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95화
세탁소 안으로 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꿀렁꿀렁.
유리문의 빈틈으로 스며드는 물을 피해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무인 세탁소에는 도망갈 만한 구석이 없다. 사방에 세탁기 몇 개만 돌아가고 있을 뿐이다.
‘젠장.’
“이쪽입니다!”
나는 당장 세탁기 위로 발을 디뎌 올랐다. 동시에 이자헌 과장도 옆 세탁기 위에 섰다.
하지만 그게 끝이다.
‘어디로 가야 하지?’
나는 왼쪽 벽에 달린 높고 작은 유리창을 눈으로 훑었다. 창살이 달려 있지만 이자헌 과장이라면 뜯을 수 있….
♩♪♬♬~♩♬♬~♩♪♪
“…….”
물살이 부딪히며 소리가 들린다.
귓가로 아련하고 화려한 연주곡이 울렸다.
들어봤던 멜로디.
유쾌 테마파크의 테마곡.
♩♪♬♬~♩♬♬~♩♪♪
세탁소를 가득 채운 물결이 뭉쳐지며 물덩어리로 변했다.
테마파크 마스코트 복장의 용.
찾았다.
지성이 없는 것 같던 눈앞의 물덩어리에게서 갑자기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마치 전화기 너머에서 나오는 것 같은 소리.
물을 매개체로, 진동한다….
찾았다.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세탁소를 점거한 검은 물줄기와 덩어리를 보았다….
‘어떻게 날 알아본 거지?’
가면도 벗었고, 모자에 마스크까지 쓰고 있는데….
유괴범.
‘…이자헌 과장을 알아봤구나!’
검은 물덩어리는 앞발을 들어서 내 옆 세탁기에 선 도마뱀을 가리켰다.
“아닙니다.”
유괴범.
“아닙니다.”
끝없이 저러고 있겠네…!
아니, 그러면 차라리 다행이었다. 사실 저 물덩어리가 당장 괴담다운 소름 끼치는 능력을 행사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아직도 잊지 않고 있다. 전화기에서 솟구쳐 나와서 미친 듯이 골목을 잡아 삼키던 급류를.
‘…물이라서 물리 퇴마가 통할지 확신도 안 선다.’
“…….”
후.
그래, 최소한 말이 통하는 상황이라면.
나 쁜 …
“유괴범이 아닙니다.”
나는 마스크를 벗고 가면을 썼다.
그리고 소매를 걷어서 문신을 보였다.
: Socius :
그 상태에서, 최대한 편안한 얼굴로 물덩어리 용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마스코트님. 혹시 찾고 계시던 게 전가요?”
물덩어리의 형상이 흔들린다.
그리고….
착 한 아 이 !
목소리가 또렷해졌다.
“예, 저도 반갑습니다….”
나는 이자헌 과장에게 내려오지 말라고 손짓한 후, 천천히 세탁기에서 내려갔다.
‘윽.’
발밑에서 물이 첨벙거렸으나, 테마파크의 테마곡이 약간 또렷해진 것 외의 다른 미친 증상은 없었다.
‘좋아.’
할 수 있다.
나는 물덩어리의 앞으로 다가갔다….
가 자
문신으로부터 진동이 느껴진다.
눈앞의 형상과 공명하는 것 같다.
용의 앞발이 다가온다….
더 놀 아
나는 숨을 들이켰다.
“죄송해요.”
그리고 조용히 앞발을 밀었다.
“저는 이제 아이가 아니라 테마파크에 계속 있을 수 없습니다. 일을 해야 하거든요.”
침묵.
‘미치게 무섭다.’
하지만 참고, 차분하게 용의 얼굴을 보면서 말한다.
“그래도 놀고 싶을 때, 재밌는 워터파크에서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는 꼭 찾아갈게요.”
손목을 들어서 문신을 보여주었다.
“그러라고 이걸 주신 거죠? 원할 때마다 올 수 있게요.”
물덩어리가 고개를 느리게 끄덕였다.
“감사합니다. …음, 그런데, 제가 유쾌 테마파크에 가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서요.”
회사에서 유쾌 테마파크에 들어가는 방법은 보드게임이고, 거기서는 매번 게임마다 다른 구조의 테마파크에 진입한다.
‘이 부분을 방지할 수 있다면 차라리 더 안전할지도.’
한번 가본 곳이 나을 테니까.
“실수로 마스코트님이 없는 다른 테마파크에 가면 어쩌나 싶은데, 방지할 방법이 있을까요?”
괜 찮 아
“…다른 테마파크에 가도, 괜찮다고요?”
괜 찮 아
“…….”
묘했다.
‘…그 보드게임을 다시 해보면 뭐가 달라지나?’
