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198화
마을 사람들이 몰려든다.
[오셨다, 지산의 복!]
메가폰을 든 자가 지르는 소리가 점점 커지고, 어느새 노랫소리와 꽹과리 소리도 거세게 다시 살아났다.
인파의 소용돌이.
“이쪽으로!”
나는 청동 요원을 따라 그 틈으로 마을 사람들을 피해 숨었으나 역부족이었다.
“와, 대박.”
“저 사람이 그 금으로 된 닭 받는 거야?”
아직 상황을 파악하지 못한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소리, 모든 것을 팽개친 채 내게 우르르 접근하는 마을 사람들, 바닥에 엎드려 절하고 산을 향해 기도하는 사람들, 그 사이로 사라진 백사헌.
그리고….
“도망가십시오.”
나는 나와 은하제 대리를 붙잡아 뒤로 밀치고, 자신이 마을 사람과 대치하려 드는 청동 요원을 붙잡았다.
“진정하세요. 어차피 이제 저는 ‘안전하게’ 나가지 못할 확률이 높습니다.”
“……!”
“그리고 분명 규칙서에 있었습니다.”
눈을 마주쳤다.
“비슷한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구조를 진행하다 보면 요원 중 한 명이 마을 사람에게 잡혀가는 경우가 간혹 생기곤 한다.
하지만 축제 마지막 날이 아니라면 무작정 달려들거나 마을 전체와 대치하지 말자.
축제 중인 마을에는 언제든 다시 진입할 수 있다. 그게 무슨 뜻이냐면, 충분한 준비를 갖춰서 다시 올 수 있다는 뜻이다.
감정에 휘둘려서 소란만 부리고 아까운 기회를 날리지 말고, 현명하고 과감하게 행동할 것.
그렇게 잡혀간 사람도, 남은 사람도, 구조할 사람도 모두 다 살아서 재난에서 탈출하자.
“가십시오.”
“…….”
“가서, 빠르게 절 구조할 방법을 알아내서 돌아와 주십시오. 그게 제가 살길입니다.”
청동 요원의 눈에서 치열한 고민이 보인다. 감정과 이성적 판단 사이에서의 힘겨루기.
하지만 곧, 이성이 이겼다.
“내일.”
“…….”
“반드시 돌아오겠습니다.”
나는 청동 요원이 재빨리 건네준 오방색 운동화 끈을 인벤토리 문신에 잡아넣었다.
최악의 경우 실종이나 자살의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밖으로 나가야 할 때 쓸 수 있는 패다.
그리고 청동 요원은 무시무시한 속도로 인파를 헤치고 입구로 달려갔다.
“오셨구나. 지산의 복!”
동시에 마을 사람들이 나를 덮쳤다.
* * *
나는 눈을 깜박였다.
잠깐 정신을 잃었던 것 같다.
그리고 내가 정신을 차린 곳은… 넓고 고풍스러운 마룻바닥이었다.
정사각형 공간의 양면에 달린 장지문.
“…….”
비슷한 양식을 최근에 본 적이 있다.
‘그 기와집이다.’
은하제 대리님은 보이지 않았다. …같이 잡혀 오진 않은 모양이다.
다행이었다.
‘…….’
다리를 내려다보았다.
양다리가 금줄로 묶여 있다.
금줄은 장지문 한쪽에 구멍 난 곳을 통해 밖으로 이어져 있다.
살짝 당기자, 탄성이 느껴진다. 고정된 듯했다.
‘본격적인데.’
그 순간.
드르륵.
장지문이 열리고 사람들이 들어온다.
아니, 단 두 사람이다.
축제 음식이 올라간 소반을 옮기는 한 사람과 술병을 옮기는 사람. 둘이 내게 깊게 고개를 숙이더니 정갈한 음식과 술을 내려놓는다.
그리고 희미하게 음악이 들리기 시작한다.
아마도 건물 밖에서는 미친 듯이 격렬한 축제가 벌어지고 있는 듯했다.
한밤 내내.
“…….”
둘은 챙겨온 작은 뽑기통을 들어서 뽑기를 한다. 그러더니 결국 수탉 깃이 달린 막대를 뽑은 자가 이곳에 남고 다른 자는 고개를 숙이고 빠져나갔다.
