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00화
연구팀 곽제강 과장.
자기 부하 직원을 유쾌 테마파크 괴담에 밀어 넣었던 매드사이언티스트다.
직원들 다 떼죽음을 당할 뻔했던 ‘눈먼 자들의 저택’ 때도 자문 역할을 했었지.
“그간 노루 씨랑 길게 이야기를 꼭 나누고 싶었는데, 드디어 이렇게 기회가 왔네, 왔어.”
그 미친 괴담 연구원이 싱글벙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
“활약이 원체 대단해서 그간 감상이 아주 궁금했단 말이야!”
“감사합니다.”
와 진짜 악수하기 싫은 상사다.
하지만 해야지. 그게 회사 생활이지.
“신년 밝는 대로 D조가 정예팀이 된다며, 그렇게 되면 또 조 단위로 일하면서 바빠져서 이렇게 어둠 투입 전에 잡담도 어려울 것 같고….”
곽제강은 나를 어렵게 불렀다며 너스레를 몇 번 떨었다.
“또 너무 궁금하기도 하고 말이야.”
그리고 웃는 얼굴로 본론에 들어갔다.
“대체 이자헌 과장을 어떻게 구워삶았지?”
“…!!”
“자네만 따로 부르려고 하면 딱 끊더라고. 원래 그렇게 적극적인 친구가 아닌데 말이야~”
나는 속으로만 비명을 질렀다.
‘감사합니다, 조장님…!’
근데 사실 구워삶은 것도 아니다.
‘그냥 안 하고 싶다고 말만 하면 됐는데.’
원래도 이자헌 과장은 조원의 요청 사항을 성실히 반영해 주기 위해 노력하는 FM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아무도 그런 요청을 안 했을 뿐!
아무리 개꿀이라도 홀로 괴담에 들어가느니 N등분을 하겠다고 울부짖을 인간상이 이 괴담 회사에 나뿐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있었더라도 이미 다 죽거나 사라졌겠지.
어쨌든, 이번에는 이자헌도 자기 선에서 막는 게 어려웠던 모양이다.
아니면… 그런 명분 자체가 안 나왔든가.
“아무튼 우리 노루 주임님 모시기 어려웠다고 반감 생긴 건 아니니까 걱정 말고.”
곽제강이 빙긋 웃었다.
“그냥… 노루 씨는 못 하는 게 없어 보이는 게 신기하지 않나!”
“신기하다는 게 어떤 말씀이신지…….”
“일도 잘하고, 말도 잘하고, 평판도 잘 관리하고… 아주 인상적이야. 하지만 사람은 모두 다 잘하는 게 불가능한 생물이거든! 나를 포함해서 말이지.”
곽제강이 자신을 툭툭 쳤다.
“누구든 강점과 약점이 있는 법이야. 그러니까….”
어둠탐사를 향한 열정적 광기가 빙글빙글 도는 눈이 나를 쳐다보았다.
“자네의 약점은 대체 뭘까?”
“…….”
“그 약점이 어떻게 기기묘묘한 괴현상을 헤집고 다니면서도 도드라지지 않는지… 난 정말 궁금하단 말이지!”
하 X벌 정말….
“알려드릴 수 있다면 약점이 아닐 겁니다.”
“하하, 우문현답이구만~”
살려줘.
‘쫄보라고 예측샷한 건 아니겠지.’
나는 보이지 않게 조심스럽게 침을 삼켰다.
곽제강이 양손을 펼친다.
“아무튼 오늘 부른 건 좋은 일 때문이야.”
“좋은 일이라고 하심은,”
“축하할 일이지! 내 계산으로는… 노루 씨, 이미 소원권까지 필요한 포인트를 절반 이상 모았잖아?”
“…!”
귀신 같은 자식.
그래.
저 말은… 사실이다.
나는 자신의 지난주까지 적립 누적 포인트를 떠올렸다.
[적립포인트 : 177200p]
여기까지만 해도 기함할 수치였다.
입사 1년도 안 된 신입이 적립한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할 양의 포인트기에 어디 가서 떠든 적도 없다.
아무리 퇴사 날짜를 떠들고 다니는 분위기의 부서라도 정도가 있는 법이다.
‘이 정도까지 규격 외면 사람인 이상 다른 생각이 들기 마련이니까.’
