함해서 동아시아 국가들에서는 층수가 1층부터 시작합니다.”
하지만.
“그러나 다른 문화권에선 좀 다른 방식을 씁니다.”
유독 지상 1층에서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계단이 길다고 느꼈던 이유.
체감의 탓이 아니었던 것이다.
“0층부터 시작합니다.”
“…!”
Ground Floor라고 부르기도 하는 층.
“이 저택의 지상이 7층으로 이루어진 건 맞을 겁니다. …0층부터 6층까지 말입니다.”
나는 계단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우리는 이제 1층으로 가서, 0층으로 가는 길을 찾아달라고 말하기만 하면 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했다.
* * *
-0층으로 향하는 길을 안내해 주세요.
1층의 안내 기계가 친절히 앞장서서 가준 길을 따라 걸으면, 놀랍게도 1층의 메인 전시홀의 반대편에서 기존과 다른 형태의 계단을 볼 수 있다.
거대한 나선형 이중계단.
그리고 그 나선형의 어느 쪽이든 따라 걸어 내려가면… 물론 이전에 내려갔던 것처럼 황동빛이 청동빛으로 바뀌는 지하 1층의 전시홀로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중간에 멈춰서 거대한 문을 열어본다는 선택을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그 대문을 열고 나갔다.
끼익.
은빛으로 가득한 장대하고 우아한 공간이 펼쳐졌다.
거긴 전시홀이 아니었다.
바로… 로비.
“…!!”
전시물 없이 로비로 기능하는 층이라서 전시홀을 오가는 일반 계단에서는 굳이 통로를 만들지 않았던 0층.
마침내 그 층에 가장 정석적인 통행로로 들어온 것이다.
그리고 바로 눈앞에 보이는 스테인글라스 형태의 유리문이….
“…정문.”
빛이 가득 들어와서 밖은 보이지 않았으나, 확실했다.
우리는 마침내 출구를 찾았다.
“살았다!!”
“하아아….”
고함과 안도의 한숨이 로비를 울렸다.
그리고 기쁨의 환성도.
“노루 씨! 노루 씨 추리가 맞았어요! 또 맞았다고요! 와아아악!! 당장 나가요!”
진짜. 진심으로 환호와 비명을 지르면서 당장 달려 나가고 싶은 마음은 굴뚝 같지만….
“저는 상사분들을 찾아 함께 나가야 합니다.”
“아, 아!! 그렇다면… 촛불이 필요하시겠네요.”
얼마 남지 않은 양초의 양을 가늠하듯 본 고영은은 곧 씩씩하게 외쳤다.
“…얼른 같이 갔다 오죠!”
“예. 감사합니다.”
진짜, 진짜로 고맙습니다…….
나 혼자 여기 돌아다니는 건 동기들 찾을 때만으로 이미 기력을 다 썼다….
그렇게 고영은 씨는 본인의 인성다운 선택을 했다.
물론 백사헌도 그랬다.
아무 주저없이 당장 문으로 직행했다는 뜻이다.
“마음대로 해. 난 나갈 거니까!”
그러든가.
나는 빤히 백사헌을 보았다.
‘나갈 때 문에서 어떤 효과가 나는지, 어떤 반응이 생기는지 확인해 놓아야겠다.’
그러나 백사헌이 주춤거린다.
“…….”
“…….”
그리고 슬그머니 입구에서 떨어지는 것이다.
‘…?’
왜지.
“나간다며?”
“…다른 사람이 나가는 걸 확인하고.”
저런.
‘그냥 나가주는 게 여러모로 더 편한데.’
나는 약간 아쉬운 느낌에 백사헌을 힐끗 보고 시선을 돌렸다.
-하하하… 이것 참 재밌는 상황입니다. 노루 씨!
난 별로 재미없지만 누구라도 재밌다니 거참 위안이 되는구만….
-이제 당신의 범상한 상사들에게 출입문의 위치를 알려주러 가야 하는 겁니까?
맞다.
‘딱히 범상한 사람들은 아니지만….’
내가 대체 이 대저택을 몇 번 휘젓고 다니는 건지 모르겠다……. 다리가 빠질 지경이지만, 빨리 가보자.
-잠시만요. 다리가 아픕니까, 내 친구?
-오, 그렇다면 제 새로운 능력을 소개해 드릴 때가 온 것 같군요.
…어?
‘새로운 능력?’
-그렇죠! 친애하는 친구가 선물해 준 멋진 욕조와 목욕 덕분에 회춘한 제 힘을 보여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나를 주머니에서 꺼내주십시오.
약간 젠체하는 듯 으스대는 말투였는데 이상하게도 약간의 감사함도 느껴지는 신기한 말투였다.
어쨌든, 나는 그 말대로 봉제 인형을 주머니에서 꺼냈다.
“노루 씨?”
“잠시만 기다려주십시오.”
-맞습니다. 오래 기다리실 필요가 없죠! 진정한 진행자라면 언제든 준비가 되어 있는 법입니다…… 이렇게!
따딱!
손가락이 없는 인형의 손에서 손가락을 튕기는 소리가 둔탁하게 울렸다.
그리고 나는…….
어쩐지, 뭔가가 내 가슴과 입에서 ‘트인 듯’한 느낌이 들었다.
공명감.
거대한 공간이 생긴 것 같은 이상한 느낌이….
[아.]
“…!!”
“모, 목소리가….”
나는 입을 다물었다.
내 성대를 통해 나오는 진동이 로비 전체를 울렸다.
-그럭저럭 괜찮군요.
-내 쇼에서는 어떤 게스트도 언성을 높이지 않아도 편안하고 정확하게 관객과 시청자들에게 말을 전달할 수 있죠.
그건…….
‘마이크?’
-아, 참 대중적인 표현입니다!
-노루 씨, 내 친애하는 친구의 말은 모든 사람에게 명확히 전달될 겁니다…. 같은 스튜디오 안에 있다면 말이지요.
-이 공간으로 따지자면, 그렇군요. ‘같은 층’에 있다면 말입니다!
맙소사.
진짜로 더 유능해졌다.
-과찬이시군요.
나는 감탄했다.
‘근데 아쉽지만 이 능력은 지금 상황에 적합하진 않은 것 같다.’
-예?
테라스룸에 있는 상사들만 호출하려고 하는 건데, 그 층에 있는 사람들이 다 들으면…….
“…….”
–친구?
잠깐만.
나쁠 건 없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