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1화
‘알찬 하루였다.’
추가 수익 사천. 최고의 선택.
‘눈에 안 띄면서 정기적으로 부수입 당길 선이 생긴 것 같은데.’
일단 오늘의 사천만 원을 어디다 쓰면 좋을지 여러 옵션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이번에 승진하며 새롭게 개방된 회사의 구역들과 함께 말이다.
그리고 내가 이득을 본 걸 칼같이 알아차린 봉제 인형 하나도 슬슬 자기가 원하는 걸 은근히 어필 중이었다.
-휴, 며칠 외출이 잦았더니 몸이 찌뿌둥하군요. 목욕을 하고 싶습니다….
참아줘라. 어디 병원에서 혈액팩을 서리해 올 수는 없지 않냐….
-그럼요. 충분히 참을 수 있습니다. 전 좋은 친구니까요….
음, 혈욕조에서 목욕은 무리겠지만 손빨래 정도는 시켜줄 수 있지 않을까.
그렇게 브라운에게 시덥지 않은 잡담을 걸며 저녁을 보낼 생각이었다.
누가 내 방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기 전에는 말이다.
“너!!”
“…!”
백사헌이다.
아니,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도 않던 자식이 왜 갑자기 남에 방에 노크도 없이 들어온단 말인가.
하지만 백사헌의 무례를 지적하기도 전에, 나는 녀석의 상태를 깨달았다.
거의 패닉 상태잖아.
“이거 대체 무슨 뜻이야…! 날 어디에 끌어들인 거냐고!”
그 손에는 스마트폰이 들려 있었고, 화면에 떠 있는 것은….
[김솔음 : 연쇄살인마 조심해]
내가 보낸 메시지였다.
아까 들어오면서도 한 통 보내긴 했다.
근데 말이다.
“내가 끌어들인 게 아닌데.”
“…….”
“네가 잘못된 선택을 한 거겠지.”
-노루 씨의 ‘회사 동료’는 물건을 주웠고, 이제 곧 처참하게 죽을 겁니다!
백사헌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아무래도 내 메시지에 맞춰서 방금 뭐가 터지긴 한 모양인데.’
아직 죽지 않았으니까 알아서 회사에 연락을 하든지 해서 처리할 수 있겠지.
아무튼 엮여서 괜히 개고생할 순 없으니 밖으로 나가려던 순간….
-이런, 들립니까?
-노루 씨의 ‘회사 동료’에게 시간이 다 된 것 같군요.
“…….”
뭐?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허밍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근원지는 분명 눈앞의 백사헌.
하지만 백사헌은 입도 벙긋하지 않은 상태다.
……그렇다면.
“너, 가지면 안 되는 걸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
백사헌은 창백한 안색으로 주머니에서 손을 넣더니 뭔가를 꺼냈다.
카세트테이프였다.
때가 탄 낡은 상아색 몸체 위로 스티커로 부착된 제목을 펜으로 거칠게 지운 흔적이 남아 있었다.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테이프에서 울려 퍼지는 허밍이 점점 더 커졌다.
아주 직관적인… 시그널.
-때가 왔습니다.
튀자.
나는 당장 자리에서 일어나 사택을 뛰쳐나왔다.
문제는 백사헌도 나를 따라 허겁지겁 나왔다는 거지!
“테이프부터 버려!”
“버렸어! 창문 밖에!”
그럼 그만 따라와!
-늦었습니다.
-이런, 노루 씨… 당신도 물건을 봐버렸군요. 이 스토리에 엮여버렸어요. 희생양 고르기의 일부가 됐단 말입니다.
-당신처럼 엔터테인먼트에 재능 있는 유능한 게스트라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합니다만!
하.
‘백사헌 이 자식은 왜 알아서 안 하고 남한테 이렇게 민폐를…!’
경고까지 해줬으면 알아서 받아먹었어야지! 너 괴담 회사 네임드 직원 맞냐?
욕이 목구멍까지 치솟았다. 하지만 욕할 시간도 없었기에 나는 더 빨리 뛰었다.
‘일단 물리적으로 멀어지자.’
아직 완전히 괴담에 빠진 게 아니라면, 그럼 어지간하면 일단 거리 확보가 도움이 되긴 할 테니까!
한달음에 사택에서 멀어져서 버스 정류장으로 향했다.
그리고 오는 버스를 바로 잡아탔다.
삑.
카드를 찍고 타는데 뒤에서 백사헌도 카드를 찍는 소리가 들렸다.
‘왜 따라오는데 이 미친놈이!’
충고까지 해준 사람은 좀 안 말려들게 해야겠다는 인간의 양심이라는 게 없냐?
생각해 보니 없겠다. 저 새끼 순 소시오패스였으니까!
어쨌든 버스 문은 닫혔고, 별문제 없이 잘 출발했다.