하지만 누가 알았겠는가.
이번 주에 들어서며, 내 적립포인트는 더 규격 외가 될 줄 말이다.
[적립포인트 : 277200p]
슬슬 이거 조작 아니냐는 소리가 나올 법한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세광공업고등학교 덕이야.’
등급별 기본 지급 포인트를 생각해 보자.
A등급 : 100000p
그런데 나는 세광공업고등학교를 홀로 A등급 클리어했다.
여러 사람이 함께 진입해 클리어한 것은 맞지만, A등급은 나 하나뿐.
게다가 용액도 얼추 간당간당하게 혼자 클리어했다고 쳐줄 만큼 진했다고 한다.
여기서 청 이사와 호 이사, 개발부 양대 산맥이 ‘적극적으로’ 오케이 해준 덕에 그냥 이대로 지급하자고 통과되어 버린 것이다.
행복하고 으스스한 일이었다.
‘그리고 오늘 아침에 등록이 끝났지.’
그렇게 김솔음은 공식적으로 소원권까지 절반 이상의 포인트를 모아버렸다.
‘내 예상보다도 말도 안 되게 빠르다….’
이상하게도 아귀가 딱 맞아서 여기까지 왔다.
이 추세라면, 정예팀으로 1년만, 아니 어쩌면 더 적은 기간만 버티면 원래의 세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괴담이 존재하지 않는 마음 편한 21세기 한국으로!
이 모든 것이 순식간에 내 머릿속으로 지나갔으나, 표정 관리는 흐트러지지 않… 않았을 것이다.
‘빌미를 주지 말자…!’
“포인트를 절반 넘게 모았다면 무언가 달라집니까?”
대신 일부러 살짝 눈살을 찌푸리는 정도의 애매한 반응을 하며, 묘하게 반응했다.
그만큼 모아서 찔린 건지, 못 모아서 기분이 상한 건지 모르도록.
“달라진다기보다는… 기회가 생기지?”
곽제강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소원권 시뮬레이터, 들어본 적 없나?”
시뮬레이터?
…아!
해당 시점부터 Qterw-D-718은 소원권을 탈 가능성이 있는 유망한 직원들에게 시뮬레이터용으로 제공한다.
‘그런 괴담 항목이 있었지.’
기억난다.
나는 약간 희미해지기 시작한 위키를 강박적으로 떠올렸다.
동시에 곽제강이 떠드는 소리가 귓가에 울린다.
“이 회사는 소원권을 곧 탈 것 같은 직원한테 소원을 점검할 기회를 한번 주거든. ‘알맞은’ 방식으로 소원이 이루어질 수 있게 말이야.”
그 ‘유망한 직원’의 기준이 25만 포인트였나….
아니면 소원권을 수령하기까지 남은 기간을 토대로 역산한 걸지도 몰랐다.
어느 쪽이든, 나에게 시뮬레이터를 체험해 볼 기회가 온 모양이었다.
…괴담에 들어가는 게 기회라고 부를 수 있다면!
“다음에 해도 되겠지만, 솔음 씨 지금이 아니면 또 순서가 밀려서 언제 할 수 있을지 모르게 되잖아? 지금 하고 오면 좋을 것 같아서 호출한 거야.”
“…….”
나는 생각했다.
곽제강이 짜놓은 어둠 투입?
‘분명 함정이 있어.’
하지만 함부로 거절할 수도 없다.
이 인간은 집요하게 이유를 물어볼 것 같은 인간상이다.
“겁쟁이도 아니고, 왜 피하겠어. 안 그래? 하하하!”
히이익.
“글쎄요. 다른 이유로도 피할 수 있지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일어났다.
얼른 이 대화를 끝내자.
‘어차피 모로 가도 괴담으로 가야 한다면 건덕지라도 안 줘야지.’
“어쨌든 알겠습니다. 언제 진입하면 되는 겁니까?”
곽제강이 피식 웃었다.
“노루 씨.”
“…….”
“태도가 많이 변했네. 이제 신입 티를 벗었어. 안 그래?”
잠깐.
“아니. 좋다는 의미로 하는 말이야! 이제야 좀 이 회사 직원 같고 친근해요. 쓸데없는 잡담 집어치우고 본론으로 들어가자~ 벌써 정예팀 같구만.”
