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47화
장갑과 소매 사이, 드러난 손목의 핏줄만으로 사람을 알아보는 미친놈이 있을 줄은 몰랐다.
‘최 요원.’
그리고 그걸 내가 당할 줄은 더 몰랐다.
‘이런 미친.’
오싹함을 넘어서 사람이 얼어붙게 되는 상황.
그러나 얼어붙으면 안 된다.
적당히, 적당히 당황하는 티만 내야지 수상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까….
“예?”
차라리 역으로 의심하자.
나는 당황한 티를 내다가, 상대를 보며 침을 대놓고 삼켰다.
그리고 마치 길거리에서 사이비에게 붙잡힌 것처럼 뒷걸음질을 쳤다.
“저, 죄송, 죄송하지만… 제가 일행이 있어서.”
“어??”
“가보겠습니다.”
네가 최 요원인지 눈치 못 챘다는 거다.
‘팔 잘려서 멘탈 나간 신입 요원이면, 병문안 한 번 온 선배를 눈만 보고 못 알아볼 가능성도 충분하다…!’
심약한데 용기 내어서 괴담 속 미친 공간에 들어왔다면 더더욱.
‘이러면 저쪽도 당황해서 변명을….’
“어이쿠, 그래. 잘 가~ 출근해서 보자.”
“…….”
와 X발.
‘진퇴양난이다.’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마치 ‘출근’이라는 단어를 듣고 긴가민가 싶은 마음에 말하는 것처럼.
“…혹시, 병실에서 봤던 그, 음, 제 상사이신…….”
“오~ 이제 알아보네. 좋다.”
내 어깨를 두드린 최 요원이 아무렇지 않게 나를 데리고 외곽으로 빠지려고 한다. 잠깐만…!
“저기, 저는 저걸 사려고….”
“에이, 5년간 안 팔리고 그대로라니까? 이야기 좀 하자. 이런 데에서 만나니까 내가 반가워서 그래. …병실에 있어야 할 신입이 왜 여기 있어?”
“…….”
나는 일부러, 가짜 오른팔을 외투 안으로 더듬었다.
최 요원의 시선이 느껴졌다.
“…여기서, 임시로 팔 대신 쓸 만한 물건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들어서.”
“아하~ 누가 그러는데? 재관이?”
“알려드릴 수 없습니다.”
함정이잖아!
여기서 냉큼 소개해 준 사람 이름을 대는 거야말로 상황을 모면하려 거짓말한다는 증거였다.
최소한 내가 관리국에서 만들던 캐릭터성이랑은 안 맞지. 졸렬하니까!
“이야, 의리 있네.”
아니나 다를까 최 요원이 웃으며 내 어깨를 두드렸다.
역시 이 방향이 맞았….
“아니면 지어내도 금방 들킬 거라고 생각했든가.”
“…….”
“막 이래? 으하핫!”
으아아악!!
“괜찮아. 사정없는 요원이 어딨어? 말 못 할 뭐가 있을 수도 있지.”
“…….”
“보자… 저거 사려고 했지? 한번 관찰이라도 해볼까?”
최 요원이 내가 거래를 진행하려던 팔을 주목한다.
새끼손가락이 없는 손아귀에 꽉 잡힌, 피 묻은 구깃구깃한 종이 쪼가리.
“그런데 저건 팔이랑은 아무 상관없는 물건처럼 보이는데.”
“…….”
“왜 사려고 한 거야? 난 모르겠어서.”
X발.
그렇다면!
“…이셔서.”
“어어?”
나는 고개를 푹 숙였다.
“……간절해 보이셔서요.”
“…….”
“겨우 종이를 꽉 쥐고 있고, 그 종이에 혈흔이 보이니까 뭔가… 구조 메시지를 쥐고 계신 게 아닐까 추측했었습니다.”
사실이다.
지금이 아니라 <어둠탐사기록>에서 이 팔이 등장하는 기록을 내가 처음 읽었을 때의 추측이지만.
어쨌든 최 요원은 잠시 대답이 없었다.
