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25화
“으웅! 뭐가 이렇게 시끄러워.”
곤히 자고있던 소연은 주위가 시끄러운 것 같아 잠에서 깼다. 그런데 깨어보니, 밖의 시끄러운 정도가 생각보다 심각한 수준이었다.
“개 같은 놈들!”
“크아악!”
“네, 네놈들이 뭔데……. 아악! 살려줘!”
바로 위와 같은 소리들이 공공연하게 들려왔던 것이다.
“엄마야! 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재빨리 베개를 뒤집어쓴 그녀는 사지를 벌벌 떨며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시야가 트인 한쪽 눈으로 자신을 마주보는 화정이가 보였다는 것이다. 소연은 생각이고 자시고 할 것 없이 일단 화정이의 품 안으로 뛰어들고 보았다.
“화, 화정아. 너 혹시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아니?”
화정이는 순수한 눈으로 작은 주인을 내려다보았다.
“아니, 나도 몰라. 나도 소연이 깨서 깬 거야.”
“그, 그래? 그랬구나…….”
쓸데없는 것을 물었다고 생각한 소연은 실망스러운 가운데 애써 밝게 대꾸해주었다. 그때 화정이가 말했다.
“소연, 내가 나가볼까?”
소연은 귀가 확 트이는 것을 느꼈다.
“뭐어? 화정이 네가?”
“응. 내가 나가서 무슨 일인지 물어보고 올게. 금방이면 돼.”
‘나야 그러면 좋긴 하지만……. 그렇지만…….’
소연은 섣불리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 자기 좋자고 애꿎은 화정이를 위험에 처하게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잠시 머리를 굴려본 그녀는 곧 자신의 판단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지금의 화정이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화정아, 그래줄래?”
화정이는 씩씩하게 말했다.
“문제없어! 화정이는 보고만 올 거니까, 문제없어!”
“그래 좋아. 그래도 함부로 다른 사람 다치게 하지말고 금방 갔다와야 해. 알았지?”
“응, 알았어.”
막둥이 마냥 잘도 대답한 화정이는 소연을 향해 방긋방긋 웃어 보이며 문 밖으로 나갔다. 밖으로 나온 화정이는 소란스러웠던 것이 어느새 정리가 되어버린 상황인 것 같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성큼성큼 걸어간 그녀는 때마침 간당간당 숨결이 붙어있는 한 무림인에게 다가가 물었다.
“야, 무슨 일이야?”
거침없는 그녀의 물음에 다 죽어가던 무림인이 기가 막힌다는 표정을 지었다.
“허어!”
그 무림인의 얼굴은, 마치
‘지가 언제 나를 봤다고 반말이지?’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무림인은 그 기가 막힘에 남은 생명을 다 쏟아 부었는지 그러고 죽어버렸다. 마지막 가는 길에 지나온 과거를 회상하고자 했던 한 무림인의 조그마한 소망이 결국 화정이로 인해 무산되어버린 것이다.
“어? 숨을 안 쉬네?”
화정이는 죽은 무림인의 얼굴을 툭툭 쳐댔다. 그런 그녀의 얼굴은 숨을 쉬다가 안 쉬는 지금의 상황을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이었다. 그래서 그녀는 쉬이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죽은 이를 향해 묘한 눈빛만을 보냈다.
“아참?”
문득 형운곡에서의 일이 떠올랐다. 그녀는 죽은 이의 명치부근에 손을 올려놓고 막대한 진기를 흘려보내기 시작했다.
턱, 터덕!
죽은 이의 몸이 그 진기의 흐름을 주체할 수 없을 지경이자 절로 들썩거리며 요동을 쳤다. 약간의 시간을 그렇게 보낸 화정이는 형운곡의 남자강시 때와는 다르게 불어넣어 줄 수 있는 내공이 애당초 없자 입맛을 다시며 손을 거두어들였다.
