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1권 14화 – 이건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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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1권 14화 – 이건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이건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격돌의 여파

“드디어 때가 왔다!’

마하령은 잠시 시선을 돌려 저편에서 구대문파 출신의 추종자들에 둘러싸여 비무를 준비하는 용천명을 바라보았다. 물론 자신의 주위에도 팔대세가를 위시한 추 종자들이 모여 있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출신 따윈 아무래도 좋았다. 구대문파니 팔대세가니 하는 건 그녀에게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그저 순수하게 자신의 실력을 시험해 보고 싶을 뿐이었다.

‘저 남자에게 나 마하령이 누군지를 확실히 각인시켜 주겠어!’

기필코 이기고 싶었다. 소녀의 마음을 무참히 짓밟고도 무사하리라 생각했던 게 얼마나 안이한 생각인지 보여주리라!

언제까지나 과거에 연연하겠다는 것은 아니지만, 예전의 무례에 대해선 한 번쯤 복수해 주는 것이 정신 건강에도 좋을 것 같았다.

준비는 끝났다. 두 사람은 무기를 들고 마주 섰다. 먼저 입을 연 쪽은 마하령이었다.

“드디어 실력을 겨뤄볼 기회가 생겼군요, 간신히!”

“그렇소.”

두 사람이 직접 검을 맞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천무학관에서는 이래저래 미묘한 세력 문제 때문에 비무가 불가능했다. 누가 이기든 세력 다툼으로 비화되어 천무 학관 전체가 시끄러웠으리라. 그래도 이곳, 마천각에서라면… 수습이 가능한 정도의 뒷일은 나중에 생각하면 그만이다. 마하령은 이 기회를 결단코 놓치고 싶지 않 았다.

“전력을 다해주세요. 여자라는 이유로 봐주거나 하면 평생 경멸할 거예요.”

시작 전에 분명히 못 박아두었다.

“물론이오. 봐주면서 이길 만큼 만만한 상대가 아니라는 것쯤은 잘 알고 있소.”

진심이 담긴 답이었다.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이쪽도 전력을 다할 테니.”

“그거 기대되는구려.”

용천명은 검을 뽑았다. 사문의 비보(秘寶) 녹옥여래검(綠玉如來劍)이었다.

스르릉!

마하령의 허리춤에서 날렵한 도(刀)가 하얀빛을 발하며 뽑혀 나왔다.

“처음 보는 칼이구려.”

길고 날씬하지만 왠지 무게감이 느껴지는 외날 도였다. 마하령을 안 지는 오래되었지만 저런 칼은 처음 보는 것이었다. 마천각으로 오는 길에서도 그녀는 저 칼을 차고 있지 않았었다.

“외조부님께 받은 칼이에요. 저를 위해 준비하신 거죠.”

“도성께서…….”

지난겨울 내내 도성으로부터 직접 도법을 전수받는 광경은 그도 직접 목격한 바였다. 그 역시 그때 보았던 그녀의 눈을, 의지에 불타는 그 눈동자를 잊을 수 없었 다.

“호오, 도성께 직접 전수받은 도법을 볼 수 있다니 영광이오.”

한 치도 비틀림 없는 진심이었다.

“걱정 마세요. 용 공자야말로 그간 얼마나 많은 진보가 있었는지 궁금하군요. 침체는 잘 극복하셨나요? 절 실망시키진 않겠죠?”

그가 화산지회 이후 깊은 침체에 빠져 있었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것이다.

“다행히 인연이 있어 실마리를 찾았소. 결과는 지금 곧 확인할 수 있을 거요.”

자신도 그동안 멋으로 벽을 바라보고 있었던 건 아니었다.

“호오, 그것참 흥미롭군요.”

마하령의 눈이 반짝였다. 당장이라도 시험하고 싶어 좀이 쑤시는 모양이었다.

“오시지요!”

용천명이 검을 들며 청했다. “그럼 사양 않고!”

검과 도가 부딪쳤다.

영혼과 영혼의 격렬한 충돌 속에 화려한 불꽃이 피어올랐다.

용호상박(龍虎相搏)!

불꽃이 튈 만큼 첨예한 대결. 용천명과 마하령은 실력이 막상막하인 만큼 좀처럼 승패가 가려지지 않았다.

“역시 두 사람 다 양대 조직의 수장답게 실력이 대단하군요!”

