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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05화


연녹색 액체가 점점 푸른색으로 물들어가자 민묘희는 약간의 웃음을 띄었다. 그녀는 마침내 자신이 원하던 색깔이 나오자 지체 없이 다음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강철보다 비늘이 단단하다는 **철린묵갑사(鐵鱗墨鉀蛇)**의 가죽장갑을 낀 그녀는 신중하게 이불을 펼쳐내고 고치처럼 단단하게 동여매진 화정이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현철도 베어버리는 거미줄이기에 마찰 없이 옮겨놔야 하는 것이다. 관속의 푸른 액체는 하얀 물체를 받아들이자 흐느끼듯 밖으로 넘쳐흘렀다.

“키잇! 취이잇!”

본능적으로 위험을 느꼈는지 화정이의 가슴께로 추정되는 곳이 심하게 요동을 쳤다. 어처구니없게도 최적의 방어를 위해 둘러쌓았던 거미줄이 지금에 와서는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방해를 하고있는 것이다. 고치가 흔들리자 한쪽 눈썹을 꿈틀한 민묘희는 이를 악물고 참아가며 원래대로의 진행 속도를 유지시켰다.

‘조금만! 조금만 더……, 됐다!’

고치를 푹 담그고 나서야 손을 빼낸 그녀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관속의 상태를 주시했다. 인면지주가 날뛰는지 고치가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간혹 관의 옆면에 부딪치기라도 하면 예리하게 손상된 자국들이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나마 현철로 만들어진 관이었으니 망정이지, 평범한 재료로 만든 관이었다면 작살이 나도 벌써 작살이 났으리라. 초조한 시간이 억겁처럼 흐르고 좌우로 요동을 쳐대던 인면지주는 서서히 그 움직임을 멈추어갔다.

‘다행이다. 만일을 위해 지극히 아껴두었던 빙염청약석(氷鹽靑藥石)의 가루를 쏟아 붓다시피 투여한 것이 효과를 보고있는 것 같구나.’

빙염청약석의 가루는 강시를 보존하는데 있어 생명유지와 부패방지를 위해 꼭 필요한 재료였다. 구하기가 극히 어렵고 부르는 게 값일 정도로 엄청 고가로 팔리는 이 물건은 생명체에게는 이롭기 그지없는 것이었지만 단 하나, 독을 지닌 생물들에겐 치명적인 물건이었다. 근처에만 다가가도 사지를 비틀고 나자빠지게 하는 것이 바로 빙염청약석인 것이다. 그러나 인면지주가 어떠한 독물이던가. 천하에 독으로서 당해내지 못하는 생물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독중독(毒中毒)의 제왕이 아니던가. 빙염청약석으로는 어림도 없는 것이었지만, 마취제 역할은 할 수 있어 지금 상황에서는 최고의 효과를 발휘하고있는 중인 것이다.

“미, 민낭. 손에서 피가.”

인면지주의 괴성에 놀라 엉덩방아를 찧었던 소연은 사고의 장갑이 걸레가 되다시피 너덜너덜해져 있자 떨리는 음성으로 가르쳐주었다. 민묘희는 힐끔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을 뿐 그다지 관심을 쏟지 않았다. 지금 그따위 상처가 대수이던가? 일이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상처고 뭐고 인면지주에 의해 단숨에 녹아버릴텐데 말이다. 부력으로 인해 둥둥 떠있던 고치는 마침내 잠잠해졌고, 관 뚜껑을 닫아버린 민묘희는 살았다는 표정으로 깊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소연은 자신의 팔 소매를 찢어버린 후 사고의 손을 동여매 주며 물었다.

“왜 화정이를 저곳에 담가둔 거죠? 인면지주가 그대로 있잖아요.”

민묘희는 소연에게 손을 내맡기고 차분히 대답해주었다.

“우리의 힘만으로 인면지주를 화정이에게서 떼어놓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마련한 차선책이 인면지주를 마취시켜 일을 도모하자는 것이지.”

