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18화
“저기 주임님, 제가 지금 나갈게요. 전 혼자라도 괜찮거든여.”
돌고래 주임은 선선히 첫 번째 제단에서 떨어지길 지원했다.
첫 번째 제단에선 홀로 가야 하니 누군가는 총대를 메야 하는데, 마지막까지 승객들을 정리하고 확인할 사람도 필요했기에 나는 막판까지 남아야 했던 것이다.
다만 돌고래 주임도 혼자 떨어지진 않았다.
“그, 그러면 저도 처음으로…! 가겠습니다.”
“어차피 할 거 처음이 낫죠.”
워낙 지원 인원이 많았기에, 첫 번째 제단에서도 몇 사람이 함께 뛰어내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시작 직전.
남은 거리 : 4
“지금이라도 그만두실 기회는 있습니다.”
마지막 갈림길에서도, 한 사람도 그만두지 않았다.
“갑시닷!”
“으아아!!”
사람들이 창문으로 나간다.
돌고래 주임을 필두로, 일곱 명이 넘는 사람이 우르르 첫 번째 제단에서 내려갔다.
뱃길을 열어라
기차는 빠르게 제단을 빠져나갔고, 다시 주변이 밝아졌다.
“어….”
사람들은 14회차나 반복된, 거의 학습된 일상적 풍경에 눈을 껌벅였다.
“가, 갔다.”
당연하지만 이전에 뛰어내린 것과 별로 다를 것 없어 보였을 것이다.
‘진통제가 없는 건 내려간 후에야 영향을 발휘하니까.’
그리고 묘한 증상이 일어났다.
‘잠깐, 사실 별거 아니었던 건가?’
그렇게 생각한 건지, 뒤늦게 자기도 떨어지겠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나온 것이다.
가령 이 사람처럼.
“저기요! 저도 나갈게요.”
이 승객으로 말할 것 같으면, 돌고래 주임에게 인성질을 목격당하고 제물 후보로 눈도장 찍혔던 그 사람이다….
초반 회차에서 사람들한테 주먹 들고 ‘확 그냥 때리기 전에 가라’ 식으로 말한 건 편리하게 기억에서 삭제했는지, 아무렇지 않게 내게 말을 건다.
뭐, 그래도 상관은 없다.
“그럼 2번째에서 떨어지시는….”
“아뇨, 저는 그쪽, 그러니까 선행자님이랑 갈 건데요. 꼭 같이 가고 싶다고요. 마지막에.”
“…음. 알겠습니다.”
그러시다면야.
-좀 무례한 작자로군요.
그 말대로였다.
그리고 뒤에서 그 승객이 일행과 떠드는 소리가 들린다.
“야, 너 뭐 해? 왜 갑자기 뛰어내리겠다고 지랄이야.”
“쓰읍, 분위기 보면 모르겠냐? 분명 믿고 뛰어내리면 뭐 특별한 능력 주고 이런 거야. X발 척 보면 딱이지. 이럴 때 흐름에 빨리 타야 하는 거라고.”
음.
‘저런….’
그런 거 없다.
“아프다는 것도 거르기용 뻥카일 확률이 높다니까?”
아니다.
‘진짜 아프실 텐데.’
뭐, 착각도 개인의 자유니까.
나는 뜯어말리진 않기로 했다. 대신 제단에 가겠다는 사람 명단에 저쪽을 추가하기 위해, 얼굴이나 한 번 더 체크….
잠깐만.
그러고 보니 저 사람 얼굴….
‘…볼에 왕점이 있군.’
돌고래 주임이 선제 안면 펀치를 날릴까 봐 황급히 지나치느라 보지 못했던 특징이었다.
‘그리고 6호차 사람이었지?’
정확히 일치하는 특성을 지닌 누군가가 떠올랐다.
음.
‘아무래도 저 사람이 원래 사이비 교주가 됐던 승객이었던 것 같다….’
-저런! 노루 씨에게 배역에서 밀린 겁니까?
음, 인정하기 싫지만… 아무래도 그런 것 같다.
‘총 14회차가 워낙 부드럽게 흐르다 보니, 저런 케이스도 나오는 건가.’
뭐, 공포와 광기로 승객들 끌고 다니면서 사람 장기를 적출해서 산제물로 바친 후 껍데기만 창문에 던지는 것보다야 훨씬 낫지….
