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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496화


“과연, 음성만기지체로군. 바로 그렇다. 이렇게 몸을 움직인다면 본좌가 인정하지 않은 존재는 이 몸을 따라오지 못하는 것이다.”

그가 자리를 옮기자 원래 있던 자리에서 검푸른 가루들이 흩날렸다. 만장탈혼산의 가루였던 것이다. 그것을 확인한 관성은 절로 침음을 흘렸다.

“으음, 설마 했는데 그런 의미였다니……. 당신은…, 혹시 당신은 천사(天邪)의 후예요?”

운성현은 경악한 얼굴을 했다.

“처, 천사?”

동천 또한 그 못지 않게 놀라했다.

“그, 그럴 수가! ……그게 누구지?”

남들이 놀라자 혼자 바보 되는 것이 싫어서 덩달아 놀라준 것이었다. 그런데 일단 놀라자 어디선가 한번 들어본 것만 같았다.

“가만, 천사? 어느 분께 들어본 것만 같은데? 어느 분이었더라? 천사. 천사. 천사 소비양. 소비양. 소비양…. 엥? 처, 천사(天邪) 소비양(素飛瀁)?”

천사 소비양. 천마(天魔) 자강(紫剛)이 죽고 난 후 정확히 삼 백년 후에 등장한 자. 인간의 상식 밖의 무공으로 등장하여 어언 백년동안 1천여 번의 결투에서 무패의 신화를 세우며, 마지막 절규에 찬 목소리로 천마를 향해 이렇게 소리친 자.

“천마. 그와 동시대에 태어나지 못한 것이 내 평생의 한으로 남는구나! 그러나, 그러나 그의 진전을 모두 전수 받은 자가 먼 훗날에라도 나타난다면 내 이 썩어빠진 육신을 벗어나서라도 그와 대결을 하리라!”

그렇게 소리치며 사라진, 천사의 후예로 추정되는 자가 눈앞에 등장한 것이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동천에게 일러준 것은 사부인 역천이었다.

“아, 맞다! 사부님께서 금이야 옥이야 새겨들라고 들려주신 이야기였지? 흑흑, 사부님의 안배가 실로 이럴 때 빛나는구나! 사부, 역시 당신은 위대하셨습니다. 흑, 싸부우우우!”

거기서 왜 안배로 이어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중요한 장면이니 상관 말고 넘어가기로 하자.

“훗, 본좌의 후예라고? 본좌는 본좌일 뿐이다.”

“그 무슨…, 허억?”

모두를 대변해 헛바람을 들이킨 관성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미, 믿을 수 없소. 그, 그렇다면, 그렇다면 처, 천사 본인이시란 말이오?”

중년인은 단호하게 말했다.

“그렇다.”

이에 관성은 실성한 듯 외쳤다.

“이 말도 안돼는 일이! 당신은 칠 백년 전의 사람이야!”

관성의 외침에 동천의 머리가 바쁘게 돌아갔다.

“에에, 그러니까 천사가 지금 시대로부터 천 이 백년 전의 사람이니까 칠 백년 전의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지금 이 꿈이…, 에, 오 백년 전의 꿈인가? 맞나?”

굳이 대답해주자면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지금 그는 시공을 초월한 장면을 보고있는 것이었다. 지금의 꿈이 소연의 음식을 먹고 꾸게된 것이라면 약간(?)의 사기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그건 그렇지만도 않다. 소연의 자극적인 음식은 동천의 정신을 뒤흔들어 놓았고, 그것의 영향으로 오랫동안 흩어지지 않고 남아있었던 잔존사념(殘存邪念)이 동천의 뇌리로 흘러들어 온 것이었다. 그것을 동천은 꿈으로 느끼고있고 말이다.

“히야, 간만의 편안한 꿈이지만 진짜 그럴싸하구나. 헌데 이런걸 개꿈이라고 하는 건가?”

동천의 개꿈은 그렇게 계속 이어졌다.

“감히 속일 생각은 마시오! 나는 만독문의 문주외다!”