그제야 알겠다는 듯 소연이 말했다.

“그래서 방금 하신 일이 인면지주를 마취시키는 일이셨군요?”

민묘희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그러나 인면지주의 마취는 아까 뿌렸던 푸른 가루약의 효능이 남아있을 때까지다. 여유 분이 조금 남아있긴 하지만 길어야 한달. 그 안에 거미줄을 끊거나 풀어야하지만 어림도 없는 일이겠지?”

갑자기 민묘희가 물어보는 식으로 소연을 바라보자 당황한 그녀는 얼떨결에 ‘예’ 라고 대답해주었다. 민묘희는 다시 이어 말했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저 인면지주를 고치 안에서 소멸시켜버리자는 것이란다.”

소연은 밝아진 얼굴로 웃음꽃을 피웠다.

“알았다! 그러니까 저 안에서 익사를 시키자는 말이죠?”

“…….”

잠시 어이없어 하던 민묘희는 헛기침을 하고 난 후에야 고개를 저었다.

“그것이 아니라 저 인면지주가 화정이의 음기를 빼앗으려 했다면 되려 우리 쪽에서도 인면지주의 음기를 빼앗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이야기였다. 이해가 가느냐?”

대번에 얼굴을 붉힌 소연은 어디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으로 고개를 푹 숙였다. 그녀는 모기 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예, 민낭….”

민묘희는 개의치 않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그렇게 해서 인면지주를 소멸시킨다고 가정한다면 화정이만으로는 부족하지.”

“아하, 그래서 필요한 것이 이곳의 또 다른 강시지요?”

소연의 얼굴을 보아하니 이번만큼은 꼭 맞춰보겠다는 각오였다. 그녀의 의지가 빛을 발했는지 민묘희가 미소를 지어 보였다.

“바로 맞추었다. 하나로는 힘들겠지만 둘이 되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고.”

희망이 보이는 듯 하자 소연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라했다.

“정말 다행이에요. 화정이가 어떻게되기라도 했다면 전 정말 죽어버리고 말았을 거예요.”

민묘희는 돌연 굳어진 얼굴로 소연을 질책했다.

“못하는 소리가 없구나.”

찔끔한 소연은 고개를 자라목처럼 쏘옥 집어넣었다.

“죄송해요. 너무도 기뻐서 그만…….”

“됐다. 나는 이곳을 지켜보고 있어야 하니까 너는 그만 가서 쉬거라.”

소연은 당황한 듯 소리쳤다.

“그, 그럴 수는 없어요!”

소연이 강력하게 고개를 저어대자 차마 그녀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던지 결국 민묘희도 남아있는 것을 허락해주었다.

“어쩔 수 없구나. 그저 지켜보기만 하거라.”

“예, 민낭! 감사합니다!”

시간을 그렇게 흘러가기 시작했다.


“청산! 에헤, 날 버리고 가시는 임은 목가지 조심하세요. 랄라, 그래도 옛정을 생각해서 안 아프게 짤라줄게요. 처엉산!”

“시끄러워! 그 같잖지도 않은 걸 노래라고 부르고있냐?”

듣다못한 중소구가 소리치자 동천은 다소 광기 어린 눈으로 팩 돌아보았다. 그는 빽 고함을 질렀다.

“니가 열두 줄 예술을 알아? 겨우 두 줄 째 노랫가락을 들어놓고 감히 그따위로 짖어댈 수 있는 거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아 잠시 얼떨떨해하던 중소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열두 줄이고 열 줄이고 간에, 듣는 사람이 거북하면 알아서 입을 다물어야지 이 미친놈아!”

동천이 미친놈 소리를 듣는 것은 어제오늘이 아니었다. 그러나 근자에 와서는 정말로 미친놈이 되어버렸는지도 몰랐다. 혈도를 푸는 일은 끊임없이 반복되지, 탈출할 희망은 점점 멀어지지…. 동천의 성격에 미치지 않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었다. 중소구는 가래를 내뱉으며 말을 이었다.

