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2화
[여러분, ‘행맨’은 어떤 놀이일까요?]
[맞아요! 단어의 스펠링을 맞히는 교육적인 놀이예요! 여러분이 외치는 알파벳이 이 단어에 포함되어 있다면 정답! 없다면 땡!]
[그리고 이 놀이를 더 학습에 용이한 방식으로 익히기 위해 여러 힌트를 드릴 거랍니다.]
허공에 매달린 대리.
그와 대비되는 TV의 파스텔톤 색상과 밝은 목소리가 내 귓가를 때린다.
[그럼 시작할까요?]
허공에 매달린 은하제 대리가 식은땀을 흘리며 쓰게 웃는다.
“어차피 다 아는데 서론이 기네. 안 그러냐?”
이 괴담의 B등급다운 모습은 멘탈 나가고 피 말리는 정신적 압박 및 고통으로 인한, 사망 직전까지의 지옥 같은 몇 시간에 있다.
……이런 식이다.
행맨으로 선정된 희생자가 사실상 사망 판정을 받는 건 맞다.
하지만 실제로 ‘놀이’가 진행되는 순간에는 일시적으로 살아 있다.
그리고 이 희생자는….
[이번 제시어는 은하제 선생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한 단어입니다!]
[우리 다 함께 은하제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맞혀 볼까요?]
무자비하게 폭로 당한다.
어둠탐사기록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희생자의 신상을 숨기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했다.
마치 그 인생을 낱낱이 들여다보고 평가하는 것처럼 굵직한 인생의 이벤트가 치명적으로 공표되는 것이다.
그걸 위해 행맨 게임 방식까지 변형되었다.
[여러분, 이 영 단어의 알파벳 개수는 8개예요.]
나는 고개를 들어서, TV 화면에 뜬 빈칸들을 보았다.
_ _ _ _ _ _ _ _
저기 알파벳을 다 맞게 채우면 영단어가 하나 나오는 것이다.
본래는 놀이 참여자들이 돌아가면서 무작위 알파벳을 하나씩 던지고, 그게 맞아들어가는 빈칸이 있으면 자연스럽게 채워진다.
그렇게 단어를 유추해 가는 것이다.
하지만….
‘여기선, 모든 알파벳이 하나하나 다 희생자와 연관되어 있지.’
[8번째 빈칸 알파벳의 힌트입니다!]
[은하제 선생님의 4년 전 직업은 무엇일까요?]
이런 식으로.
상대의 신상과 관련된 것을 맞히면 더 수월하다. 그래서 이 과정을 좀 더 원활하게 하고 싶다면….
희생자의 협조를, 필요로 한다.
사형 선고받은 사람에게 이야기하라고 설득하거나 협박해야 한다고.
“…….”
“…….”
턱을 타고 식은땀이 떨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내가 뭘 하는 거지?
손에 쥔 봉제 인형과, 구식 TV, 허공에 매달린 은하제 대리…….
할 수 있는 건?
‘뛰자.’
나는 발을 옮겼다.
“노루야! 너 어디 가냐?!”
“시간이 없습니다. 설명은 나중에….”
“너 혹시 사형대 찾냐?”
“…!”
“그거 부숴도 아무 소용 없다. 알지? 매뉴얼 읽었잖아.”
“가보기 전에는 모르죠.”
퀴즈쇼 때처럼 이자헌 과장을 호출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래서 이번에도 사형대를 망가뜨려 달라고 하면… 그래, 다시 복구되기 전까지 시간을,
“잠깐만.”
시간이 없다.
“일단 좀 앉아 봐라. 사실… 나도 막판에 시도해 보고 싶은 게 있거든.”
“…….”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괜히 눈에 띄는 짓 하지 말라고. 그러다 쓸데없이 벌칙 횟수 쌓이면 안 되니까.”
벌칙 횟수.
“알지?”
안다.
이 괴담은 모든 걸 철저히 옥죄는 류의 답답함에서 오는 공포가 기반이다.
CCTV로 12명의 ‘신규 선생님’ 동선과 행동이 실시간으로 유치원에 의해 품평되며, 선생님답지 못한 행동을 했을 시 ‘벌칙’을 받는다.
[1분 남았습니다. 선생님들, 손을 들고 알파벳을 외쳐주세요!]
“은 대리! 은 대리!”
그때, 놀이방의 문이 벌컥 열리고 한 직원이 다급히 들어왔다.
