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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08화


“보인다. 오오, 보인다. 굵은 단환이 세 개. 이것은, 이것은! 흐음, 아니군.”

동천이 눈을 뜨며 아니라고 판단한 약병을 옆에 내려놓자 도연에게 갖다달라고 부탁한 중소구는 기다렸다는 듯 그것을 살펴보았다. 뚜껑을 열고 탈탈 털어 본 그는 단환이 네 개이자 ‘그럼, 그렇지.’ 하는 얼굴을 했다.

“이놈아, 적어도 그럴싸하게 속이려면 알지도 모르는 단환의 개수는 언급하지 말았어야지. 세 개? 세 개 좋아하시네. 네 개잖아!”

동천은 불신이 번지는 소연과 도연을 주욱 둘러보고 꾸짖듯 말했다.

“어허! 그건 긴장감을 살리기 위해 양념으로 첨부시킨 것뿐이거늘, 너희가 어찌 대머리의 간사한 꾀임에 동조하려는 것이냐!”

졸지에 간사한 대머리가 되어버린 중소구는 화가 머리끝까지 난 얼굴로 벌떡 일어섰지만 동천이 신경을 끊고 다시 감별하는 시늉을 하자 어디 나중에 두고 보자며 이를 갈았다. 그렇게 열댓 개를 감별해내던 동천은 손안이 찌르르해지자 번쩍 눈을 떴다.

“오옷, 바로 이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격발단이로세!”

흥분한 동천이 약병 속의 단환을 꺼내보자 피 칠한 듯한 붉은 색 단환들이 흘러나왔다. 더군다나 사람의 수에 맞게 개수도 딱 세 개였다. 인심 쓰듯 도연과 중소구에게 하나씩 나누어준 그는 그들에게 사용해보기를 권유했다.

“자자, 빨리 삼켜서 효능을 시험해보라고.”

그러나 뭘 믿고 받은 단환을 삼키겠는가. 동천의 말을 믿고? 참다못한 중소구가 따지듯 물어왔다.

“이게 격발단인지 어떻게 믿고 삼켜! 말 같은 소리를 해야지 말야. 정 그렇다면 네놈이 먼저 삼켜보거라. 그 효능이 증명되면 내 인정하고 순순히 네 말에 따르마.”

동천은 코방귀를 뀌었다. 그도 긴가민가하고 있고, 그래서 실험체(?)들에게 먼저 먹이려는 것인데 미쳤다고 그걸 먹겠는가? 일찌감치 중소구를 포기한 동천은 도연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연아, 네가 설마 본 주군을 믿지 못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닙니다. 먹겠습니다.”

도연이 주저 없이 삼키려는 찰나 갑작스레 소연이 끼여들었다.

“자, 잠깐만요! 아직 감별하지 못한 것들이 수두룩하잖아요. 그러니까 훨씬 더 훌륭한 격발단이 나올지도 몰라요. 저는 마저 다 감별하고 나서 삼키는 것이 현명한 처사라고 보는데 주인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내심 무릎을 내려친 동천은 언제나 그렇듯, 급조된 근엄함으로 밀고 나갔다.

“내 마침 그렇게 하려고 생각하던 참이었다. 하지만 너의 총명함이 이 정도까지 왔을 줄이야. 하하, 이 주인님은 기쁘기 그지없구나.”

“저기…. 전 하녀보다는 시녀가 더 좋은데요.”

“그래? 그게 뭐 어렵겠느냐. 좋아좋아. 과연 이 몸의 시녀로다.”

소연은 진정으로 감격한 듯 대답했다.

“아? 감사합니다, 주인님.”

‘놀고들 있네.’

소연까지 도매금으로 취급하고싶진 않았지만 지금의 상황으로서는 애들 소꿉놀이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긴 유치하다고 말해줘봤자 손해보는 것은 자신뿐이리라. 중소구가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던 간에 한참을 걸려 또 하나를 건져낸 동천은 모든 작업을 끝마치고 두 개의 약병을 나란히 세워놓았다. 그리하여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할 시간이 다가왔지만 난감하게도 두 번째 약병의 단환은 푸른색이었다. 그놈이 그놈이라면 눈 딱 감고 하나를 골라주겠는데 하나는 붉고, 다른 하나는 푸르니 선택하기가 만만치 않은 것이다.

