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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67화


그 후로 모든 건 꽤 빠르게 처리되었다.

나는 회사에서 또 무슨 대단한 인정을 받은 모양이다.

직원이 오염된 동료를 자체적으로 구출하는 건 가끔 있는 일이긴 한 모양인데, 대부분 몇 개월이든 몇 년이든 준비해서 필사의 각오로 빼냈던 것 같다.

시도하다가 같이 실종되는 경우도 부지기수고 말이다.

이렇게 오염되자마자 끌어내는 건 신입 중에선 전례가 없는 일이라나.

“저기 저 사슴뿔 가면….”

“아, 쟤가 걔예요?”

“와… 이번이 몇 번째야.”

회사 복도를 다니면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가끔 들렸다.

사실 이전에도 몇 번이나 구내식당에서 D조끼리 밥을 먹다가 비슷한 경험을 했던 게 떠오르긴 했는데….

혼자 다녀서 그런가, 유독 잘 들리긴 했다.

그것도 길진 않았지만.

“김솔음 씨.”

“예.”

“내일부터 열흘간 출근하지 마십시오.”

“…??”

“유급휴가입니다.”

안 그래도 팀원 절반이 사라져서 D조는 잠정적으로 운용이 중단된 상태였는데, 내 앞으로 휴가가 나온 것이다.

‘그래도 상황보고서 쓰려고 며칠 꼬박꼬박 출근은 하고 있었는데.’

행맨이 반드시 죽어야 클리어하는 B등급 어둠에서 대체 어떻게 법칙을 비틀고 은하제 대리가 살아 나온 건지 몹시 궁금해했기 때문이다.

‘나랑 박민성 주임이 뭔가 하려고 했다고 누가 보고한 모양이지.’

아예 연구팀과 탐사기록 신뢰도 보강용 인터뷰 일정까지 말이 나왔던 모양인데….

-아, 김 주임. 그런 걸 뭣 하러 해! 쉬어, 쉬어. 큰일 했는데!

-……음. 감사합니다.

매뉴얼 심사 담당자인 이병진 과장과 우리 조 이자헌 과장 선에서 컷한 모양이었다.

좀 웃기지만, 같이 들어갔던 직원들이 보고하는 와중에 ‘김솔음은 다른 의도 없이 조원을 구하기 위해 행동했을 거다’라고 증언했다더라.

그냥 순발력과 운 덕에 상황이 잘 맞아떨어졌다고 대리 변명을 해준 것이다.

‘클리어 문 열리자마자 다 튀었는데 또 말은 해주네.’

전자는 당연한 거고 후자는 고마운 일이니까,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쨌든 덕분에 또 내 이름이 사내 전화에 오르락내리락하고, <헝그리 행맨>의 매뉴얼엔 ‘개편 가능성 있음’ 딱지가 붙고.

동기 단톡방에선 또 나한테 어떻게든 정보를 캐물으려고 하고….

[고영은 씨 : 고생 많으셨어요.]

“…….”

누군가는 위로의 문자를 보내기도 했고.

‘고맙네. 정말로.’

참고로 백사헌은 집에서도 안부 한 번 안 물어봤다.

‘그 자식 인성이 그렇지 뭐….’

기대도 안 했다.

어쨌든 지금까지 상황 자체는 내 생존에 나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은 건가.’

나는 계속 인상적인 커리어를 만들고 있었다.

특히 ‘기존 매뉴얼을 따르지 않고 신선한 방식으로 빠른 클리어’, ‘선량함’이라는 키워드를 지닌 네임드 직원을 연속적으로 구축 중이라는 뜻이다.

심지어 열흘 휴가라니.

괴담과 열흘이나 멀어질 수 있다는 것에 좋아하거나, 포인트 모으는 속도가 느려진다고 실망하거나.

둘 중 하나일 줄 알았는데 둘 다 썩 안 느껴졌다.

그래서 그냥 아무것도 안 했다….

-노루 씨, 저 형편없는 코미디가 어떤 면에서 대중의 시선을 사로잡지 못한 건지 이 브라운의 견해를 들려드릴까요? 아주 흥미로울 겁니다!

“그럴까.”