답답하고 초조해 미치겠다는 얼굴이다. 희생자를 찾아다녔나 본데, 뛰질 못하니 저런 표정이 된 거겠지.
이 유치원에서는 경보 이상으로 뛰는 것도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욕설도 금지, 훼손도 금지, 놀이 규칙에 어긋나는 모든 것도 금지.
“씨…… 후. 하필 왜 3층 끝방이냐고!”
직원이 분풀이하듯이 은하제 대리를 보고 꿱 소리를 질렀다. 그러면서도 규칙을 지키려는지 욕설은 참는 것이다.
“야! 너… 은 대리, 4년 전에 뭐 했는데?”
은하제 대리가 피식 웃었다.
왜냐하면….
“이 X발 새끼가 어디서 반말이냐.”
“…!”
이 모든 규칙에서 행맨은 예외다.
“뭐, 뭐… 왜, 갑자….”
어차피 죽으니까.
“너랑 안 엮이려고 그간 지적을 안 한 거지 X신아. 안 그래도 포인트 다 못 모으고 뒈지게 생겨서 기분 더럽구만.”
“어, 어….”
“신입 셋 죽였으면 정신 좀 차려라 미친 트롤 새끼야.”
직원이 분노로 얼굴이 불그죽죽 달아올랐다.
“억울해? 약 오르냐?”
“아, 아니….”
“그래도 참아야지. 알파벳 하나도 못 맞춰서 나중에 ‘기여도 없음’ 판정받고 벌칙 받긴 싫지?”
은하제 대리가 살살 긁듯이 말하며 실실 웃었다.
“자리가 여덟 개뿐인데, 처신 잘하자. 어?”
“…….”
직원이 입을 꾹 다물었다.
머리가 있으면 당연한 판단이었다.
이 괴담에서 한 명만 죽는다는 건 매뉴얼을 토대로 한 최상의 시나리오에서도 그렇다는 거고, 사실 어긋나면 전멸도 쉽게 발생하는 곳이다.
칼같이 규칙을 지켜야 생존이 보장되는 괴담.
‘그리고 이 행맨 게임에서 알파벳 하나도 못 맞히면, 그것도 마지막에 ‘평가’받으면서 벌칙을 받지….’
그때였다.
“야, 노루야. 이리 와 봐라.”
은하제 대리가 나를 불렀다.
내가 가까이 다가가자, 나에게만 들리도록 작게 목소리를 낮췄다.
“내 4년 전 직업은 기자였어.”
“…….”
“노루야, 네가 맞춰라. ‘기여도 없음’ 벌칙 패널티 빼고 시작해.”
미치겠다.
“너 여기서 맞히기 싫다고 해 봤자 변하는 건 없어. 알지?”
“제 멘탈에 도움이 됩니다.”
“곧 죽을지도 모르는 사람 멘탈부터 신경 써줘라. 좀.”
은하제 대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저 자식이 선수 쳐서 맞혔을 때의 X같음을 좀 알아줘라. 어?”
하…….
나는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다가, 결국 TV 앞으로 향했다.
난입했던 직원의 눈이 휘둥그레진다.
“자, 잠깐만, 너….”
“제시어의 마지막 알파벳은 R. 기자(Reporter)의 이니셜입니다.”
치지지직.
[정답입니다!]
_ _ _ _ _ _ _ _
화면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알파벳을 표기한다.
_ _ _ _ _ _ _ R
그리고.
[행맨을 그립시다~]
“컥.”
은하제 대리가 몸을 뒤틀었다.
허공에 매달린 대리의 몸에서는 말 그대로 왼발이 ‘사라졌다.’
……한 발이 사형대로 올라간 것이다.
행맨으로 지정된 희생양은 다른 탐사자들이 자신에 대하여 맞힐 때마다 사형대에 올라가며, 결국 교수형 당한다.
예외는 없다.
미치겠다.
“…잘린 건 아니라 통증은 없어. 걱정말고.”
걱정 안 하게 생겼는가?
“목부터 안 가는 게 어디냐? 그래도 계속 대화는 할 수 있겠네.”
안 돼.
아무리 생각해도 저 사람의 ‘막판에 시도해 보고 싶은 한 방’이라는 건 날 여기 안전하게 붙잡아 놓으려는 블러핑 같았다.
‘이대로 시간을 보내면 안 되는데.’
그 와중에 TV는 또 진행을 한다.
[5번째 빈칸 알파벳의 힌트입니다!]