나예린이 용천명과 마하령의 비무를 지켜보며 감탄성을 터뜨렸다. 용천명의 검은 부드럽고 웅혼한 힘이 깃들어 있었고, 마하령의 도는 빠르고 날카로웠다. “확실히 상당하네요. 그런데 간신히 실력을 겨룰 기회가 생겼다고 하더니만, 실은 여러 차례 겨뤄본 사람들 같은데요?”

마치 상대방이 무슨 초식을 쓸지 이미 다 알고서 약속 대련을 하는 것 같은 모습이었다. 서로의 수, 상대의 초식과 장기, 버릇 등을 잘 알고 있어야만 저렇듯 물 흐 르는 듯한 공방이 가능한 것이다.

연비는 문득, 오랜만에 재회한 거친 사내들이 반가움을 표현한답시고 근육질을 불끈불끈하면서 서로의 얼굴에 한 대씩 날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저 정도면 비무가 아니라 대화라고 해도 되겠어요. 소위 사내들이 나누는 주먹의 대화 같은… 뭐, 어지간히 말이 서툰 자들의 얘기지만요.”

나예린도 유사한 광경을 연상했는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 것 같아요. 아마도 부끄러운 마음을 감추고픈 행동이겠죠.”

마하령이 들으면 까무러칠 대화가 오가는 중에도 대결은 여전히 평행선을 그리고 있었다.

“흐흥. 이제 슬슬 새로운 뭔가가 나오면 지금처럼 매끄러운 공방은 불가능해지겠죠? 아직까지는 틈이 없었지만, 저 사람 너무 답답할 정도로 정석적이네요.” “용 공자다운 검이지요.”

당연하다는 듯한 나예린의 평가에 연비가 혀를 찼다.

“그래도 본인은 틀을 깨고 싶나 본데… 몸은 안 따라주니 머잖아 빈틈이 생기겠군요.”

연비의 안목은 정확했다. 용천명에게는 한동안 자신을 괴롭히던 침체기의 그림자가 남아 있었다. 침체기에서는 벗어났으나, 의문에 대한 해답을 체득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몰랐다. 그는 아직 벽을 넘지 못하고 있었다.

그도 자신의 문제점은 어느 정도 자각하고 있었다.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길목을 가로막는 벽, 그것은 곧 과도하리만치 정석적인 공격이었다. 유구한 소림의 전통 을 잇고 훌륭한 후계자가 되겠다는 마음의 그림자가 뭉쳐진 약점이었다. 전통을 계승하려는 의지가 지나친 나머지 옛것을 변화시키는 일에 저항감이 컸던 것이다. 전수받은 비법을 정확히 익힌 덕에 지금의 위치에 오르긴 했지만, 더 이상 나아가는 건 불가능했다. 기존의 것을 뛰어넘어야 한다고 머리로는 알고 있었어도, 이십 년 가까이 길들여진 몸은 마음에 잘 따라주지 않았다. 본능적인 거부감이라 해도 좋았다.

전통의 탈을 쓴 습관적인 움직임, 변화를 거부하며 속박된 감각.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베고 달마를 만나면 달마를 베어야 했건만, 칼을 휘두르기는커녕 경외감에 빠져 고개도 못 드는 처지였다.

달마십삼검의 열세 초식이 쳇바퀴처럼 굴러가 세 번째 반복되자 드디어 빈틈이 나타나고 말았다. 변화없는 속도, 변화없는 힘, 변화없는 변초는 치명적인 허점을 만들어냈다.

“기회다!”

마하령은 때를 놓치지 않고 빈틈을 향해 도를 찔러 들어갔다.

“하압!”

표류무상도법의 표류무상기를 사용하자면 막대한 내공이 필요하기에 그 기술은 쓸 수 없었다. 대신 그녀는 자신의 현재 몸에 맞는 기술을 배웠다.

“아무래도 이 할아비 생각엔 말이다, 네겐 이 초식이 적합할 것 같구나.”

“이게요?”

“그래. 누구도 생각지 못할 의외의 일격이 될 게다. 이 할아비가 장담할 테니 두고 보거라. 네가 단점이라 생각하던 것이 단박에 장점으로 변하는 것을!”

표류무상도법(漂流無常刀法).

붕결(崩訣).

일도굉(一刀轟) 태산붕(太山崩).

