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47화
박민성 주임은 한숨을 참으며 숨어 있던 테라스룸 소파 옆에 앉았다.
‘너무 오래 걸리는 것 같은데.’
김솔음이 동기들을 데리고 내려간 지 벌써 70분이 넘었다.
이 정도는 소요될 수도 있다고 말하긴 했지만, 동시에 김솔음은 2시간이 지나도 자신이나 동기들이 복귀하지 않았을 때를 가정하고 귀띔을 남기기도 했다….
-…기다리거나 찾지 않으셔도 괜찮습니다.
수틀리면 자긴 두고 가란 뜻이다.
‘그냥 같이 가줄걸.’
박민성은 한숨을 참았다.
아무리 각자도생의 백일몽 주식회사라고는 해도 현장탐사팀 조에 따라서는 동료의식이 투철한 경우도 있었는데, D조가 유독 그런 편이긴 했다.
저 은하제 대리도 심란한 기색을 약간 드러낸 채로 소파에서 간이로 만든 이 어둠의 지도를 수정하면서 한숨을 쉬고 있었다.
‘…노루, 신입 기간이 끝나도 우리 조에 그대로 정착하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우선 무사히 이곳을 나가는 것부터가 먼저가 됐다.
박민성은 약간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믿는 구석이 있긴 했다.
‘이자헌 조장님이 컨펌했잖아.’
그럼 그 아이템이 정말로 쓸만해 보였다는 뜻이었다.
신입이 대체 그걸 어디서 구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간혹 그런 사람이 들어오기도 했다.
원래부터 도시전설이나 괴담에 휘말려 지내던 사람이 취직하는 경우 말이다.
‘그런 케이스인가.’
악운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아무리 현장탐사팀이라도 신입이 이런 위험한 어둠에 총동원되는 경우는 보통 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행사였다.
근데 테마파크부터 연달아 들어온 김솔음을 생각하면 눈물이 앞을 가릴 지경이었다…….
‘포인트라도 잘 챙겨서 다행이지.’
박민성은 한숨을 참고 테라스 문 근처를 보았다.
거기엔 심란한 그의 마음과 정반대로 태연자약해 보이는 인영이 있었다.
이자헌 조장.
그는 미동도 없이 테라스 문 바로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
아마 기묘할 정도로 정확한 생체시계로 시간을 재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카운트다운이 끝나면 고민 없이 일어나서 계획대로 움직이겠지.
부디 그 계획이 ‘김솔음 사원의 생존은 가망이 없으니 탈출 계획에서 배제’를 전제로 하는 게 아니길 바랄 뿐이었다.
‘아니, 그 전에 노루가 돌아오면 좋겠는데….’
밖은 가끔 들리는 비명을 제외하면 야속하도록 조용했다.
‘발소리가 없네.’
노루가 일을 끝냈다면 분명 조용한 세 사람의 발소리부터 들릴…….
[들리십니까?]
“…!?”
박민성은 벌떡 일어났다.
옆에서 은하제 대리도 반사적으로 일어난 것이 보였다.
[탈출 관련 안내 말씀드립니다.]
[시간이 없어서 반복하지 않습니다. 집중해 주십시오.]
지금까지 기다리던 D조의 신입.
김솔음의 목소리였다.
[출입구는 0층에 있습니다.]
[다시 설명합니다. 출입구는 0층에 있으며, 계단으로 쭉 내려오다가 청동빛으로 변하는 구간에….]
분명 노루가 맞았다.
그리고 이 비범한 신입이라면 어디선가 또 신기한 방식을 활용해서 안내방송 같은 것을 해도 그렇게 이상하진 않았다……. 하지만.
…인간이 아닌 뭔가가, 김솔음을 흉내 내고 있을 확률은?
“…….”
D조 조원 둘은 서로 힐끗 눈을 마주친 후, 판단을 최종 결정권자에게 넘겼다.
이런 분야에서 더없이 냉정히, 귀신같은 감으로 판단할 줄 아는 그들의 조장을.
“…….”
이자헌은 테라스문 근처에서 누구보다 선명하게 ‘안내방송’을 들었다.