어쨌든 그렇다면야.
약 속 해
후.
나는 떨림을 감추고 물덩어리에게 손을 내밀었다.
“예. 약속하겠습니다.”
그리고 새끼손가락을 걸었다.
질척한 물의 느낌이 오싹하게 만들었으나, 아무 문제도 없었다….
…….
새끼손가락을 푼 물덩어리는 앞발의 발톱으로 내 문신을 눌렀다.
마치 잘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것 같았는데, 곧 만족한 듯이 앞발을 걷었다.
그때였다.
휙.
세탁소 문이 수압에 열리며 뭔가가 날아와 물덩어리의 앞발 위에 올라온다.
네모난 검은 것.
내, 고장 난 스마트폰.
네 것.
“…….”
나는 떨리는 손으로 내 스마트폰을 잡아 들었다.
“…감사합니다. 잃어버린 줄 알고 난감했었는데.”
착 한 아 이
물덩어리의 형상이 무너진다.
약 속 해
물결이 가라앉는다.
그리고 마치 테이프를 거꾸로 감은 영상처럼 세탁소의 틈새 밖으로 빨려 나간다….
스르르륵.
골목을 물살이 거꾸로 스치고 간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골목은 물의 흔적도 없이 고요해졌다.
그리고 검은 물이 가득 찼던 세탁소 안은, 내 인상착의가 인쇄된 초콜릿바 몇 개가 사금처럼 남았다.
“…….”
살았다.
“후우우….”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맙소사, 친구! 그 별 볼 일 없는 테마파크에 또 놀러 가기로 약속한 겁니까?
‘응.’
아무리 생각해도 거기서 ‘약속은 안 하고 싶은데요’ 같은 소리를 했다가는 어떤 꼴이 됐을지 모르겠거든.
‘내장을 싹 털리고 파란 용 마스코트 ver.2 직원으로 테마파크에서 근무하게 됐을지도 모르지.’
그건 피해서 차라리 다행이었다….
회원권이 있는 채라면 나는 거기서 손님 대우를 받을 수 있을 테니까. 지금 무작정 끌려가거나 변수를 수용하는 것보단 그편이 낫겠지.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회사에 이야기해서 보드게임 이용 일정을 잡아야 하나.’
텀을 봐서는… 반년 내로는 가봐야 할 것 같고.
‘그사이에 아이템과 장비를 준비하자.’
좋아.
일단은 지금 이 순간을 넘겼다는 게 중요했다. 나는 후들거리는 다리로 일어나서 한숨을 참았다.
‘이럴 거였으면 아까 도망가질 말걸…!’
근데, 솔직히 그 상황에서 도망 안 가고 남아서 침착하게 대화로 해결해 보자고 생각할 미친놈이 있었을까?
‘난 ‘없다’에 골드바를 건다….’
후.
마침 뒤에서 이자헌이 아무렇지 않게 세탁기에서 뛰어 내려왔다.
나는 무심코 물었다.
“조장님. 만약에 아까 제가 나서지 않았다면, 저 물덩어리를 박살… 아니, 어쨌든 없애려 시도하셨을 겁니까?”
“예.”
“…….”
역시.
지금은 타이밍이 딱 맞았던 거고, 그 문방구에 멍하니 서 있었다가는 여러모로 개판 났었겠다.
‘그때 잘 도망친 게 맞구만.’
이걸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모르겠네….
하지만 정신 차리자.
‘우린 여전히 이 골목에 갇힌 처지야.’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여기서 나가려 시도할 방법을 하나 떠올렸다는 것.
“조장님.”
나는 정장 밑단을 털며 세탁소 유리문 앞에 섰다.
“떠올린 탈출법이 있습니다. …몇 가지 조건만 갖춰지면, 이 사망단길 골목에서도 시도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군요.”
“예. 그리고 그 첫 번째 조건은….”
나는 골목의 상가들을 돌아보았다.
아까, 우리를 곤혹스러운 꼴에 밀어 넣었던 문방구에서 가게 주인이 연락에 쓴 물건.
“전화기입니다.”
* * *
잠시 후.
딸랑-
우리는 어둠이 내려앉은 골목에서, 제법 안락한 빛을 창문 밖으로 보이던 가게 하나의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공교롭게도 아까 내 동기들이 쇼핑을 즐겼던 바로 그 가게였다.
‘핸드메이드 뜨개질’이라는 광고 문구답게 포근해 보이는 스웨터와 양말, 머플러 같은 것이 전시되어 있었지만, 간혹 이상하게도 너덜너덜하고 축축한 섬유들이 있다….
‘윽.’
나는 그것들을 최대한 외면하며 가게 구조로 시선을 더 돌렸다.