[은하제 선생님이 기자일 당시, 가장 마지막으로 이용했던 교통수단은 무엇일까요?]
직원이 주춤거리며 은하제 대리의 눈치를 보며 이를 악물고 말한다.
“아, 알려줘…. 야, 그래도 우리가,”
“우리가 뭐.”
은하제 대리가 기가 차다는 눈으로 상대를 보았다.
“너 때문에 죽은 신입만 셋인데… 아 X새끼 진짜. 네가 여기 걸려서 죽었어야 했는데.”
“다, 닥쳐! 뒤질 새끼가!”
“어~ 뒤질 새끼 말 듣지 말라고.”
은하제 대리가 지루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까닥거렸다.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직원은 나를 밀치고 TV 앞으로 나왔다.
“교통이면! 그래, 확률적으로 뻔하지! 버스 아니면 지하철! 그래, 어, 서브웨이 이니셜, S!”
[저런, 땡!]
_ _ _ _ _ _ _ R
[벌칙으로 10분간 교육서를 낭독해 주세요!]
“어, 어어….”
뒤틀리는 소리와 함께, 직원의 눈앞에 검은 책자 홀로그램이 생기더니…….
“크아아아악!”
얼굴에 붙었다.
“아아악! 아악!”
얼굴을 집어삼킨 검은 책자가 마치 피부에 달라붙듯이 녹아내린다. 바닥을 구르며 그것을 떼어내려고 안간힘을 써도 변하는 건 없다.
그저 흘러내려 가는 책자의 아래 이마에 선명한 인두 자국이 보였다….
[병아리반]
은하제 대리가 혀를 찼다.
“그걸 찍냐. 멍청한 새끼.”
“…….”
“잘 봐 둬라, 노루야. 저게 누적되면, 여기서 제대로 된 ‘유치원 선생님’이 될 때까지 교육받는 거야. …영원히.”
그렇다.
여기서 충실하게 놀이에 참여하지 못하면 죽는 것만 못한 꼴이 된다.
“3번. 3번만 당하면 끝이다.”
벌칙 3번.
인간으로 판정받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는 것이다.
마치 경비팀처럼.
‘하지만 더 나쁜 상황이지.’
경비팀처럼 구조되지 못하면 그냥 이 괴담에 갇혀서 실종되는 거니까.
“그러니까 쓸데없는 짓 하지 말라고.”
“…….”
“잘못하면 넌 죽지도 못해.”
식은땀이 등 뒤를 타고 흘렀다.
‘알고 있다.’
이 상황에서 나는 매뉴얼을 따르기만 하면 확실히 산다.
심지어 알파벳 하나를 맞히면서 패널티도 없앤 상태.
그런데 모험할 필요가 있는가?
‘시도했다가 상황만 악화될 수 있어.’
행맨을 살리려고 했다가 오염당해서 탈출하지 못하고 여기에서 유치원 선생님으로 끝없이 교육받는 기록만 수두룩한 이 괴담에서.
예외는 없다.
그래, 답이 없다.
나도 안다.
답이 없다고.
여기선 무조건, 어떻게 해도 게임이 완료되고 행맨이 죽어야 한단 말이다.
이건 변칙적인 탐사기록을 보면서 즐거워하는 괴담이 아니었다.
‘태생이 달라.’
이미 위키에 등록될 때부터 규칙을 어길 수 없어서 사람 미치게 만드는 테마로 적혔단 말이다!
규칙을 어길 수 없는 막막함과 답답함, 최종적으로는 그 규칙에 맞춰 자기 자신을 필사적으로 검열해야 하는 약자의 공포를 극대화하는 괴담이었다.
그나마, 그나마 내가 목격했던 실낱같은 변수가 있긴 했다.
이 괴담과 대화해서 게임에서 빠져나갔던 브라운.
근데 내가 브라운이 떠드는 걸 멍하니 지켜보기만 해서 그 기회도 날아갔다.
‘끼어들었어야 했어.’
어떻게든, 시간을 끌면서 바로 밧줄을 넘기지 않고 대화를 좀 더…….
-음?
믿을 수 없다는 듯 브라운이 경악했다.
-이런, 전 사양하고 싶군요. 이 작자들과 더 대화하는 지루한 짓이라니!
-노루 씨. 지금 설마 내가 이 케케묵은 놀이에서 기꺼이 교수형 당하는 흉내라도 내야 했다고 말하는 겁니까? 당신의 친구인 나에게?
