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57화
본래 직장인이란 사표를 언제나 (물리적으로 혹은 정신적으로) 가슴에 품고 다니는 법이다.
하지만 보통은 감추는 법인데….
‘신입한테 말해준다고?’
그것도 직속 상사가 말이다.
“포인트를 거의 모았어. 소문내진 말고.”
“…….”
은하제 대리 성격이면 퇴사 전까지 안색도 안 변하고 다니다가 당일에 알려줄 줄 알았는데.
“저한테 말씀하셔도 괜찮은 겁니까?”
“뭐, 안 좋은 일은 아니잖냐. 어차피 이 회사엔 포인트 얼마나 모았는지는 떠들고 다니는 자식들도 많고….”
대리가 툭, 내 어깨를 힘 있게 두드렸다.
“우리 조 사람들한테는 그래도 미리 말해두고 싶어서 말이지.”
“크흡. 옆에서 봐도 감동입니다, 선배님!”
“고만해라.”
나는 옆에 다가와서는 오두방정을 떠는 박민성 주임을 보며 침음했다.
아무래도 주임 쪽은 미리 알고 있던 듯했다.
‘회사 특성 때문인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간절한 소원을 어떻게든 이루고 싶어서 업무로 관자놀이에 러시안 룰렛을 당기는 미친 직업이니까.
어차피 다 탈출하고 싶어 한다는 걸 전제로 하니 필사적으로 숨길 것도 없다는 건 이해가 갔다.
그래도 이렇게까지 편의를 봐주는 직속 상사가 사라진다는 것은 아쉽긴 했다만…. 본인에게는 잘된 일이니까 축하할 일이다.
다만 의문점이 있다.
“대리님.”
“엉.”
“그렇다면 50만 포인트를 다 모으신 겁니까?”
“뭐?! 오십만은 무슨….”
기겁하던 은하제 대리가 곧 뭔가 깨달았다는 듯 피식 웃었다.
“아, 너 내가 소원권 사려는 줄 알았냐?”
“…?”
아무래도 그렇겠지요?
여기서 아닌 사람 찾는 게 더 어렵지 않을까?
“아. 나도 처음 입사할 때는 그게 목표였는데, 좀 돌려보니까 다른 걸로도 되겠더라고.”
“…!”
아.
‘그렇군.’
생각해 보면, 굳이 소원권까지 필요 없을 경우도 있긴 했다.
‘임직원 포인트몰에서 살 수 있는 걸로 소원을 이룰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해.’
“난 이 회사 고등급 마법약 중에 하나면 되거든.”
역시.
“…포인트 얼마짜린지 여쭤봐도 괜찮겠습니까?”
“17만. 이제 오천 포인트도 안 남았다. 뭐… 그래도 이래저래 너 덕에 얻은 포인트 특수도 끝날 테니까, 몇 개월은 더 다녀야겠지만.”
대리가 답지 않게 눈을 찡긋했다.
“조장님한테 말해서 다음 정기인사 발령까지만 어떻게 너도 여기 붙어 있게 해보자고.”
그것만 버티면 그다음에는 내가 자연스럽게 D조에 남아 있을 거란 뜻이었다.
자신이 빠져서 정원이 맞을 테니까.
‘굉장히 사려 깊은 발언인데.’
내가 이 조에 남는 걸 좋아할 거라는 자신감까지 보이는 점에서 더더욱 말이다.
“선배님, 나가실 때 저희 진짜 제대로 회식 한번은 하고 나가세요…. 나가서도 저희 계속 연락하자고요. 야구라도 보러 가고…!”
“그래야지. 야, 너도 몇 년만 버티면 돼.”
“저요? 에효, 저는 안 돼요. 꼼짝없이 50만 모아야 해가지고.”
머리를 긁적이던 주임은 그래도 얼굴이 밝아졌다.
“아무튼… 그럼 노루는 계속 우리 조에 남을 수 있겠네요!”
“조장님이 잘하시면 말이지.”
그리고 과장급 회의를 마치고 돌아온 그 ‘조장님’은 담담히 컨펌해 줬다.
“예. 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오오오!”
“확률의 문제입니다. 잔류를 전제로 근무를 계획하진 마십시오.”
“…그렇대 노루야…….”