어쨌든 중요한 건 자원한 승객 대다수가 아무 문제 없이, 차분하고 굳센 태도로 제단에 함께 내려가고 있다는 점이다.
“가보겠습니다.”
“다들 더 멋진 사람이 돼서 봐요!”
“할 수 있다!”
분위기는 이상하게도 점점 더 좋아졌다. 심지어 몇몇 사람들은 기다리다가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저, 사실 저는 뭘 이렇게 도전해 보는 게 처음이거든요….”
“멋지다!”
나는 사람들이 서로 격려하며 진솔한 이야기를 나누는 가운데, 외따로 떨어진 한 사람을 돌아보았다.
이 모든 광경을 떨떠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백사헌을.
“…저기, 왜 보시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전 안 내려갈 건데요.”
“그러세요.”
기대도 안 했다.
“그런데요.”
백사헌이 약간 은근한 목소리로 말한다.
“뭐, 혹시 필요하시다면 진통제 하나 주면 내려갈 수도 있고요.”
“아, 지금 쓰시려고요?”
“아니, 이거 다 끝나고 나가서요.”
“오….”
나는 빙긋 웃었다.
“됐습니다.”
“…….”
그냥 편하게 무임승차나 하십쇼.
‘어디서 날로 아이템을 먹으려고 드냐.’
“아, 다섯 번째 제단입니다, 선행자님!”
“예. 지금 가겠습니다.”
나는 백사헌을 뒤로 하고 승객들 틈에 끼어서 자원자들에게 조언과 박수를 보냈다.
은심장 소유자로서 할 수 있는 일을 했다는 뜻이다.
그리고…….
그렇게 약 3시간이 흐른 후.
아홉 번째 제단 진입
“…….”
드디어 마지막 순간이 왔다.
“갑시다.”
“네.”
나는 남은 자원자들 모두와 함께 섰다.
…이번에 창문으로 나가겠다는 사람들은 스무 명을 가뿐히 넘었다.
‘말도 안 되는 숫자야.’
솔직히 무섭다.
이 사람들이 진짜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날 원망하기 시작하면, 내 멘탈이 버틸 수 있나?
“가겠습니다!”
“야, 얍!”
망설임 없이 손을 잡고 창문으로 뛰어드는 두세 사람들이 줄줄 이어진다.
나는 자원한 승객들의 마지막 사람까지 창문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확인한 후, 즉각 창문 앞에 섰다.
“가, 가시는 겁니까?”
사실 지금 빠져도 클리어에 지장은 없지만.
그렇지만…….
-아, 이번에도 그 탁월한 진통제를 사용할 겁니까, 친구?
…….
‘아니.’
나는 진통제를 도로 품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창문을 향해 몸을 날렸다.
철퍽.
고속열차에서 떨어진 몸이 검붉은 제단 통로로 굴러떨어진다.
그리고 주변 풍경을 오감이 파악하는 그 순간….
…….
‘X발.’
거긴 원초적 지옥이었다.
내가 이 풍경에 징그러움을 느끼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분명 두 번이나 해본 일인데도, 해피메이커를 팔뚝에 꽂았을 때와 안 꽂았을 때의 차이는 극명했다.
누구 것인지 모를 수많은 썩은 살점이 바닥에서 꿈틀대며 지렁이처럼 파도를 만들고, 썩은 피와 오물로 가득한 지옥이다.살점이움직인다!
이, 이거 정신 착란도 일으키는 건가? 아니, 나는 은반지를 꼈으니까 괜… 아니, 생각을, 생각을 멈추자.
은반지의 저항력이 힘을 발휘하도록, 나는 숨을 골랐다.
그래도 머릿속을 강타하는 소리는 전처럼 들리지 않는다.
‘정신을 가다듬고….’
그때.
전신이 불에 타오르는 듯한 통증이 강타했다.
“…!!”
넘어질 뻔했다.
작열통.
작열통!!
작
열
통
작
열
통
작
열
통
글자 하나하나가 전신을 촛농으로 지지는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울리던 그 괴상한 소리가 안 들린다고 되는 게 아니었다!
심지어 그 소리가 들리는 사람들은….
“미친! 미친!”
“끄아아악!”
“뭐, 뭐라는 거야, 뭐… 죄, 죄애애?”
울음과 비명, 착란 증상이 제단을 울린다.
머리가 어지러웠다.
쿵.
내 근처에서 한 사람이 완전히 넘어져서 살점 사이로 꽂혔다. 나는 비명을 참으며 해당 사람을 잡아 올렸다.