“뭐이리 극단적이야?”

투덜투덜 댄 동천은 양손에 각기 하나씩을 올려놓고 선도술(仙道術)을 연구하는 사람 마냥 진지한 모습으로 한쪽을 고르기에 이르렀다. 느낌이 강한 왼쪽의 단환을 선택한 동천은 갑자기 소연의 꿀밤을 때리며 성질을 냈다.

“결국엔 빨간 거였잖아! 괜히 힘만 빠지게 하고 지랄이야.”

억울했던 소연은 머리를 부여잡으며 울먹였다.

“흑흑, 주인님께서도 마침 그러실 생각 이셨다면서요.”

동천은 뚱하니 대답했다.

“내가 생각하고만 있었다고 했지 언제 실천에까지 옮긴다고 했었냐? 잔말 말고, 여기에 널린 것들이나 다 치워버려.”

“흑흑, 너무하세요!”

동천은 얼굴을 감싸며 빠져나가는 소연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쓴웃음을 삼켰다.

‘미안하구나. 하지만 성질은 나는데 어쩌겠느냐. 그나마 네가 편해서 그랬던 것이니 부디 이해해주길 바란다. 아아, 이 아린 가슴을 어떻게 인내하리요.’

결론적으로 만만하게 너니까 자주 애용해주겠다는 뜻이었다.

“저거 저렇게 내버려둬도 되냐?”

딴엔 심상치 않다고 여겼는지 중소구가 걱정스레 물었다. 동천은 별거 아니라는 표정으로 손을 내저었다.

“신경 꺼요, 쟤는 천성적으로 심각한 체질이 아니니까. 아마도 조금 있으면 무안해하는 얼굴로 슬그머니 들어올걸요?”

어렸을 때 빼고는 평생 여자 손 한번 잡아보지 못했던 중소구로서는 순간이나마 동천이 대단하게 느껴졌다. 물론 동천이 잘한 짓은 아니었지만, 여인을 그렇게까지 대범하게 다룬다는 데에 있어서 그로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었기 때문이다. 간사한 게 사람의 마음이라고, 방금 전까지 동천이하는 짓을 미덥지 못한 눈으로 바라봤던 중소구는 이제와 붉은 단환을 섭취해 보겠노라고 스스로 자청해 나섰다. 그 대가로 그는 사흘간 창자가 뒤틀리는 고통을 경험해야만했다.

‘이제 마지막 금제만 남은 셈인가?’

지난 삼일 동안 식사 때를 제외하고 혼신의 힘을 기울여 금제를 풀어나갔던 동천은 예상보다 빠른 성과에 만족해했다. 이게 다 푸른 단환의 덕택이었다. 붉은 단환은 잘못 감별했지만 그래도 푸른 단환은 제대로 골랐던 것이다. 덕분에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동천에게도 좋은 소리 한번 못 들었던 중소구만 불쌍했을 따름이었다.

운기 중에 잡생각은 금물이었지만 화정이에 관해 아무래도 걸리는 것이 있었다. 소연에게는 걱정을 끼칠까봐 입을 다물고있었지만 일단 완성된 초혼강시는 더 이상의 음기를 흡수하지 못하는 존재라는 것쯤은 그도 잘 알고있었던 것이다.

‘물론 내가 알고있는 것이 정확하다고는 장담 못한다. 다만 요 3년간 화정이의 활동이 없었고 상태가 안 좋았다고 했으니 음기의 고갈이 그 원인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번의 경우 특수하게 음기를 받아들일지도 모르지. 아쉽게도 화정이가 있는 곳까지 감지력이 닿지 않아 생사는 확인할 수 없지만 별다른 예지력이 없는 것으로 보아 살아있을 가능성이 그 반대의 경우보다 훨씬 더 높다. 지금의 나는 그것으로 위안을 삼으면 되는 것이다.’