“예….”
도마뱀다웠다.
“아무튼 축하드립니다, 대리님.”
“오냐.”
은하제 대리는 웃으며 담배를 피우러 나갔다.
뒷모습이 벌써부터 제법 홀가분해 보였다.
‘…퇴사한 직원은 어떻게 되더라?’
특별히 비밀 유지를 위해 인권을 박탈하고 실험실에 가두거나 쥐도 새도 모르게 처리한다는 말은 없었다.
‘꽤 괜찮게 은퇴한 케이스도 몇 번 묘사됐었고.’
그런 거 있지 않은가. 모두의 호감 직원 같은 것.
위키를 읽은 사람들이 다 애착을 가져서, 어떻게든 은퇴까지 좋게 끝내준 조연 같은 직원들 말이다.
‘…저쪽도 그랬으면 좋겠는걸.’
나는 짧게 기원한 후, 다시 하던 일로 돌아왔다.
회의 끝내고 온 조장에게 업무를 할당받았다는 뜻이다.
“이번에 탐사할 어둠은 C등급 거미이며 매뉴얼이 완비된 수급처입니다.”
“오… 그럼 포인트는 인당 육칠백 정도 돌아오는 거죠?”
“예.”
“노루야, 우리 일감 들어올 때 포인트 바짝 벌어놓길 잘했다.”
D조에게 거의 전담처럼 쏟아지던 ‘새로운 어둠 매뉴얼 완성용 탐사’도 이제 시들해지고 있었다.
“원래 새 어둠도 쏟아지는 시기가 있거든. 연구팀에서 등록 마감 시기에 와다닥 등록해 가지고.”
“아.”
그것참… 회사 같다.
물론 신입사원은 그걸 지적해 봤자 좋을 것 없고.
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럼 다 같이 한동안 되도록 안전하게 근무할 수 있겠네요.”
“그래, 노루는 항상 긍정적이어서 좋단 말이지~!”
주임도 하하 웃더니 내게 매뉴얼 PDF가 뜬 태블릿을 넘겨주었다.
“매뉴얼이 있어도 C등급이니까 방심하면 큰일 날 수도 있어. 자, 완전히 숙지하면 알려줘.”
“예.”
“보니까, 어느 장소에서 하루 버티면 되는 거더라.”
흠.
나는 태블릿을 받아 들어서 읽었다.
차분하게 적힌 공식 매뉴얼은 이전과 다를 게 없는 형식이다.
<어둠탐사기록> 위키와 유사한 형태로, 우리에게 얻은 기록을 토대로 해서 자세한 수치로 구현된 정보를 제공해 줬다는 뜻이다.
‘어디 보자.’
공실 많은 상가건물에서 길을 잘못 들면 빠질 수 있는 공간에 대한 괴담으로, 인터넷에서는 백룸(Backroom)이라 불리는 유형의….
“…….”
다음 단락을 읽으면서, 강렬한 예감이 머리를 때렸다.
‘이건…….’
내가 <어둠탐사기록>을 기반으로 해서 매뉴얼을 통해 괴담의 정체를 추측한 것도 벌써 몇 달째다.
이미 알고 있다고 놀라진 않는단 뜻이다.
그런데도 놀랄 만한 상황이다?
보통은 <화요퀴즈쇼>처럼 미친 대량 학살 사태나 내가 확정킬 당하는 상황이겠지.
하지만 이번에는 좀 다른 의미였다.
‘이거… 좋은 거잖아!’
맙소사, 훈훈한 괴담이다!
공포도를 측정하면 아마도 0. 스포일러를 다 당한 상태라면 쫄보도 의연하게 통과할 수 있는 그런 괴현상!
근데 왜 C등급이냐고?
‘백일몽 주식회사가 착각해서 등급을 잘못 분류했으니까!’
이건 거기서 즐거움을 얻는 이야기였다.
일명 착각계 괴담!
위험해 보이지만 사실은 아주 온화하고 젠틀한 괴현상으로, 그냥 안전하고 친절한 괴담이지만 사람들이 선입견으로 오해해서 웃긴 것이다.
‘괴담보다 마법 같은 경험이라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지….’
당연하지만 <어둠탐사기록>엔 별로 없는 사례였다.