마하령은 양손으로 도를 높이 치켜 올렸다. 그녀의 외날 도 손잡이는 일반적인 도보다 훨씬 길었다. 양손으로 쓰기에 적합하게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머리 위로 들어올린 도에 온 힘을 담아 힘껏 내려쳤다.

부웅!

바람을 찢는 무시무시한 파공성이 용천명의 귓가를 파고들었다. 태산이라도 쪼갤 기세였다.

“이건 위험하다!’

하나 피하기엔 칼이 너무 빨랐다. 막아내기도 급급한 상황이었다.

카캉!

“흐억!”

용천명은 손목이 부러질 것 같은 압력에 기겁했다. 천하의 보검 녹옥여래검이 두 동강이 나도 이상하지 않을 힘이었다. 마하령의 도를 겨우 지탱해 낸 그의 발이 땅속으로 푹 꺼져 들어갔다.

그녀의 일도는 지극히 무거웠다.

격돌의 여파는 분진으로 화하여 한참 동안 주변을 뿌옇게 채색했다. 연무장 전체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은 강맹한 일격이었다. 여인의 몸에서 뿜어져 나왔다고는 믿 기 어려운 파괴력. 그녀의 일도에 실린 것은 어떤 속임수도 없는 순수한 힘의 응축체였다.

마하령의 몸은 천축유가신공으로 근육을 최대한 압축한 덕에 날씬하긴 했지만 그 질량까지 어디로 간 것은 아니었다. 제아무리 희대의 신공이라도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만들 수는 없다.

압축된 공간의 틈새에서 잠자던 막대한 질량은 속도를 만나자 강력한 파괴력이 되어 일도에 고스란히 실리고 말았다. 몇 배나 증폭된 힘이 용천명을 향해 내리꽂 힌 것이다. 아무리 기재라도 어찌 버겁지 않겠는가. 재깍 손목이 부러지지 않은 것만으로도 그의 비범함은 증명된 것이다.

승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휴우…….”

얼얼한 손목을 추스르며 용천명이 한숨을 내쉬었다. 어떻게든 마하령의 일도에 실린 만근거력을 해소시켜 보려 했으니 망정이지, 하마터면 검이 부러질 뻔했다. 사문의 비보를 두 동강 낸 천고의 죄인이 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기야, 그나마도 천하의 보검 녹옥여래검이었으니 만근거력을 막아낼 수 있었던 것이다. 다른 보통의 검이었다면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으리라. “졌소…….”

용천명이 순순히 인정했다. 장내가 술렁거렸다. 반은 경악이고 나머지 반은 환호였다.

“어때요, 자기가 비웃었던 사람한테 당한 기분이?”

마하령이 의기양양한 얼굴로 물었다.

“…이게 업보라는 걸까요?”

이내 한쪽 무릎을 꿇고 만 용천명을 바라보는 마하령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게 무슨 말이오?”

용천명은 어리둥절함이 가득한 얼굴로 고개를 치켜들었다.

“기억도 못한단 말이에요, 전에 당신이 내게 무슨 말을 했는지?”

분개한 목소리였다.

“금시초문이오만…….?”

용천명이 당황하며 대답했다.

“쯧쯧, 남자들이란. 용 공자는 다를 줄 알았는데 실망이군요. 소녀의 가슴에 대못을 박아놓고도 까맣게 잊다니! 어릴 때 나보고 뚱땡이라고 놀린 걸 정말 기억 못 한단 말이에요?”

마하령은 화가 끓어올랐다.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한마디라도 크나큰 상처가 될 수 있다는 걸 왜 모르는가. 악의가 없다는 것으로는 용납될 수 없었다, 특히 피해 자의 입장에서는.

“그 말,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요?”

그제야 자초지종을 알게 된 용천명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당연하죠. 그런 상처는 평생이 지나도 지워지지 않아요!”

더욱더 분노한 외침이었다. 당최 사내들의 생각이란 왜 이리도 짧단 말인가!

“실로 미안하게 되었소. 생각없이 한 말이 당신의 마음에 상처를 입혔다니, 내 진심으로 사과하리다.”

“그 무자비한 발언도 철회해야죠!”

여전히 화가 풀리지 않은 얼굴이었다.

“물론이오. 당시의 치기 어린 발언도 모조리 철회하겠소. 하령, 당신은 그 누구보다도 아름답소.”

화끈!

마지막 말은 느닷없는 기습이었다. 패배자가 발출한 의외의 공격에 마하령의 얼굴이 삽시간에 붉게 물들었다.