“카악, 퉤! 그나마 몇 개월 전에 탈출할 기회가 있었는데 그것을 놓치다니……. 뭐? 배가 고파서 혈도를 뚫을 수 없어? 에라 이, 죽어라 자식아!”

민묘희가 인면지주의 일로 닷새간 찾아오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였다. 처음 이틀간은 기회라고 생각하며 혈도를 뚫어갔는데 사흘이 지나고 나흘이 지나가자 운기할 힘이 쪽 빠져버려서 골골대다가 아사 직전에 살아난 것이었다. 사실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이지 혈도를 푸는 일은 엄청난 심력을 쏟아 부어야하는 작업이었다. 아무리 냉철했을 때의 동천이라도 내공을 되찾았을 때의 신체가 아닌 이상 한계를 느끼면 쉬어야하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하니, 원래의 동천으로 돌아오면 오로지 먹을 것만 찾게되었고 주위의 응원에 힘입어 재차 운기에 들어가긴 했지만 나흘을 분기점으로 포기해버린 것이었다.

의외로 그때의 일을 스스로 자책한 동천은 점점 혼잣말을 하는 시간이 늘어나더니, 종래에는 ‘우리에겐 내일은 없다.’ 느니 ‘종말은 다가온다.’ 느니 그런 헛소리를 지껄여가며 시간을 때웠다. 그러는 와중에 민묘희에게 개기다가 하루 종일 쇠사슬에 매달려 지내야하는 형벌을 종종 받기도 했다. 신경도 예민해질 대로 예민해져서 그나마 존댓말을 섞어가며 예의를 차려주었던 중소구에게도 반말로 일관하기가 대수였고 말이다. 갑자기 슬픔이 밀려온 동천은 나직이 흐느꼈다.

“누구는 이런 곳에서 힘겹게 살아가시는데 누구는 밖에서 띵가띵가 놀고 자빠지고 있겠지? 아아, 빌어먹을 세상아!”

중소구도 동천의 슬픔이 전해져오는지 화가 난 기색을 풀었다.

“그래, 네놈이 무슨 잘못이 있겠냐. 세상사는 게 다 그렇지.”

중간에 낀 도연은 아무 말이 없었다.


“쿠울, 쿨.”

막다른 지하 방안에서 꾸벅꾸벅 선잠을 자고있던 소연은 중심을 잃고 뒤로 넘어가려는 찰나 다급히 정신을 차렸다.

“아, 또 잤구나. 그간 이곳을 지키랴, 틈틈이 공부와 수련을 쌓으랴. 아함! 졸려 죽겠네.”

이러한 생활도 벌써 7개월에 접어든 것 같았다. 인면지주를 사흘간 방치시킨 민묘희는 나흘째 되던 날, **음성만기지체(陰性滿氣肢體)**인 운성현을 꺼내 화정이가 안치되어있는 관으로 옮겼다. 그때만 생각하면 얼마나 가슴이 떨리는지 몰랐다. 꺼내진 운성현의 얼굴이 꿈에서나 볼 수 있을 듯한 **미안(美顔)**을 자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여려 보이는 가녀린 윤곽선은 그녀의 가슴을 설레게 만들었고, 여인과도 같은 섬세한 붉은 입술은 단숨에라도 그녀의 영혼을 빼앗아갈 것만 같았다. 순간 자책한 그녀는 ‘이래서는 안돼! 나에겐 주인님이 있어!’ 라고 마음을 곧추세웠지만 두근거리는 가슴은 진정시킬 수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었지만 음성만기지체는 천성적으로 여인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어느 정도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고 말이다.