약간 가슴이 뛴다.
내가 여기 들어간다고?
‘잠깐만.’
이거 잘하면….
‘기분만 훈훈한 정도가 아니라 앞으로 내 삶이 훈훈할 수도 있겠는데?’
머리가 빠르게 돌아갔다.
그러려면 필요한 게 확실히 하나 있었다.
그건….
“여긴 내일 오후 투입되니까 시간은 충분해. 천천히 읽고 있어. 뭐… 노루한테는 이런 이야기 따로 안 해도 될 정도지만!”
“그렇다면… 내일, 그전 점심시간에 따로 잠시 외출해도 괜찮겠습니까?”
“어? 뭐, 조장님이든 대리님이든 그런 거 신경 쓰실 분들은 아니긴 한데… 왜? 혹시 병원 가는 거면 좀 넉넉하게 시간 봐주자고 할 테니까.”
“아, 그런 건 아닙니다. 그냥….”
나는 통장을 떠올리며 카운트했다.
“잠깐 살 게 있어서요.”
“…?”
이 훈훈한 괴담에서 이득을 얻으려면 뭘 준비해 가야 했다.
아주 비싼 무언가를!
* * *
그리고 다음 날 점심시간 이후.
우리는 대리의 차량을 타고 이동하게 되었다.
이번에 진입할 어둠이 격리되어 있는 장소까지.
“챙기고 싶은 건 다 잘 챙겨왔지?”
“예.”
내가 점심시간을 이용해서 사 온 ‘비싼 것’도 서류 가방에 잘 들어 있었다.
운전석의 대리가 체크했다.
“노루는 무슨 물건 만지고 납치당하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있는 공간에서 벌어지는 도시 전설에 들어가는 건 처음인가?”
아뇨. 사실 직전에 웬 산장에 들어가서 시체 토막 들고 연쇄살인마인 척해 봤는데요, 토하는 줄 알았습니다.
…라는 건 굳이 언급하진 말자.
“예. 첫 출장 같습니다.”
“하하. 노루 나이가 아직 20대였지? 여기가 첫 직장이겠네.”
분위기는 제법 훈훈했고, 우리는 문제없이 이동했다.
몇 가지 잡담도 나누면서 말이다.
“그거 알아? 우리 조장님은 근무하면서 실수로 핸들을 세 번 부쉈대. 그래서 좀비 사태 터지는 거 아니면 아마 운전석엔 다신 안 앉을 거라는 소문이….”
“…….”
음. 직접 물어보진 말자.
아무튼 40분쯤 달린 차량은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착했다.
“여기야.”
서울 근교에 있는 어느 베드타운의 상가 밀집 골목이었다.
다만 오래 전에 부동산 붐이 지나가고, 새로운 도시개발이 이뤄지며 사람들이 많이 떠나간 탓에 다소 적막하고 공허한… ‘옛날’ 신도시였다.
수많은 공실의 유리창 위에는 매매 표시가 붙은 부동산 연락처가 붙어 있었다.
“이 건물 중에 하나가 도시전설인가 봐. 날씨 좋은 하루에 노을이 질 때 진입하면 기묘한 일이 일어나는 거지.”
“예.”
매뉴얼에서 있던 내용을 친절하게 브리핑해 주는 상사들과 함께, 나는 명시된 한 상가건물로 접근했다.
“민간인은 접근하지 못하게 어떤… 보안팀 장비로 막고 있나 봐. 우리 가면을 인식해서 안으로 들여보내 주는 거지.”
흠.
“들어가면 조심해.”
주임이 목소리를 낮추고 심각하게 속삭였다.
“꽤 끔찍한 기록도 많으니까, 꼭 주의하면서 다니자고.”
“…….”
이런 거… 말씀입니까?
탐사기록 #12
투입된 직원 중 한 사람(정세종 사원)이 4층 비상구 옆 404호에서 영업 중인 가게를 발견. 간판에 적힌 이름은 ■■■ 카페.
그러나 해당 장소에 접근할수록 카페에서는 들리지 않을 이상한 소리가 들리기 시작.
짖는 소리, 고함 소리, 짐승의 하울링이 수십 개가 겹쳐서 울리며 점점 커지더니, 직원이 문 앞에 멈추는 순간 갑자기 달려들 듯 가까워짐.
