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91화
그러니까.
무인텔 문을 열었더니 곽제강 과장이 포박당해 있고 그 위에 경비반장이 앉아 있다고?
게다가 박민성 주임은 왜 여기 있단 말인가.
아니 오랜만에 봐서 반갑긴 한데, 대체 이게 무슨 조합….
“으읍!”
그때, 바닥에 깔려 있던 곽제강이 다시 버둥거렸다. 잠깐만!
‘안 돼.’
저러다 고개 돌려서 내 얼굴을 들키는 날엔 일이 미쳐 돌아간다. 나는 당장 정신을 차린 뒤, 문을 닫고 나가려 했다.
그런데, 내 움직임을 본 경비반장이 그보다 먼저 뭔가를 깨달았나 보다.
“아.”
경비반장은 포박 중이던 사람의 머리를 갈겼다.
그렇게 곽제강 과장은 기절했다.
“…….”
-엉망진창이군요, 맙소사! 이렇게 난잡할 수가! 하지만 혼돈에서 오는 독특한 매력이 있긴 하지요.
와 제발….
“대체 이게 무슨 일입니까?”
“아… 몰래 따라와서….”
“…??”
이어진 급한 설명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경비반장은 내게 약속했던 ‘유쾌 연구소’에 대한 정보를 찾기 위해 회사의 이곳저곳을 다니며 들려줄 법한 이야기 몇 가지를 수집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곳을 탐색했는데, 오늘 갔던 곳이 바로….
“별관에 있는… 연구팀 특수 구역에 갔는데….”
“…잠깐만요. 거긴 관계자 외 전 직원 출입 금지 구역 아닙니까?”
“아… 보안팀은…… 업무면 괜찮은데요. 뭐… 구역 순찰 같은 거….”
아, 그렇군.
“그럼 그 순찰 업무를 맡을 때까지 기다리신 겁니까?”
“아뇨…. 다른 경비원 대신… 일했는데….”
“…….”
“정보… 필요하다면서요…….”
‘미안해진다….’
경비반장이 뿌듯한 표정을 지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아무튼, 이렇게까지 행적이 겹치는 걸로 봐선 백사헌이 말했던 경비팀은 확실히 경비반장이 맞는 모양이었다.
잠깐, 그러고 보니….
“저, 곽제강 과장님과 싸우셨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는데… 혹시 지금 사태와 관련 있는 겁니까?”
“싸운 적 없는데… 저쪽이 자꾸 시비는 걸어서…….”
“아, 시비에 휘말리신 거군요.”
“아뇨…. 무시했는데….”
“…….”
“혼자 부딪히고 넘어져서… 음. 아무튼.”
머리를 긁적이던 경비반장은 본론으로 돌아갔다.
오늘도 연구팀 특수 구역을 순찰하면서 기기나 서류를 보았는데, 특이한 정황이 생겼다는 것이다.
“누가 따라오는 것 같더라고요….”
“…!”
어느 순간 끈질기게 관찰하는 시선이 따라붙은 것이다.
묘한 악의 같은 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래서 아예 밖으로 나왔는데… 계속 몰래 따라와서….”
제압했구나…!
“뭐… 마침 보는 사람도 없고….”
나는 머리를 잡고 싶은 기분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곽제강 과장인 걸 모르셨군요.”
“아뇨, 알았는데….”
“…….”
으아악!
“뭐… 큰 상관 없고……. 그 와중에 보안팀을 부를 줄은… 몰랐는데….”
내 시선이 박민성 주임에게로 돌아갔다.
주임이 동공을 떨었다.
“응. 내가 호출받았어….”
“…….”
“와보니까… 이미…… 응.”
그리하여 이 기묘한 만남이 이루어진 것이다….
-아하하! 맙소사! 시트콤이 따로 없군요!
원래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인 법이다. 문제는 내가 그 한가운데에 있다는 거지만!
‘환장하겠네.’
나는 관자놀이를 누르고 싶은 것을 참으며 간신히 말했다.
“이대로 돌려보내면 곽 과장님이 제이 씨를 신고하거나… 어쨌든, 상황을 과장해서 문제 삼을 확률이 높습니까?”
“…아무래도?”
나와 박민성 주임은 식은땀을 흘리며 서로 마주 보다가 경비반장을 보았다.
경비반장은 만사가 귀찮은 얼굴이다.
될 대로 되라는 것 같다.
