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93화
나는 굴러서 작두를 피했다.
그러나 쏟아지기 시작한 칼날은 이미 발에 꽂혔다.
“…!”
그 사이, 최 요원이 내게 무서운 속도로 달려들며 다른 것을 손으로 꺼낸다.
둥그런 무언가.
꿈결 용액의 불빛에 반짝이는 유리구슬.
‘간이 유리 감옥!’
저걸 맞는 순간 포박되어 재난관리국의 그 유명한 유리 감옥으로 이송된다.
그 순간 모두 끝장이다.
스파이도, 소원권도.
‘안 돼.’
나는 발에 맞은 작두를 잡아당기며 이를 악물고 옆으로 굴렀다.
팅, 티디딩….
간발의 차로 피한 유리구슬이 경쾌한 소리를 내며 옆으로 떨어졌으나.
이미 감옥은 열렸다.
“……!”
죄인은
오랏줄을
받으라
유리로 된 공허 속에서 수많은 손이 나와 나를 잡아챈다.
사무실 기재에 매달렸으나 역부족이었다. 함께 끌려 들어간다. 바닥을 긁은 손이 끌리며 손톱이 박살 나는 소리가 들렸다.
아이템을 꺼낼 틈도 없다.
‘브라운!’
-오, 착한 친구의 헌신적인 도움을 간절히 바라나 보군요, 친구!
-하지만 힘들겠습니다.
뭐?
-더 흥미로운 진행을 위한 결정이니 노루 씨도 기꺼이 이해해 줄 거라 믿습니다. 아, 그러나 내 마음도 찢어지는군요! 그렇고 말고요….
–친구의 곤란함이란!
피가 식는다.
나는 그대로 유리에 갇혔다.
차라라락.
유리가 공명하는 듯 맑고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나는 마치 깨진 거울 너머를 보듯 바깥과 유리되었다.
‘브라운?’
대답이 없다. X발!
‘안 돼.’
나는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요원이 재난관리국에 연락하는 순간 모든 게 끝이었다.
그리고 최 요원은 그렇게 하고도 남을 사람이다!
‘이미 연락을 시작했어.’
최 요원의 손아귀에서 유리구슬이 돌아간다. 감옥의 간수를 부르는 일종의 간이 제사다.
‘망할 망할!’
어떻게 막지? 어떻게 설득하지? 온정적인 사람이라 가끔 감정에 흔들려 주기도 하는데, 그것도 빈틈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
이미 내가 스파이인 걸 안 이상, 일단 날 유리 감옥에 처넣고 시작….
…….
잠깐.
나는 유리구슬을 든 최 요원의 손이 아닌, 반대편 왼손을 보았다.
거기 들린 구겨진 종이.
‘…….’
찾았다.
“그건 제가 드렸던 쪽지인가요. 최근에 그 수수께끼를 푸셔서 이 장소를 찾으신 겁니까?”
최 요원이 대답하지 않고 계속 유리구슬을 손에서 굴린다. 그러나 나는 굴하지 않고 계속 말을 걸었다.
“최소한 쪽지를 받으셨을 때는, 제가 정말로 누군가를 돕기 위해 도움을 요청했던 거라고 생각하셨던 겁니까?”
“아니.”
“…!”
“처음에는 속임수가 있을 거라 생각했지. 네 출신이 출신이니까.”
…!!
“뭘 놀라. 백일몽 주식회사에서 쓰던 사원 본명 그대로 여기 입사했는데, 정말 아무도 모를 거라고 생각했어?”
머리에 내리꽂힌 충격이, 결과값을 도출해 낸다….
‘이상했어.’
그래. 이상하다고 분명 생각했었다.
C조의 이강헌은 존재하지 않았을 때, 그리고 그와 메시지를 주고받았다던 이성해 주임도 본 적 없다고 했을 때.
아주 간단한 추리로 원인을 추론할 수 있었다.
애초에 없던 인물이라는 것.
정보를 캐내기 위해, 백일몽 직원으로 가장하던 누군가였던 거다.
저 사람이.
그러니까 처음부터 내가 백일몽 출신인 것을, 알고 있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야.”
최 요원의 목소리가 공허해졌다.
“네가 일을 참 잘하더라. …열심히 하고.”
“…….”
“만나는 사람들, 애들, 얄미운 녀석들까지도 안 가리고 어떻게든 도우려고 기를 쓰고. 다치거나 손해 봐도 뭐든 하려고 드는 거.”
