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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523화


흥정은 말리고 싸움은 붙여라.

동천은 날수혈괴를 비롯한 다수의 무림인들이 주점 안으로 들어갔음에도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들어가서 송금을 지지고 볶던, 회를 뜨던,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그는 태연자약하게 달빛을 벗삼으며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자작시를 읊었다.

잠 못 드는 새벽. 이 몸은 지나간 추억들을 더듬어 보련다. 가만히 눈을 감고 생각하니 즐거웠던 추억들이 두리둥실…….

그 옛날, 앞집의 춘삼이는 옷을 벗고 뒷집의 정향이는 얼굴을 붉혔다네. 황룡미미 그걸 보고 저 연놈들 미쳤구나. 우리 동천 그걸 보고 네년이나 처신 잘해.

아아! 그 날의 기억들을 더듬어 보니, 마냥 즐거웠다 할 수만은 없겠구나!

“캬아, 끝내준다! 역시 이 몸의 시적(詩的) 영감은 풍부 그 자체로다. 헌데, 이것의 제목을 뭐라고 지어야 할까나? 가만 있자, 옛 기억을 기분 좋게 떠올렸다가 마지막에 가서 망쳤으니…….”

콰앙―!

때아닌 기물파손 소리가 들려왔고, 동천의 귀는 절로 그쪽으로 기울어지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어? 이 소리는 저 빌어먹을 주점 쪽에서 나는 소리인 것 같은데?”

주점에서 나는 소리가 확실했다. 그것도 동천이 알기로는 주방장 고씨의 방에서 나는 소리였다. 고씨의 방은 주점의 측면에서 약간 튀어나온 구조로 지어졌기 때문에 확실한 소리의 출처를 구분할 수 있는 것이다.

“가만, 저기에 도연 자식도 같이 있던 것 아니었나?”

동천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얼레? 생각해보니까 진짜 그러네?”

그는 자신도 모르게 주점으로 달려갔는데, 돌연 주점의 출입구 부근에서 주춤 멈추었다.

“근데 벌써 뒈졌으면 어떻게 하지?”

방금 전 고수들의 움직임을 목격한 동천으로서는 선뜻 움직여지지가 않았다. 아무리 평소 도연을 밉살맞게 봐왔다고는 하나, 그렇다고 해서 그의 안위가 걱정되지 않는다면 틀림없는 거짓말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을 냉정하게 살펴보자. 무공도 그들보다 낫다고 할 수 없고 무기까지 미착용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 그가 믿을 거라곤 경공뿐인데, 운 나쁘게도 상대해야할 자들이 더욱 빠르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바로 죽음으로 직결되는 것이다.

‘끄응! 어찌해야했으까이. 가서 도와주자니 이 몸이 위험해지고, 올라가서 화정이를 대동하자니 시간이 여의치 않고, 소연 고년은 대동해봤자 꺄악! 거리기만 할 테고……. 아? 고년을 대동하느니 차라리 화정이를 대동하는 것이 낫겠구나? 여하튼 이렇게 망설이고 있을 수만은 없는 일이다. 점점 더 도연의 안부가 걱정되어 간다. 아아! 나는 도대체 어떠한 결단을 내려야만 하는 것일까?’

이럴 시간에 구해주러 갔다면 어느 정도의 성과는 올렸으리라.

“에이씨, 나도 모르겠다! 명줄이 긴 놈이라면 살아있을 테고, 아니라면 지금쯤 저승사자와 짤짤이나 하고 있을 테지.”

이상한 소리부터 지껄이고 본 동천은 마음을 정한 듯 주점 안으로 뛰어들었다. 주점의 내부가 어두워서 사물의 구분이 까다로웠지만 정작 동천의 신경에 거슬린 것은 그의 코끝을 스치는 비릿한 냄새였다.

“킁킁, 이게 뭔 놈의……. 윽? 저, 저것 시체야?”

동천의 눈에 쓰러진 두 사람이 보였는데 그는 그들을 대번에 시체라고 단정지었다. 통상적으로 볼 때 두 사람이 바닥에 쓰러져있다고 해서 시체라고 확신할 수는 없는 일일 것이다. 그러나 바닥에 쓰러진 두 사람과 비릿한 냄새의 강렬함이 연관되어지자 동천의 뇌리에는 그것 외에 별다른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의 상태는 내부가 어두운 탓에 오로지 가까이서 확인하는 수밖에 없었는데, 형운곡에 갇혀 지내면서 커진 게 간땡이 밖에 없었던 동천은 스스럼없이 다가가 한 사내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

“여봐요. 죽었어요?”

툭툭 치는 그의 손가락에 끈적이는 무언가가 묻었다. 질척한 것이 심히 기분 나빴다. 동천은 이미 그것의 정체를 예상하고 있었는지라 코로 가져가서 맡아보거나 하는 번거로운 짓은 하지 않았다. 이어 그는 역겨운 감이 있었던지 양 볼이 부풀어오를 정도로 헛구역질을 해댔다.

“우웁, 이거 진짜로 죽었네? 웁!”

대담한 것과 죽은 시체를 목도한 것과는 별로 상관이 없었던지 잘 먹었던 음식물이 목까지 치고 올라왔다가 겨우 진정되어 내려갔다. 입안에서는 약간의 찝찔함이 느껴졌다. 퉤퉤, 침을 뱉은 동천은 별안간 그들의 옷 속을 뒤지기 시작했다.