지, 지금이다. 변명한다…!
“5년이나 여기 남아 있던 건 줄은 몰랐지만….”
“우리 후배님, 같이 잠깐 생각해 보자.”
최 요원이 내 어깨를 잡고 살짝 돌렸다.
정면으로 바라본 공동의 벽에서 물결치는 수많은 팔의 모습이 징그럽게 보이도록.
“여기에 구조 요청할 만한 사람이 있을까?”
“…….”
“다 이 괴상한 장소에 자진해서 들어와서는 물건을 팔려고 하는 거거든. 구조 요청할 상황일 확률은 낮아 보이잖아.”
그건….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어때?”
최 요원답지 않은 발언이다.
그러니까, 내가 알던 <어둠탐사기록>의 최 요원을 기준으로.
‘이 사람은… 한 명이라도 어떻게든 살리려고 기를 쓰던 요원인데.’
최 요원은 초창기 네임드였다.
그리고 <어둠탐사기록>에 초자연 재난관리국만 있던 초반에는, ‘민간인을 구한다’라는 정부 기관의 속성에 치중해서 탐사기록이 작성되곤 했다.
그러다가 핍진성과 이야기 빌드업의 용이성을 위해 설정이 추가된 것이다.
초자연 재난관리국은 요원의 생명을 가장 우선 선상에 둔다.
또한, 민간인 구조보다 괴담 자체의 종결에 더 비중을 두기에 때로는 불가피한 시민의 희생도 감수한다.
하지만 최 요원은 이 설정이 붙기 전의 네임드다.
자연스럽게, 시민을 마지막 한 명까지 구하려고 무리하는 타입의 요원이라는 뜻이었다.
그 과정에서 야비하거나 기발한 수를 쓰고, 다양한 능력과 물건을 가지게 되었으나…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룩키마트에서 사망추정 실종될 때까지.
“…….”
역시.
이래도 될 것 같은걸.
“그래도 시도는 해보겠습니다.”
“…?!”
나는 다짜고짜 준비한 아이템을 들고 손을 뻗었다.
내가 찾아낸, 새끼손가락이 없는 팔을 향해.
“아니, 그 팔은 교환을 안 해준다니….”
휙.
팔이 우악스럽게 손을 뻗어왔다.
“…!”
그리고 새끼손가락 없는 손은 내가 내민 아이템을 으드득 소리와 함께 집어삼켰다.
팔락, 원래 쥐고 있던 종이 쪼가리가 지저분한 바닥 위로 떨어지는 것을 내가 간신히 잡아챘다.
그 사이, 내가 내민 물건의 모양을 확인한 최 요원의 눈이 가늘어졌다.
“…동전?”
“아, 평범한 동전은 아니고… 저, 다른 괴담에서 가져온 겁니다.”
사실이긴 했다.
그 괴담이 백일몽 주식회사의 커스텀 장비용 황혼등급 괴담, ‘친절한 씨앗 키트’라는 건 비밀이지만 말이다.
그래.
저건 내가 최초로 만든 현장탐사팀의 전용장비다.
‘제3의 손…!’
허공에 손을 불러낼 수 있는 코인 모양 장비.
이 팔의 정체 상, 필요로 하는 아이템의 조건이 너무나 명백했기 때문이다.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초창기에 격리·활용 중인 괴담에서 제작한 아이템.
분명 이거다.
하지만 백일몽 주식회사 직원들은 이 거래처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 있는 것과 다를 바 없기에, 5년이나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던 것이다….
‘됐다.’
나는 종이를 손에 쥔 채 작고 짜릿한 성취감을 느꼈다.
물론 당장 안 쓴다고 화끈하게 전용 장비를 투자해 버린 건 아니고 나중에 다 회수할 방법이 있지만.
일단 급한 건 최 요원이다.
나는 생각해 낸 변명을 댔다.
“화폐라면 괴담에서 즉각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그, 마트에서 그랬던 것이 생각나서요.”