“지, 지금 절 놀리는 건가요, 용 공자?”

마하령은 발끈해서 외쳤다. 그동안의 관계를 미루어보았을 때 그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정말 뜻밖의 사태였다.

“그럴 리가 있겠소? 난 진심이오.”

그는 소림의 제자답게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마하령은 어째야 좋을 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왜 그러시오?”

의아한 얼굴이 된 용천명이 되물었다. 어려서부터 소림사에서 생활한 탓인지, 머리만 안 깎았다 뿐이지 속은 거의 중이나 다름없었다. 여심에 대해서는 초보 검사 도 안 되는 수준이었다.

“몰라요!”

부끄러움이 극에 달한 마하령은 저도 모르게 빽 소리를 지르며 용천명의 가슴을 향해 장저를 내질렀다.

뻑!

“쿠헉!”

표류무상도법의 영향력 때문일까. 무의식 중에 전력으로 내지른 일격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며 용천명을 단번에 삼장 밖으로 날려 보냈다. 쾅!

무시무시한 굉음이 터져 나왔다. 몇몇 사람들은 이 끔찍한 참사를 외면하고 싶은지 그만 눈을 질끈 감은 채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죽었을까요?”

참사의 현장에 눈을 떼지 못한 채 나예린이 물었다.

푸쉬쉬쉬쉬!

아직도 용천명이 부딪친 벽으로부터 자욱하게 치솟는 흙먼지를 바라보며 연비가 대답했다.

“아마도.”

“이제 나만 남은 건가?”

용천명이나 마하령이 대전 상대라면 대부분은 좌절에 빠질 것이다. 그러나 남궁상은 달랐다. 그는 이미 괴물 같은 이들과 지옥의 대련을 수없이 겪어왔다. 사전 합 의로 유리한 조건을 두기는 했지만, 천하오검수의 일인 아미신녀 진소령에게 승리를 거머쥐기도 했다. 아미신녀에 비하면 마하령은 아직 풋내기에 불과했다.

염도와 만나고, 빙검과 만나고, 진소령과 만나고, 그리고… 대사형 비류연을 만났다. 이제 그는 하늘 밖에 하늘이 있다는 것을 안다. 천무학관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가 앞으로 발을 내딛을 사회는 지금의 세계보다 훨씬 더 넓고 엄격하고 가차없고 험난한 것이다. 자신은 그간 비 모 씨 덕에 하늘 밖의 하늘을 어느 정 도 맛볼 수 있었다. 그 맛은 정말 지독하리만치 쓰고 매웠다.

그런 그가 볼 때 용천명과 마하령은 비록 뛰어나긴 해도 경외할 정도는 아니었다. 그가 아는 범위에서도 그들을 능가하는 괴물들은 열 손가락으로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득실득실했다. 이제는 확실히 알고 있었다, 학관 내에서의 순위 다툼 따윈 무의미하다는 것을. 그런 쓰잘데기없는 경쟁에 심신을 소모할 바엔 좀 더 생산적 인 자기 수련에 투자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그런 연유에 남궁상은 생각했다.

“어라, 그럼 해볼 만하잖아?”

못할 것도 없었다. 저들이 대단했던 것도 몇 년 전의 일. 그때, 아미산으로 악몽의 합숙 훈련을 가기 전이라면 몰라도 지금의 자신은 그때와 달랐다. 용천명과는 전 에 대사형 덕분에 맞붙어볼 기회도 있었다. 현재 자신의 실력은 그때보다도 훨씬 향상되어 있었다.

그때는 비록 무승부였지만, 이제야말로 진정한 승부를 가릴 때였다. 망설일 이유 따윈 어디에도 없었다.

‘까짓것, 한번 해보지 뭐!’

의외성을 하나 더 만드는 것도, 그에 경악하는 중인들을 보는 것도 나름대로 즐거운 경험이었다. 기왕지사 무대에 올라서게 된 것, 꼬리 만 개가 될 수야 없었다. 동 료들의 기대에 보답해 주리라.

‘나도 많이 바뀌었는걸…….’

이제야 겨우 그걸 자각하는 굼뜬 청년 남궁상이었다.

“기권하겠어요.”

의지로 불타오르는 남궁상에게 마하령이 말했다.

“네?”

바보 같은 목소리로 남궁상이 반문했다. 결전 태세로 임했더니만 느닷없이 김빠지게 기권이라니.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기권하겠어요.”

