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35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나자 미호의 말대로 설화는 새끼를 낳았다. 동천은 그녀가 불러서 새끼를 낳는 장면을 같이 지켜보았는데 이런 것을 보는 게 처음이었던 그는 제법 큰놈들이 작은 구멍에서 나오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는 미호도 애 낳을 때 이럴까싶어 은근슬쩍 그녀의 아래를 쳐다봤다가 아픈 옆구리를 하루 내내 찔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기분이 좋았던 것은 팔푼이라서가 아니라 몸 속에 넘쳐흐르는 산삼의 힘을 끌어 모아 거의 모든 외상을 안정시킨 한편, 상대적으로 쳐져있던 역심무극결을 귀의흡수신공과 거의 동급으로 올려놓았기 때문이었다. 그로서는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동천까지 좋은 그런 결과가 나타났으니 오죽 기분이 좋지 않겠는가.
“경사 났네! 경사 났어!”
그는 다음날이 되어서도 그렇게 푼수 짓을 계속했다. 그나마 그의 푼수 짓이 멈춘 것은 미호가 아침식사를 가져왔기 때문이었다.
“그렇게도 좋니?”
동천은 제대로 된 음식들을 주섬주섬 집어먹으며 대답했다.
“그럼, 으적으적! 너 내공을 올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아냐? 아주 지겨울 정도로 긴 시간이 필요한 작업이라구. 킥킥, 그걸 한꺼번에 반 갑자 정도를 올렸으니! 파하하! 경사 났네! 경사 났어!”
오랜만에 밥풀들이 천지사방으로 튀었다. 신기하게도 그것들 중 대부분이 미호의 주위를 피해갔지만 동천은 전혀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워낙 신기한 면을 많이 보여준 탓에 이런 것 정도는 그러려니 생각하는 것이었다. 또한 밥 먹는데 지장을 주는 것도 아니어서 굳이 이 문제에 관해 거론하지도 않았다.
“얌냠, 쩝쩝. 응?”
정갈하게 차려진 음식에다 맛 또한 깔끔해서 바닥이 보일 때까지 정신 없이 먹어치우던 동천은 미호가 먹지 않고 있자 의아하여 물었다.
“왜 넌 안 먹어? 맛없냐? 난 맛있는데?”
“맛있다니 다행이네. 많이 먹어.”
어쩐지 그녀는 힘없는 미소를 지어주었다. 그걸 본 동천이 기분 좋게 먹을 수 있겠는가? 물론 평소의 그였다면 모를까, 대하고 있는 상대가 상대인 만큼 아무래도 신경이 쓰여 식욕이 가라앉았다. 그는 세 그릇째 먹고 있던 젓가락을 내려놓고 다시 한번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래. 멋진 이 몸과 헤어져야 하니까 슬퍼서 그래?”
그녀는 다소 놀랐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잘 아네? 맞아.”
“에? 진짜야? 너도 참! 아무리 내일 헤어진다지만 벌써부터 이러면 어쩌냐. 쯧쯧, 이래서 여자는 안 돼. 너무 감성적이라구.”
미호는 인상을 찌푸리며 고개를 내저었다.
“나도 내일이면 안 그래. 생각보다 네 일행들이 일찍 왔어. 그래서 이번 식사를 마치고 바로 헤어져야 하니까 그런 거야.”
동천의 눈이 대번에 휘둥그레졌다.
“뭐어?”
미호는 놀란 동천이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자 손수 턱을 올려준 뒤 시무룩하게 말했다.
“거봐. 너도 나와 똑같아 졌잖아. 하아, 이래서 이별은 언제나 싫어.”
잠시 입을 다물고 있던 동천은 어설프게 너스레를 떨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또 놀러오면 되잖아. 아니, 이럴 게 아니라 나랑 같이 떠나자. 응? 그러면 되잖아. 응?”
미호는 그야말로 감성적이 되어버린 동천의 머리를 쓰다듬어주었다. 그녀는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동천에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
“동천, 난 너와 함께 갈 수 없어. 아마 지금의 너라면 조금은 느꼈을 거야. 이 시간이 끝나면 다시 헤어져야 하는 것을 말야.”
동천은 그녀의 시선을 피하고 말했다.