“아아, 주인님은 지금쯤 어디에 계실까. 벌써 본교로 돌아가셨을까? 그래서 나와 화정이를 기다리고 계실까? 사고님의 말씀으로는, 이제 거의 인면지주의 기운을 흡수해서 꺼낼 시기가 왔다고는 하지만 그게 벌써 한달 째니……. 후우, 빨리 화정이를 데리고 가서 주인님을 뵙고싶어. 쫓겨 나온 몸이라서 만나 뵐 수나 있을지 모르지만.”

민묘희는 소연에게 아직 미완의 운성현은 음기를 흡수할 수 있는 최적의 조건을 가지고있다고 안심시켰다. 화정이도 그 영향을 받아 어느 정도 음기를 흡수하긴 했지만, 한쪽만 활발하게 음기를 빨아들이는 탓에 생각보다 시일이 걸리는 것이라고 말해줬다. 그러나, 소연이 철석같이 믿고있는 그 이야기는 사실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사실 민묘희는 운성현이 인면지주뿐만이 아니라 화정이의 음기까지도 빨아들여 불사강시에 도달하게 만들려는 무서운 속셈이 있었던 것이다.

전혀 의도하지 않은 상태에서 불현듯 떠올랐던 생각. 민묘희는 14대 문주인 관성과 인면지주와의 관계를 떠올렸을 때, 인면지주의 음기를 이용한다면 초혼강시 수준에 머물러있는 운성현을 단숨에 불사강시까지 끌어올릴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아무 이상도 없더냐.”

사고가 들어오자 소연은 약간 물러서서 고개를 숙였다.

“오셨어요? 여기는 평소와 똑같아요.”

민묘희가 힐끗 투명 관 뚜껑 안을 바라보았다. 어느덧 둥둥 떠있던 고치도 잠겨들어 푸른색의 액체만이 반기고있을 따름이었다. 그녀는 말했다.

“이제 좀 가서 쉬어라. 자고 나서 다른 일에 소홀히 하는 것도 잊지 말고.”

“예, 민낭. 수고하세요.”

소연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관 뚜껑을 열어 제킨 민묘희는 색깔이 변질될 조짐이 보이자 마지막으로 남아있는 빙염청약석 가루를 뿌려주었다.

“이것이 마지막이니 암거래시장 곳곳을 돌아다니며 다시 구해와야겠군.”

일반적으로 강시의 보존액을 **연혼수(淵魂水)**라고 불렀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 사용되는 연혼수는 온전한 것이 아닌 모방에 불과했다. 고대로부터 내려오던 비법은 어느 날 갑자기 불사강시의 제조 방법과 함께 끊겨버렸고, 그 때문에 연구를 거듭해 복구해낸 것이 주기적으로 빙염청약석을 뿌려줘야 하는 오늘날의 연혼수인 것이다.

탁!

관 뚜껑을 다시 덮은 그녀는 고치가 담겨진 쪽을 바라보며 스스로에게 다짐하듯 말했다.

“인면지주가 선대의 문주님과 어떠한 관계가 있었든 지금은 상관없다. 나 스스로가 인면지주를 통해 불사강시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 자신하고있으니까. 화정이는…. 그래, 너에게는 미안한 마음이 있다. 하지만 네가 불사강시의 부활에 크나큰 밑거름이 되었으니 소연만큼은 책임지고 지켜주겠다. 내 약속하마.”

민묘희는 화정이의 소멸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있었다. 그녀가 고치 안을 들여다보지는 못했지만 인면지주의 날뜀으로 인해 어떠한 상태로든 회생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버렸을 것이라 여겼다. 어쩌면 인면지주보다는 음기가 약한 화정이가 먼저 음기를 끊임없이 빨아들일 수 있는 음성만기지체의 운성현에게 희생되었는지도 몰랐다.