미묘한 순환의 어긋남을 감지한 동천은 그만 잡생각을 접고 금제를 푸는 일에 열중했다. 거미줄처럼 얽혀있던 금제들은 이제 단 하나만을 남겨놓고 있는 상황이었다. 일단 흐름의 기세를 탄 역심무극결은 파도와 같이 밀고 또 밀어내며 막혀있는 혈도들을 하나하나 뚫어갔다. 그리고 무아지경에서의 그가 정신을 차리게 되었을 때는 마지막 하나의 혈도가 남아있었을 때였다. 묘한 쾌감과 함께 드디어 모든 금제에서 벗어난 그는 자연스레 역심무극결을 거둬들이고 귀의흡수신공을 사용하였다. 물론 독공이 함유된 귀의흡수신공이었다. 이후부터는 따로 언급하지 않는 한 동천의 귀의흡수신공은 독공을 함유하고있다는 사실을 알아주었으면 한다.

‘큭큭큭, 이히히히! 드디어 금제를 풀었다! 금제를…, 아차차. 평상심. 평상심.’

주위의 사람들을 생각해 독기의 분출을 다스린 그는 간소하게 삼주천을 끝마친 뒤(그래도 시간은 좀 걸린다) 살풋이 웃으며 눈을 떴다.

“주인님, 금제는 다 푸셨어요?”

“어떻게 되셨습니까.”

“꼴을 보아하니 성공했구먼?”

긴장과 초조에 찬 눈빛들이 자신에게 쏠려있자 벌떡 일어난 동천은 지극히 만족한 상태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음핫하하하! 이 몸께서 하시는 일에 실패란 없느니!”

이번만은 동천의 아니꼬운 태도에도 모두들 기뻐하는 가운데 오직 소연만이 자신의 일처럼 기뻐해주었다.

“정말 수고하셨어요, 주인님이라면 꼭 해내실 줄 알았지만 그래도 마음 한구석에서는 불안한 감이 있었거든요. 어찌나 가슴이 떨리는지, 정말 어찌나 떨리던지…….”

나중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기까지 했다. 오 년 동안의 긴 공백이었지만 그간 하나도 변하지 않은 듯한 그녀의 모습에 왠지 동천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짜식, 이리와 봐.”

그의 손짓에 소연이 다가오자 동천은 덥석 그녀를 안아주었다.

“아?”

생각지도 못한 포옹에 온몸이 경직되어버린 소연은 빠져나가기를 포기하고 그대로 몸을 맡겼다. 맞닿은 동천의 가슴은 그녀 못지 않게 뛰고있었다.

‘주인님도 부끄러운가 보구나. 어쩜 좋아.’

달아오를 대로 달아오른 그녀의 얼굴은 잘 익은 홍시 마냥 붉게 물들어갔다. 서로의 느낌을 공유하는 가운데 그들만의 시간이 영원할 듯 했지만, 지켜보는 입장의 들러리들은 그게 아니었다. 도연은 몰라도 중소구에게는 말이다. 다시 한 번 언급하지만 그는 어렸을 적 외에는 여인의 손 한번 잡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었다. 그런 인생을 살아온 덕택에 아직까지 숫총각이기도 했다. 그러니 지금의 장면은 어린아이에게 등급보류의 장면을 보여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요, 질투심에 눈깔이 뒤집히게 만드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이다.

“떨어져! 떨어져! 어디서 어린것들이 부둥켜안고 추태를 부리는 것이냐!”

화들짝 놀라 떨어진 소연은 차마 고개를 들지 못하고 애꿎은 바닥만 바라보았다. 그냥 한번 안아주기만 한 동천도 이런 상황으로 변해버릴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던 듯 중소구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주었다.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이제 그만해요. 그냥 헛기침 한번이면 알아서 떨어졌을 텐데 어린애도 아니고 뭘 그렇게 소란을 떨어요. 쟤 봐요, 창피해서 아주 죽으려고 하잖아요.”

“주, 주인님도 참….”