곽제강이 눈을 휘며 웃었다.
“그럼 이 회사 직원다운 일을 하나 해보자고!”
그리고 탁자 위에 서류를 하나 올렸다.
‘이건….’
직원의 프로필이었다.
나도 알고 있는.
[사원 : 장허운]
나는 장발의 음울한 인상인 또래 직원의 증명사진을 보았다.
“아아, 안면이 있지? 유쾌 테마파크에 같이 들어갔었잖나. 마무리팀 친구 말이야.”
“지금은 마무리팀이 아닐 텐데요. 분명 F조로 재배치….”
“아~ 그래. 발령 나긴 했지. …그런데 아직도 공식 소속은 마무리팀이야.”
“…!”
“일반팀으로 파견 간 형태인 거지. 정식으로 소속이 변경되려면 내년은 되어야 하지 않겠어?”
곽제강이 서류를 툭툭 쳤다.
“그러니까… 아직은 충분히 이런 일에 투입해도 괜찮은 소속이라는 거지.”
“…….”
이런 일?
불길한 싸함이 등줄기를 타고 올라간다.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간단해. 어둠에 들어가서 노루 씨 볼일 끝나잖아? 그 직원을 남은 엘리베이터에 불러다가 그냥 두고 나와줘.”
“…!”
이 미친 새끼가.
아니, 침착해. 여기서 동요를 드러내면 안 된다.
“음. 이 어둠은 2인부터 투입이 가능한 건지… 아니면 희생이 필요한 겁니까?”
“하하… 그걸 확인해 보는 게 우리 연구직의 존재의의지! 노루 씨는 그냥 지시대로 하기만 하면 돼. 간단한 이야기지?”
툭.
곽제강이 테이블 위로 서류를 하나 더 던졌다.
내게 이번에 배당된 어둠.
“엘리베이터 괴담에서 말이야.”
* * *
-그럼 잘 부탁해요 노루 씨! 마무리팀 신입은 갈 때 호출해서 데리고 가고.
“…….”
나는 이미 숙지한 매뉴얼을 다시 한번 읽고, 주머니에 도로 넣었다.
어떻게 했냐고?
[허운 씨, 5시경에 진입할 예정이니까 쉬고 계십시오.]
[아아, 네! 알겠습니다!]
안 데리고 들어갈 거다.
그리고 알았다.
‘이거 징계 사유다.’
아마… 내가 어지간한 변명을 대도 이번 건 말이 나올 것이다.
남의 돈 벌어먹는 직장인이면서 융통성이라고 넘어갈 짓 수준이 아니다.
하지만 이렇게 아예 원천 차단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었다.
‘곽제강이 장허운 자체에 무슨 수작을 부려놨을 확률이 커.’
처음부터 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징계를 감수할 만큼, 여기서 노리는 효과도 하나 있었는데… 그건 일단 탐사가 끝난 다음에 다시 생각하고.
중요한 건 이거다.
……나는 이제부터 혼자 귀신 들린 엘리베이터를 타야 했다.
“후.”
이렇게 마음의 준비할 시간을 주고, 혼자서 귀신이 있는 장소에 들어가는 건 처음이었다….
‘차라리… 모르는 채 다짜고짜 들어갔던 적이 나을지도.’
공포로 손이 떨렸다.
그리고 브라운도 내 자리에 두고 왔다.
‘이 괴담에서 엘리베이터는 어차피 1인용이야.’
브라운을 엘리베이터 앞에 두고 타고 싶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까.
무사히 잘 있는지 이자헌 과장에게 한 번씩 체크해 달라고 했으니, 문제없을 것이다.
‘…가자.’
나는 회사가 찾아서 격리해 둔, Qterw-D-718의 확정 진입 건물로 들어갔다.
아주 낡은 임대 아파트로, 이미 수도도 끊겼으나 회사에서 임의로 전력을 공급 중이었다.
어두컴컴한 실내에선 관리되지 않은 차가운 묵은내가 났다.
그늘진 복도가 내 정면에서 끝도 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홀로 운행 중인 기기.
[5F]
1층 엘리베이터의 문.
“…….”
나는 침을 삼키면서 복도를 걸었다.