남은 건 술을 옮긴 자.
“사헌 씨.”
“…….”
술을 옮겼던 마을 사람, 백사헌이 나를 보았다.
왜 갑자기 내가 특별상을 뽑았는지, 짐작 가는 용의자를.
“어젯밤에 제가 일부러 당신 주머니에서 ‘특별상’ 막대를 뽑게 한 겁니까?”
-…제 주머니 확인해 보세요.
분명 그렇게 자연스레 유도했었다.
어제는 뽑기에서 꽝이나 나왔던 내가 특별상을 뽑은 이유로 의심되는 특이행동은 그것뿐이었다.
“이미 특별상을 뽑았던 사람으로 만들어서, ‘적합하게’ 만들기 위해서?”
“…….”
“그래서 제가 다음날에는 특별상을 뽑도록 유도한 겁니까.”
백사헌의 눈에 진한 만족감이 스쳤다.
그리고 쉰 목소리로 말한다.
“그게 맞다면?”
“오래 계획한 거군요.”
“…….”
“이게 될 거라는 추측을 하기까지, 또 요원들이 당신을 구출하지 못하면 어떻게 할지 고민하면서요.”
백사헌의 입가에 희열 찬 미소가 번진다.
“맞아.”
해방감.
광기.
“매일 생각했지. 언젠가 내가 당첨되면 어떻게 할까. 저 꼴은 되고 싶지 않다. 이 X 같은 집구석에서 잘 때마다, 누가 죽을 때마다, 누나가 죽을 때도!”
토해내듯 말한다.
“나는 절대 저렇게 되기 싫다고 생각했어. X발, 내가 죽으면 신이고 나발이고….”
“신?”
백사헌이 숨을 삼켰다. 금기된 말을 하는 자의 불안과 쾌감이 느껴진다.
“이 명절 축제는 신을 섬기는 거였군요.”
“섬겨? 아니!!”
백사헌이 비명처럼 뱉는다.
“이건 신을 만들어 내려는 의식이라고!”
“……!”
“‘길일을 잡아 명절로 만들고, 그때 당첨된 자를 서낭당에 안치시켜서 우리를 세상진리로부터 해방시켜 줄 신, 지산의 복을 만든다.’ 그 미친 개소리를 진짜 믿어서 하고 있단 말이야!”
“그게 정말 가능합니까?”
“몰라! 하지만….”
헐떡임.
“여기엔, 진짜로 뭐가 있긴 하다고.”
“…….”
“명절에, 특별상을 뽑은 외지인이 없으면, 남은 막대들을 모아서 매일 우리끼리 뽑아. 그리고 거기서 당첨되면….”
백사헌의 얼굴이 굳는다.
“축제 마지막 날이 끝나면, 가축 잡듯이 머리를 가리고 서낭당으로 끌고 가.”
“…….”
“끌고 가서, 서낭당에서 뭘 해.”
“무엇을 말입니까?”
“몰라. 나는 몰라. 그런데, 그런데 뭐가 있어….”
그 얼굴이 창백해졌다.
“끌려간 사람들이 아침에 나오면, 다들 안색이 달라. 말을 못 하게 되고. 자기들끼리 다음 해 명절을 준비하고….”
“…….”
“자기가 준비한 그해 명절이 끝나면 서낭당에서 목을 매.”
…!
“그런데, 그런데 명절마다 다시 나타나. 죽었는데 돌아와. 서낭당에서 걸어 나와.”
울부짖었다.
“풍물놀이를 해!!”
“…!”
“지금도 하고 있어. 밖에서!”
히야아아아아!
“나는 그렇게 안 될 거야. 안 죽을 거라고. 절대 안 돼.”
백사헌의 눈이 공포, 분노, 생존본능, 그리고 해냈다는 안도감으로 번뜩이더니… 이성과 계산속으로 차분해진다.
“이제 네가 당첨됐으니 명절도, 뽑기도 끝이야. 나는 이제 여기 안 돌아와도 돼. 이 지산 마을에서 빠져나갈 수 없던 것도, 잡혀 있던 것도 이제 끝난 거지.”
…….
“알겠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백사헌이 중얼거린다.