목소리가 잠긴다.
“그건 연기로 되는 게 아니라고 생각했지. 보통 백일몽 직원들은 손해 보는 걸 못 참으니까. 그래서 생각한 거야. …네가 재관이한테 말한 그대로, 정말 회사에 죽은 척 잠적해서 도망 나온 게 맞을 수도 있겠다고.”
…!
“우리 팀에 두고 잘 관리하면 되겠다고….”
최 요원이 유리구슬을 꽉 쥔다.
“편한 대로 믿은 거지. 하하, 이 짬으로 이런 실수를 다 하고 말이야.”
“…….”
“그래, 손해 봐도 더 큰 이득이 돌아오면 움직이는 게 사람 본성인데. 거기다 소원권 때문에 목숨까지 거는 너희 성향을 잊었지. 그런데….”
최 요원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노루 씨. 사람은 맞나?”
“…….”
“아까 그 형태는 뭐지? 이 장소는 또 뭘까. 재난관리국에 무슨 짓을 하면 백일몽에서 소원을 들어준다던? 대답 좀 해보자.”
나는 입을 다물었다.
최 요원은 잠시 나와 눈을 맞추고 있다가, 결국 웃었다.
“의미 없지?”
“…….”
“그래. 감옥 가서 원하는 만큼 이야기….”
“감옥?”
최 요원의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
검은 그림자가 그 위로 드리웠다.
아무렇게나 이빨과 눈이 돋아난 거대한 늑대의 괴물 같은 형상.
경비반장.
그가 돌아온 것이다.
시간을 끌던 내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
“유리구슬을 노리십시오!”
“이런 X….”
최 요원은 허리춤에서 작두를 잡아 들려 했으나 이미 늦었다.
이빨이 다가왔다.
콱.
작두의 날이 박살 나고, 유리구슬이 최 요원의 손째로 씹힌다.
“윽!”
유리구슬이 이빨 사이로 깨지는 순간, 나를 가두고 있던 간이 감옥도 깨졌다.
나는 당장 달려 나왔다. 그리고 틈을 파고들어 최 요원을 제압했다.
그가 가장 반응이 느릴 부위로.
목.
“…!”
일부러 목의 흉터를 노렸다.
죄책감인지 긴장감인지 모를 것이 등골을 치고 오른다.
쿵.
바닥에 눌린 최 요원. 그의 팔을 문 늑대 같은 괴물의 검은 주둥이 형상에서 이빨과 혀 같은 덩어리가 드러내며, 아예 물어뜯으려는 듯….
“안 됩니다.”
나는 숨을 헐떡이며 다급히 말했다.
“죽이면 안 됩니다.”
“…….”
서서히 괴물의 형상이 갈무리되며, 의욕 없는 인상의 마른 경비반장이 드러난다.
“죽이려던 건…… 아니고…. 그냥… 겁만 주려고….”
후우.
“그런 류의 겁주기가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
나는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심장이 뛰었다.
이제부터 어떻게 하면 되지?
그러니까, 내 임무는 완전히 망한 건가? 소원권은… 어떻게 되는 거지? 어떻게 해야 이 상황을 수습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솔음아.”
“…….”
“큼, 김솔음. 이야.”
아래에서 작은 기침과 막힌 소리를 내며, 최 요원이 씩 웃는다.
“너 작두 별로 안 아팠지?”
…!
“그거 발에 처맞고 그렇게 움직일 수 있는 물건이 아닌데. 너도 봤잖아. 너희 회사 정예팀이 맞았을 때 말이야.”
봤다.
반짝반짝 용궁 괴담에서.
작두가 꽂히자마자 신음을 참으며 쓰러지는 진나솔 대리를.
그리고 내가 별로 아프지 않다는 건, 그건….
“네가 썩 나쁜 녀석은 아니라는 거잖아. 맞지?”
“…….”
“포도야. 아직 돌이킬 수 있어.”
…!
“위에 안 넘기고 그냥 조용히 내 선에서 처리하면 되지. 뭐… 관리국에 특이한 출신이 한둘도 아니잖아.”
“…….”
“이대로 덮자. 그럼 넌 네가 말했던 그대로, 사이비 회사에서 탈출해서 재난관리국에 들어온 신입으로 살 수 있어.”
최 요원의 눈이 침착하게 또렷해진다.
“그냥… 현무 1팀 막내 요원으로 계속 같이 일하는 거야. 사람들 구하면서.”
“…….”