“끄르르르르륵….”
‘지, 진통제.’
일단 잡아 올려서 해피메이커를 꽂겠다는 생각만 머리를 지배했다.
그래서 상대를 부축해서 둘러업는 순간.
“…!”
갑자기.
작열통이 훅, 줄어들었다.
‘……아니야!’
줄어든 게 아니라, 이 상대와 접촉한 등과 어깨부근에서 작열통이 느껴지지 않아서, 상대적으로 견디기 쉽게 느껴지는…….
“…아!!”
깨달았다.
서로 접촉한 부위에서는, 작열통이 느껴지지 않는다.
제단의 환경에 노출되지 않으니까!
“여러분! 서로 붙으십시오! 붙으면 나아져요!”
그 말을 하면서 주변 사람 하나와 어깨동무하듯 몸을 꼈다.
말이 번져 나간다.
“맨살을 드러내지 맙시다! 소, 소리가 거기서 나요!”
“서로 손 잡아요!”
이윽고 드문드문 떨어져 있던 두세 명의 그룹이 뭉치고, 그 사람들이 우르르 앞뒤로 서로 붙었다.
“꺼져 X발! 아아악!”
물론 그 와중에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람들을 밀다가 아예 살점 속에 가라앉는 사람도 보였다.
“너 X발 내가 가만 안 둘 거야아아아!! 속였어! 속여■■■”
심지어 막판에 ‘특별한 능력’을 얻겠다며 윽박지르듯 합류했던 한 승객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보며 손가락질하다가, 살점에 파묻혀 낙오된다.
그러나 스무 명 이상, 대다수의 사람은 마치 펭귄처럼 서로를 둘러싸고 뭉치기 시작했다.
“돼, 됐….”
“견딜만해. 견딜만해…!”
“우, 움직입시다아아아!”
그리고 최대한 서로 붙어서 팔짱을 끼고, 부대낀 채 빛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고통이 최소화된다.
이빨로 뜯을 수도, 손톱으로 긁어낼 수 없이 서로 부대낀 양손이 양쪽에 선 사람을 꽉 쥐고, 달리는 발걸음에 발밑의 썩은 살점이 흩어진다.
비명과 고함이 울렸으나, 동시에 격려와 기합도 함께 울린다.
공유하는 감각.
“다 왔어!!”
빛이 가까워진다.
느리지만 확실하게.
좀 더.
좀 더….
그리고 마침내!
“아…….”
사람들이 처절히 환호하며 빛에 몸을 던진다.
“와아아아아!!”
나도 함께 빛에 휩싸여, 정신이 아득히 고양되기 시작한다.
이미 사라진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 괴담이 주는 시험은 지금까지 한 번도 ‘제대로’ 풀이된 적이 없던 게 아닐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해답의 방향성을 어렴풋이 본 것 같았다.
‘어쩌면 탐라는.’
열차의 모든 승객이 다 함께 뛰어내려서, 이 과정을 거치면 도달할 수 있는 미지의 세상이 아닐까.
* * *
나는 눈을 떴다.
“으헉!”
“으으….”
“아… 뭐, 뭐야.”
여기저기서 숨 들이켜는 소리와 작은 신음들이 들렸다.
선잠에 들었다가 화들짝 깬 사람 특유의 펄떡거림도 여기저기서 의자가 흔들리는 것으로 보였다.
나는 당장 고개를 들어서 열차 영상부터 보았다.
그리고 화면에서 흐르는 글자가.
목포행
바뀐다.
출발
삐이이익!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고속열차가 역에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오, 잘 돌아왔네여.”
“……예.”
탈출, 성공.
‘휴우….’
나는 긴장감이 쭉 풀려 자리에 완전히 기대 뻗었다.
하지만 앞사람을 보는 순간 도로 빠릿해졌다.
‘…진나솔 대리님!’
진나솔 대리는 말도 표정도 없이 팔짱을 낀 채 기차 천장을 보고 있었다.
그, 물론 이제 다 꿈속의 일이 되긴 했고, 진나솔 대리는 마지막에 뛰어내리지도 않았으니 남은 분노가 크진 않았을 것 같지만….
‘그래도 할 건 하자!’
나는 황급히 주머니를 뒤져서, 능률지상주의자 피곤한 직장 상사에게 기력을 줄 물건을 꺼냈다.