“하.”
“하…….”
허밍은 이제 들리지 않는다.
나는 맨 뒤로 가서, 유리창을 부술 수 있는 비상 탈출 망치 바로 옆에 앉았다. 혹시 모르니까.
백사헌이 갈등하는 것 같더니 내 바로 근처에 앉았다.
“…….”
“…….”
출퇴근 시간도 아니고 점심시간도 피한 주말의 버스 안에는 승객도 몇 명 없었다. 앞자리에 두셋 정도.
백사헌이 주변을 확인하더니 초조한 기색으로 목소리를 낮춰 묻는다.
“이봐, 너… 그 메시지 대체 어떻게 알고 보낸 건데,”
“너?”
“…말 놓기로 했…… 아니, 그러니까… 그래. 주임님. 대체 어떻게 아신 겁니까?”
“내가 어떻게 아는지는 중요한 게 아니지.”
눈치를 보는 백사헌에게 소리를 지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말했다.
“중요한 건 네가 어떻게 저걸 가지고 있었냐는 거야.”
“…….”
이대로 이 새끼가 입을 다물고 있으면, 다음 정거장에 내려서 택시를 잡을 생각이었다. 못 따라오게 택시 밖으로 던지기라도 하고 말이다.
하지만 내 기색을 귀신같이 눈치채기라도 한 건지 백사헌이 입을 연다.
“…집에 있던 물건인데요.”
집?
“친척에게 물려받은 거죠. 위기의 상황에 반전을 노리고 싶다면 쓰라고 해서, 들고 다니던 거라서요….”
-아, 뻔한 수작이지요. 수호의 상징인 줄 알았던 가보가 사실 악령 들린 물건이었다… 이거야말로 호러무비의 클리셰 아니겠습니까!
그러게나 말이다.
긁으려는 의도가 아니고 진심으로 물었다.
“괴담에 등급 매기는 회사에 다니면서 한 번도 그걸 검사할 생각을 안 해봤다고?”
“…회사에서 쓸만하다고 생각하면 검사하다가 안 돌려줄 수도 있으니까! 다 생각을 한 거죠.”
“안 한 것 같은데.”
“…….”
“다음부터는 좀 하고 살아.”
“…아, 네.”
백사헌의 얼굴이 붉그락푸르락 해지더니 아주 입꼬리 경련이 일도록 억지웃음을 지었다.
이 자식은 소시오패스처럼 굴며 틱틱 대다가도 겁먹으면 갑자기 예절이 주입되는 게 정말 속이 훤한 인간이었다.
어쨌든 나는 한숨을 참으며 상황을 파악했다.
전형적인 괴담 휘말리기 도입부네.
“일단 종점까지 가서 내리고, 회사 보안팀에 연락하는 편이 낫….”
“…….”
“…….”
“……왜, 왜 그러시죠, 주임님?”
이상하다.
시내버스의 정류장은 보통 3분 내 거리에 있다.
그런데 이 버스는,
왜 계속 달리는 거지?
-이런, 따라잡았습니다.
창밖을 보았다.
……안개가 밀려오고 있었다.
서울 시내의 쾌적한 4차선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의 바깥 풍경이, 어느새 구불구불한 비포장도로로 바뀌기 시작한다.
“…!”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앞자리 승객들이 사라졌다.
…여전히 있는 건, 버스를 운전하는 기사뿐이다.
“…….”
운전기사는 어느새 낡은 모자를 눌러쓰고 있었다.
버스가 아직 격식 있는 통행방식이던 시절의 흔적이 남아 있을 적에나 썼을 법한, 그런 모자.
그리고 장갑 낀 손으로, 흥얼거리며 손을 뻗어 라디오를 켰다.
달칵.
그리고 흘러나오는 것은….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카세트테이프의 그 허밍.
“……!”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버스를 허밍이 가득 채웠다.
현대 서울을 달리던 저상형 버스는 어느새 좌석이 일렬로 늘어선 낡은 옛날 버스가 되어 있다.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돌아보지 마.”
이미 늦었다.
백사헌이 굳은 얼굴로 정면을 바라본 채 손잡이를 잡았다. 나는 안개가 걷히는 바깥을 너무 유심히 쳐다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정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오솔길이 낡은 포장도로로 변한다.
거친 시골길을 덜컹이며 달리던 옛날 버스는, 이윽고 속도를 줄인다….
[이번 정류장은 ‘지평선 산장’입니다.]
“…….”
도착지가 보인다.
음, 음음, 으으음, 음음음.
허밍은 이제 더없이 분명한 멜로디로 라디오에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1980, 90년대에 유행했던 단조의 발랄한 가요 멜로디를 들으며, 나는 열리는 문밖의 광경을 보았다….
[지평선 산장]
고풍스러운 필체의 간판이 붙어 있는 고급 산장형 저택이 산중에 서 있는 모습을.