자신이 천사 소비양 본인이라고 주장한 중년인은 이런 반응에 익숙해져있는 듯 차분하게 말했다.

“어쩔 수 없구나. 잠시 놀아줄 터이니 덤벼보거라.”

잠시 주저하던 관성은 이를 악물고 전신의 내공을 끌어올렸다. 이어, 당연하다는 듯 그의 몸에서 퍼져 나오는 푸른 기류. 그것은 동천이 지니고있고, 한번 견식도 해본 적 있는 만독혼원공(萬毒混元攻)이었다. 운성현이 급히 물러서는 가운데 빛살처럼 신형을 날린 관성은 당주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빠른 몸놀림을 보여주었다.

“능멸한 대가는 죽음이외다!”

상대의 공세를 간발의 차이로 피한 중년인은 낮게 웃었다.

“후후, 그럼 난 죽지 않겠군.”

관성은 첫 번째 공격이 무위로 돌아가자 신형을 틀며 눈부신 탄력으로 중년인에게 다가들었다. 그러자 중년인이 눈웃음을 치는가 싶더니, 그 자리에서 조용히 사라져버렸다. 당황한 나머지 주춤 멈춰버린 관성은 상대의 기척을 감지하려는 듯 눈을 감고 전신을 보호했다.

‘진정하자. 사술이라고 해도 움직임은 있을 터. 그때를 노리면 되는 것이다.’

가장 교본서적인 방법을 택했지만 아쉽게도 틀린 접근방법이었음이 곧 입증되었다. 어디로 어떻게 다가왔는지, 그의 좌측에서 나타난 중년인이 차디찬 손으로 그의 목을 거머쥐었던 것이다.

“움직이지 마라. 네 수하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이다.”

그 말을 듣고도 감히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은 몇 안되리라.

‘이, 이것이 바로 천사 소비양의 무공이란 말인가? 과연 고대의 무인들이 두려움을 느낄만한 것이로구나!’

참으로 허무하게 제압된 그는 진땀을 빼가며 물었다.

“정녕 천사란 말입니까? 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가 움직이지 못하는 사이 그의 물건 몇 가지를 빼낸 중년인은 약간 떨어진 후 하나하나 살폈다.

“이미 그렇다고 말하지 않았느냐. 그리고 원하는 것은 잠시 뒤에 말하겠다. 헌데, 이것 참 재미있군. 연구일지인가?”

관성은 일그러진 얼굴로 대답했다.

“그, 그렇습니다.”

그는 이미 천사 소비양 본인이라고 인정한 듯 싶었다. 정작 소비양 본인은 사술이 아니라고 말하지만, 사술의 대명사로 치부되는 그이기에 관성은 그가 어떠한 술법으로 되살아난 것이라 여겼던 것이다. 중년인은, 아니 소비양은 연구일지를 꽤 장시간 읽었다. 마침내 모든 내용을 읽고 난 그는 흥미롭다는 말투로 입을 열었다.

“그 전설의 불사강시에 접근했다니, 이것 참 재미있군. 만독문의 독특한 강시 제조법으로 만들어진다면 불사독인강시(不死毒人屍)가 되는 것인가?”

관성은 기계적으로 같은 대답만을 반복했다.

“그렇습니다.”

연구일지를 관성에게 되돌려준 소비양은 대뜸 명했다.

“써라.”

관성은 기대도 않던 것이 되돌아오자 얼떨떨한 기분으로 물었다.

“무슨 말씀이온 지.”

“너는 본좌의 정체를 알았으니 죽어야할 운명이다. 그러나 그것과 더불어 이곳의 모든 물건들은 고스란히 남겨주겠다. 본좌의 마지막 남은 배려이니 후대를 위해 네가 쓰고싶은 이야기를 쓰라는 얘기다. 단, 본좌의 언급은 피할 것이며 불사강시의 완성방법을 기재하지 말아야 한다.”

관성은 의아해했다.

‘저자의 언급을 피하는 것은 이해가 간다. 하지만 이미 앞쪽에 불사강시의 제조법이 적혀있거늘 무엇 때문에 또 적을 것이라 단정지은 것일까?’