여기 앉은 우리 셋이 모두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대리님.”
“…….”
“꿈결수집기가 찼습니다.”
맑은 금빛 용액이 수집기 속에서 찰랑거렸다.
그래.
우리는 출장 중이었으니 당연히 꿈결수집기를 가지고 있었고, 괴담을 클리어했으니 용액이 수집되었다.
‘아마도 예전 익산행일 때 클리어했다면, F나 D등급이 나왔을 것 같긴 하지만….’
변칙 발현해서 연장노선이 추가되고, 두 자릿수로 재시작하고, 수많은 사람이 함께 제단에 떨어졌던 지금은….
“C등급이네.”
우리가 들어가려고 했던 목포의 어둠과 같은 등급이었다.
그리고 이미 꿈결 수집기가 차버렸으니, 이제는 새로 어둠에 진입해도 의미가 없다.
진나솔 대리의 얼굴에 비로소 표정이 돌아왔다.
“이러면 목포 안 가도 되잖아? 다음 역에서 복귀해.”
“네네넵!”
나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다행이다.’
역시 직장인은 일이 빨리 끝나는 게 최고의 선물인가….
그때였다.
뒷자리에서 숙덕이는 소리가 들린다.
“저기… 나 이상한 꿈 꿨는데… 막 열차가 물에서 달리고?”
“헐, 그게 뭐야. 개꿈이네.”
“아니 근데 재밌었어. 난리 나는데 막, 성인 같은 사람도 나오고… ‘선행자’라고 불렀던가? 아무튼 그게 딱 우리 앞자리였다?”
“어, 진짜?”
“…!”
자, 잠깐만.
아무래도 사이비 교주 행세한 게 강렬해서 사람들 기억에 확 남은 모양이었다.
‘이, 일단 자리를 뜨자.’
나는 상사들에게 양해를 구한 후, 눈에 띄지 않도록 일단 화장실로 향했다.
찰칵.
“후우.”
음. 승객들 기억에서 디테일이 휘발될 때까지 몇 분 정도 여기 있다가 가도록 하자….
-마치 극성팬을 피하는 스타 같군요….
상당히 유사하다는 게 왠지 창피했다….
그래도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아니, 굉장히 좋은 결말이지.’
옅은 뿌듯함이 가슴께에서 번졌다.
……원래 탐라행 고속열차 사태 당시 승객들은 누리지 못했던, 평온함.
‘그건… 엔딩이 더 끔찍했으니까.’
충격적일 만큼 절망적이라서, 위키가 없어도 아주 선명하게 기억난다.
수백, 수천 번의 루프가 진행되며 승객들의 정신이 완전히 붕괴되고 집단 광기를 넘어 거의 인간이 아니게 됐던 어느 한 시점.
이미 모든 승객의 정신이 붕괴해서 지옥이 된 열차 칸은 이제 인원수에 맞춰 창문으로 뛰어내린다는 판단 자체가 불가능한 고통의 늪이었다.
‘하지만 반복 시행을 하다 보면, 확률적으로 ‘정답’이 무심코 나오기도 한다….’
수없이 많은 재시작과 끝없는 세월 끝에, 그들은 마침내 숫자를 맞춰 9번째 제단까지 뛰어들게 된다.
그렇게 극적으로 이 이상 현상에서 탈출하게 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탈출하지 못하지.’
공양을 한번 경험하고 깨어난 사람도 악몽이라 생각하고 몇십 분 이상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그걸 수백수천 번 반복한 인간의 정신은?
‘…아예, 악몽에서 벗어나지 못한 거지.’
승객들은 이상 현상이 종료되어 현실로 돌아왔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한 것으로 추정.
그들은 자신들이 아직 루프에 갇혀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
오히려 현실로 돌아오며 정신력이 약간 회복되자 더 절망하고 적극적으로 미친 짓을 저지르기 시작했다.
그렇게 현실에서도 지옥이 도래한다.
승객 대다수는 앉은 자리에서, 통로에서, 창문에서 서로를 죽고 죽이고, 뜯고, 해체하고.
그 어마어마한 소요와 광란 끝에 열차는 탈선하여….
폭발한다.
그렇게 ‘탐라행 고속열차 사태’는 끔찍한 결말을 맞는다….
생존자 : 7명
사망자 : 404명
……현실이 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음, 그리고 다 끝나니 드디어 의문을 가질 여유가 생겼다.