“그 정도는 나도 느꼈어. 하지만 왜?”
미호는 씁쓸하게 웃었다.
“훗, 일단은… 사는 세계가 달라서라고 할까? 뭐 그정도만 알아줬으면 해.”
동천은 툭 내뱉었다.
“도대체 뭐가 뭔지 모르겠네. 네 신분도 가르쳐주지 않지, 그 외에 다른 것들도 그러려니 넘기지. 쳇, 어쩐지 처음 봤을 때부터 이상했었다니까? 너를 뒤쫓던 놈들 만해도 그래. 그 자식들 도대체 뭐야?”
동천의 궁금함이 지당하다고 여겼는지 다소 밝아진 그녀가 가르쳐주었다.
“그러고 보니 아직까지도 덮어두고 있었던 이야기네? 좋아 말해줄게. 너 혹시 **장강수로십팔채(長江水路十八寨)**라고 알아?”
동천은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내가 그것도 모를까봐? 넓은 강을 무대로 노략질을 자행하던 수적들이 18개의 수채들로 세력을 형성한 뒤에 지네들끼리 잘났다고 까불어대는 수적 놈들의 집단 아냐.”
미호는 대뜸 동천을 치켜세워 주었다.
“와아, 동천 다시 봤는걸? 그래 맞았어. 헌데 그 십팔채 중에 하나인 **용수로채(湧水路寨)**가 오련의 사람을 공격하더라고. 그래서 우연히 지나치다 좀 도와주었더니 입막음을 위해 날 뒤쫓았던 거야. 아쉽게도 오련의 사람은 죽었지만.”
좀더 자세하게 말하자면 그것이 아니었다. 신지가 동천의 늘어난 실력을 가늠해보자고 미호를 도발하자 그녀가 응했다. 그런 뒤 용수로채의 인물들을 쓸어버린 후 꼬리가 밟히게끔 도망쳐서 동천이 있는 곳으로 끌어들인 것이었다. 그러므로, 사실대로 말했다간 동천 성격상 길길이 날뛸 것이 분명했기에 그녀는 수박 겉 핥기 식으로 가르쳐준 셈이었다.
“오련의 사람이라고? 그게 누구인데?”
그래도 한때는 황룡세가에 몸담았었다고 오련 이야기가 나오자 동천이 관심을 기울였다. 그러나 미호는 어깨를 한번 으쓱한 것만으로 동천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동천은 긴가민가하여 다시 물었다.
“몰라?”
“응. 이미 죽어서 물어볼 수 없었거든. 그 대신 이런 것을 발견했어.”
그녀가 주섬주섬 꺼내어 준 것은 곱게 접혀있는 한 장의 양피지였다. 그것을 받아든 동천이 접힌 부분을 펴보려는 순간 조용히 제지하는 손길이 있었다. 바로 미호였다.
“어? 왜 그래?”
미호는 동천의 물음에 부드럽게 미소했다.
“그런 건 차후에 보아도 되니까 같이 나가자. 문밖너머 길이 시작되는 곳까지는 내가 바래다줄게.”
“벌써 온 거야?”
“그래.”
동천은 잡아끄는 그녀의 행동에 하는 수없이 양피지를 품속으로 갈무리했다. 그녀의 말대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니 염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앞마당까지 나온 그녀는 잠시 있으라고 말한 뒤 홀연히 사라졌다가 그와 마찬가지로 다시 나타났다.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의 팔에 작은 설산묘화 새끼가 안겨있다는 것뿐이다. 그녀는 조심스럽게 설산묘화 새끼를 건네주었다. 작고 부드러운 것이 폭신폭신함을 느끼게 해주었다.
“설화가 피곤해서 잠든 틈에 가져왔으니까 조용히 나가자. 만약, 새끼가 없어진걸 알면 골치 아파진다구.”
직접 맞아보기까지 했던 동천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소리 없이 밖으로 나온 그들은 산길을 조금 걸어간 후에야 입을 열었다.
“근데 말야. 너 이렇게 외진 곳에서 용케도 버티고 산다? 안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이렇게 나와서 보니까 이건 완전히 첩첩산중에 나 홀로 이잖아.”