“…….”
“…….”
아니, 그쪽 신변에 관한 이야기입니다만…!
“일단, 그럼… 주임님께서는 경비반장님을… 잡아가셔야 하는 게 맞는 겁니까?”
“원칙적으로 그렇긴 한데… 으음, 그냥 이대로 돌려보내 주시면 제 선에서 어떻게든… 음, 곽제강 과장님이 혼자 여기 있었다고 해볼게요.”
박민성 주임이 어설프게 하하 웃으며 뒷머리를 긁적였다.
“워낙 기행을 많이 저지르는 분이기도 하니까 어떻게든 될 것 같….”
“안 될 텐데….”
“……!”
경비반장이 박민성 주임을 빤히 본다.
“막 보안팀이 됐으니까… 금제가 제일 강력할 때고….”
금제?
“아직…… 정식 근무 100일도 안 됐잖아요? 회사에 거짓말… 하기도 힘들걸….”
“…….”
“시계. 지금 카운트다운 되고 있죠…?”
박민성 주임의 얼굴이 굳었다.
하지만 다음 순간 그림 같은 미소가 그 얼굴에 떠올랐다.
그리고 무의식중인 듯 손을 손목으로 가져간다. 보안팀의 유니폼에 가려진 손목에는 시계처럼 보이기도 하는 형상이 비친다.
그래. 손목시계.
‘…보안팀에 걸리는 금제.’
떠오른다.
백일몽에서는 구출된 직원이 적당히 오염에서 벗어나 인간성이 회복되고 나면 그 이상의 투자보다는 당장 써먹을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다.
어둠탐사기록에서는 그 금제를 구체적으로 다 언급하진 않는다. 상상하게 하는 편이 더 의미심장하고 오싹할 것이라 여겨졌기 때문이다.
다만 군데군데 암시는 있었다.
가령….
‘손목시계.’
네네. 회사 보안팀들이 손목시계를 차고 있기도 해요. 어디에 쓰냐고요? 저도 모르죠. 확실한 건 그들이 뭔가… 돌발행동을 하면요.
뭐, 낮에 회사에서 나가려고 한다든가?
아무튼 그러면 소리가 들렸어요. 시계가 가는 소리….
똑딱똑딱하는 거.
그게 왜 이상했냐고요? 전자 손목시계 같았는데 왜 초침 움직이는 소리가 나냐고요. 그것도 괴담 같아서 찝찝했는데….
점점 빨라지다가, 결국 알림음 같은 게 울리기도 했거든요?
그럼 갑자기 사라졌어요.
시계가 아니라, 보안팀 직원이요.
-유리감옥 수감자 가56 (출신지: 백일몽 주식회사) 심문 26번 발췌
“주임님.”
“…아! 응.”
박민성 주임이 퍼뜩 정신을 차린 듯 손을 손목에서 뗐다.
무인텔의 분위기가 좀 가라앉았다.
하지만 경비반장은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저기, 걱정 마세요…. 뭐… 징계 정도일 걸요… 죽인 것도 아니고….”
“…?!”
“그냥… 가서 말하세요……. 근데… 잠깐만.”
경비반장이 자신이 포박해 둔 연구원을 내려다보더니 진지하게 중얼거렸다.
“좀… 아깝지 않나….”
…??
“이 사람… 아는 거 많으니까… 음, 기왕 이렇게 된 거… 정보라도….”
“아뇨. 괜찮습니다.”
수상쩍잖아!
게다가 왜 본인이 받을 징계를 더 키우려고 한단 말인가!
‘얼른 정리하자.’
날 본 게 아니면 상관 없었… 잠깐만.
곽제강은 못 봤어도, 본 사람이 있다.
“박민성 주임님.”
“응?”
“지금 회사에 거짓말하는 게 어려우시다면, 사건을 진술하시는 과정에서… 절 봤다고 말하셔야 합니까?”
“……!!”
박민성 주임의 얼굴이 다시 창백해졌다.
“아마… 회사에서 요구한다면. 그럴지도 모르겠는데….”
젠장!
그때부턴 내가 살아 있다는 걸 들키는 수준에서 문제가 안 끝난다.
‘…그걸 수습하는 과정에서 호 이사 귀에 무조건 들어가는 거잖아.’
왜 경비반장을 만나고 있었냐고 물어보면, 그때는 꿈 배양실까지 들키게 될지도….