그 당시, 노폐물이라고 할 수 있는 불순한 내공을 음성만기지체(陰性滿氣肢體)인 운성현(隕星現)에게 전부 쏟아 부은 탓에 더 이상 그런 종류의 찌꺼기가 없었던 것이다. 물론 그녀에게만 소용없는 찌꺼기일 뿐이고 다른 이들에겐 기연을 접하는 것이나 다름없지만 말이다.
“흐응, 다른 사람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녀는 포기하는 것도 빨랐다. 자리를 털고 일어서자 나가는 복도 끝에 두 노인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반가운 마음에 살랑살랑 다가간 화정이는 차가운 눈의 노인들 중 뱁새눈을 하고있는 노인에게 물었다.
“할아범, 여기 사람들이 다 숨을 안 쉬어. 왜 그런 거야?”
이번에도 그녀가 무턱대고 실례를 범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천과 함께 있을 때 들었던 소리가 ‘할아범. 야! 이새꺄!’ 이런 것들이었기 때문에 이름을 가르쳐주지 않는 한 모르는 사람들을 그렇게 불렀던 것이다. 당연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기가 찰 노릇이다.
“허어!”
방금 죽었던 사내와 똑같은 소리가 좁은 통로를 울렸다. 다만 그때와 다른 것이 있다면 이쪽은 멀쩡한 상태라는 것뿐이다.
“이런이런, 만일 네가 모자라지 않는다면 죽음을 각오해야할 것이니라.”
뱁새눈의 노인이 살기를 드리우며 말문을 열자 화정이는 신기하다는 눈으로 노인을 바라보았다.
“헤에, 동천이 나보고 모자라다고 했는데 할아범도 그렇게 생각하나보다. 어떻게 알았을까?”
두려움이 없는 것인지 화정이의 행동은 너무도 자연스러웠다. 노인의 말 따위는 위협이라고 느끼지도 않나 보다. 그녀는 자신의 행동을 의심하고 관찰하는 노인들에게 말했다.
“동천이 그러는데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래. 그래서 물어보는 거야. 얘들은 왜 다 숨을 안 쉬어?”
뱁새눈 옆, 마르고 진한 눈썹의 노인이 낮게 웃으며 가르쳐주었다.
“흘흘, 그래그래. 진정 모자란 아이로구나. 내 이렇게 보니 모자란 것을 잘 알겠다. 흠……, 저기 저놈들이 왜 숨을 다 안 쉬느냐고? 내 아래층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충고를 해주었더니, 지나가는 엿장수 소리로 들었는지 무시하고 내려가려다 모두 이렇게 황천(黃泉)으로 간 것이다.”
화정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황천? 황천이 뭐야?”
진한 눈썹의 노인은 지체 없이 대답했다.
“그것은 저승을 말하는 것이다.”
“저승? 저승은 또 뭔데?”
노인은 화정이와의 대화가 싫지만은 않자 찌푸림 하나 없이 대꾸해주었다.
“그것은 저놈들처럼 숨을 쉬지 않는 녀석들만이 가는 곳이다.”
“우와! 진짜야? 우와, 나도 가보고 싶다!”
뱁새눈의 노인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는 아직 그곳으로 가려면 멀었느니라. 이제 이유를 알았다면 어서 네 보호자의 곁으로 돌아가거라.”
“보호자? 보호자, 보호자…….”
화정이는 알 듯 말 듯 고개를 갸웃거렸고 하는 수 없이 진한 눈썹의 노인이 가르쳐주어야만 했다.
“방금 전까지 너를 돌봐주었던 사람을 말하는 것이다.”
화정이는 바로 알아들을 수 있었다.
“아? 소연을 말하는 거구나? 알았어, 알았어!”
기뻐하는 것도 잠시. 못내 아쉬워하는 표정으로 뱁새눈 노인의 명령을 순순히 받아들인 그녀는 가기 전에 두 노인들에게 인사해주는 것을 잊지 않았다.
“이상한 눈 할아범, 잘 가. 이상한 눈썹 할아범도 나중에 또 봐. 안녕∼!”
“그, 그래. 잘 가거라…….”