미호는 전혀 수긍하지 않았다.
“흐응, 이곳이 어때서? 물 맑지, 공기 좋지, 조용하지. 세상사람들의 추악한 면도 전혀 다가오지 못하지. 난 아주 대 만족하며 살고 있으니까 넌 걱정하지 않아도 돼.”
동천은 그녀가 너무 어른스럽게 말하자 비꼬듯이 말했다.
“어린것이 어째 늙은이 같은 소리만 하네?”
미호는 피식 웃었다. 오백 살이 넘은 자신에게 어린것이라고 하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던 것이다. 그녀는 집고 넘어가 봤자 쓸데없는 일이기에 동천의 물음에만 대답했다.
“음, 작년에 장로님의 허락을 받고 오랫동안 세상에 나가보았어. 따듯한 것도 보았고 추악한 것도 보았지. 하지만 좋은 부분들은 아무래도 눈에 뜨이지 않더라? 에휴! 세상이 뭐 이래? 라는 생각에 겨우 반년만 채우고 돌아왔어. 원래는 1년 동안의 여행을 허락 받았었는데 말야.”
동천은 미호의 이야기 속에 장로라는 인물이 새로 등장했지만 물어보기가 귀찮고 물어봤자 소득도 없을 것 같아 물어보지 않았다. 솔직히 알아봤자 자신에게 이득 될 것이 하나도 없었기에 더욱 그랬다.
“니가 너무 민감해서 그래. 뭐 그 부분에 관해서는 이 몸께서 아무리 설명해 줘봤자 뉘 집 개가 짖는가? 라고 생각할 테니 넘어가자. 헌데, 이놈 이름은 뭐야?”
미호는 설산묘화 새끼의 목덜미를 쥐고 좌우로 흔들어대는 동천에게 눈을 흘겼다.
“조심해서 다뤄. 그리고 암컷인데 놈이 뭐니?”
동천은 약간 놀란 반응을 보였다.
“어? 암컷이었어?”
그러더니 이어 말했다.
“쳇, 암컷이나 암놈이나 그게 그거니까 놈이 되지 왜 안되냐?”
‘에그, 그놈의 지기 싫어하는 성격하고는…….’
어떻게 보면 좋은 성격일 수도 있다. 하지만 쓸데없는 것에만 지기 싫어하니 문제일 수밖에. 미호는 헤어지는 마당에 동천의 기를 꺾어주기 싫었다. 그래봤자 동천의 상당량의 기억을 망각 속으로 넘길 때, 기를 죽이나 안 죽이나 그 부분도 같이 넘어갈 테지만 말이다.
“알았어. 내가 말을 잘못했어. 으음, 걔의 이름을 내가 곰곰이 생각해봤는데 설화가 낳은 두 마리 모두 암컷이라서 네 것을 쌍쌍으로 지어주려다가 쌍쌍을 한 자씩 떼어내어 첫 글자로 삼은 뒤 남아있는 새끼를 **쌍인(雙因)**이라 짓고, 네 새끼를 **쌍연(雙緣)**이라 짓기로 했어. 뒤의 이름들은 **인연(因緣)**이라는 글자를 각기 떼어낸 거야. 어때? 괜찮아?”
잠시 그녀가 지은 이름을 중얼거려보던 동천은 곧이어 한심하다는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너도 참 이름 못 짓는다. **작명소(作名所)**라도 차렸다간 바로 망하겠어. 너 솔직히 말해. 그 설화나 설총이란 어미들 이름, 니가 지은 거 아니지? 그지?”
뜨끔한 미호는 대충 얼버무렸다. 동천의 예측대로 그 이름들은 신지가 지어준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고 마음에 안 들면 네가 한번 지어봐. 어디, 얼마나 부르기 좋게 짓나 내가 두고 볼 테니까.”
동천은 자신 있게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
“좋았어! 이 몸께서 나서는 일에 해결되지 않는 문제는 없었으니까! 자아, 뭐라고 지을까나? 뭐라고… 아? 이렇게 지으면 어떨까? 인연은 똑같이 사용하되 둘 다 암컷이니까 하나는 인화(因花), 하나는 연화(緣花). 어때?”