나는 며칠 거실에 앉아서 TV나 봤다.

그렇게 사흘쯤 지났을 때였다.

…문자가 왔다.

[은하제 대리님 : 병원 좀 와 봐라]

“…!”

* * *

“노루 왔냐.”

“……대리님.”

나는 가져온 병문안 선물을 협탁 아래에 두고 침대 옆에 섰다.

은하제 대리가 피식 웃었다.

“두유냐? 잘 골랐네.”

“…감사합니다.”

의무실에서 잠깐 의식을 차렸을 때 짧게 의사소통한 이후로 처음 만나는 것이었다….

대리는 약간 혈색이 없었지만 멀쩡한 얼굴이었다.

백설산 사과가 어느 정도는 일한 모양이다.

“죽다 산 사람치고는 괜찮지? …아이템 좋더라. 고맙다.”

그 아이템 덕에 은하제 대리가 시체로 보이긴 했지만, 목이 아니라 손이 없다는 특수 상황 덕에 격리 보관되어서 다행일 뿐이었다.

‘다음날 일출 때 이자헌 과장이 생존을 확인하고 보고해서 의무실로 옮겼다고 했지….’

그리고 지금은 회사와 모종의 제휴 관계라는 병원으로 이송되어, 급한 치료가 막 종료된 참이라고 한다.

“아, 그 사과는 대충 내가 가지고 있던 거라고 했어. 보통 출처를 안 들키고 싶어들 하니까.”

“…감사합니다.”

“감사는 무슨, 내가 너랑 민성이한테 할 말이지.”

은하제 대리는 왼손을 내저으려는 듯이 들다가 멈칫했다.

없었으니까.

“…….”

붕대에 감긴 왼팔 손목은 뭉툭했다.

저렇게 결손된 신체는 회사에서 지급하는 보급품 물약으론 재생되지 않는다.

“…저, 대리님.”

나는 생각했던 것을 입 밖으로 꺼냈다.

“저한테 있는 C등급 재생 물약….”

“설마 넘기겠다고?”

“돈 받고 팔려고 했습니다.”

“허.”

은하제 대리가 혀를 찼다.

“잘 들어라 노루야. 포인트로만 거래되는 품목들, 밖에서는 웬만한 돈으로 못 사.”

“…….”

“그리고 그 물약 손 하나 잘렸다고 쓰면 낭비지. 사지 절반이 날아가도 얼추 재생되는 물건인데.”

“그래도,”

“됐다. 내 손은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넌 비상용으로 가지고 있어.”

은하제 대리의 눈이 약간 음울하게 빛났다.

“계속 어둠에 들어가다 보면, 손 하나보다 더 날아갈 일도 나온다, 분명.”

등골이 약간 오싹해졌다….

“오히려 내가 너한테 줄 게 있는데 말이지.”

은하제 대리는 하나뿐인 손을 마치 몇 년은 그렇게 쓴 것처럼 능숙하게 다루더니, 서랍장에 손을 넣었다.

그리고 고급스러운 유화가 그려진 금박박스를 하나 꺼냈다.

“…?!”

[백일몽 물약]

‘자, 잠깐만.’

저거 백일몽 주식회사 특제 물약 넣어두는 박스잖아!

심지어 화려함이 내가 받았던 C등급 재생 물약보다 더했다.

“대리님, 지금 뭘….”

“자, 보이지? 하나 남은 거.”

은하제 대리가 박스를 호쾌하게 열었다.

그 안은 비단으로 모양이 잡혀 있었는데, 동그란 유리병 두 개가 들어가도록 오목했다.

하지만 하나는 이미 비어 있었다.

은하제 대리가 하나 남아 있던 것을 꺼내어 내게 슬쩍 던졌다.

“받아 가.”

“……!”

맙소사.

나는 황급히 손을 뻗어 유리병이 떨어지지 않게 잡고 확인했다.

병 안에서는 자주빛과 은빛을 짜 넣은 것 같은 액체가 마치 유려한 선처럼 스르륵 헤엄치고 있었다….

: 백일몽 물약 :

사막방울뱀 (Outstanding)

독?!

“대리님께서 포인트로 구매하신 게….”

“맞아.”

