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33화
그것에 관해서는 그녀도 인정한다는 얼굴이었다. 허리에 양손을 떠받치고 떠억 상체에 힘을 준 그녀는 자부심이 가득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그래. 왜냐하면 이 실내장식에 내 나름대로 힘 좀 썼거든.”
기회라고 생각한 동천은 재빨리 화제를 돌려 굳히기에 들어갔다.
“가만! 아까 놀랐다가 까먹었는데 내 일행들은?”
소녀는 나름대로 심각한 듯 물어보는 동천에게 다가와 앉았다. 소녀의 체취가 물씬 풍기자 움찔한 동천이 미적거리며 안 그런 척 침대 옆쪽으로 물러났다. 그것을 본 소녀가 씨익 웃었다.
“얘는? 네가 부끄러워할 때도 다 있니?”
동천은 그답지 않게 말을 더듬었다.
“부, 부끄러워하긴 뭘 부끄러워해. 그리고 말야. 말 많은 처녀가 이래도 되는 거야? 정상인 이 몸께서 보시기에는 이렇게 친한 듯 다가오는 니가 더 이상한 거라고.”
그러자 ‘그런가?’ 라고 중얼거린 소녀가 사뿐하게 물러섰다. 소녀는 동천이 내심 아쉬운 입맛을 다실 때 활기차게 말했다.
“뭐 여하튼 걱정하지마. 네 일행들은 내 동료가 이리로 데려오고 있으니까.”
동천은 소녀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들었다. 대신에 그의 시선은 작고 앙증맞은 조그마한 소녀의 입술에 머물러있었다. 문득 시선에 잡혀 바라보았던 것인데 이야기할 때마다 오므려졌다 펴졌다 하는 것이 그의 애간장을 다 녹여버릴 정도인 것이다.
‘꿀꺽. 흐미, 죽이는 거…….’
뭐가 죽이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는 그녀의 행동 하나하나 마다 알 수 없는 마력을 느끼는지 도저히 그녀에게서 시선을 뗄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그녀를 바라본 동천은 마주본 소녀가 생긋 웃어주자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어이구, 내가 지금 뭔 짓을 하는 거지? 혹시 내가 귀신에게 홀리기라도 한 건가?’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한참동안이나 그녀의 얼굴을 계속 바라보던 그는 갑자기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었다.
“으아, 미치겠네? 아주 미치겠어!”
소녀의 눈이 자못 크게 떠졌다.
“미쳐? 무엇 때문에?”
동천은 생각 외로 쥐어뜯는 머리가 아프자 은근슬쩍 손을 내리고 말했다.
“말하기 싫어. 나도 나름대로 비밀이 있는 법이라고.”
“뭐어? 네가?”
뜻밖이라는 듯 놀람을 표한 소녀는 곧 웃는 얼굴로 돌아와 살짝 애교를 떨었다.
“으응, 그러지 말고 말해봐. 나는 동천의 비밀을 모두 알고 싶어.”
평소의 동천으로 볼 때 닭살 돋는 말투였지만 어째 싫지만은 않았다. 그러나 그는 말할 수 없는 생각이어서 더욱 완강하게 거부했다.
“싫다면 싫은 거야. 그리고 네가 언제 나를 봤다고 모든 비밀을 알고 싶어하지? 가만, 생각해보니까 이름도 물어보지 않았네?”
이름 문제를 거론한 것은 동천이었지만 도리어 소녀가 깜빡했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렇구나! 호호, 하지만 이건 네가 반성해야할 부분이야. 얼마나 나에 대해 알고싶은 마음이 없었다면 물어보지 않았겠니? 그래도 미리 소개하지 못한 내 책임도 조금 있으니까 봐주도록 할게. 자아, 정식으로 소개할까? 난 미호(尾狐)라고 해.”
“미호? 미호라고?”
고개를 갸웃거린 동천이 묻자 미호가 눈을 반짝이며 대꾸했다.
“응, 미호. 예쁜 이름이지?”
동천은 대답 대신 저 혼자 중얼거렸다.
“미호라. 미호, 미호……. 어어? 입안에서 맴도는 게 어디선가 들어본 듯 한 이름이네?”
이상한 것을 따지자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처음 봤을 때 어디선가 본 듯 한 얼굴하며 처음 들어본 이름인데 어디선가 들어본 듯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문은 직접 물어보았다.
“그런데 너를 쫓았던 그놈들은 뭐냐?”
미호는 자신이 듣고 싶었던 대답이 아니자 어린애처럼 동천을 보챘다.
“아이참! 그건 언제라도 대답해 줄 수 있으니까 내 질문에 먼저 답해 줘. 내 이름 예뻐, 안 예뻐?”
그렇게 동천에게 물어보면 무슨 대답이 나올 것 같은가. 장난기가 돈 동천은 짐짓 고심하는 척하며 말했다.
“으음, 미호라. 미호, 미호. 구미호도 아니고 말야. 파하하!”
웃긴 웃었는데 그 대가는 엉뚱한 곳에서 터져 나왔다.
“윽? 아야야, 쓰읍! 웃었더니 다친 옆구리가 땡기네?”
미호는 심통이 났던지 아프다는 곳을 냅다 찔러주었다.
“으악? 너, 너 미쳤어? 으으웁, 나죽는다. 아이고야!”
그녀는 개의치 않고 의기양양하게 으름장을 늘어놓았다.
“또 한번 건성으로 대답하면 알지? 솔직하게 말하라구.”
동천은 얘가 도대체 뭘 믿고 이렇게 친근하게 구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눈앞의 상황이었기에 일단 그것은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그때 물어보기로 마음먹었다.
“알았어. 알았으니까 하지마. 헤유, 그러니까 네 이름은 하는 네 행동에 딱 맞는 이름이야. 됐지? 더 자세히 말하라고 하면 아부하는 거니까 물어볼 생각은 말고.”
미호는 동천의 평이 나쁜 느낌으로 다가오지 않자 나름대로 만족하고 물러섰다.
“좋아, 시장할 텐데 뭐 좀 먹을래?”
동천은 귀가 백 리 밖이나 트이는 것을 느꼈다.
“당연하지! 장장 사흘동안이나 굶었는데!”
미호는 알 듯 말 듯 미소를 짓고 말했다.
“치이, 네가 무슨 사흘씩이나 굶니? 그랬다간 배가 등가죽까지 붙었을 텐데.”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무슨 소리이긴, 삼시 세끼 꼬박꼬박 먹여줬더니 무슨 헛소리를 하냐는 거지.”
어리둥절해진 동천이 재차 물었다.
“내가 사흘 내내 꼬박꼬박 챙겨 먹었다고? 어떻게?”
“푸훗!”
웃음을 참는 듯, 고개를 숙이고 양손으로 살포시 입을 가린 미호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살며시 입술을 내밀었다. 그녀는 저게 뭐 하는 짓인가, 하는 동천에게 말했다.
“호호, 어떻게 먹이긴 어떻게 먹여. 내 입으로 먹여줬지. 어때, 영광이지? 호호호호!”
동천은 눈살을 찌푸리려다 말았다.
“도대체 그게 무슨 소리……, 에에? 뭐어어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