체면상 덜떨어진 여자의 말을 듣고 발끈할 수 없었다. 두 노인은 서로를 마주보며 다소 허탈한 웃음을 내지었다. 9호실로 들어가는 화정이를 끝까지 지켜본 그들은 그제야 일층 쪽으로 신형을 돌렸다.
“세상을 살다보면 별의별 상황들을 겪는 법이지.”
“그렇소. 맞는 말이오. 간만의 유쾌한 경험이었지만, 한가지 걸리는 것은 이미 입신지경(入神之境)에 도달했더이다.”
화정이를 가리키는 말이었다. 진한 눈썹의 노인은 부정하지 않았다.
“음, 그렇긴 하지.”
뱁새눈의 노인은 9호실을 힐끔 돌아보았다.
“과연 그 누가 저 정도로 키웠는지 금문(金門) 형은 궁금해지지 않소?”
금문이라 불린 노인은 설레설레 고개를 내저었다.
“장문(葬門), 자네는 늘 호기심 때문에 일을 그르치곤 했지.”
장문이라 불린 노인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금문 형. 그거야 다 지난 옛일이 아니더이까. 어디 이 장모(葬某: 장 아무개)가 근 20년 동안 임무에 실패했던 적이 단 한번이라도 있었더이까?”
“그야, 물론 없었지.”
“허허! 바로 그렇소이다. 그렇기에 호기심이라는 여분을 달고 다닐 수 있는 것이외다.”
장문의 자신 있는 말투와는 달리 금문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내 보기에 자네는, 언젠가 그 여분으로 인해 일을 망치게 될 것일세.”
장문은 나직이 혀를 찼다.
“이거야 원……. 악담 중에서도 독한 놈으로 골라서 하시는구려.”
금문은 무심히 대꾸했다.
“내 전공이라 어쩔 수가 없네.”
“이번 기회에 그 전공을 한번 바꿔보는 게 어떻소?”
“자네가 호기심을 감내한다면 내 생각해봄세.”
“에잉! 없었던 이야기로 합시다, 그려.”
장문과 금문, 두 노인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며 천천히 일층으로 내려갔다.
“으적으적, 이제 네놈 심평만이 남았구나.”
“크으! 네놈이… 네놈이 감히 태수를!”
이를 악다문 심평은 두 눈에 핏발이 곤두설 정도로 분노를 주체하지 못했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 한태수가 허무하게 죽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모습이 고승척의 눈에는 가소롭게 비쳤는지 그가 히죽 웃었다.
“헐헐, 상황판단에 무딘 놈이로다. 좋다, 좋아. 내 마지막으로 기회를 주지. 만일 네놈이 자신의 무력함을 인정한다면 무사히 도망치도록 허락하마.”
“닥쳐…….”
『심평, 친구의 복수를 하고싶다면 후일을 기약해야 옳을 것이외다!』
난데없이 들린 전음에 심평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충고한 목소리는 아직 변성기가 지나지 않은 앳된 목소리였지만 그의 마음 한구석에서 누군가 말려주기를 기대하고 있었다는 듯 마냥 들끓었던 분노가 수그러들고 차츰 정신이 맑아지는 것을 느꼈다.
‘어, 어디지? 누가 보낸 전음이지?’
심평은 전음을 보낸 상대를 찾아 정신나간 사람처럼 두리번거렸다. 그것을 본 고승척은 내심 혀를 찼다.
‘쯧쯧, 충격이 너무 컸구나. 으적으적.’
서로들 다른 생각으로 상황을 주시할 때 시체하나 늘어나는 것이 꺼림직하여 충고를 보내줬던 동천은 행여 라도 심평의 행동에 자신까지 피해를 입을까봐 전전긍긍했다.
‘어이쿠, 저 씹쌔끼가 은혜를 원수로 갚으려고 하는구나! 아아, 이래서 사람은 마음이 너무 넓어도 탈이야. 탈이라고.’
그는 재빨리 차분한 목소리로 전음을 보냈다.
『이보시오, 심평. 지금 당신이 날 찾는답시고 두리번거릴 처지오? 답답하기가 그지없구려!』
심평은 재차 정신이 들었다.