“네가 왜 그 망할 회사에 매여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히 말해 봐. 우리 팀으로 지내면서 훨씬 즐거웠지?”
“…….”
“그리고 네 소원, 어쩌면 우리도 들어줄 수 있을지 모르잖아.”
낮은 목소리가 따듯한 이야기를 한다.
“도와줄게. 솔음아.”
…….
나는 손을 움직였다.
“요원님.”
“응?”
“거짓말 그만하십시오. 안 통하니까.”
“…!”
나는 최요원의 왼팔을 비틀어서 등 뒤로 잡았다.
투두둑, 왼팔 아래에서 호출기가 떨어졌다. 나는 그 호출기를 잡아 부쉈다.
“이…!”
역시.
“최 요원님.”
나는 그의 양손을 등 뒤로 누르며 확실히 말했다.
“이미 압니다.”
“…….”
“왼쪽 팔꿈치 아래에 붙여둔 호출기를 누르는 건 당신이 자주 쓰는 타개법입니다.”
최 요원의 눈이 커진다.
“하지만 이렇게 호출기를 꺼내기 어려운 상황이 된다면… 당신은 주로 상대를 제압할 방법을 짜내는 편입니다. 제압에는 주로 도깨비 등불을 사용하지만 가끔은 이정 책방에서 구한 도서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
“하지만 그건 구출해야 할 대상을 보호하기 위해서니까, 지금은 도주를 고를 겁니다. 제이 씨, 이 사람의 바지 주머니 안에 주머니가 하나 더 있습니다. 거기 운동화 끈이 있을 겁니다. 꺼내주십시오.”
경비반장이 내 부탁대로 해주었다.
내 손에 들어온, 자신의 도주용 아이템을 본 최 요원의 미소가 창백해졌다.
나는 선언했다.
“저는 당신을 압니다. 당신이 어떤 짓을 해도 다 예상합니다.”
“…….”
“괜한 시도로 상황을 위험하게 만들지 마십시오.”
“하하…. 이 개자식이.”
목소리가 떨렸다.
“너 뭐야.”
“…….”
“누구야.”
대답할 수 없었다.
일부러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경각심을 심기 위해 한 짓이니까.
나는 최 요원이 가진 무장을 차례대로 모조리 해제시키고, 일단 전부 내 인벤토리 문신에 수납했다.
이걸로 1차 무력화는 끝.
‘후우.’
그러나 안심은커녕 머리가 핑핑 돌아간다.
이 다음은, 다음은….
‘나가야 해.’
이곳에 계속 최 요원과 있기엔 위험했다. 재난관리국에서 혹시라도 추적하면 곤란했다.
‘모텔.’
일단은 제3의 장소로 간다.
“걸으십시오. 조용히.”
“…….”
“허튼짓하지 말고.”
나는 최 요원을 일으켜 세워 잡았다. 그 옆에 경비반장이 붙자, 언뜻 보기엔 마치 취한 동료 직원을 둘이서 부축하는 것 같은 모양새가 되었다.
그렇게 꿈 배양실을 빠져나오며, 다시 수습할 방안을 고민….
“솔음아.”
“…….”
최 요원이 식은땀을 흘리며 웃는다.
“나 이대로 어디 묻어버리게? 아니면… 백일몽에 넘기게?”
“…….”
“그런데 너도 백일몽 그 자식들 얼마나 끔찍하게 구는지 잘 알잖아. 용궁에서 겨우 구출한 애들 실험용으로 써먹으려던 거 눈앞에서 봤지.”
발을 옮긴다.
“거기에 나 넘길 거야? 진짜로?”
“…….”
“그냥 재난관리국에서 뭘 하려던 건지 말해봐. 도와줄게.”
말할 수 없었다.
그리고… 안 도와줄 거란 걸 안다.
내가 조금이라도 동요해서 빈틈을 보이는 걸 노린 것일 뿐이다.
그리고 빈틈을 주는 순간, 노련한 최 요원은 어떻게든 나를 유리 감옥으로 이송하거나 도주해서 지원을 갖추고 다시 나타날 것이다.
그러면 끝이다. 아니….
‘이미 끝난 건가?’
속이 울렁거렸다.
돌이킬 수 없는 분기점을 지나온 것 같은 이 감각.
조용히 호 이사가 요구한 문서만 빼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던 일상이 이제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는… 깨달음.
이제부터 빠져나오기 어려운 수렁으로 빠져들 것이라는 아득함.
토할 것 같다.
‘……어쩌지?’