참고로 룩키마트의 상품권은 마트를 나오자마자 잔액까지 싹 사라졌다. 정말로 악덕한 개자식들의 괴담 마트가 아닐 수 없다.
아무튼 적당히 신입다운 태도였다고 생각한다.
‘괴담마다 통용되는 화폐가 다를 수 있다는 걸 잘 모르고 일단 내민 것처럼 보이겠지.’
그리고 운 좋게 통했다.
그 메타로 간다.
“음… 후배님. 저 팔이 방치된 지 5년이 지났는데, 이미 도움이 필요한 상황도 다 끝났을 거란 생각은 안 들었어?”
“그래도… 아직 팔이 남아 있으니까요.”
나는 그제야 좀 웃었다.
“물물거래가 된다는 건, 받아 갈 상대가 있다는 뜻이라고 짐작했거든요…. 그, 음, 물론 추측에 불과하고 틀릴 수도 있지만요.”
“…….”
최 요원이 나를 빤히 보더니….
“아~ 너무 마음에 드는데!”
“…?!”
“크으, 그래, 이거지! 이렇게 머리를 써서 상상을 좀 하는 녀석이 드물어요. 개연성 있게!”
최 요원이 모자 쓴 내 머리를 쓰다듬는다. 으악!!
그리고 주변에 들리지 않도록 목소리를 낮추며 은밀히 말했다.
“역시….”
역시?
“우리 현무 1팀으로 오는 건.”
“죄송합니다.”
“힝.”
진절머리가 났다….
‘그래도 일단 대충 의심은 피한 것 같아서 다행….’
“근데 출동구조반 들어가긴 무섭다면서 이 위험한 곳에 혼자 들어올 정도의 배짱은 있네.”
“…….”
“그럼… 현무 1팀에서도 버틸 수 있는 거 아닐까?”
젠장.
이거 협박인가? 의심받기 싫으면 들어오라고?
머리가 복잡해졌다.
하지만 다음 말이 나오는 순간.
“애초에 네가 무섭다는 것도 말이지. 사실 첫 임무부터 너무 과로해서 나타난 착각….”
나는 폭발했다.
“아뇨, 무서워 죽겠습니다! 진짜 무섭다고요!!”
“…?!”
“근데 참아야지 별수 없잖습니까! 무서워서 뭐든 못 하겠다고 하면 안 되잖습니까, 신입이!”
안 하면 죽잖아!!
“팔이 없는 게 안 무서울 수가 없잖습니까! 혹시 뭐 잘못될까 봐 무서워도 여기까지 참고 들어온 건데!”
나는 거의 피를 토하듯이 말했다.
일부러였기도 한데, 그간 이 미친 괴담 세계관의 제약 회사에서부터 쌓인 울분이 터지며 진짜 억울해졌다.
…최 요원이 입을 벌리고 나를 보고 있었다.
“미, 미안?”
“…….”
“자, 자. 후배님. 첫 거래 축하하고, 음… 그래, 쪽지! 쪽지 확인해 봐야지. 어때?”
“……네.”
나는 심호흡했다.
그래도, 이렇게 솔직히 말해도 괜찮은 상황이 얼마만인지 모르겠다는 점에서는… 약간 상쾌했다.
이렇게까지 하는데도 출동구조반 데려가려고 하진 않겠지…… 제발.
“소리 질러서 죄송합니다.”
“에이, 아냐. 여기 미친 짓하는 놈들이 한둘도 아니고. 3초간 시선 집중도 느껴보고 좋지 뭐.”
미친 짓처럼 보였다는 뜻이군. 잘 알겠습니다….
나는 한숨을 쉬었다.
“제가… 이렇게까지 소리를 질러보는 게 얼마 만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이고, 집이 방음이 잘 안되나 보다.”
“아뇨. 집… 지금은 없어서요.”
“…….”
“가고 싶긴 합니다.”
“그래.”
후우.
나는 드디어 숨을 진정하고 손에 든 쪽지를 펼 수 있었다.
‘왠지 최 요원이 조용해졌는데.’
어쨌든 더는 사람을 긁지 않으니 좀 낫다.