“이제 너도 내부자라서 말할 수 있는 건가? 하하. …이런 거 먼저 떠드는 새끼들 죄다 멍청한 놈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런 느낌이었구나?”
혼자만 겪는 상황, 나만이 아는 정보를 말하지 못하고 삼키는 것.
이거 웃긴 일인데, 지금 백사헌이 느끼는 기분이 어떤 건지는 내가 더 잘 알 것 같다.
‘…….’
사실 난 지금 화가 나거나 초조해야 하는 게 맞다.
백사헌 이 미친 새끼가 자기 살겠다고, 자기 구하러 왔다가 구할 방법이 없다고 했을 뿐인 공무원을 대신 자기 자리에 희생양으로 밀어 넣은 것 아닌가.
화나고, 환멸이 들고, 내가 그런 일을 당했다는 것에 초조함과 억울함이 솟구치고,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머리가 팽팽 돌아야 했다.
그게 맞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렇지가 않다.
대신 묘하게… 마음이 편안하다.
복잡한 내일과 가까운 미래가 조금 불투명해진 이 느낌.
‘여기 잡혀 있으니까 다른 건 생각 안 해도 괜찮잖아.’
더는 소원권도, 호 이사의 금제도, 당장 한 달 안에 찾아야 하는 정보도, 이미 정체를 들킨 요원을 어떻게 대할지도 우선순위로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말 그대로 현실도피인가.’
죽음의 위협이 도리어 마음 편하다니 좀 웃기고 기가 차긴 한데.
사실이었다.
그래서 평이하게 말할 수 있었다.
동정심도 분노도 없이.
“그렇군요. 이해합니다.”
“이해?”
백사헌의 눈에 경계심이 돌아온다.
“참 안됐다, 이해한다… 그런 소리하면서 그래도 이러면 안 되니 자길 풀어달라고 말해보려고?”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도저히 안심할 수 없고, 내가 곧 죽을 것 같고, 매일이 공포스러운 상황에서 일상을 보내는 것.”
“…….”
“그건 압니다.”
상대가 가라앉은 표정으로 나를 보았다.
“그래도 요원 둘 중에는 운 좋게 잘 고르셨네요.”
“왜, 네가 죽고 싶기라도 해?”
…….
“약간은?”
지금은 잘 모르겠다.
“당신은 죽고 싶었던 적이 없습니까? 단 한 번도?”
“…….”
“있었군요.”
“그럴 일 없어.”
백사헌이 불쑥 말했다.
“난 죽기 싫어. 넌 죽고 싶었다면 잘됐네. 그냥 그대로 있으면 되잖아.”
“…….”
묘한데.
그 말에는 자신에게 속은 내가 꼴 좋다고 조롱하려는 기색은 없다. 날 놀릴 수 있는 상황인데도 그리 재밌는 것 같지도 않다.
그저 생존을 향한 이기적 절박함만 가득 느껴졌다.
딱히 죄책감을 느끼는 것 같지도 않지만, 뭐라고 할까… 죄책감이 들어갈 여유 자체가 없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항상 그랬지.’
오로지 자기 이득만 생존만 필사적으로 챙겼다.
하지만 그래도 자기 때문에 곤경에 처한 사람을 보며 즐거움을 느끼거나 괴롭힘을 재밌어하는 건 아니라면… 조금 다른 접근법이 있다.
이용할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이대로 그냥 죽기까지 현실을 도피하는 건 안 될 테니까.’
결국 나는 입을 열었다.
“사헌 씨. 만일 나와 당신, 둘 다 살 수 있다면 도울 겁니까?”
“…뭐?”
“단지 당신이 지금보다 고생스럽고, 들킬 위험을 감수해야 합니다.”
“하겠냐? 미친 새끼.”
그때였다.
-세상에, 그만! 극적 요소로 봐주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저토록 무례할 수가!
-아, 친구. 최근에 당신의 호의를 배신으로 돌려주는 자들이 왜 이토록 많은지! 이 브라운도 마음이 아픕니다.
…봉제 인형이 다시 말하기 시작했다.
-내가 도와주겠습니다. 일단 여기서 나가지요.
-그 후에 저들에게 카르마가 무엇인지 시원하게 알려줘 봅시다. 그것참 짜릿하고 신나는 장면이겠군요.