무슨 방법이 있지.
최 요원의 기억을 잃게 만들거나 비밀을 서약하게 하는 백일몽 물약은 소용없다.
‘일주일도 안 가서 들킬 거야.’
최 요원은 삿된 것이 자신에게 들어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사내에서 주에 한 번 검진을 받는다. 거기서 걸린다.
차라리, 차라리….
“저기….”
“…….”
“저기요.”
나는 맞은편의 경비반장을 돌아보았다.
경비반장이 자신이 부축하듯 제압해 둔 요원을 보며 말한다.
“이 사람… 재난관리국…?”
“…예.”
“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경비반장이 무언가 깨달은 것처럼 말한다.
“저기, 알던 사람 같은데… 말이 통했던 것 같아서.”
“……!”
“대화로… 일단은?”
하지만 무슨 말을 한단 말인가.
내가 스파이로서 어떤 일을 하는 건지, 백일몽에서 정확히 무엇을 요구했는지 등 가장 중요한 것을 말할 수 없다. 호 이사의 금제가 걸려 있으니까.
그걸 제외하면 말할 수 있는 건….
…….
스파이가 아닌 나뿐이다.
김솔음.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생각을 하며 재난관리국에서 일을 했는지.
당신들을 기만할 의도가 있었는지.
“…….”
그것만이라도, 말해 볼까.
‘재난관리국에 해를 끼칠 생각이 없다는 것만이라도.’
일단 실질적인 위해를 끼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한다면, 그렇다면 어떻게든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몰랐다.
일단은… 그렇게 해보자.
“…예.”
나는 골목으로 나온 후, 도로변으로 나와 거기 정차한 택시를 보고 최 요원에게 작게 말했다.
“택시를 탈 겁니다.”
“…….”
“소란을 일으키지 마십시오.”
“똑똑하네. 노루 씨.”
민간인이 있으면 함부로 날뛰거나 공격하진 못할 것이다. 그 과정에서 택시기사가 다치거나 죽을 수도 있다고 걱정할 테니까.
‘오히려 돌발 상황을 방지할 수 있다.’
그것까지 이용하려니 속이 더 이상해졌으나 어쩔 수 없었다.
“탑승합시다.”
셋은 나란히 택시 뒷자리에 올라탔다. 그리고 운전석에 앉은 기사가 놀라지 않도록, 취객을 부축하는 듯한 자세를 계속….
“솔음 님!”
“…!!”
운전석에서 익숙한 얼굴이 돌아본다.
택시기사가 아닌 자. 그가 안타까움이 가득한 목소리로 부르며 나를 보고 있다.
…호 이사다.
‘이게 뭐야.’
어떻게 나타난 거지?
왜… 여기에?
그러나 의문보다 충격이 먼저 상황을 지배한다.
호 이사가 선언했으니까.
“저런, 들키셨군요.”
“…….”
안 돼.
“하지만 즉각 잘 확보하셨네요! 오시는 수고를 덜어드리고 싶어서 제가 마중 나왔어요.”
호 이사의 시선이 돌아갔다.
경비반장을 마치 없는 것처럼 무시한 시선이 뒷자리 중앙에, 우리 둘에 의해 포박되듯 잡힌 자를 본다.
최 요원.
“안녕하세요?”
재난관리국을 향한 분명한 증오와 반감을 드러냈던 인간이 아닌 무언가가 재난관리국의 요원을 쳐다본다.
최 요원의 얼굴에 긴장된 미소가 번진다.
“…별로 나한테 안녕한 상황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저런, 아니요.”
호 이사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진다.
“곧 안녕하시게 될 거예요.”
안 돼.
“기다려 주십시오.”
나는 다급히 호 이사의 시야에 끼어들었다.
식은땀으로 등 뒤가 축축해졌다.
“그는 자신이 죽거나 실종되거나 변이할 시, 즉각 관리국에 알림이 가도록 설정했습니다.”
“그래요?”
“확실합니다. 그러니 차라리 금제를 걸고 일상으로 복귀시키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안전할 것 같….”
“솔음 님.”
호 이사가 나를 보고 미안한 듯이 웃는다.
“이렇게 빨리 정체를 들키셨는데, 더는 솔음 님의 판단을 신뢰하기가 어렵네요….”
머리 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제가 알아서 처리할게요.”
“…….”
나는 뻣뻣하게 고개를 돌렸다.
최 요원의 얼굴 위로 둥근 파문이 일어나고 있었다.
호 이사의 주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