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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5화


장허운.

‘들소’ 가면을 받았던 이 동기는 본래 큰 체구와 맞지 않을 만큼 음울한 기색이 얼굴에 드리운 사람이었다.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 때도 피범벅이 된 채 제일 마지막에 가면을 받았으며, 마무리팀에 발령받아 사내 괴롭힘에 가까운 업무를 수행했었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미친 제약 회사에서 살아남으며 사람이 좀 씩씩해지나 했는데….

“저, 실종되셨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재난관리국에 잠입하느라 그간 소식을 못 들었는데… 그래도 이렇게 뵈어서 정말 반갑습니다.”

놀랍게도 이제는 아예 좀 차분해 보이기까지 했다.

‘…이쪽도 재난관리국 쪽이 더 적성에 맞나 본데.’

다만 내 빈 오른팔을 힐끔힐끔 보면서 점점 얼굴이 창백해지는 게 아무래도 무례할까 봐 묻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럴 때는 적당히 대답해 줘야겠지.

나는 일부러 가볍게 빈 소매를 흔들며 쓰게 웃었다.

“첫 임무가 운이 나빠서 좀 어려운 게 걸려서요. 하지만 재난관리국에서 처치도 해준다니 괜찮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어쩐지 고영은 씨의 묘한 시선이 느껴지지만 일단 넘어가자.

“허운 씨는 현장정리팀에 발령받으셨다고요.”

“아, 네.”

장허운의 얼굴이 좀 밝아졌다.

“그, 간혹 끔찍한, 예, 그런 꼴을 봐야 할 때도 있지만….”

아.

그렇지. 현장정리팀은 보통 난장판을 치우는 직군이니까.

“다들 신입이라고 배려해 주셔서 감사하게도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그건 다행이었으나, 장허운의 다시 얼굴이 살짝 어두워졌다.

“저, 다만… 그래서 더 걱정되긴 합니다.”

“예?”

“아까 들어보니 정말 위험한 괴담에 대한 서류를 빼돌려야 하는데, 저희가 그래도… 정말 괜찮은 건지요.”

“…!”

“재난관리국은 정말로 사명 의식을 가지고 괴현상에 대응하고 있는데, 혹시 큰 피해를 줄까 봐요.”

음.

“만일 그렇다면, 그만두실 겁니까?”

“…….”

대답은 듣지 않아도 알겠다.

-아니요.

그 정도로 ‘소원권’이 간절한 사람들만 오니까.

만일 다른 상황이었다면 이기적으로 굴지 않았을 사람들이라는 건 안다. 당장 룩키마트에서 고영은 씨가 보여줬던 배려심과 의지력을 생각하면 더더욱.

하지만 ‘타협할 수 없는’ 뭔가가 이 사람들 안에 있는 것이다.

…그래.

‘어차피 변하는 게 없다면….’

마음이라도 좀 편한 쪽이 낫겠지.

“아마 빼돌려도 괜찮을 겁니다.”

“…! 그, 그렇습니까?”

“예.”

이건 진실이다.

“그런 고등급 괴담을 회사에서도 섣불리 건드리려 들진 않을 겁니다. 그리고 저흰 그 괴담을 아예 빼돌리는 것도 아니고 정보만 드리는 거니까요.”

물론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좋은 용도로 찾으려 드는 건 아니다만, 결과적으로 어둠탐사기록상 딱히 그 멸형 등급 재난이 인류에 더 해악이 되진 않았다.

…이미 더할 나위 없이 해악이었기 때문에.

“저희가 회사에 과잉 충성해서 정부가 관리하는 초자연 재난 자체를 빼돌린다거나 하지만 않으면 될 것 같습니다.”

“아, 무, 물론입니다…!”

걱정해야 할 건 다른 거다.

‘일 끝나고 우리를 팽하지 않을까 걱정인데….’

…호 이사가 과연 토사구팽을 안 할까.

소원권만 받으면 나야 본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 버릴 테니까 상관없지만, 저 둘은 한국에서 계속 살려면 재난관리국에 찍히지 않도록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음.

“저희 우선은 앞으로 호칭 실수하는 일 없도록 요원 별칭을 공유할까요.”

나는 스스로 가리켰다.

“저는 ‘포도’입니다. 허운 씨는…?”

“아, 저는 화각이라는 요원 명을 받았습니다.”

“화각이요?”

“예. 소뿔을 이용한 전통 공예기법이라고 하던데…. 저, 추천받았습니다.”

거짓말처럼 여기서도 소와 관련된 별칭을 받으셨다.

“저는… 박하요.”

그리고 고영은 씨도 입을 열었다.

“옛날엔 약으로 곧잘 쓰였기도 하고, 너무 튀는 이름은… 안 고르고 싶더라고요.”

“그렇군요. 좋은 요원명 같습니다.”

그리고 짧게 근황 토크를 하며 잠시 훈훈한 분위기가 돌았다.

아, 비타민도 받았고.

“신규조사반은 좀 개인주의적인 분위기예요. 그래도 실종됐다가 돌아오니까 상사분들이 선물로 비타민을 주더라고요…. 두 분도 좀 드세요.”