왠지 불길한 마음이 일었지만 자신의 목숨을 각오한 마당이니 주저는 없었다. 그런데 그가 품속에서 기재 도구를 꺼내들자 사태를 주시하고있던 운성현이 소리쳤다.

“내가 수락한 제의도 언급하지 마시오!”

눈살을 찌푸린 관성은 눈짓으로 소비양의 의향을 물었다. 소비양은 운성현에게 손을 들어주었다.

“나쁠 것은 없지. 저 아이의 말대로 하거라.”

지긋이 입술을 깨문 관성은 소비양의 명령을 따랐다. 촐랑거리며 그에게 다가간 동천은 그가 쓰는 내용을 주욱 읽었다.

“참으로 어이가 없다. 그런 간단한 조건을 받아들일 줄이야. 고작 그러한 조건을 이행해주면 대법의 제약을 그대로 받아들이겠다니……. 쳇, 이봐요 영감. 잘 좀 써요. 이따위로밖에 못 써요?”

그것은 앞서 민묘희가 읽었던 부분이었다. 한참을 써 내려간 그는 마지막 부분에 점을 찍고 그것을 소비양에게 건네주었다. 차근차근 내용을 살펴본 소비양은 조용한 눈으로 관성을 바라보았다.

“어째서 하지도 않은 짓을 써놓은 것이냐.”

소비양은 운성현을 만년설빙수로 얼려놓지도 않았으면서 얼려놓았다고 기술한 부분을 지적하는 것이었다. 최후의 도박이라고 생각한 관성은 태연한 척 대답했다.

“그곳에 적혀있기를 과연 천사께서 제가 안배한 것을 깨트릴 수 있을까, 라는 부분이 있을 겁니다.”

소비양은 다시 가볍게 살펴보았다.

“그렇군. 본좌가 불사강시의 존재에 다가간 저 아이를 파괴시키려해도 이미 얼어버린 관을 파괴할 수 없으니 이 글을 읽는다면 얼굴이 일그러질 것이라 적혀있어. 그래서?”

“전 분명 죽게될 것입니다.”

“그렇다.”

너무도 확고한 대답에 관성은 치를 떨었다.

“하지만…, 그냥 죽기에는 너무 억울합니다. 제 청춘의 모든 것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이 눈앞에 있거늘 어찌 허무하게 날릴 수 있단 말입니까. 처음에 말씀하시길, 제 후대를 위해 이곳의 모든 것을 남겨둔다 하셨으니 저 운성현도 거기에 포함시켜 달라는 것입니다. 만일 모든 준비를 마친 뒤, 약조하신 대로 관 자체에 손상만 입히지 않는다면 운성현을 어찌하신다해도 그때는 아무 말 않겠습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소비양은 연구일지를 들어 관성의 유언장이라고 할 수 있는 부분을 넘겨보았다.

“후후, 차선책이 있다면 오 백년 후 저절로 녹을 때 뿐이라?”

그는 만족스런 얼굴로 연구일지 중간의 한 묶음을 가볍게 쓸어 내렸다. 그러자 검은 먹물이 그의 손에 딸려 나왔다. 관성은 뒤늦게 어찌된 일인지 깨달았다.

“무슨!”

눈에 불을 켠 관성이 항의조로 한발 다가갔으나 손을 들어 제지한 소비양에 의해 멈출 수밖에 없었다.

“내 너의 조건을 받아들이는 대신 불사강시의 제조법에 관한 부분은 지워버렸다.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공평하지 않겠느냐.”

소비양은 그 후 운성현을 바라보았다. 느긋하게 그들을 지켜보던 동천은 어쩐지 보고있는 그들이 점점 멀어진다고 생각했다.

“얼레?”

그런 생각이 들자 주위의 모든 것들이 급속도로 멀어지기 시작했다. 그는 직감적으로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알 수 있었다.

“뭐, 뭐야. 깨어나는 거야? 안돼! 한참 재미있는 장면인데!”