[반드시 나선형 계단을 이용해야 합니다.]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듯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그는… 이렇게 선언했다.
“이동하겠습니다.”
* * *
[이상입니다.]
나는 6번이나 반복한 말을 드디어 마쳤다.
1층부터 6층까지.
‘이걸로 지상층에는 다 알린 건가.’
사실 D조가 있는 1층에만 할까 고민했는데, 고영은 씨가 적극적으로 찬성했다.
-그, 그런 게 가능하시다고요? 그럼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죠!
의료인다운 발언이었다.
하지만 이제부터는 각자의 판단에 달려 있다.
‘혹시 몰라서 회사 소개도 안 했지만, 현장탐사팀에서 쓰는 용어를 몇 개 넣긴 했다만….’
그래도 의심하고 안 나올 수도 있겠지.
혹시 계단을 이용하다가 운 나쁘게 그 층을 담당하는 안내 기계를 만난다고 해도 어쩔 수 없다.
신체를 한두 부위 뺏기더라도 살아남는 게 이 미친 전시회에 갇혀서 인간 굼뱅이로 죽는 것보단 낫지 않은가.
‘D조에게 올지도 모르는 기계를 분산시키는 효과도 있고.’
나는 목을 가다듬었다.
“아, 아.”
브라운이 눈치껏 힘을 거둬들였는지 목과 폐에서 느껴지던 기묘한 공명감은 사라졌다.
‘고마워.’
-감사 인사는 언제나 듣기 좋지요!
브라운은 약간 피로한 목소리였으나 쾌활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옆에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짜증 어린 목소리가 들렸다.
“포인트 낭비를 왜 하는 건데. 많이 탈출할수록 인당 포인트가 적어지잖아.”
또 인성 터진 소리하고 있네.
심지어 뭘 모르는 발언이다.
“바보냐? 신입인 너도 탈출하는데 안 도와줘도 알아서 출입구 찾아 나갈 베테랑 직원이 없겠냐고.”
“…!”
아이템과 전용 장비 구성이 잘 맞아떨어지는 직원, 원래부터 능력 좋은 직원까지 몇 명은 그냥도 탈출한단 말이다.
<어둠탐사기록>을 비춰봐도 어차피 7명 탈출은 확정이라 인당 배분 포인트는 내가 이런 짓 안 해도 1/8 이하였다.
이 괴담으로 포인트를 한몫 잡긴 어렵단 뜻이다.
하지만 이렇게 설명해 주는 대신, 나는 그냥 빙긋 웃었다.
“이럴 때 생색내야 앞으로 회사 생활이 재밌지…. 다양한 반응도 관찰하고.”
“…….”
백사헌이 질린 표정으로 고개를 돌렸다.
‘양심 있냐?’
방금 네 발언을 생각하면 내가 그 반응을 해야 한다고. 이 괴담 세계관 소시오패스야.
하지만 혹시라도 고영은 씨까지 식겁했을까 봐 나는 앞사람을 불렀다.
“산양 씨.”
“…….”
“산양 씨?”
“…잠깐만요. 혹시, 저 부르셨어요?”
“…!”
설마.
“…아무래도, 저 소리가 잘 안 들리기 시작한 것, 같은데요.”
“…….”
나는 머리카락에 덮인, 고영은의 귀가 사라진 자리를 보았다.
실로 꿰맨 빈자리 안에 대체 뭘 넣은 건지는 모르겠으나, ‘대여’해 준 청각 기기가 기능을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이다.
비교적 아주 짧은 시간에.
‘하필 지금….’
“그래도 아예 안 들리는 건 아니고요. 또 양초가 아직 꽤 남았으니까, 조심해서 이동하면 될 것 같아요.”
“예.”
나는 더 정확하게 표시하기 위해 고영은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고영은은 살짝 어깨를 움츠리더니, 곧 꿋꿋이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백사헌이 다급히 말했다.
“저 아이템 내가 드는 게 낫겠어. 나한테 넘겨.”
“그러려다가 산양 씨가 실수로 뒤를 돌아보면?”
“…….”
백사헌이 입을 다물었다.