“최대한 그 상황은 피해서….”
“저기요…….”
경비반장이 손을 들었다.
“음… 사실, 안 내키고… 귀찮긴 한데…….”
그리고 곽제강을 가리켰다.
“그냥… 죽일까…?”
“!?”
사, 사살면책권!
그러고 보니 경비팀한테 사살면책권이 있었지!
“죽이고… 보안팀은 ‘호출 대상자 없었음’으로 보고하면… 거짓말도 아니고… 그냥 넘어갈 텐데. 일단… 시간도 벌 수 있고….”
“안 됩니다.”
“지, 진정하세요 반장님!”
아니, 경비팀의 사살면책권이라는 건 경비 직원을 위한 게 아니다!
‘사내에 괴담 출몰했을 때 제압 과정에서 회사 사람이 죽어도 보상 안 하려고 만든 거잖아!’
추가로 ‘사살면책권이 있으니 경비팀에서 작업할 때 괜히 거치적거려서 비용 더 들게 하지 말아라’에 가깝겠지.
애초에 말이다.
“사살면책권은 경비팀이 업무 중에 방해되는 직원을 죽일 수 있는 권한이지 않습니까. 지금은 업무 중이 아니고요!”
그렇게 아무렇게나 죽일 수 있었으면 곽제강은 벌써 다른 경비팀에 의해 한 줌 핏물로 사라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긴 한데…… 음,”
“다, 다른 방법을 생각해 봅시다.”
“그래요! 저희가 잘 생각해 볼게요!”
“음… 네…….”
식은땀이 난다.
‘겨, 경비반장에게 의욕이 없어서 다행이다….’
판단이 거침없는 것이 괜히 정예팀 조장까지 했던 게 아니구나 싶다.
…솔직히, 사살면책권을 떠올린 게 아니라 아예 죽여서 증거를 인멸하는 방향으로 떠올렸던 것 같다는 점에서 더더욱.
본래 심성이 나쁘지 않은 사람이어서 다행일 뿐이다. 나는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이 상황이 내 책임이긴 했다.
경비반장이 유쾌연구소 정보를 알아봐 주겠다는 말에 너무 혹했지.
-선택의 순간이군요. 친구! 손해 없이 말끔한 결과를 위한 모험인가, 아니면 약간의 손해를 감수한 안정인가!
-오, 이 사회자에게 조언을 요청한다면 기꺼이 귀띔해 드릴 준비도 갖췄습니다.
‘…죽이고 증거인멸 모험해 보자는 거지?’
-정답입니다!
젠장.
나는 미간을 누르다가 문득….
방법을 떠올렸다.
‘아냐.’
-음?
‘다른 증거인멸 방법… 있어!’
“수습해 보겠습니다.”
나는 인벤토리에 보관하던 물품을 꺼내 들었다.
어린이용 변장 시럽
(청포도 맛)
★★★★★
* * *
잠시 후.
“…음?”
곽제강 과장은 눈을 떴다.
정확히 말하자면 그럴 것이란 추측이다. 우리가 그의 눈을 가려놓았기 때문이다.
“어어라? 혹시 어둠에 내가…… 아니군. 그냥 눈을 가린 거구만.”
순간 흥분이 어리던 말투가 팍 식은 듯 심드렁해졌다.
하지만 곧 자신이 왜 이런 상황에 처한 것인지 깨달은 건지 말투가 바뀐다.
경비반장을 미행하다가 포박 및 가격당해 기절한 것 말이다.
“아니! 겨우 눈 좀 가려둔다고 내가 본 걸 까먹진 않는데 말이지! 하하하! 아, 맙소사. 자네, 이걸 어떻게 회사에 설명하려고 이런 짓을 저질렀어?”
“…….”
“자네가 B조 조장일 때랑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는데 말이야~ 아직도 회사가 자네를 특별히 대우해 줄 거라고 믿나? 거참.”
‘설마 사살면책권이 진짜 연구원을 막 죽여도 되는 거라 생각한 거냐’, ‘나처럼 할 일 많은 연구팀 과장이 따끈한 시체로 발견되면 회사가 어떻게 반응할지 궁금하다’ 등.
대체인력이 없는 자신의 비범함을 자부하는 사람 특유의 말투로 가볍게, 은근한 협박과 으스스한 전망을 말한다.
하지만 곧.