동천은 바락바락 소리를 지르며 깨어났다.

“으아악! 안돼!”

“주군, 괜찮으십니까?”

도연을 바라본 동천은 가쁜 숨을 내쉬었다.

“헉헉헉. 니가, 헉헉, 니가 깨웠냐?”

도연은 고개를 저었다.

“아닙니다. 혼자 앓는 소리를 하시다가 방금 저절로 깨어나신 겁니다.”

“그래? 헉헉.”

동천의 얼굴을 보니 때릴 명분이 없어 아쉽다는 표정이었다.

“한데 속은 괜찮으십니까?”

순간 동천은 눈을 반짝였다. 그 말을 듣자 생각나는 것이 있었던 것이다.

“이봐요, 중 대인. 그거 안 버렸죠?”

중소구는 흔쾌히 대답했다.

“흘흘, 물론이다. 본 대인의 것도 먹겠느냐?”

중소구는 얼른 처먹고 또 기절하라는 심보였지만, 그것을 알 리가 없는 동천은 사근사근하게 대답했다.

“그러면 감사하죠. 헤헤.”

중소구는 인심쓰듯 차갑게 식어버린 음식을 건네주었다.

“옜다, 먹어라.”

그것을 넙죽 받아 게걸스럽게 먹어치운 동천은 배가 찼는지 포만감 가득한 얼굴로 드러누웠다.

“꺼억, 좀 짜네?”

이에 황당한 것은 중소구였다.

“짜? 고작 짤 뿐이야?”

그에게 더 이상 잘 보일 필요가 없어진 동천은 건성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할 것이 있어 바쁘니까 한말 또 하게 만들지 마요.”

도연이 물어보았다.

“그것이 무슨 생각이십니까?”

동천은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일어나 앉았다.

“그게 말야. 혹시 관성이라는 이름을 들어봤냐?”

당연히 도연의 고개가 돌아갔다. 당대에 이름을 떨치는 사람도 아니고, 몇 백년 전의 만독문주를 도연이 어찌 알겠는가.

“그렇게 말씀하시면 범위가 너무 넓습니다.”

억지부리기 좋아하는 동천도 딴엔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래? 그럼 좀 범위를 좁혀 줄게. 무림인이야. 그리고 만독문과 관계가 있지.”

“만독문 말씀입니까?”

결국 동천은 도연의 머리를 때렸다.

“이씨, 하신 말 또 하시게 만들지 말라니까?”

그때 골똘히 생각하던 중소구가 고개를 번쩍 들었다.

“아? 혹시, 만독문의 선대 문주 중 한 명이 아니더냐?”

동천은 일부러 헷갈리는 척했다.

“아마도 그럴 걸요? 헌데 중 대인께서 알고 계시는 그 분은 언제 적의 인물인가요?”

“어디 보자. 지금 만독문의 문주가 38대니까…, 에에.”

계산 문제가 나오자 조금 힘에 부치는 듯 싶었다. 동천은 알아서 끊어주었다.

“잠깐만요. 14대에서 38대까지라면 적어도 구 백년에서 그 이상의 세월이 지나야 정상인데, 고작 오 백년의 세월동안 그렇게 많은 문주가 바뀌었어요?”

중소구는 눈을 똥그랗게 떴다. 자신보다 셈이 빠른 것에 놀란 것이다.

“어, 설마 알고있는 것을 물어본 것이냐?”

동천은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아니요. 모르니까 지금 물어보는 거잖아요. 그게 어떻게 된 일이냐니까요?”

도연까지 궁금해하는 눈치이자 중소구는 간만에 폼을 잡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어험! 그러니까 만독문의 제14대 문주인 관성은 이미 선조 대에서 포기한 불사강시에 대해 유난히도 집착한 인물이었다. 그래서 좀더 많은 지식을 얻기 위해 본거지인 절강성을 떠나 중원의 한가운데로 그 거점을 옮긴 후 소리소문 없이 잠적한 인물이지. 처음에는 만독문과 소식이 오고갔던 모양이야. 만독문이 잘 돌아간 것을 보면. 헌데, 몇십 년이 지나면서부터 소식이 끊겼지. 당연히 부 문주인 그의 부인이 그를 찾아 나섰지만 웬일인지 돌아온 것은 그녀의 시동뿐이었어.