소연이 더욱 고개를 못 들자, 자신이 필요 이상으로 흥분했었음을 깨닫게 된 중소구는 미안하긴 했는지 소연에게 사과를 했다. 따지고 보면 동천이 갑자기 껴안았던 것뿐이고 그녀는 엉겁결에 당했던 것뿐인데, 결과적으로는 그녀만 창피해하고 그녀만 무안해하지 않았던가.

“험험, 본 대인이 너무 주책없었던 것 같구나. 소연이에게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살다보면 남녀의 포옹이란 자연스러운 것인데 말야. 이성끼리 끌리는 것도 당연한 것이고…, 에에. 이게 아닌데?”

“저, 저는 열쇠나 찾으러……. 쉬, 쉬세요.”

창피함이 극에 다다라 더 이상 한자리에서 발붙이고 있을 수 없었던지 그녀는 핑계거리를 찾아 밖으로 나갔다. 중소구는 급히 그녀를 붙잡으려 소리쳤다.

“이봐, 소연아! 와서 다시 들어봐! 그걸 말하려던 게 아니었어!”

다시 자리에 주저앉은 동천은 중소구를 향해 투덜거렸다.

“이미 도망간 애한테 소리치지나 마시고 도연처럼 자리에 앉아봐요.”

딱히 반박할 점을 찾지 못한 중소구는 배알이 꼴려도 묵묵히 앉을 수밖에 없었다. 도연은 경청하는 자세에서 한마디 물었다.

“내공을 회복하시는데 문제될 것이라도 있습니까?”

동천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말야. 이 쇠고랑하고 쇠사슬은 말이지. 아무래도 현철인 것 같아.”

도연의 안색이 급격히 흐려졌다.

“흐음, 그렇습니까?”

중소구가 동조하고 나섰다.

“그렇다네. 저놈은 언제 알았는지는 몰라도 본 대인은 처음에 알아봤지. 다만 내공도 없고 자체의 힘만으로 끊을 생각을 한 사람도 없었기에 여태껏 입을 다물고있었던 것일세.”

동천은 도연의 시선이 중소구에게로 쏠려있자 그를 불렀다.

“야, 저 인간 얘기는 신경 써서 들을 거 없어. 것보다 중요한 건 아무리 내가 십 할의 내공을 전부 되찾는다고 해도 허리띠를 푼다고 해도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자를 수 없다는 거야.”

“그거라면 소연에게 부탁해서 무기를 가져와 달라고 하면 되지 않습니까.”

동천은 혀를 차고 나서 말했다.

“넌 이 몸께서 그것까지 생각 못했을 것 같냐? 더군다나 방금 전 도구를 사용하지 않는 이상 자를 수 없다고까지 했는데 그걸 생각 못했겠어?”

도연은 언뜻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무기를 사용해도 자를 수 없는 이유가 뭡니까?”

의외로 중소구가 날카롭게 지적했다.

“거리일세.”

“예?”

이번에는 동천이 말했다.

“너와 이 몸의 거리를 말하는 거야, 이 멍청한 놈아. 너하고 내가 아무리 떨어져봤자 이척(1미터) 정도인데 검이나 도의 길이를 생각해봐. 더군다나 너는 팔을 내밀어야 하고, 이 몸은 무기를 내려칠 때 팔의 길이로 더욱 가까워질텐데 그걸 무슨 수로 잘라. 뭐, 그걸 원하기라도 하면 네 몸을 반쪽으로 잘라줄 용의도 있어. 히히, 농담인 거 알지?”

그제야 이해한 도연은 심각하게 물었다.

“허면, 단검이나 소도를 사용하는 방법은 어떨는지요.”

“도 소형제. 그것도 힘들다네. 일반적으로 무기를 내려칠 때의 파괴력은 그 크기와 예리함에 좌우되기 때문에 실패하기라도 하는 날이면, 그 충격파를 그대로 흡수한 자네의 어깨가 탈구되거나 심하면 양팔 자체를 못쓰게 될 수도 있다네. 뼈만 부러진다면 그래도 다행이지만 근육까지 상하기라도 한다면 치명적일 수 있지.”

동천은 자꾸 나서서 자기가 할말을 가로채는 중소구에게 소리를 질렀다.