“아.”

“가, 감사합니다.”

솔직히 일반 회사였다면 무척 만족하고 다닐 만큼의 동기들이었다.

…괴담 세계관에서 미친 제약 회사의 스파이 노릇을 하며 정부에 잠입한 상황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후우.’

나도 내 근황을 적당히 보고했다.

“…! 일주일 내로 퇴원하신다고요!?”

“맞습니다.”

내 오른팔이 잘린 상처는 재난관리국 연계 병원에서 일종의 초자연적인 조치를 한 건지, 빠르게 진정되어 괜찮아지고 있었다….

‘대충 일주일 정도 더 입원하면 복귀할 것 같은데.’

“그리고 퇴원하는 대로 임시 요원 신분으로 3주간 다양한 소속을 경험할 듯합니다. 혹시 뵙게 되면 잘 부탁드립니다.”

“그, 그건 물론입니다!”

전 반드시 현장 정리팀 갈 겁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허운 씨….

그때였다.

“저, 솔음 씨. 그 퇴원 말인데요.”

“예?”

고영은 씨가 불쑥 말을 꺼냈다.

“퇴원하시기 전에 정신과 상담도 받으시는 거죠? 그러니까, 일종의 조난상태에서 큰 부상을 입은 거니까… 정신적 충격도 확인해야 하실 것 같아서요.”

“아, 네. 아마 소개해 주실 텐데…… 걱정 마세요. 조심해서 저희 정보 발설하는 일 없이 잘 진행하겠습니다.”

“…….”

그러나 고영은 씨는 고개를 저었다.

“어차피 이 금제니 뭐니 걸려서 발설 못 하는 상태니까요. 좀 더 편하게 말씀해 보시면 좋을 것 같아요.”

“네. 감사합니다.”

“……예.”

고영은 씨는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저희는 이제 재난관리국에서 ‘공식적으로’ 안면이 있으니까… 제가 솔음 씨 병문안 드리면서 번호를 교환한 척하죠. 개인 연락을 가끔 해도 자연스럽게요.”

“좋습니다. 아, 허운 씨는 다음에 뵈면 적당한 계기를 만들죠.”

“예, 예…!”

그런 방식으로 우리는 향후 방침을 정했다.

1. 여우상담실이 아닌 밖에서 서로 자연스러운 연결점을 만들 것.

2. 치명적이거나 중요한 일이 발생 시 익명 메신저로 연락. 이때 스팸 메시지로 위장할 것.

“그럼 다음에 무사히 뵙겠습니다.”

“네. 꼭….”

나는 여우상담실을 나오며 한숨을 참았다.

‘스파이 노릇도 보통 일이 아니긴 하군.’

특히 상사가 그 모양이라서 말이다.

더 안전하게 가려면 더 많은 대비가 필요했다.

안 그래도 룩키마트 같은 미친 사태를 더는 만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만반의 준비를 다 해놓기로 마음먹었고 말이다.

‘좋아.’

퇴원까지 남은 한 주.

‘준비할 건 다 준비해 놓는다.’

그리고 첫 스타트는 이거였다.

나는 아까 상담실에 들어오기 전에 보내둔 문자를 확인했다.

[조장님, 오늘 저녁에 통화 가능할까요.]

빠르고 간결한 답장이 와 있다.

[예.]

D조 조장 이자헌.

내 옛 상사로부터의 답이다.

목적은 간단했다.

‘룩키마트에서 사 온 인형을 이자헌 과장이 가지고 있었어.’

분명 이자헌 과장의 책상 위에 있던 것과 동일한 품목이다. 그리고 이건 쓸만한 아이템일 것이라고 확신한다.

안전과 성능.

내가 원하던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았으니까.

위험한 아이템이라면 애초에 이자헌 과장이 사무실 책상에 두고 다니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 도마뱀의 정체를 생각한다면, 범상치 않고 강력한 아이템일 확률이 더 높았다.

애초에 거기까지 생각 안 해도, 현장탐사팀 과장이 책상에 두는 아이템은 당연히 괴담에서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좋아.’

남은 건 하나다.

‘사용법을 알아낸다.’

도마뱀 조장은 내게 답을 줄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통화.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즉각 물었다…!

“조장님. 책상에 두셨던 도마뱀 인형을 어떤 상황에 사용하셨습니까?”

-? 아니요.

“…….”

잠깐만.

이 뜬금없는 부정은… 설마.

“도마뱀 인형… 아예 사용하신 적, 없습니까?”

-예.

“…그 아이템은 조장님이 구매하신 게 아닙니까?”

-예.

“…….”

조졌….

‘아, 아냐.’

좀 더 범위를 좁히자.

이렇게.

“그 도마뱀 인형의 사용법을 아십니까?”

제발.

제발…!

-예.

휴우.

다행이다.

“지금 저도 그 인형을 하나 입수했는데 도무지 사용법을 모르는 상황입니다. 되도록 구체적인 용도를 알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결국 덧붙였다.

“…구매처가 우주 쇼핑몰은 아닙니다.”

왠지 찔려서 말해버렸군.