‘그, 그렇구나! 우선은 훗날을 기약해야한다.’
내심 다짐한 그였지만 막상 몸을 굽혀야 한다고 생각하자 치욕스러움이 전신을 휘감았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자신을 낮추는 그의 행동은 지극히 자연스러웠다.
“내, 내가… 멋모르고 대들었…소이다! 잘못을 인정하오! 됐소이까?”
충분히 만족한 고승척은 투실투실한 볼 살이 흔들릴 정도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오호, 됐느니라. 으적, 그 정도로 잘하는 놈이 어찌 이 몸에게 반항을 했단 말인가. 헐헐헐!”
짐짓 뒷짐을 지고 송금에게 다가가는 그의 행동은 승자의 여유 그 자체였다. 그는 엉덩이만 하늘로 치켜들고 벌벌 떨고있는 송금에게 물었다.
“네가 그 송금이렸다? 으적으적.”
움찔한 송금은 슬며시 고개를 들었다.
“예? 예, 예! 물론입니다!”
“좋구나, 좋아. 헐헐, 그렇다면 곽술이라는 놈의 거처를 대보거라.”
‘고작 그것뿐이오?’
라는 눈으로 잠시 고승척의 얼굴을 마주본 송금은 곧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술술 불어댔다.
“과, 곽술이의 거처는 다음 마을로…….”
“잠깐잠깐.”
“예?”
송금의 말을 중단시킨 고승척은 멀거니 서있는 심평에게 말했다.
“으적, 너는 계속 들을 참이더냐?”
음성은 평이했지만 그 속뜻을 알고 보면 명백한 퇴거명령이었다. 만일 이를 어길 시에는 몸을 굽힌 보람이 없어지기에 심평은 이를 악물고 친구의 시신을 들쳐업은 뒤 장내를 벗어났다. 유일한 출구를 향해 몸을 날린 그는 한쪽 벽면에 찰싹 달라붙어서 자신을 마주보는 동천을 발견하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만큼 갑작스런 일이라 놀랐던 것이다.
‘음… 생각보다 더욱 어린놈이었군.’
노련한 고수답게 그 사이 놀람을 안정시킨 심평은 고맙다는 뜻으로 고개를 까딱이곤 조용히 지나쳐주었다. 행여나 일나는 줄 알고 가슴을 졸였던 동천은 그제야 안도의 긴 한숨을 내쉬었다.
‘흐아∼, 자식이 생각보다 눈치가 있어서 다행이었다. 그런데 이렇게되고 보니, 이런 곳에 숨어있다가는 당장에 큰일이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구나.’
지금은 어둠 속에 가려져 있다지만 고승척이 일을 마치고 나갈 때. 혹은, 고승척이 아닌 다른 무림인이 이쪽으로 들어올 때 영락없이 걸리는 신세가 되고 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몸이 이럴 때가 아니지?’
동천은 슬그머니 몸을 뒤로 뺐다. 일단 송금의 무사함을 확인한 이상 자신의 역할은 여기에서 끝났다고 결론을 내렸다. 유독 이런 것에만 실천이 빨랐던 그는 신속하게 바깥쪽으로 몸을 돌렸다. 갑자기 화를 내면서 말이다.
‘에잇, 에잇! 괜히 도연 자식의 말에 도발해 가지고 사서 고생이잖아? 으으, 돌아가기만 해봐라. 아주 다친데 찌르고 또 찔러주며 귀여워 해줄 테다!’
투덜거리지 않고서는 이 분노를 풀 길이 없는 듯 보였다. 그의 투덜거림이 멈추려면 한도 끝도 없을 것이 자명했는데, 하늘도 무심하지 않았는지 다행히 그것에 제동을 걸어주는 일이 터졌다. 바로 맞은편 통로의 어둠 저편에서 무언가 희끄무레한 것이 그에게로 날아왔던 것이다.
“어?”
자신도 모르게 놀람을 터트린 동천은 다급히 상체를 숙여 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