미호는 대체적으로 괜찮긴 했지만 쉽사리 만족하지 못했다.
“분명히 내 것보다는 괜찮긴 한데, 그것만으로는 좀 모자라 보이지 않니?”
동천이 대뜸 투덜거렸다.
“에이씨, 그럼 니가 지어봐. 아니면 니 이름도 두자니까 하나씩 갖다 붙여서 미인화(尾因花) **호연화(狐緣花)**라고 짓던가. 부를 땐 그냥 인화, 연화 그러고.”
순간 미호가 눈을 반짝였다.
“응? 미인화와 호연화? 미인화, 호연화. 미인화, 호연화……. 꼬리가 근본이 꽃과 여우와 이어진 꽃이라? 호호, 그거 괜찮네? 부를 땐 이름만 부르면 되니까 어색하지도 않고 말야. 와아, 동천 너 소리칠 만도 하구나!”
얼떨결에 미호가 만족할만한 이름을 지어낸 동천은 기회를 놓칠 새라 무게를 잡고 나섰다.
“훗, 이 몸께서 하시는 일인데 어련하겠느냐. 다만 이 영광을 하늘님에게 돌릴 뿐.”
“그래그래 알았어. 우리 호연화 잘 부탁해. 내가 나중에 잘 키웠나 보러 갈 테니까 구박하며 키웠다간 알아서 하고.”
동천은 주춤했다.
“어? 여기서 헤어지는 거냐?”
미호는 내심 혀를 내둘렀다.
“하여튼 네 눈치에는 못 당하겠다. 맞아. 여기가 바로 내가 나오기 전에 말했던 길이 시작되는 부분이기 때문이야. 계속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저절로 네 일행과 만나게 될 테니까 잘 내려가도록 해.”
동천은 아쉬움이 남는지 은근슬쩍 물었다.
“좀만 더 같이 가면 안될까? 심심해서 그래. 내가 원체 심심한 것은 못 참는 성격이거든.”
원래 그녀는 방심하며 내려가는 동천의 뒤에서 **기억망각술(記憶忘却術)**을 사용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지금의 동천을 쉽사리 떼어놓을 수가 없다고 생각한 그녀는 자연스럽게 자신의 할 일을 끝마치고자 한가지 제안을 했다.
“좋아. 그 대신 나를 위해 노래를 불러주겠어? 내가 만족할만한 노래를 말야.”
동천은 뚱딴지같은 요구에 난색을 표했다.
“에? 노래를?”
“그래, 어려워? 뭐 어려우면 하는 수 없고.”
‘우이씨, 이게 튕기는 입장이라고 배 째라는 식이네?’
동천이 나름대로 성질을 내는 사이, 그녀가 보란 듯이 되돌아가려는 시늉을 보였다. 급해진 동천이 소리쳤다.
“자암∼깐!”
미호는 멈추었다.
“왜? 생각났어?”
동천은 약간(?) 비굴하게 한 수 접었다.
“헤헤, 갑자기 노래는 그렇고 말야. 시는 어때? 내가 아주 죽여주는 시를 알고 있는데.”
잠시 생각하는 척하던 미호는 어렵게 결정한다는 듯 고운 아미를 찡그리고 말했다.
“좋아. 꿩 대신 닭이라지만 의외로 괜찮을 수도 있으니까.”
나름대로 어렵게 허락을 구한 동천은 그녀의 마음이 변하기 전에 목소리부터 재빨리 다듬었다.
“아아! 아아, 목소리 점검 중. 험험! 흠흠! 핫핫! 켁켁? 콜록콜록!”
비록, 동천이 읊조리려는 시가 예전에 빨간 책에서 언뜻 읽었던 거였지만 좋으면 만사 땡 이라는 평소의 **지론(持論)**을 입증이라도 하듯 그는 거리낌없이 시를 읊었다.
짧은 만남 긴 예감. 그녀는 신비롭고 아름다웠네.
보라, 저 달님을! 보라, 저 태양을! 처마 끝의 달님은 수줍은 듯 노래하고, 중천에 떠오른 저 태양은 그녀의 부드러운 미소에 얼굴을 붉히네.
아아, 세상 끝을 뒤져봐도 그녀 만한 여인은 진정 다시없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