…….
‘아. 괜찮아.’
봉제 인형이 말을 멈췄다.
‘혼자 해볼게. 그편이 재밌을 거 아니야?’
-그건… 글쎄요. 적절한 도움이 들어와야 좋을 흐름 같습니다만!
‘괜찮아.’
나는 봉제 인형과 대화를 끝내고 다시 백사헌을 보았다.
기대 자체도 안 해본 상대를 향한 말이라 아무렇지 않게 나온다.
“하지만 사헌 씨. 저는 사헌 씨 때문에 죽는 겁니다.”
“…….”
“저는 당신을 구조하기 위해 왔다가 방법이 없어서 그러지 못했을 뿐인 사람인데요. 당신이 이 자리에 밀어 넣었기 때문에 죽는 겁니다.”
“이게 왜 나 때문인데?”
백사헌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내가 X발 특별상 뽑으면 사람 죽이라고 했어? 서낭당에 사람 처넣고 죽였냐고. 죽이는 건 다른 새끼잖아! 그럼 그냥 내가 죽으라고? 그….”
성내고 욕하는 것은 부정 탄다.
“……!!”
나와 백사헌이 동시에 장지문으로 고개를 돌렸다.
중얼거림이 들린다.
성내고욕하는것은부정탄다. 성내고욕하는것은부정탄다. 성내고욕하는것은부정탄다. 잊은자야사라져라. 잊은자야사라져라. 잊은자야사라져라. 산산백지산복주시옵게대리자야산산백지산복주시옵게대리자야산산백지산복주시옵게대리자야
울림소리.
백사헌이 허옇게 질린 얼굴로 장지문 쪽을 본다.
분명 아무것도 없는데, 풍물놀이 패의 소리가 점점 더 크게 들려오기 시작한다….
“백사헌 씨.”
“안 돼.”
녀석이 장지문 반대편으로 가서 몸을 굽히고 머리를 감쌌다.
평소 각종 돌발행동을 태연히 저지르던 녀석이라고 믿기지 않는 무력함.
‘트라우마 반응인가.’
혹시 이건 통할까.
나는 잠시 고민하다가, 입을 열었다.
장지문을 향해서.
“죄송합니다. 제가 당황해서 욕을 했네요.”
소리가 멈췄다.
“축제에서 좋지 않은 태도였죠. 이제 말을 곱게 써보도록 노력해 보겠습니다.”
장지문은 쥐 죽은 듯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히야아아아!
다시 시작된 풍물놀이 소리가, 서서히 멀어졌다.
완전히 사라지듯 축제 소음에 녹아들 때까지.
“…….”
“…….”
“백사헌 씨.”
백사헌이 식은땀 범벅이 된 채 장지문 구석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혼란스러운 눈으로 나를 본다.
“나는 방금도 그쪽이 죽지 않게 도왔습니다.”
“…….”
“조금도 고마움을 느끼진 않습니까?”
“…고마우면 대신 죽어달라고?”
“고맙다고 하면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는 것처럼 말하십니다.”
무슨 당연한 소리를 하냐는 눈으로 백사헌이 나를 쳐다보았다.
그러냐.
“마음대로 하십시오. 목숨이 대단히 소중하신 것 같으니.”
그리고 발을 내려다보았다.
“하지만 저도 제 목숨이 소중했습니다. 가끔 죽고 싶다고 생각하는데도요.”
“…….”
“…….”
긴 침묵 후.
백사헌의 입이 열렸다.
“둘 다 사는 방법이 정확히 어떤 건데.”
“…….”
“뭐냐고.”
나는 아직 자유로운 손을 주머니에 넣어, 잡히는 은색 뱃지를 그 속에서 굴렸다.
은심장.
“간단합니다.”
방금 백사헌의 말을 들으면서 깨달았기 때문이다.
이게 어떤 종류의 괴담인지.
“그들의 믿음에 의심을 심을 겁니다.”
신 만들기, 세상진리로부터 해방, 우연과 운명, 소수 인원만이 공유하는 공양 의식, 돌아오는 죽은 자, 희생양….
모든 게 하나를 가리켰다.
이건 무명찬란교 산하 괴담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