남궁상이 딴생각을 하느라 말을 놓쳤다고 여겼는지 마하령이 다시금 똑같이 말했다. 실제로 그녀는 같은 날에 또 한 번 대전을 치를 수 있을 만큼 온전한 상태가 아니었다. 용천명과의 대결에 모든 것을 쏟아 부은 결과였다.

마지막 일도는 그녀의 몸에도 상당히 무리를 가져왔다. 특히 손목에 가해진 부담은 상상 이상이었다. 게다가 왠지 기분이 홀가분해져서, 이제 대장 직위 따윈 누가 가져가도 별로 상관없었다. 뭔가 매듭을 지은 느낌이었다.

“그럼 전…….?

여전히 남궁상은 당황하고 있었다. 마하령은 좀처럼 보기 드문 구김없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축하해요. 우승하셨네요, 남궁 대장님!”

남궁상은 얼떨결에 대장이라 불리고 말았다.

“자, 잠깐만요. 갑자기 대장이라니, 이건 좀 곤란하지 않습니까?”

자신이 이겼다는데도 눈곱만큼도 기쁘지 않았다. 그보다는 뭔가 굉장히 기분이 나빴다. 이런 일에 어부지리라니, 앞날을 생각하면 마냥 좋아할 수는 없는 것이다. “난 상관없어요.”

이미 마음이 홀가분해진 마하령에게 대장의 지위가 가진 매력은 빛이 바래 있었다.

“용형은?”

급히 용천명에게 묻는다. 과연 썩어도 준치랄까, 다행히 그는 그 장저 한 방을 가슴에 맞고도 아직 살아 있었다.

“마, 마 소저가 좋다면 난 상관없네.”

파리한 안색으로 그렇게 대답한다.

“언제부터 두 사람의 의견이 이렇게 찰떡처럼 맞았지?’

점점 더 기분이 나빠졌다. 무엇보다 불길한 느낌이 드는 건,

“이래서야 마치.

전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그 대상이 자신은 아니었지만, 그 현장에는 자신도 함께 있었다. 그렇다. 이건 바로…….

“대사형 같잖아!’

그 점이 제일 꺼림칙했다.

“그럼 남궁 공자가 대장 위에 오르는 걸로…….”

백무영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그렇게 선언하려는 찰나, 남궁상이 급히 저지했다.

“잠깐만!”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남궁 대장?”

“있소! 마천각은 물론이거니와 천무학관 동도들도 이런 결과를 인정하지 않을 거요. 그렇게 되면 굳이 비무를 벌인 의미도 없어지는 것 아니겠소?”

“그럼 다른 좋은 방법이 있습니까? 이미 남궁 공자와 싸울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는 내일까지 대장을 뽑아야 합니다.”

백무영의 말도 일리는 있었다.

“아니, 방법이 있소.”

남궁상이 단호하게 대답했다.

“그게 뭡니까?”

“이런 중요한 일을 하루 만에 끝내려던 게 더 문제였소. 좀 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소. 굳이 마천각의 법에 따라 대장을 뽑겠다면 마천각 사람에게 묻는 게 더 타 당하다고 생각하오.”

“그 말씀은?”

백무영은 대충 남궁상이 무엇을 말하려는지 감이 왔다.

“마천각에서 가장 신뢰가 가는 인물에게, 누가 진정 대장으로 적합한지 의견을 구해보자고 말하고 있는 것이오. 그럼 마천각 사람들도 괜한 불만을 터뜨릴 수 없 을 테지요.”

남궁상의 파격적인 발상에 여기저기가 술렁거렸다.

“그럼 그동안 비어 있는 대장 자리는 어떡합니까?”

“내가 임시 대장 직을 맡겠소. 그럼 불만없겠지요?”

“지금 임시라고 하셨습니까?”

“그렇소. 임시요!”

남궁상이 단호한 어조로 대답했다.

“그럼 이 의견에 반대하는 분, 계십니까?”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이날 남궁상은 천무학관 사절단의 임시 대장이 되었다. 더불어 용천명과 마하령은 임시 부대장이 되었다.

‘흠, 예상과는 좀 어긋났지만, 뭐 그럭저럭이라고나 할까.

멀리서 그 모습을 지켜보며 연비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어요, 연비?”

곁에 있던 나예린이 연비의 미소를 보고 묻는다.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반장이 정해져서 다행이네요.”

연비가 웃으며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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