그러니 무주공산(無主空山)이 되어버린 만독문이 어떻게 되었겠느냐. 아주 개차반이 된 만독문은 자고 일어나면 문주가 뒤바뀌는 그런 어이없는 상황이 반복되기 시작했지. 급기야는 분열이 일어나기도 했지만 시작이 있으면 끝도 있는 법. 백년 전 37대 문주인 부독시마(腐毒屍魔) 장일섭(張一燮)의 등장으로 만독문은 깨끗이 정리되었고, 지금까지 그 위세를 떨치고있는 것이다. 헌데, 그건 왜 묻느냐?”

동천은 별거 아니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아아, 너무 알려고 들면 다치니까 그 문제는 거기에서 끝내요. 대신 다른 것 좀 물어볼게요. 혹시, 천사 소비양이 오 백년 전쯤에 다시 등장한 적이 있었어요?”

고개를 갸웃거린 중소구는 먹을 거 잘못 먹은 후유증이 이런 식으로도 나타나는지 잠깐 의문을 품었다. 그러나 후유증치고는 어느 정도 지식을 갖추고있는지라 아리송할 뿐이었다.

“이놈아, 아무리 만능인 본 대인이라 해도 그렇게 갑자기 물어보면 난감한 법이야.”

동천은 내심 혀를 내둘렀다.

‘누가 너보고 만능이라디? 이게 미쳤나.’

그는 한소리 해주려다 꾹 참았다. 그리고 약간(?) 깔보는 듯한 눈으로 중소구를 흘겨보았다.

“에이, 그럼 모른다는 거예요?”

중소구는 공연히 화를 냈다.

“본 대인이 모르긴 뭘 몰라! 천 이 백년 전에 죽은 인간이 칠 백년 후에 다시 등장할 이유가 없으니까 그런 거 아냐!”

말싸움하기 싫어진 동천은 더 이상 얻어낼 것이 없는 듯하자 그만 두기로 했다.

“알았어요. 막힌 혈도나 풀라고요.”

중소구도 굳이 물어볼 마음이 없어 옆으로 드러누웠다. 도연만이 세 그릇이나 먹고도 무사한 주군을 신기하게 보았지만 ‘왜 꼴아 봐?’ 라는 동천의 물음에 곧 관심을 끊었다.


“생각보다 내 몸이 작구나.”

밖으로 나가 빨래를 하고 온 소연은 푸른색 남자 상의를 뜯어고치고 있었다. 팔 소매를 좀 줄이고 옆구리 선을 안쪽으로 바느질했는데도 여전히 헐렁였던 것이다. 덕분에 벌써 세 번째 작업에 들어가고 있었지만 천성인지 할 게 그것밖에 없어서인지 지루함을 느끼진 않았다.

“다 됐다. 어디 한번 입어볼까?”

웃옷을 벗고 새 옷으로 갈아입은 그녀는 이번 역시 마음에 안 들어 옷을 벗으려했다. 그러나 민묘희의 등장에 놀란 토끼 얼굴을 하고 벗던 몸을 움츠렸다.

“오, 오셨어요?”

민묘희는 표정의 변화 없이 안으로 들어왔다.

“무얼 하고 있는 게냐.”

소연은 헐렁한 옷을 다시 입으며 말했다.

“지금 제가 입고있는 옷을 줄이고 있습니다.”

그러자 민묘희가 대뜸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해 보이니 굳이 건들일 필요는 없겠구나.”

“예? 이게 괜찮아 보이세요? 제가 보기엔 어깨선이 좀 부풀어 보이는데 그렇지 않나요?”

“네 마음대로 하거라.”

쓸데없이 시간 낭비하기 싫었던 민묘희는 화정이에게 가까이 앉은 후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보다 내 여지껏 이 아이에 대해 소홀히 했구나. 어떻게되는 아이냐.”