…….
후.
‘브라운. 그렇게는 나도 말할 수 있어.’
-잠깐만요?
‘네가 이 게임에 불참하겠다고 선언했을 때, 행맨이 될 사람이 다시 선정될 걸 알았을 거야.’
그러니까,
‘내가 1/12 확률로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고민 없이 한 거지?’
-…!!
‘너는 내가 교수형 당해도 상관없던 거야?’
-아니! 아니지… 그건 아닙니다. 하지만, 이 고리타분한 놀이도 놀이로서 그 규칙을 존중받아야… 아 물론, 그보다 내 친구가 더 중요합니다…….
브라운의 말투에 전에 없던 혼란이 느껴졌다.
아무래도 그 안에서 ‘착한 친구’로서의 역할과 괴담 속 사회자로서의 역할이 충돌하는 것 같았다.
잊지 말자, 이 녀석은 괴담 주민다운 뒤틀린 사고방식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내 친구로 있어 주려 굉장히 노력하는 봉제 인형이었다.
‘그래.’
중심을 잡자. 내가 쫄보여도 멍청이는 되지 말자.
나는 최대한 차분히 설명했다.
‘내가 말하려던 건, 나도 네가 교수형을 당했어야 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거야.’
그냥… 초조함에 미치겠을 뿐이다.
‘그때 정보를 좀 더 얻은 뒤에 빠지면 안 되겠냐고 내가 부탁했더라면 좋았을 거란 뜻이었어. 너는 이 괴담이랑 소통이 됐던 것 같으니까.’
-아… 그렇지요. 노루 씨에겐 아쉽게도, 지금은 날 외부인 취급하기로 했는지 특별히 인터뷰가 연결되진 않는군요.
-어쨌든 그런 판단이라면 기꺼이 이해할 수 있지요!
‘응.’
하지만 어렴풋이… 아마 서로 다르게 이해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도저히 거기에 더 쓸 추가 뇌 용량이 없었다.
‘없어.’
없다는 걸 알면서도 내 머릿속 한편에서는 필사적으로 내가 가진 탐사기록과 매뉴얼 정보들을 다시 뒤지고, 또 뒤지면서 행맨을 살릴 빈틈을 찾아보려 했다.
하지만 없었다.
아니, 없는 게 당연했지!
그런 게 있었으면 지난 이틀간 머리 빠개지도록 생각할 때 떠올랐을 테니까!
‘케이스 자체가 없다고.’
아무리 내 머릿속에 <어둠탐사기록>을 뒤져도, 매뉴얼을 되짚어도 없다.
이미 안다….
사형대를 부숴도, 행맨을 바꿔치기하려고 해도, 단어를 안 맞히고 버텨도.
벌칙만 추가될 뿐 행맨은 죽는다.
예외는 없다.
‘무조건 죽는다고…? 무조건……,’
정말 뭐가 더 없나?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노루야!”
그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열린 문에 나타난 두 번째 직원이 보였다…,
“…주임님.”
“괜찮…… 하.”
방으로 들어오던 박민성 주임이 은하제 대리를 보고 숨을 집어삼켰다.
“왔냐?”
“…….”
“TV에서 이미 들었지? 맞힐 준비나 해.”
박민성 주임의 얼굴이 뭐라 말할 수 없는 울컥함으로 가득 찼다가, 확 가라앉았다.
“쓸데없는 생각 말고 빨리 맞혀라. 너 이미 누적된 거 알지?”
“…….”
누적?
“주임님, 저게 무슨 뜻….”
주임이 힘겨운 표정으로 내게 작게 속삭였다.
“음. 사실 난 여기 두 번째 들어오거든….”
“…!!”
“입사 막 했을 때 들어오고, 2년 만에 또 들어오네. 하하…. 매번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주임이 쓰게 웃었다.
“전에, 행맨으로 걸린 사람 떼어내려다가 벌칙을 한 번 받았어 가지고… 아마 오염이 누적… 잘 모르겠네. 지금까지는 사례가 없었거든.”
혹시 몰라서 전용 장비도 한 번에 하나씩만 들고 다녔다고 두서없이 말하는 주임은 이미 멘탈이 나간 모습이었다.
나는 주임의 어깨를 잡았다.
“…!”
“주임님.”
직접 경험자.
내가 가지지 않은 디테일한 정보를 가지고 있을, 거의 유일한 사람!
“지금부터 제 질문에 빠르고 정확하게 대답해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