“이 인간아! 왜 자꾸 나서서 지랄이야? 얘 얼굴 좀 봐. 쓸데없이 겁을 주니까 무서워서 덜덜 떨고 있잖아!”

“주, 주군 전 그런 적이 없습니다.”

황당했던 도연이 말을 더듬자 중소구에게 한방 먹일 구실을 찾고있던 동천은 옳다구나 눈을 반짝였다.

“봐! 겁먹어서 말까지 더듬는걸! 다 당신이 입을 함부로 놀려서 그런 거 아냐!”

“아니 전….”

끄오오오오오!

“……!”

갑작스레 들려온 괴음에 모든 움직임을 멈춘 동천 등은 자연스레 소연이 열어 놓은 철문 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동천은 뭔가 안 좋은 느낌에(이쯤 되면 누구라도 눈치챈다) 입술을 가볍게 떨었다.

“이, 이게 무슨 소리냐?”

긴장한 도연은 밖의 상황에 시선을 떼지 않으며 대답했다.

“죄송합니다.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이씨, 죄송한 건 알아?”

중소구는 괜한 시비조의 동천에게 다급히 소리쳤다.

“이 멍청한 놈아, 지금 그게 문제야? 뭔가 수상한 일이 벌어지는 것 같은데 그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지!”

동천은 답답하다는 듯 쇠고랑을 흔들어가며 받아쳤다.

“지금 이지경인데 대비책 같은 게 있을 것 같수? 에이 씨, 혹시 그 운씨 강시가 어떻게 잘못된 거 아냐? 내가 사내새끼를 강시로 만들었다고 했을 때 알아봤어. 화정이를 봐. 얼마나 예쁘고 말도 잘 들어. 그 사내새끼의 이름도 그래. 재수 없게 운성현이 뭐야? 꿈속의 그놈하고 이름도 똑같을뿐더러……. 가만, 음성만기지체에다 운성현이라고?”

둔기에라도 맞은 듯한 얼굴로 입을 크게 벌린 동천은 떼굴떼굴 대가리를 굴러보았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확인해봐도 천사 소비양의 꿈을 꾸었을 때의 운성현과 딱 들어맞았다.

“맞아! 거기에도 인면지주가 나오고 그 녀석도 음성만기지체에다 운성현이라고 했어! 제길, 이거 일이 어떻게 꼬이는 거지? 그 문주 새끼는 비양이에게 뒈진 거 아니었어? 아니면 비양이 지가 불사강시를 만들어보겠다고 지랄했다가 실패해서 버리고 간 건가? 아이구, 대가리 아파. 어떻게 될지도 모르니까 가능하면 내공이라도 완전히 회복해야겠다.”

듣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뭔 소리인지도 모를 헛소리만 지껄여댄 그는 급히 허리띠를 풀고 잠재되어있는 내공들을 일깨우기 시작했다. 일단 모든 금제를 풀어낸 상태였기에 그것만 믿고 내공 회복에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인데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자 후회막급이었다. 만일 역심무극결의 동천이었다면 완벽하게 마무리를 짓고 운기를 멈추었을 테지만, 내공의 회복은 귀의흡수신공이 필요했기에 빨리 사람들에게 자랑하고싶어서 중간에 그만두었던 것이다.

콰앙! 쾅!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 굉음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일깨우던 내공을 급히 갈무리한 동천은 신경질적으로 욕을 퍼부었다.

“저런 개 같은 새끼! 운기조식도 못하게 만드냐?”

언제 뚫고 나올지도 모르는데 어떤 강심장이 있어 운기조식에 몰두하겠는가.

“끄아아아! 크아악!”

쾅 쾅 쾅! 콰드득, 쿠웅!

철문이 뜯겨져 나간 듯한 소리와 더불어 무언가 육중한 것이 바닥을 울리자 동천 쪽에서는 난리가 났다.

“으와악, 드디어 빠져 나왔나봐! 소연은 어딨어! 빨리 와서 문 좀 닫으라고 해!”

“이놈아! 이럴 때는 온다고 해도 오지 말라고 해야하는 거야!”