그 물음에 제법 진지해진 소연은 나직이 한숨까지 내쉰 뒤 입을 열었다.

“이름은 화정이고요. 강시예요.”

“강시?”

민묘희는 소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화정이의 머리를 들어 백회혈을 살펴보았다. 순간 그녀의 눈이 번뜩였다.

‘대법이 시전된 흔적이 있긴 한데 장침(長針)을 적어도 다섯 번 이상이나 놓았다. 장침 하나에 한번의 대법을 가정한다면 적어도 다섯 번은 실패했다는 말인데…….’

“초혼강시로구나.”

“예, 민낭.”

민묘희는 소연의 대답을 듣고 다시 자신만의 생각에 빠졌다.

‘초혼강시의 제조에는 상당한 금액이 투입되어야한다. 웬만한 중급 문파의 일년 운영비와 맞먹는다고 할 정도이다. 그런데 그 대법을 다섯 번 이상이나 시행한 이유가 무얼까? 이 정도면 포기할 만도 하거늘 그렇지 않은 이유가 대체 무어란 말인가.’

그녀는 생각을 멈추고 소연을 바라보았다.

“이 아이는 어떻게 얻은 것이냐.”

“말씀을 드리자면 좀 긴데요. 예전에 화정이가 관 속에 운반되어 왔을 때…….”

이야기를 듣고 난 민묘희는 소연에서 건질만한 것이 없자 하는 수 없이 또다시 물어봐야만 했다.

“허면, 이 아이를 얻은 후엔 아무 이상도 없었단 말이냐?”

소연은 묻는 의도를 정확히 몰라 대충 있는 그대로만 받아들였다.

“예, 글도 잘 배웠고요. 언어를 배우는 것도 잘 배웠고요. 또 뭐가 있더라?”

민묘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아니, 그것을 묻는 것이 아니다. 내 말은 대법이 깨지는 듯한 징후가 보이지 않았냐는 말이다.”

“대법이 깨지는 징후요?”

소연의 얼굴에서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이 떠오르자 민묘희는 그만두기로 했다.

“좋다. 헌데 이 아이가 정신을 잃고있는 이유는 무엇이더냐.”

“모르겠습니다. 암흑마교에서 나올 때 그냥 갑자기 열이 펄펄 끓다가 쫓아온 살수들을 죽이고 기절했다가 나중에 다시 깨어나 밥을 잔뜩 먹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가…….”

“그만 되었다. 듣는 내가 다 골치 아프구나.”

“죄, 죄송합니다.”

민묘희는 고개를 조아리는 소연에게서 시선을 뗐다. 대신 편안한 얼굴로 잠을 청하고있는 화정이에게 관심을 보였다.

“나 또한 강시에 관해 상당한 지식이 있다. 그리고 선조께서 남겨주신 강시를 다루고있는 중이기도 하다. 어떠냐.”

소연은 지레 주춤거렸다.

“예? 뭐, 뭐가 요?”

“아무래도 저 아이의 대법이 불안정한 것 같아 살펴보고 싶다는 것이다.”

“그, 그게. 아무래도…….”

이런 일에 소심했던 소연은 좀체 대답을 하지 못했다. 화정이의 상태가 예전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고있었지만 화정이가 그녀의 소유물도 아닐뿐더러, 민낭이 그녀를 함부로 대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밋밋한 태도를 보이는 것이다. 우물쭈물 대는 소연을 지켜보던 민묘희는 좀더 생각할 기회를 줄 겸 한발 물러서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아무래도 단시간에 결정할 문제가 아닐 듯 싶구나. 넉넉한 시간을 줄 터이니 차근차근 생각해보거라.”

소연은 살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고 얼른 대답했다.

“예, 민낭. 그렇게 하겠습니다.”

그녀의 대답을 받고 화정이를 한번 더 돌아본 민묘희는 왔던 것처럼 그렇게 소리 없이 빠져나갔다. 그것을 확인한 소연은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에휴.”

진땀을 뺀 소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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