‘음기를 빨아들이는 이 방법은 오직 음성만기지체만이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리 우수한 신체로 만들어진 초혼강시라 하더라도 음기를 받아들이는 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운성현은 그 한계를 가뿐히 뛰어넘을 수 있는 신체다. 더군다나 독강시체제로 만들어졌기에 인면지주의 독을 흡수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는 대항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연후에 흡수한 음기가 독기를 제압할 정도까지 간다면 그것마저 흡수하여 무적의 불사독인강시가 탄생하는 것이고 말이다. 아니, 꼭 불사독인강시가 될 것이다! 이지를 회복시키는 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운성현을 깨우기 전에 한번만 더 시술을 한다면 그것도 문제가 없게된다. 그러니 운성현 너는 반드시 불사독인강시가 되어야하는 것이다. 반드시!’

자못 흥분을 했는지 그녀의 숨결이 거칠어졌다. 숨을 고르고 평온함을 유지시킨 그녀는 살며시 관 뚜껑을 쓰다듬었다.

“꼭 성공해야해. 꼭…….”

그렇다면 여기에서 잠깐 화정이로 넘어가 보자. 그녀는 정말로 소멸되어버린 것일까? 아니었다. 인면지주가 아무리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하더라도 화정이 만한 먹이 감을 손상시킬 리 만무했다. 그래서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다가 스며든 빙염청약석에 마취되어버린 것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그러한 이유로 살아남게 된 화정이는 민묘희의 예상을 뒤엎고 인면지주의 음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운성현이 음성만기지체라면 화정이는 **오음절맥(五陰絶脈)**이었던 것이다.

오음절맥, 그것은 선천적으로 음기가 모자라게 태어나 자라면서 점점 그 기운을 잃어가다가 종래에는 음기가 고갈되어 죽게되는 무서운 중병 중의 하나였다. 신의를 만나거나 뜻하지 않은 기연을 얻지 않는 이상 불치병이라고 봐도 무방하리라. 그렇다면 오음절맥의 화정이가 어떻게 해서 초혼강시로 만들어진 것일까? 사실 아수마전의 유혼은 초혼강시에 대해 어떠한 한계성을 느꼈다. 우수한 근골의 여인으로 만들어지나, 그보다 떨어지는 여인으로 만들어지나 결과론적으로 보면 동등한 힘을 자랑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눈을 돌린 것이 삼음, 오음, 구음절맥이었다.

강시를 만들 때 음기를 흡수시키면, 신체상의 특성상 회복하려는 힘이 작용하여 여타의 강시들보다 상회하는 음기를 받아들이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결과는 대 만족이었다. 다만 화정이의 의지로서 대법이 깨지고, 유혼은 다시 초혼강시로 만드는 것을 반복하자 처음과도 같은 폭발적인 흡수 량은 보여주지 않았다. 보통의 초혼강시들과 비슷하게 만들어지게 된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유혼이 그녀를 주시했던 이유는 어떠한 방법으로 대법을 시행해야 두 번 다시 대법이 깨지지 않을까, 하는 이유 때문이었다. 실험할 재료(?)들은 널리고 널렸지만 제압되었다 풀렸다를 반복하는 화정이에게 완벽한 금제를 걸어놓을 수만 있다면 다른 강시들 따위는 손쉽게 제압할 수 있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이제 불사독인강시만 성공한다면 이곳과 나에 대한 기억들만 지워버리고 그 애들을 내보내줘야겠군. 동철이라는 아이를 계속 붙잡아놨다가는 정신 이상이 되어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 정도 고생했으면 충분하지. 물론, 그 미친놈은 좀더 정신을 차리게 붙들어놔야 하겠지만!”

이야기가 길어지지만 계속 해봐야겠다. 그렇다면 화정이는 어째서 인면지주의 음기를 흡수할 수 있었을까? 그것은 근 3년간의 화정이의 몸 상태로 알아볼 수 있다. 정신이 흐려지고 대법의 붕괴 선상에 놓여져 있던 그녀는 소연의 피를 받아들여 잠깐 원상태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바로 수면에 빠지면서 점점 음기를 잃어가던 상태였다. 대법이 깨져가며 오음절맥으로 되돌아가려는 상황이었지만, 그나마 대법이 깨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두 명의 주인이 전부 근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차에 민묘희의 배려(?)로 인면지주가 마취되자 3년 동안 허기에 지친 그녀의 몸이 본능적으로 인면지주의 음기를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고 말이다.