“아니면… 이래야 할 정도로 절박한 상황일지도 모르겠구만.”
“…….”
“별관 특수연구실에서 뭘 찾고 있었던 거지? 혹시….”
목소리가 의미심장해진다.
“자네가 실종됐었던 어둠이라도 거기 있을까 봐?”
“…….”
“이봐, 진입 방법이 붕괴했다니까! 그곳에 여전히 갇혀 있을 직원들이 어떤 불행한 모습일지 지금 와서는 궁금해도….”
충분히 떠든 것 같다.
나는 그의 눈을 가리고 있던 천을 휙 벗겨냈다.
곽제강이 화색을 띠며 또 무언가 말을 하려는 듯했으나.
“…!”
거기엔 그가 생각했던, 한때 정예팀의 조장이었던 경비원은 없었다.
그 대신.
보안팀 슈트를 입은 내가 있었다.
“…….”
나는 내 모습을 보고 굳은 곽제강의 앞에, 호출기를 꺼내어 까닥거렸다.
“…아하, 호출에 응답하신 게 그쪽이신가 봅디다! 여긴… 음, 보안팀 구역?”
침묵.
“혹시 제가 있던 자리에 경비 직원 하나 없었습니까?”
침묵.
“…과묵하시구만. ……잠깐만.”
곽제강의 눈에 이체가 돌았다.
“특수 슈트잖아.”
내 옷차림을 알아본 것이다.
보안팀 특수 부서용 유니폼.
“무슨 일이지? 당신이 겨우 연구팀 과장의 호출에 응답했다고? 이런 뒤치다꺼리가 당신처럼 특수하고 희귀한 개체가 할 일이 아닐 텐데! 하하하… 다른 목적,”
그리고 다음 말을 떠올렸는지 곽제강의 표정이 변했다.
그래.
‘다른 목적이 있지 않고서야.’
나는 묵묵히 손을 들어서 그의 눈앞 사무용 책상에 무언가를 올려두었다.
[재밌는 진실게임!]
[어디 한 판 해볼까요?]
“……!”
발랄하게 외치는 당근 모양의 플라스틱 녹음 장난감.
분위기에 맞지 않게 유치하고 싸구려처럼 보였으나, 곽제강의 표정이 굳었다.
‘역시 알고 있군.’
어둠탐사기록에서 나오는 가장 유명한 보안팀의 심문 장비 중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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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탐사기록 / 괴담
[당근이 할 수 있는 모든 것]
: <어둠탐사기록>에 등장하는 괴담, 백일몽 주식회사의 식별코드는 Qterw-E-2525.
진실게임을 도와주는 파티 완구.
상대가 진실을 대답하지 않을 시 즉각 알아차리며, 그 대가로 잔인하고 파격적인 미션을 건다.
미션이 수행되지 않을 시, 다른 게임 참가자는 해당 참가자에게 벌을 줄 수 있다.
———————=
음.
어디서 구했냐고?
솔직히 말하자면 말이다.
‘가짜인데.’
‘어린이용 변장 시럽’을 내 스마트폰에 부어서 구현해 낸 짭이거든.
그게 왜 별 다섯 개짜리겠는가.
내가 변장하는 게 아니라, 원하는 것을 변장시켜 주는 아이템.
그러니까 사람이 아니라 물건용이라 범용성이 있기 때문이고, 감쪽같이 사용자가 원하는 모습과 성능을 따라 해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원본을 흉내 내는 가짜라도 상관없다.
중요한 건 상대가 이걸 진짜로 믿을 거라는 점이다.
곽제강의 눈에 처음으로 혼란이 살짝 비친다.
“…뭐지? 아니, 굳이 이런 식으로 할 필요가 없을 텐데? 나는….”
그럼 준비됐다.
이제 속은 상대를 잘 몰아가며 상황을 마무리하면 된다.
…기왕이면, 우리에게 약간 더 이득이 되는 방향으로 말이다.
[모두 준비됐다면 시작합니다.]
[자, 질문!]
당근이 떠드는 동안, 나는 살짝 발을 옮겨서 곽제강의 시야가 트이도록 만들었다.
내 뒤로 유쾌 연구소의 프로토타입 꿈 배양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
곽제강의 눈이 흔들렸으나, ‘당근’은 녹음된 질문을 말한다.
[눈앞의 기계에 대해 무엇을 알고 있나요?]
바야흐로 가성비 미친 수습법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