은하제 대리가 이빨을 드러내며 웃었다.

“잘 다뤄라. 그거 17만 포인트짜리 데스노트니까.”

“…!!”

“원격으로 몰래 사람 죽일 수 있지.”

자, 잠시만요.

나는 떨리는 손으로 유리병에 적힌 설명을 읽었다.

사막방울뱀 독약은 조용하고 잔인하게 복수를 돕습니다.

간단한 의식과 함께 대상자의 이름을 약병에 불어넣으면…

그날 밤, 끔찍한 죽음이 대상자에게 찾아갑니다.

“한마디로, 죽이고 싶은 자식 있으면 소리 소문 없이 보내 버리기 딱 좋지.”

“…….”

“죽기 전에 엄청난 작열통과 세상을 저주하고 싶은 끔찍한 정신 고문을 당하다가 혼수상태에 빠지고 4시간 동안 체감 4년쯤 고통받다가 간다더라.”

그런 살인 무기를 저한테 주신다고요…?

은하제 대리는 ‘독선이 두 줄이라 꼭 두 병을 한 세트로 팔더라’, ‘그놈의 컨셉 때문에 내가 일하는 기간이 두 배로 늘었다’ 등등의 소리를 하면 투덜댔다.

하지만 결국 나를 보고 씩 웃었다.

“죽이고 싶은 새끼 나오면 써라.”

“…!”

“난 있었거든.”

나는 상자의 비어 있는 유리병 자리를 보며 침음했다.

…역시 이미 쓴 거였나!

“궁금하냐? 내가 누구한테 썼는지.”

반사적으로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은하제 선생님을 가장 잘 표현하는 단어는 ‘배신자’입니다!

<헝그리 행맨>에서의 폭로를.

“혹시 개인사라 말씀하시기 거북하다면, 굳이 알려주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거북? 야, 떠들고 싶어 미치겠다.”

그, 그러시다면야.

은하제 대리가 팔짱을 끼고 침대에 기댔다.

“결론만 말하자면… 내가 기자일 때 사고 쳐서 이직한 거 맞다.”

“…….”

“무슨 마약에 인신매매에 별 미친 짓 다 손댄 정치인 2세 하나 특종으로 파내려다가 신세 조진 거지.”

은하제 대리는 평소처럼 담백한 어투였으나, 그 안에 든 내용은 결코 담백하지 않았다.

단지, 아주 오래 곱씹고 생각해서 정제된 이야기 특유의 깔끔함이었다.

기사를 써도 데스크에서 통과가 안 되더니, 그다음 날부터 팀 단위로 엄청난 압박이 들어오고, 스토킹을 당하고, 가족들에게 협박 전화가 오고….

“사실 팀 내에선 다 엎고 없던 일로 흐지부지하자고 결론이 났는데, 못 참고 내가 해외 언론사 들고 가서 터트리려고 했거든. 배신은 맞지 뭐. 근데….”

작은 한숨.

“출국날에 전화를 받았지. 제보자 네 명이 거짓말처럼 죽었더라.”

“…….”

“뭐, 표면적으로는 신세 비관으로 인한 자살이었는데… 당연히 아니겠지? 죽이거나, 죽을 때까지 괴롭혔거나.”

“…….”

“보도만 되면 다 해결될 줄 알았던 내가 멍청한 거지.”

“아닙니다.”

“멍청한 건 멍청한 게 맞다. 아무튼…….”

은하제 대리는 기자를 그만두었다.

도저히 더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근데 취직은 해야 했거든. 집에 먹여 살릴 사람도 있고.”

그때 다행히 적합한 회사를 찾은 것이다.

신입사원의 합격 연령층이 비교적 다양하고, 영업직에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고 온 사람을 우대하고.

업계가 달라서 자신이 블랙리스트로 올라가 있지도 않을 제약회사.

“백일몽 주식회사지.”

그리고 입사한 이곳에서 만난….

소원권.

“뭐… 처음에는 죽은 사람들을 다 살릴 수 없나 생각했는데, 그건 망자에 대한 모욕처럼 느껴지더라고.”

은하제 대리가 팔짱을 고쳤다.