나는 쪽지로 다시 시선을 돌렸다.
내가 한 손으로 조심스럽게 개봉한, 피투성이 종이 쪼가리의 안쪽은….
피로 휘갈겨 쓴 글씨가 말라붙어 있었다.
여길 봐
공감하고 주목하는
장난감이 있다
종이 전체에 덕지덕지 말라붙은 핏물은, 이 글자 자체가 번지며 흘러나온 것이었다….
‘하.’
무슨 공포 영화 소품이 따로 없다. 그대로 쪽지를 던져 버리고 싶었는데, 마침 누가 도와준다.
“잠깐만.”
최 요원이 자연스럽게 내가 쥐고 있던 종이를 빼내어 갔다.
나는 일부러 말리지 않았다.
최 요원은 그 종이 위에 기묘한 다우징 같은 것을 올려 검사를 시작했다.
‘저것도 재난관리국 지급품이었지.’
행방 막대
: 유리와 황동으로 제작된 굽은 막대.
괴담에서 유래한 물질, 혹은 괴현상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 위에서 빙글빙글 돌아간다.
하지만 행방 막대는 내가 산 종이쪽지에서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음, 신묘함은 없네. 평범한 쪽지인데. 문구는….”
최 요원이 허허 웃었다.
“아무래도 괴담으로 유혹하는 것 같은걸?”
“그럴지도요.”
하지만 나는 최 요원의 손에서 쪽지를 가져다가 잘 챙겼다.
“오~ 그런데 챙기게?”
“네.”
나는 약간 민망한 것처럼 고개를 숙였다.
“혹시 정말로 구조 요청이 숨겨져 있을 수도 있으니까… 저라도 가져가서 한번 살펴보려고 했습니다.”
“…….”
최 요원도 왜 윗선에 보고 안 하냐는 말은 하지 않는다.
초자연 재난관리국은 이미 5년이나 방치된, 정체 모를 수상한 인간이 남긴 평범한 쪽지를 한가하게 분석하고 있어 줄 만큼 여유 있는 조직은 아니었다.
당장 사람 죽어 나가는 괴담이 수두룩하니까 말이다.
이런 애매한 건은 무조건 우선순위에서 밀린다는 건 갓 입사한 신입 요원도 알 수밖에 없는 사실이다.
‘당장 최 요원 본인부터 방금 그렇게 말했으니까.’
그러나… 여기서 한번 튼다.
나는 머뭇거리다가 쪽지를 내밀었다.
“저, 선배님께서 혹시, 시간이 되신다면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시면….”
“…!”
사실 이 쪽지, 내용만 외우면 쪽지 자체는 필요 없거든.
그리고 그 특성상 괴담을 알아볼 수 있는 재난관리국의 요원에게 맡겨도 아무 문제 없었다.
“그래. 나도 한번 살펴볼게.”
“아, 감사합니다…!”
나는 냉큼 종이를 넘겼다. 이걸로 용의선상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길 바란다.
이후로는 조금 부드럽게 분위기가 흘러갔다.
“그거 괜찮지?”
“예. 감사합니다….”
나는 최 요원의 감시 아래에서 사고 싶던 물건을 하나 겨우 구하긴 했다.
‘어려웠지.’
감시뿐만 아니라 물건을 고르는 것 자체도.
여기서 구할 수 있는 건 주로 통상적인 괴담 세계관의 아이템이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이냐 하면, 대기업에서 정제하거나 외계인이 고객 안전을 보장하는 수준으로 필터를 걸러준 아이템이 아니란 뜻이다.
끔찍한 부작용이 있다.
이게 전제였다.
애초에 인간이 유용하게 사용하라는 용도로 만든 물건이 아니니까.
파는 사람도 제정신이 아닌 경우도 수두룩해서, 받는 물건도 제정신이 아닌 경우도 많고 말이다….
놀라운 것은 최 요원이 감시만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도움도 주려고 했다는 점이다.