“도연도 뛰어난 아이였지만, 그 동철이라는 아이. 어떠한 신체인지도 밝혀지지 않은 그 아이는 솔직히 좀더 연구해보고 싶어. 만일 그녀석이 중소구와 같은 짓을 했었다면 당장에라도 초혼독강시로 만들어봤을 거야. 과연, 어떠한 결과를 가져올까?”

한편, 인면지주는 마취가 되어있었지만 정신은 멀쩡했다. 그래서 되려 자신의 음기를 빼앗아 가는 화정이를 괘씸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온갖 힘을 짜내 극소량의 독액을 내뿜기 시작했지만 엉뚱하게도 다른 곳으로 흘러가는 것이 아닌가. 바로 화정이로 인해 인면지주의 음기 흡수를 방해받은 운성현의 짓이었다. 진수성찬은 차려져있는데 눈앞에 두고도 침만 삼키게되는 상황이 벌어지자, 화정이가 받아들이지 않은 독액을 얼씨구나 흡수해버리기 시작한 것이다.

당황한 인면지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끊임없이 음기가 고갈되어가자 화정이의 몸에 한가지 제안을 했다. 더 이상 살아날 희망이 없어 자신의 분신을 남겨놓을 테니, 그것을 운성현으로부터 지켜달라는 제안이었다. 그 대신, 4천 7백여 년간을 생성시킨 자신의 내단을 넘겨주고 말이다.

“호호, 그것보다도 빨리 저 고치를 풀어보고 싶구나. 인면지주의 거미줄도 천하의 보물이지만 그것이 어디 그 녀석의 내단보다도 값질까. 내단은 하나의 생명이라고 해도 무방한 것. 내단의 흡수는 피부를 통한 것이 아니라 직접 삼켜야만 그 효능을 발휘한다. 즉, 생명과 생명이 만나야만 내단 자체에서 안심하고 융해하는 것이지.”

화정이의 몸에겐 상당히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마침 넘쳐나는 음기로 인해 더 이상 음기를 받아들이지 못하고있던 그녀의 몸은, 내단이라는 존재까지 흡수하게된다면 더 이상 자신의 신체가 오음절맥으로 인해 고통받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있는 상태였다. 거절할 하등의 이유가 없는 것이다. 화정이의 몸이 받아들일 준비를 하고있다는 것을 감지한 인면지주는 입을 벌려 새파란 광망을 내뿜어내는 내단을 화정이의 가슴에 내려놓았다. 내단은 아무 거부감 없이 화정이의 가슴으로 스며들었다. 민묘희의 예상이 틀려버린 단 하나의 이유. 내단은 원주인이 원한다면 삼키지 않고도 피부로 흡수가 가능했기 때문이다.

내단을 받아들인 화정이의 몸은 본능적으로 두 손을 가슴께로 모아 인면지주를 감싸안았다. 거기에서 분신을 잉태한 인면지주는 그 길었던 생을 마감하고야 만다.

“만일 지금의 방법이 실패한다고 해도 나는 인면지주의 거미줄과 내단을 얻게 된다. 그것으로 힘을 얻고 세력을 키운다면 암흑마교 따위는 언젠가 뒤엎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불사독인강시의 완성이 실패할 리는 없지만 말이야.”

결국, 죽어버린 인면지주의 찌끄러기만 흡수하게된 운성현. 그는 흡수한 음기에 비해 과도한 독액을 받아들인 탓에 지극히 위험한 상태로 진행되고있었다. 그리고 팽팽하게 늘어진 명주실이 끊어져버릴 시기는 소리 없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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