우리는 긴장한 채로 여섯 층의 계단을 내려가기 시작했다.
터벅터벅.
울리는 발소리만 층계를 채웠다.
아직 내 방송을 듣고 뛰쳐나온 사람은 없는 것 같았다…….
“저기요.”
고영은이 불렀다.
“예.”
“…….”
안 들리는 건가.
“저기, 거기 계시죠?”
나는 고영은의 등을 아주 부드럽게 두드렸다. 백사헌도 썩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고영은의 어깨를 툭툭 쳤다.
“아…. 감사합니다.”
고영은이 안심한 듯 다시 양초를 꽉 양손으로 잡았다.
다시 계단을 내려간다.
터벅터벅.
마치 영원처럼 느껴지는 고요한 시간을 지나….
1층에 도착했다.
기이이이익…….
동선에 따라 움직이는 안내 기계의 소리가 사방에서 울린다.
우리 바로 옆을 지나가고 있었다…. 죽은 인간 굼벵이를 회수해 질질 끌고 가면서.
“…이제 나선 계단으로 갈게요.”
“예.”
고영은의 목소리가 커졌다.
소리가 거의 들리지 않아서 목소리 크기를 조절하지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거의 다 와서 괜찮아.’
대신 빠르게 반응하기 위해 사방에 귀를 기울이며 침착하게, 신중하게 걸었다.
틀린 대응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위기는 우리 준비와는 아무 관계 없이 찾아오기도 한다는 점이다.
가령… 듣는 것에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더니, 전혀 관계없는 방해물이 등장하는 식으로.
“어?”
시야에서 앞사람이 사라졌다.
고개를 내리자, 넘어지는 고영은의 형상이 보였다.
그 발아래에서 반짝이는 뭔가가 미끄러졌다.
망원렌즈.
안내 기계가 끌고 가던 죽은 시체에서 떨어져나온, 보이지 않는 투명한 대여품이 굴러내려 절묘하게 그 사이로 들어간 것이다….
쿵.
나는 고영은을 잡아챘다.
하지만 이미 바닥을 찍은 고영은의 팔에서 양초가 튕겨 나온다.
“안…!”
양초를 반사적으로 잡아들어 백사헌에게 던졌으나.
이미 늦었다.
양초가 꺼졌다.
“…….”
“……허억.”
안내 기계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훅.
금속 날이 날아왔다.
“힉,”
나는 옆으로 굴렀다. 새된 신음이 옆에서 들렸다.
옮기던 시체를 내려놓은 안내 기계는 가스등을 들어 우리를 비추었다.
우리 모두가 요금을 체납 중이라는 사실을 확인한 게 분명했다.
그리하여 ‘우선순위’를 재정비한 괴물의 상복부에 달린 바늘 같은 부속 부위가 또다시 날아온다.
우선 가장 먼저 가까이 있는 눈부터…….
“노루 씨.”
아는 목소리.
“숙이십시오.”
나는 반사적으로 동기 둘의 뒷머리를 누르며 바닥에 쓰러졌다.
쾅.
머리 위에서 금속이 부딪치는 굉음과 불티가 튀었다.
“…!”
이자헌 과장이다.
말도 안 되는 완력을 가진 현장 탐사 직원은 안내 기계의 바늘을 무자비하게 튕겨냈다.
팅.
부러진 바늘 끝이 날아가며 복도 벽에 박힌다. 안내 기계가 이상한 마찰음을 내며 관절부를 뒤틀었다.
이런 미친.
‘저게 부러질 수 있는 거였다고?’
이자헌 과장이 자신의 장갑 낀 손을 회수했다. 모르긴 몰라도 저쪽도 골절은 당해야 안 이상한 상황이다.
그 손에는 금속성의 무언가를 마치 너클처럼 잡고 있었는데….
테라스 문고리였다.
“……!”
머릿속에서 알람이 울렸다. 저거….
‘전시회 기물 파손.’
———————=
전시회장 내에서 벌어지는 모든 소란 및 절도, 기물 파손 등의 금지 행위는 안내원에 의해 즉각 제재되며, 상응하는 벌금이 징수됩니다.
———————=
심지어 안내 기계까지 부쉈다.