“여기가 딱 한양이야. 눈 뜨고 코 베이는 곳이라니까? 선배님이 하는 걸 잘 보고 따라 하면….”
…언제나 잘 통한 건 아니다만.
“…누가 이미 사 갔네.”
“…….”
“괘, 괜찮아. 다음 것도 좋아! 다음 팔로 전진~”
그래도 베테랑답게, 내가 알지 못했던 아이템의 유래나 구체적 부작용도 몇 가지 알고 신중하게 물건을 ‘구매’할 수는 있었다.
그래. 다 좋은데 말이다.
‘자기가 아는 물건을 사게 했어.’
결국 본인 통제 아래로 내 움직임을 넣었다는 거다.
이게 강력한 의심의 표현인지, 아니면 정말 챙겨주는 건지는… <어둠탐사기록>에서 최 요원의 행적을 다 챙겨본 나도 잘 모르겠다.
‘물론, 그 물건을 애초에 사고 싶어서 나도 유도당해 준 거에 가깝긴 한데….’
안 그랬어도 울며 겨자 먹기로 샀을 것 같다는 게 무서운 지점이었다.
나는 내 주머니에 든 아이템을 만지며 한숨을 쉬었다.
‘후우.’
그렇게 최 요원은 자신의 제한 시간이 다 되기 직전까지 동행한 후, 나를 배웅까지 했다.
내가 샀던 종이 쪼가리를 한번 흔들면서 말이다.
“그럼 이 쪽지는 내가 한 번 더 확인해 보고 돌려주는 걸로?”
“네. 감사합니다….”
사실 정말 돌려줄 필요가 없었다. 나는 이미 외웠으니까.
그리고 최 요원이 그걸 확인하는 의미도, 사실은 없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쪽지는 괴담에 관련된 것조차 아니었으니까.
‘심리적 함정이지.’
괴담 관계자들이 거래하는 장터니까, 당연히 괴담에 관련된 문구가 적혀 있는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아니다.
그건 굳이 따지자면… 그래.
‘유산’이다.
* * *
쪽지를 다시 보자.
여길 봐
이건 실제 현실에 존재하는 ‘여기’를 의미한다.
즉, ‘어떤 장소’.
그러고 다음 문장을 보면….
공감하고 주목하는
장난감이 있다
어딘가 문법이 어색하고 맥락이 없었다.
억지로 끼워 맞춘 문장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해체한다.’
그러면 남는 건….
공감하고주목하는
장난감이 있다
단어 세 개.
그리고 단어 세 개와 ‘장소’라면, 추리하기 딱 좋은 힌트가 된다.
‘what3words’, 세 단어로 3mX3m 넓이의 장소를 표현하는 주소 체계가 있으니까.
‘거기에 이 단어들을 대입해서 검색하면….’
즉각 서울의 구도심에 있는 작은 장소가 나온다.
나는 지금 거기 서 있었다.
“…….”
작은 상가건물들이 모인 자리 사이, 건물을 애매하게 비껴가는 위치를 지정하고 있는 단어 좌표.
거기에 있는 것은….
바로 맨홀이다.
정확히는, 낡은 맨홀 뚜껑이 대충 공실 상가 벽 옆에 세워져 있었다.
마치 그 벽에 기대어놓은 것처럼 말이다.
무언가를 암시하듯이.
“…….”
나는 그 맨홀 뚜껑을 밀었다.
으드드득.
놀랍게도 생각보다 가볍게 움직인다. 그리고 그 뒤로….
바닥으로 내려가는 반지하 계단이 있다.
“…….”
숨겨진 장소.
새끼손가락 없는 팔은 왜 이곳을 알려주었는가.
그리고, 왜 초창기 백일몽 주식회사의 물건만을 대가로 받았는가.
간단했다.
‘백일몽 주식회사와 관련된 세력이니까.’
“후우.”
나는 계단을 다 내려가서 고개를 들었다.
[꿈 배양실]
백일몽 주식회사의 꿈결 합성기.
옛날 옛적에 만들어진 그 프로토타입의 연구실이, 지금 내 눈앞에 드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