패닉에 빠진 직원이 문이 열리기 직전 비상계단으로 도주에 성공했으나, 굉음 후 연락 두절.
이후 상가 주변에서 의식불명 상태로 발견.
양다리 개방골절, 심각한 등 부상으로 업무에서 열외. 이후 지속적 PTSD 호소.
언뜻 보면 으스스하고 끔찍할 수 있겠다.
그런데 혹시 눈치챘는가.
‘그거 그냥… 반려견 동반 카페인데요.’
강아지 소리에 겁먹고 도망치다가 계단에서 구른 통에 복합 부상을 입은 직원을, 괴담이 친절히 바깥으로 보내준 것이다….
이 어둠은 그냥 예전에 있던 가게들이 평범하게 정상 영업하는 게 최대 이상한 점인 공간일 뿐이거든.
그러나 지레 겁먹고 모든 걸 나쁘게 해석하며 호들갑 떨다 망하는 탐사자들을 보며, 헛웃음을 짓는 타입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내 옆에 그 당사자들이 열심히 조언을 해주고 있다….
“조심해서 가자. 이 공간이 입장한 사람을 해친 기록이 꽤 많아.”
아닙니다.
“특히 정신을 잃으면 안 돼. 큰 부상으로 끝나더라.”
그냥 크게 다치고 정신을 잃어도 시간 되면 밖으로 내보내 주는 겁니다….
여긴 말 그대로 상가라서 영업 끝나면 정중히 퇴거시켜 주거든요.
하지만 괜히 그런 이야기를 했다가 ‘앗 이 괴담, 정신 오염도 시키는군!’ 하면서 미친 듯이 착각과 오해로 또 개그 스토리가 뽑힐까 봐 그만뒀다….
그 대신, 효율적 탐사를 위해 연락책을 배부하고 개인으로 흩어지자는 방식엔 순순히 냉큼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겠어, 노루야?”
“예.”
평소라면 바짓가랑이 붙잡고 싶은 심정으로 어떻게든 붙어 갔겠지만 오늘은 쫄보의 날이니까!
“문제 생기면 바로 연락하고.”
“알겠습니다.”
나는 보안팀에게 받은 무전기(묘하게 외계인 상점에서 팔던 장난감 무전기가 떠올랐다)를 필참한 채, 바로 발걸음을 옮겼다.
-음, 방문하고 싶은 가게가 있습니까? 몇 군데 운영 중인 것 같군요.
그거 아나?
정답이다.
‘다만, 좀 특이한 방식으로 접근해야 하지만….’
여기는 공간이 뒤틀려 있는 탓에 층과 방향이 엉망이었는데, 나름의 체계와 법칙도 가끔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서는 이런 것도 있다.
7층에서 엘리베이터 탑승 시, 지하로 가는 버튼이 확률적으로 등장.
나는 몇 번의 시도 끝에, 엘리베이터에서 ‘B1’이라고 적힌 버튼을 마침내 발견해 냈다.
-아, 감춰진 장소입니까? 품위 있던 그 전시회가 떠오르는군요.
우리 꼭 그 이야기를 꺼내야 할까?
안 그래도 전시회 지하에 갇혀서 출구를 못 찾고 빙빙 돌다가 거미 기계 마주치고 장기 털리는 악몽을 아직도 꾼단 말이다…!
‘여, 여긴 친절한 곳이다……. 친절한 곳이다…….’
나는 악몽을 떨치려 애쓰며 버튼을 눌렀다.
땡.
그리고 문이 열리면, 지하 주차장이 보인다.
‘여기서 차에 클락션 울려서 졸도한 사람도 있던 것 같은데.’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다.
나는 열심히 기억나는 지시대로 움직였다.
‘왼쪽으로 세 번.’
이 지하 주차장을 빙글빙글 돌면, 아까는 보이지 않던 주차장의 새로운 구역번호가 나타난다.
‘A19.’
그럼 다 온 것이나 다름없다.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열심히 발을 옮겼다.
이 주차 구역 옆에도 상가로 통하는 문이 있는데, 열고 들어가서 엘리베이터로 가는 대신 옆을 보면 작은 가게가 있다.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달빛 타투샵
마법의 장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