그리고 지난 몇 시간, 분노한 문방구 주인의 목소리를 피하며 이 골목의 수많은 가게를 들락거린 끝에 드디어 찾던 것을 발견했다.
‘…있다!’
또 다른 문.
내가 들어온 문 맞은편 벽에 대문이 있었다.
방금 들어온 문보다 크다. 그렇다는 건….
‘저쪽이 정문이라는 거지.’
그리고 저 너머는 사망단길의 골목길이 아닌, 미지의 거리일 것이다….
흔히 어둠탐사기록에서 ‘이후 실종 처리됨’으로 표현되는.
사망단길의 골목길 가게에서 때때로 반대편 문이 발견됨. 되도록 나가지 않는 것을 권고.
※현재까지 귀환 기록 없음.
‘경로를 이탈한 탐사자는 어디 가는가?’라는 질문에 ‘알 수 없다’라는 대답만이 돌아올 때 느끼는 공포와 유사하다.
사라짐의 공포.
‘후우.’
나는 불투명한 그 유리문 너머에서 비치는 네온사인을 보지 않기 위해 얼른 눈을 돌렸다.
그리고 도마뱀 과장이 유심히 보고 있던 양말 중 안전하다고 검증된 하나를 집어서 카운터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여섯 개의 팔로 뜨개질 중이던 주인이 나를 원시 안경 너머로 쳐다본다.
나는 이번에도 시선을 미묘하게 아래로 하여 주인장의 스웨터만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양말을 내밀며 자연스럽게 말했다.
“결제 부탁드립니다. 아, 그리고 혹시 여기 전화 한 통만 써도 괜찮겠습니까?”
나는 말로만 끝내지 않고, 동전 몇 개를 무심히 카운터에 더 올려두었다.
…….
노년의 얼굴을 한 사망단길의 주인은…….
달칵.
전화기를 들어서, 나에게 넘겨주었다.
“……감사합니다.”
후우.
‘이걸로 조건은 다 확보했다.’
1. 전화기.
2. 골목이 아닌 방향의 대문.
그리고….
3. 운송수단.
나는 고전적인 전화기의 번호판을 보았다.
당연하지만 사망단길의 전화기로 현실의 번호를 누른다고 무조건 연결되지는 않는다.
간헐적으로 마치 연결이 된 것 같은 기록도 있긴 했으나, 전부 괴담답게 이상하게 뒤틀려 있었다.
누군가 친인척을 흉내 내다가 들키는 순간 깔깔대며 끊거나, 시간이 왜곡되어서 본인 상을 치르는 중인 가족과 연결된다거나.
‘끔찍했지.’
그러니까 내가 하는 건 구조 요청은 아니다.
‘어쩌면… 반대에 가깝지.’
나는 손가락을 들어서, 약간 서투르게 번호판을 돌려 가며 눌렀다.
666666 4444 8282
본래는 형식부터 말도 안 되는 번호로, 통화음 자체가 가지 않아야 하지만….
뚜르르르르… 달칵.
거짓말처럼 연결되었다.
[…….]
나는 상대방의 숨소리를 의식하지 않으려 기를 쓰며, 최대한 태연하게 입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콜택시 회사죠? 택시 좀 부르려고 합니다.”
[…위치를 확인했습니다.]
허스키한 목소리가 들렸다.
정중하지만, 묘하게 비웃는 것처럼 들리는 낮고 오만한 말투.
[이용을 원하는 시간대를 말씀하세요.]
“지금 당장 오셨으면 합니다.”
[도착지를 말씀하세요.]
“…서울역 1번 출구입니다.”
[확인했습니다. 기사를 배치 중입니다….]
나는 전화기에서 일부러 잠깐 귀를 뗐다.
그리고 몇 초 후.
[배치되었습니다. 편안한 이동되시길.]
달칵, 뚜뚜뚜….
전화가 자동으로 끊겼다.
“…감사합니다.”
나는 가게 주인에게 전화기를 정중히 돌려주며, 포장된 양말 봉투를 받아서 이자헌 과장에게 넘겨주었다.
손이 떨리는 걸 감추기 위해서였다.
‘후우.’
됐다.
눈치챘겠지만, 방금 건 정상적인 콜택시가 아니었다.
시공간을 마음대로 넘나드는 수상한 콜택시 번호.
‘괴담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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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지옥할증 택시]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C-8282.
심야에 특정 번호로 콜택시를 호출하면 나타나는 택시 괴담.
해당 택시를 탄 사람은 반드시 저주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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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단길에서 더는 정상적으로 현실로 나갈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렇다면.
‘괴담으로라도 나간다.’
그리고 몇 초 후.
가게 대문 너머에서, 작은 클락션 소리가 들렸다.
빵빵.
“…….”
택시가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