“…….”
하.
“…내릴 거예요?”
그래.
진짜 욕 나오게 싫지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열린 문을 향해 발을 뻗었다. 뒤에서 백사헌이 자기도 욕 비슷한 걸 중얼거리며 황급히 따라 내리는 소리가 들렸다.
뒤로 버스 문이 닫히고, 떠난다.
허밍 멜로디와 함께.
“…….”
“…….”
백사헌이 약간 안심한 투로 중얼거렸다.
“그래도 노래는 안 들리고, 테이프도 없으니까 아까보단 상황이 괜찮….”
“주머니 확인해 봐.”
“뭐?”
“네 주머니, 손 넣어서 확인하라고.”
“…….”
백사헌이 멍한 표정으로 날 보더니, 퍼뜩 자신의 외투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나오는 건….
아까 던져 버렸다던 낡은 카세트테이프.
“…!!”
카세트테이프를 도로 던지려는 백사헌의 팔을 잡아 내렸다.
“이미 늦었으니까 들어갈 준비나 해라.”
“들어….”
“저기.”
나는 ‘지평선 산장’을 가리켰다.
이렇게까지 왔다면 도망은 소용없다.
괜히 체력만 낭비하고 갖은 고생 끝에 다시 이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장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차라리 일찍 들어가서 상황이라도 파악하자.’
-노루 씨, 어쩐지 앞날을 아는 것처럼 움직이는군요! 혹시 이번에도 알고 있던 이야기입니까?
내가 괴현상에 대한 정보를 꽤 폭 넓게 알고 있다는 걸 눈치챈 브라운이 떠들었다.
그리고… 정답이다.
‘…맞아.’
키워드가 조합됐거든.
연쇄살인마.
이동 수단을 이용한 낚시.
저주받은 것처럼 계속 주머니로 돌아오는 물건.
그리고….
나는 고개를 들어, 도착지를 보았다.
‘……지평선 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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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그리고 누군가 있었다]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초자연재난관리국의 등록번호는 1489PSYA.1991.라84.
외부와 고립된 수상쩍은 장소에서 연쇄살인마에게 하나씩 살해당하는 괴담. 전형적인 클로즈드 서클식 추리 소설과 B급 슬래셔 무비의 변주.
9인의 인간으로 봉인할 수 있는 뇌형(櫴形)급 재난으로, 재난관리국에서는 4년에 한 번씩 지원 혹은 징발을 통해 인원을 모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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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몇 달간의 취업 경험과 다를 게 없는 분석을 통해 유추해 낸, 괴담의 정체.
그런데 지금까지와는 좀 다른 점도 있긴 했다.
‘소속…!’
이건 백일몽 주식회사의 어둠이 아니다.
정부에서 격리한, 혹은 미래에 격리할 괴담.
일명 ‘재난’!
뭐가 다르냐고?
어둠을 이용해 원료를 뽑아 사업을 하려는 대기업과는 운영법칙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정부는 어디까지나 인명 피해, 혹은 거대한 재산 피해를 막고자 관리국을 만들었다.
적어도 명분은, 그렇다.
그러니 재난관리국에서는 민간에 있으면 절대 안 되는 것부터 우선순위로 격리했다.
즉….
무조건적으로 누군가 죽는다.
클리어하든, 갇히든, 실패하든, 성공하든.
모든 경우의 수에서.
‘여기 휘말린 순간 확정 킬이 있다는 거지.’
등골을 타고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이건 클리어하려면 무조건 누군가 죽어야 한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한복판에 들어가기 직전이다.
포인트 주는 것도 아닌데!!
‘백사헌 이 망할 자식이!’
여기서 백사현에게 쌍욕을 퍼부으며 남은 한쪽 눈에 멍 달아주고 싶었지만….
‘시간 낭비지….’
“저기요, 주임님!”
나는 백사헌을 무시한 뒤 한숨을 내쉬며 산장의 정문으로 갔다.
그리고 심호흡 후 문을 두드리려는 순간….
딸랑.
뒤에서 자전거 벨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이 숲속의 외딴집 앞에 서는 자전거 한 대와, 그 위에 타고 있는 사람이 보였다.
-오, 또 도착했군요. 물건을 주운 자가!
그러게 말이다.
이 망할 괴담에 휘말린 불쌍한 분이 하나 더 늘었다.
나는 침음을 참으며 돌아보다가… 놀랐다.
“…!”
아는 얼굴이 자전거에서 내리고 있었다.
정확히는, 얼굴은 모르지만 차림새는 알고 있는 사람이다.
어두운 옷을 입고 마스크에 모자까지 눌러쓴 인영.
‘…연어 마켓!’
오늘 오전에 광화문역에서 나와 괴담 음식을 중고 거래한 사람이, 거기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