‘당장은 돈이 없어서 거긴 들어가 보지도 못했는데….’

어쨌든 이자헌은 태연했다.

-예.

그리고 아무렇지 않게 설명했다.

-그건 파충류 생태교육용 완구입니다.

“…….”

예?

“교육용, 완구요.”

-예. 적절한 음식물을 줄 시 식사 후 탈피를 보여줍니다.

“…….”

-…….

“…….”

나는 가까스로 물었다.

“탈피한 껍질이 혹시 방어용 아이템입니까.”

-아닙니다.

“……음식물로 아이템이나 피를 주면 독특한 능력을 발휘한다든가….”

-아닙니다.

환불받고 싶어졌다.

‘X발….’

아니 그럼 대체 왜 책상에 올려둬서 사람을 헷갈리게 한단 말인가!

‘그냥 음식물 처리기잖아!’

물론 레이저 쏘는 외계 도마뱀에게 소리를 지를 순 없었기에 나는 가까스로 대답했다.

“그렇군요.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예.

그래. 애초에 미친 마트에서 이상한 가능성에 배팅한 내 잘못이다. 하….

‘정말 장난감이었다니.’

나는 결국 체념하고 대화 화제를 전환했다.

“오랜만에 연락드리는데 직접 찾아뵙지 못하고 이렇게 통화로 연락드려서 죄송합니다.”

-괜찮습니다. 그편이 안전합니다.

그래도 내가 스파이인 걸 재난관리국에 들킬까 봐 배려해 주신 건가.

“감사….”

하다고 말하려던 순간.

무감한 목소리는 전혀 다른 ‘이유’를 알려주었다.

-청 이사가 당신의 행방을 알아차렸습니다.

“……!”

뭐라고?

-청 이사는 당신의 실종은 조작된 것이며, 사실 한 달 전부터 호 이사를 위해 일하고 있다고 의심 중입니다.

등골에 소름이 돋았다.

잠깐만.

내 실종 자체를 조작된 거라고 생각한다면.

‘그럼 애초부터 내가 자기 뒤통수를 치고 호 이사랑 작당했다고 생각할 확률이… 높나?’

식은땀이 흘렀다.

“…혹시 이 오해로 제게 보복하실 수도 있습니까?”

-예.

침을 삼켰다.

-그러니 조심하십시오.

“네.”

결심했다.

‘스파이 업무 끝나는 대로 튀자.’

절대 지체하지 않을 것이다.

소원권. 소원권 타는 대로 이 망할 회사에서 벗어나서 돌아가야 했다.

내 집으로!

“감사합니다.”

나는 감사 인사를 하며 이자헌 과장과 통화를 종료했다.

그러자 스마트폰에 뜬 또 다른 알람을 보았다.

[백사헌 : 저기요]

[백사헌 : 정보 안 사가세요?]

이 ‘망할 회사’의 최신 가십 및 정보를 알아 와주기로 했던 전직 사택 룸메이트.

[백사헌 : 정보 필요 없냐고요]

흠.

나는 문자를 보냈다.

[자신 있나 봐?]

그러나 답장은 오지 않았다.

아직 없나보구만.

‘그럼 자신이 생길 때까지 좀 내버려 둘까.’

전전긍긍하면서 더 많은 정보를 긁어오도록 말이다.

‘사실… 정보랑 교환해 줄 아이템도 지금은 없긴 하고….’

물론 이대로 빈털터리로 살 생각은 아니다.

방금 생각하지 않았는가. 준비해야겠다고.

‘…신경 쓰이는 말도 방금 들었고.’

-그거, 다 닳았네요.

호 이사의 불길한 발언.

‘은반지가 정신 방호 효력이 다 떨어졌다면 위험하지.’

다행히 최근에 내가 특별히 괴담에 들어가고 싶거나 괴담을 친근히 여기며 동화되었던 적은 없긴 했지만 말이다.

‘도로 돌아가는 악몽을 꾼다면 모를까.’

그래도 그것도 대비하는 게 좋겠다.

나는 짧게 여우상담실에 방문하는 안도 고민했으나, 꺼림칙함에 취소했다.

지난번과 다르게 확실한 이유가 있다.

‘…호 이사와 확실히 관련이 있어.’

일단 피하는 게 낫다.

그리고….

‘굳이 거기가 아니라도 이제 해금된 장소가 좀 있단 말이지.’

그렇다. 나는 이제 ‘초자연 재난관리국의 요원’이기도 한 것이다.

소속이 바뀌면서 내가 의심받지 않고 방문할 수 있는 특정 장소, 유용한 집단의 범위가 더 넓어졌다.

“어디 보자.”

나는 턱을 괬다.

복지 포인트 1만에 A등급 이상 꿈결 용액이라.

그리고 재난관리국 요원 신분이 있다면, 한 번 찔러볼 수 있는 곳이 있다.

“흠.”

나는 앉아 있던 카페에서 일어나서 후드를 눌러 쓴 뒤 발걸음을 옮겼다.

진짜 오컬트 물품을 거래하는 괴담 속 만남의 광장으로.

찾아야 할 것은….

‘사람 팔이 빠져나온 맨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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