“그건 당신 생각이고!”

방금 물 속에서 나온 사람처럼(나온 거 맞다) 적셔진 몸뚱이를 이끌고 힘겹게 어깨를 들썩이던 운성현은 벌거벗은 몸뚱이로 흐느적거리며 서있었다. 사내의 나체를 꺼려 민묘희가 옷을 입힌 채 담가놓았었지만 인면지주의 독 때문에 모두 녹아버린 상태였다. 그는 우측의 벽을 강타하고 괴음을 질러댔다.

“크오오오오! 헉헉, 크아아!”

그는 머리가 터질 듯이 아팠다. 그나마 음기를 흡수해야 독기를 버텨낼 수 있었는데 며칠간 그것마저 어려워지자 독기가 뇌 속으로 침투해 미완성인 채로 정신을 차리게 되었다. 그가 깨어났을 때 보이는 것이라곤 하얀 물체뿐이었다. 무언가 파괴하고 짓이겨버리지 않고서는 머리가 타 들어갈 것만 같았지만 그 하얀 물체에게는 살의(殺意)가 일어나지 않았다. 애꿎은 기물들만 파괴한 그는 머리를 식힐만한 다른 무언가가 필요했다.

본능적으로 그는 밖으로 나가기를 희망했다. 그러나 문은 소연이 잠가놓았었다. 지금의 그가 ‘문이란 열어야 열린다.’라는 개념이 있을 리도 만무했지만 닫혀있건 감겨있건 막힌 것은 뚫어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래서 문을 부수었다. 떨어져 나간 철문을 지나쳐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기 시작하자 그를 자극하는 무언가가 그의 후각에 잡혔다.

‘피(血)….’

따스하고 후각을 마비시킬만한, 그런 신선한 피를 마음껏 섭취하고만 싶어졌다. 실질적으로 그가 받아들인 것은 인간의 냄새였지만 한 꺼풀만 벗기고 나면 그 안에 피가 고여있다는 것을 알고있었던 것이다. 그때부터 그의 머릿속에는 오로지 피를 향한 갈망만이 자리 잡았다.

‘피를, 피를…!’

“크아악! 크아!”

속도를 올린 그는 문이 닫혀있는 사 호실에서 잠깐 주춤했다가 그대로 이 호실을 향해 몸을 날렸다. 소연은 문을 열어놓기를 권했지만 역마대원들은 내공의 회복보다 상처 치료에 그 목적을 두고있었다. 그래서 찬바람을 피하기 위해 문을 닫아놓았던 것인데 이렇게 행운으로 작용한 것이었다. 그렇다면 행운이 작용하지 못한 이 호실의 그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으악! 여, 역시 그 새끼야! 그 운성현이라고!”

도연이 발광하는 주군을 말렸다.

“진정하십시오! 우선 상대의 움직임을 주시해야 피하던가 다른 대책이 있을 것 아닙니까!”

“몰라몰라! 들고 싸울만한 거 있으면 아무거나 쥐어달라고!”

“이놈아! 온다!”

중소구의 다급한 외침에 정신을 바짝 차린 동천은 운성현이 도연의 목을 노리고 덮쳐들자 다급한 김에 날아올라 이단옆차기를 했다.

쿠당탕탕!

다행이 옆으로 처박아놓기는 했지만 정작 후려친 동천은 무쇠를 강타한 듯한 충격에 애꿎은 바닥만 박박 긁어댔다. 그나마 조금이라도 내공이 생성된 상태에서 옆차기를 했기에 망정이지 다른 사람이 그렇게 했다면 골절상이라도 당했을 것이 분명했다.

“아이고 동천 죽네!”

동천이 발바닥과 발목을 부여잡고 고통을 호소했지만 당장에 죽게 생긴 것은 그가 아니라 중소구였다.

“이, 이 빌어먹을 놈아! 차려면 제대로나 찰 것이지 보, 본 대인의 바로 옆에다 처박아버리면 어쩌자는 거야!”

“크으으, 크악!”

그 말을 듣기라도 한 듯 발딱 일어난 운성현은 중소구에게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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