이것을 전시회 내에서 형법으로 취급하지 않고 정중히 소란에 대한 사죄와 피해보상 요금만 청구해 오더라도… 말이다.
하나는 확실했다.
안내 기계의 압도적 우선순위라는 것.
그리고 그건 눈앞의 기계뿐만 아니라, 이 구역에 있을 모든 안내 기계 역시 마찬가지일 테니….
“조장님.”
“예.”
“뜁시다.”
나는 몸을 날렸다.
끼이이이익, 끼익, 지지직, 지익, 킥, 끼이익, 기이이이이익….
망가진 안내 기계가 그간 없었을 만큼 저돌적으로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옆에서 동기들이 미친 듯이 뛰는 소리가 들렸다. 도마뱀 과장은… 아니, 잠깐만!
“조장님!!”
“예.”
“싸우지 말고 뛰십시오!”
‘도마뱀 과장이 아무리 농담처럼 힘이 세도 여기 있는 안내 기계를 다 부술 순 없을 거 아냐!’
거기까지 소란이 번졌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아득했다.
‘…어둠탐사기록에서는 심지어 검열해 놨어!!’
가려진 내용이 현실에서 어떻게 구현될지 상상도 하고 싶지 않았다.
끼이이이익
‘X발!’
계단으로 가는 길에 안내 기계 하나를 더 맞닥뜨렸다.
아니, 하나 더.
“으으윽!”
내리치는 바늘 사이로 몸을 날렸다. 팔에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달리면서도 생물적 본능으로 알았다.
‘잡힌다.’
이건 인간의 신체 조건상 불가능했다.
무조건 0층에 가기 전에 안내 기계에게 다 잡혀서 징수당한다.
등 뒤가 서늘해졌다.
‘…뭘, 할 수 있지?’
숨이 찬다. 산소가 부족한 머리가 잘 돌아가지 않는다.
대신 체념이 들어온다.
‘이 정도면… 오래 버티긴 한 건가.’
사고가 둔해지며, 소리까지도 여러 층으로 분리되는 건지 귓가에 발소리가 웅웅거리며 울린다.
마치 수십 명이 달리는 것처럼…….
아니, 잠깐만!
“…?!”
깨달았다.
발소리가 유독 여러 개로 들리는 게 아니었다.
정말로 사람이 늘어난 것이다.
둘이 아니라, 적어도 열 명은 넘는 사람의 발소리가.
-노루 씨, 당신의 멋진 안내방송을 듣고 기회를 잡은 분들이군요!
“…!”
현장탐사팀 직원들이다.
상황을 지켜보던 그 관람객들은, 소란을 틈타서 나선형 계단으로 접근하려는 것 같았다.
그게 뜻밖의 효과를 냈다.
안내 기계들이 일의 경중과 관람객들과의 각각 거리에 따른 우선순위 계산으로 우왕좌왕한 것이다.
요금을 내지 않은 사람들이 여기저기에서 튀어나와서 달리고 있었다.
“빨리!”
그 시간적 빈틈으로, 우리도 이를 악물고 계단으로 몸을 날렸다.
기이이이이익
미친 듯이 발을 움직였다.
등 뒤에서 소름 끼치는 소리가 가까워지는 그때.
계단이 끝나고, 은빛 홀이 펼쳐진다.
로비.
그리고… 정문!
“가!”
은하제 대리와 박민성 주임이 문을 잡고 있었다.
미친 듯이 달렸다.
내가 정문 앞에 발을 디디는 거의 동시에, 상사들이 출입구로 몸을 날렸다.
나도 거의 엎어지듯 들어갔다.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뛰어서, 빛으로 가득한 출입문으로 나가는 순간….
“후우!!”
나는 눈을 떴다.
깨끗한 형광등이 달린 천장이 보였다.
적당한 넓이의 현대적인 복도.
회사 31층 회의실 앞이다.
탈출했다.
“하…….”
복도에 엎어졌다.
대회의실에서 사람들이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렸으나 그걸 의식할 멘탈도 체력도 바닥이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다 쥐어짜서 혼미한 정신 속에…….
알람이 울린다.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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