■■■ 대리
본래 이 사태의 생존자 중 유일한 백일몽 주식회사 사람 말이다.
내가 사망단길에서 사 온 이 은반지를 민간인 셋과 교환해 구매했을 그 직원.
이 사람은 어디 있던 거지?
‘아니, 있던 게 맞긴 하나.’
모르겠다.
아까 열차 내에 우리가 확인이 가능했던 회사 직원은 백사헌뿐이었다.
직원 색출 같은, 딱히 클리어에 도움도 안 되면서 튀는 행동을 하고 싶지도 않았고.
‘어쨌든 다행이다.’
있었다면, 무사히 종료되었으니 그쪽도 살았겠지.
중요한 건 그 열차에서 있었던 비극은 일어나지 않았단 것이다.
쿵쿵쿵!
아,
‘슬슬 나가야지.’
다음 사람이 기다리다 못해 화장실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나는 슬슬 기억에서 날아가기 시작한 지난 14회차의 기억을 붙잡아 스마트폰에 메모장에 몇 자 기록하며, 찬물 세수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나왔다.
달칵.
기다리고 있던 사람이 불쑥 화장실로 들어온다.
‘급하셨나.’
얼른 스쳐 지나가며 다시 내 자리로 복귀….
휙.
“이 개X끼.”
나는 고개를 내렸다.
커터날.
칼이, 아슬아슬하게 내 가슴팍을 가르고 지나가고 있었다….
“…!!”
X발!
나는 뒤로 물러나는 동시에 한 팔로 상대의 팔뚝을 잡고 비틀었다.
쨍그랑!
커터날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날카로운 소리를 낸다. 그대로 상대를 제압해 바닥에 눌렀다.
그 과정에서 얼굴이 보였다.
“X새끼가, 어, 어어!”
이런 미친.
나는 식은땀을 흘리며 상대를 짓눌렀다.
‘사이비 교주…!’
“X발! X나 아파, 허어어, 아팠다고! 어!”
마지막 9번째 제단에 떨어져서 낙오됐던 그 사람이다!
‘이 미친 자식이….’
“사람을 속여?!? 그럼 죽어야지 X새끼, 개X….”
나는 계속 욕지거리를 하는 상대를 잡고 바닥에 한 번 더 세차게 밀쳤다.
쿵, 하는 짧은 타격음과 함께….
기절한다.
“허억.”
손아귀에서 식은땀이 흥건했다.
‘…낙오되어서 정신이 나갔었나.’
심지어 원래 인성이 나빴으니, 공양할 죄도 더 많아서 더 길게 고통받았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리 그래도 악몽 수준이었을 텐데, 어지간히 분노 조절을 못 하는 성정인가 보다.
‘이런 인간상이니 그랬겠지.’
“후….”
나는 땀을 닦아냈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칼에 베인 내 가슴팍은 통증 없이 멀쩡하다는 점이다.
왜냐?
‘…포장지 미리 몸에 감고 오길 잘했다.’
설마 괴담으로 출장을 가는 도중에 또 괴담에 끌려갈 줄 몰랐지만, 나중엔 기회가 없을까 봐 출발할 때부터 맨살에 방어용 포장지 아이템을 덧대어놓고 있었거든.
외계인 상점에서 팔던 ‘포장지 12B357나’ 말이다.
사망 예고까지 받았으니까 당연한 준비라고 할 수 있었다.
‘그래도 그렇지, 설마 괴담이 아니라 칼 든 괴한한테 죽을 뻔할 줄은 꿈에도 몰랐네….’
혹시 내가 받았던 사망 예고가 이거고, 지금 막은 건가?
‘어떻게 생각해, 브라운.’
…….
…….
대답이 없다.
“……브라운.”
이상한 예감이, 등골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러니까… 내가 지금 가슴팍을 베였지.
다치진 않았지만, 그건 포장지로 덧댄 내 맨살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바깥, 내 정장 왼쪽 가슴 부근의 포켓에, 들어 있던 것은….
“…브라운?”
여전히,
대답은 없었다.
나는 황급히 정장 안 포켓에 손을 집어넣었다.
떨리는 손이 그 안에 든, 복슬복슬한 솜인형을 꺼내는데….
투두둑.
솜이 아래로 떨어진다.
너덜거리는 분홍색 원단이 잘려서 나풀대며 떨어졌다.
“…….”
나는 두 동강 난 봉제 인형 키링을 들고, 얼어붙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