비상구 사인등과 어두운 전등 불빛에, 엘리베이터가 보인다.
-수리 중-
빠르게 고치겠습니다.
행복나라아파트 경비실
문구와 달리, 이미 다 헤진 종이 쪼가리가 노란 박스테이프에 매달려 달랑거렸다.
해당 현상은 엘리베이터가 한 대뿐인 건물에서 주로 발생하며, 특히 잔고장이 잦거나 수리 중이라는 팻말이 붙은 엘리베이터를 주의해야 한다.
그래. 바로 이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엘리베이터를 호출했다.
엘리베이터가 서서히 내려온다.
5, F, 3, 2…….
[땡]
나는 심호흡을 했다.
열리는 엘리베이터의 문 사이로 녹슬고 어둑한 내부가 보였다.
바닥이 제대로 청소되지 못한 듯 그을음으로 더럽다.
그래도 발걸음을 옮겼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한 발짝 걸어들어가면, 오른쪽과 왼쪽에 나란히 붙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손자국이 난 더러운 거울.
‘…후.’
———————=
어둠탐사기록 / 괴담
[거울을 보지 마세요]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D-718.
200X년 경 인터넷에서 돌았던 의식형 괴담 중 하나.
엘리베이터에서 거울 속의 나와 가위바위보를 해서 이길 시, 어떤 질문에도 진실을 알려준다고 한다.
발생하는 괴현상에 따라 어떤 대처를 하면 되는지 번호로 안내하는 게임북 스타일로 적혔다.
———————=
[문이 닫힙니다.]
나는 유일하게 거울이 없는 벽에 바짝 등을 붙이고 서서, 닫히는 문을 약간 절망적인 심정으로 보았다.
심장이 너무 두근거려서 튀어나올 것 같았다.
곧, 엘리베이터가 완전히 닫히고 어둠과 정적이 찾아온다.
나는 멈춘 엘리베이터의 어두운 내부에, 홀로 우두커니 서 있다….
거울과 함께.
“…….”
억겁 같은 몇 초가 흐른다.
참아야 한다. 참으면….
[올라갑니다.]
띵.
버튼을 누르지 않았는데도, 엘리베이터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딘가로 호출된 것이다.
모든 층수 버튼이 마치 눌린 듯이 빨간불이 들어와 엘리베이터 안을 붉고 음산하게 비춘다.
지금부터였다.
엘리베이터에 탑승한 후, 버튼을 누르지 말고 기다려라.
만일 엘리베이터가 혼자 움직이기 시작했다면 성공적으로 괴담에 진입한 것이다.
1. 이제부터 최고층에 도착할 때까지 거울 속의 나와 가위바위보를 한다.
한 번이라도 이긴 경우: 3번으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경우: 13번으로.
“…….”
나는 침을 삼키고, 겨우 머리를 움직여서… 왼쪽 거울을 보았다.
그 속에는 창백한 내가 엘리베이터에 서 있다.
무수히 많이.
내 뒤편의 오른쪽 거울에 다시 반사되어 점이 될 때까지 무한히 반복되는 나의 앞모습과 뒷모습.
점점 더 작고, 점점 더 불명확해지는 내 모습….
“…….”
나는 떨리는 왼손의 땀을 셔츠에 몇 번 닦아낸 후, 겨우 손을 들었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린다.
“…가위, 바위, 보.”
가위.
무수히 많은 거울 속의 내가 가위를 들고 있다.
앞모습과 뒷모습이 나란히, 쭉….
“가위, 바위, 보.”
주먹을 든 내 모습이 무수히 비친다.
나는 몇 번 더 반복했다.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바위보….
“가위, 바위, 보.”
다섯 번째 가위바위보에서 주먹을 낸 순간이었다.
반복되는 내 거울상들 속에서 이질적인 것이 보였다.
…하나가 손을 휙 펴고 있다.
주먹 쥔 내 모습들 사이에 유일하게 손을 활짝 벌린 뒷모습이, 거울 저편 상에 맺혀있다.
“…….”
나는 손을 든 채로 얼어붙었다.
거울 속 저 멀리서 펼친 손바닥을 든 김솔음이, 천천히 고개를 돌려서….
나를 돌아보고 웃는다.
활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