“제기랄! 여봐란 듯이 이렇게 죽어있으면 어쩌자는 거야? 그리고 죽은 놈이 지옥 갈 때 바리바리 싸 가지고 갈 것도 아니면서 뭔 놈의 돈은 이렇게 가지고 다녔어? 하나, 둘, 셋, 넷……. 으음, 진짜 많네? 뭐 봐주기로 하자. 어라, 이 옆 놈은 장신구잖아?”

죽은 사람들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도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더욱 어처구니가 없는 사실은 그들의 물건을 챙기는 재미가 쏠쏠 하자 도연의 일을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캬아, 오랜만에 읊어 볼까나? 공수래 공수거∼. 바람처럼 부질없는 거∼. 아, 글씨! 욕심을 버려!”

콰직, 콰쾅!

“으엑?”

하늘님도 동천의 되먹지 못한 행동이 괘씸했는지 요란한 굉음으로서 그의 행동을 중단시켰다. 한순간 너무도 놀라 엉덩방아를 찧어버린 동천은 두근거리는 가슴을 부여안고 본능적으로 죽은 이의 무기를 꼬나 쥐었다.

‘이, 이 빌어먹을 씹새끼 같으니라고. 너 땜에 놀라서 심장마비에 걸릴 뻔했잖아!’

그는 마치 날수혈괴와 대면이라도 한 듯 욕을 퍼부었다. 놀랐다는 사실을 인정하기 싫어서 안 보여도 마주한 듯 그렇게 욕을 했던 것이다. 여하튼,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천은 양손으로 쥔 도를 비스듬히 가슴께로 옮긴 뒤 사뿐사뿐 소리를 죽여가며 고씨의 방으로 향했다. 호랑이의 아가리 마냥 활짝 열려진 방문 안에서는 다가오는 동천을 반기는지 벌써부터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쾅! 꽈앙!

동천은 방안 소란스러움에 귀가 따가울 정도이자 짜증이 아닌 일단 안심부터 하고 보았다.

‘아주 난리가 아니구만? 도연 자식, 아직까지는 팔팔한가 보네?’

내공을 단전으로 모은 뒤 하체로 골고루 뿌려주며 걸어가자 걷는 속도가 빨라지고 기척 또한 줄일 수가 있었다.

“네놈의 운이 없음을 탓하거라!”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동천이 들어서자마자 날수혈괴의 절초가 펼쳐졌다. 도연으로 보이는 왜소한 인영은 날수혈괴의 어지러운 공격이 휘몰아치자 별다른 수단조차 강구하지 못하고 손쉽게 어깨를 가격 당했다.

“크윽?”

도연이 답답한 신음을 터트렸고, 동천은 하마터면 외마디 안타까운 비명을 지를 뻔했다.

‘저런 병신! 빤히 보이는 공격을 그딴 식으로 허용하다니……. 도대체 늙은 장로들이 어떻게 가르쳤기에 저따위야?’

그때 날수혈괴가 기세 등등하게 손을 내뻗었다.

“이제 죽어라!”

심상치 않은 예감이 동천의 뇌리를 스쳤다. 지금 자신이 나서지 않는다면 도연의 생사를 장담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다급해진 그는 앞뒤 돌아볼 것도 없이 장내로 뛰어들었다.

“너나 죽어라!”

“엇?”

동천의 기습에 두 눈이 찢어져라 부릅뜬 날수혈괴는 방어를 위해 신형을 비틀었고, 그것을 목격한 동천은 한 순간의 주저함도 없이 속도의 상승을 위한 전신의 내공 분배를 최적화시켰다. 그로 인해 찰나지간 그의 속도가 두 배 이상 가까이 껑충 뛰어오르자 동천은 자신이 해놓고도 믿을 수 없음이었다.

‘히야! 내가 의도한 거지만 마치 내 몸이 아닌 듯 날아가는 기분이잖아?’

다시 한 번 해보라고 시키면 실패할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로 완숙의 경지에 들어서지 않는 한 실현시키기가 어려운 동작이었다. 동천은 영문을 몰랐지만 사실 간단했다. 기습의 실패 시 되돌아올 반격의 부담감이 그의 정신을 집중시킨 탓에 이러한 결과를 안겨다준 것이다. 반면에 다소 여유를 가지고 동천 쪽으로 신형을 비틀던 날수혈괴는 죽음의 그림자가 자신을 덮쳐오자 당장의 위기만을 모면하기 위해 악수(惡手)를 두는 어리석음을 저질렀다. 그는 궁지에 몰린 맹수처럼 포효했다.

“크―아아아악!”

‘윽? 까, 깜딱이야! 이게 미쳤…….’

콰직!

“우웁?”

생각지도 못한 반격을 받고 뒤로 물러선 동천의 상세는 다행이 쓰러질 정도까진 아니었다. 그러나 내장이 한순간 뒤흔들렸었다. 그 정도로 무시 못할 공격이었던 것이다. 어이가 없어진 동천은 부러진 도를 힐끔 바라보며 통탄을 금치 못했다.

‘우이씨! 이게 갖다 팔면 얼만데!’

이런 상황에서 그따위 생각이나 하다니! 그의 의식구조가 어떻게 생겨먹었는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흐으, 흐으!”

그는 날수혈괴가 기분 나쁜 호흡을 들이 내쉬자 안면근육을 움직여 구길 대로 구겼다.

‘저게 미쳤나……. 헉? 저거 혹시 싸우면서 희열을 느끼는 그런 변태 아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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