“내가 죄책감 느낀다고 멋대로 살리겠다 설치는 것도 자기만족이지. 죽은 사람은 그대로 존중하는 게 맞다. 우리 회사엔 이걸 동의 못 하는 자식들도 많지만. 아무튼…….”

마무리는 희미한 미소와 함께 끝났다.

“그래서 난 어젯밤에 복수했고, 그걸로 끝이다.”

“…….”

“정치인 2세가 끔찍하게 죽었다는 뉴스 나면, 내가 죽인 걸로 알라고.”

그리고 은하제 대리는 기지개를 쫙 켰다.

“하… X발, 아무튼 드디어 때려치우네 이 망할 어둠탐사!!”

“퇴사하실 겁니까?”

“인생 모르는 거지.”

시원한 발언과는 다르게 은하제 대리의 얼굴은 다소 경직되어 있었다.

내게 부담을 안 주려고 가볍게 언급했지만, 박민성 주임을 마음에 걸려 하는 게 분명했다….

“그래도 한동안 쉴 테고… 그럼 이전처럼 D조에서 일할 순 없겠지.”

“…….”

은하제 대리가 약간 쓰게 웃었다.

“노루가 우리 조에 남아야 한다고 그 난리를 부렸는데, 그 말대로 되긴 했네.”

“…예.”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앞으로… 사무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은하제 대리도.

볼 수 없겠구나, 하는.

“…….”

“노루야.”

“…….”

“많이 힘드냐.”

“…!”

“그래. 안 힘들면 싸패 새끼지. 그동안 네가 너무 유능했어서 늦게 찾아오는 거긴 한데, 다들 한 번씩 겪어보는 과정이다.”

은하제 대리가 웃으며 자기 가슴팍을 두드렸다.

“옆자리에 앉아 있던 조원을 다음날 못 보는 거.”

“…….”

“근데 이건 최고의 시나리오라고 스스로한테 칭찬 좀 해줘라. 네가 잘나서 조원을 좋은 이유로 안 보게 되는 거니까.”

“……박민성 주임님은,”

“그건 내가 부채로 달아둘 일이지.”

은하제 대리가 단호하게 말을 끊었다.

“넌 그 녀석도 구출해 왔잖냐. 스스로 자랑스러워해야지. 걔도 나름 강한 녀석이야. 알아서 회복할 테니까… 너는 너만 걱정하면서 다녀라.”

그리고 힐끗 나를 보더니 웃는 것이다.

“안 그래도 조장님이 너 걱정 많이 하던데.”

“……?”

도마뱀이… 걱정?

“노루야, 조장님 요새 사무실에 거의 안 들어오시지 않았냐?”

그랬다.

“원래 이렇게 팀이 반절 날아가면, 쉬는 게 아니라 다른 팀에 지원 들어가는 게 보통이야.”

아.

“근데 넌 빼준 거지.”

“…!”

“뭐, 자기 인맥을 이용하든 자기가 대신 들어가든 간에.”

맙소사.

“좀 신뢰가 가지? 그 양반, 나 입사했을 때부터 그랬어. 이상하게 융통성은 없어도 믿을 만은 하지.”

은하제 대리가 온전한 손으로 내 어깨를 잡았다.

“이 회사에서 믿을 만한 사람들이랑 근무하기 어려운데, 그것도 네 복이다. …앞으로도 조장님이랑 잘 근무해 봐라.”

그리고 씩 웃으며 내밀었다.

“내 자리에 누가 오든 간에, 이자헌 조장님이랑 김솔음이면 뭐. 괜찮을 거다.”

온전히 남아 있는 오른손을.

“안전하게 포인트 많이 벌길 바란다. 노루야.”

꽉 쥐었다.

“네 소원이 꼭 이뤄지길.”

“……예.”

나는 D조 은하제 대리와 악수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 *

휴가가 끝난 후 출근날, 나는 D조 사무실에서 은하제 대리의 책상 짐들이 사라진 것을 보았다.

박민성 주임의 책상은 아직 그대로였지만, 모를 일이다. 언제 빠질지는.

“…….”

나는 조용히 내 책상에 가서 앉았다.

그렇게.

D조에는 조원이 나 혼자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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