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01화
“…!!”
백사헌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방금, 등 뒤에서 굉음이 났다. 어쩌면 마을에서 더 엄청난 사태가….
‘X발, 그런 거 생각할 때야?’
그는 이를 악물고 다시 발을 옮겼다.
최대한 빨리 멀어져야 했다.
“후욱.”
산길을 뛰는 백사헌이 맨 거대한 배낭에는 식수와 식량, 치열하게 고민해서 구성한 생존용품이 들어 있다.
언젠가 이 마을에서 급히 도망갈 때 쓰려고 모아서 자신만 아는 장소에 숨겨두었던 것이다. 드디어 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다만 배낭에 남아 있던 빈자리에는 이제….
유골이 들어 있었다.
풍물놀이 패가 무너져 사라지고 남은 것.
그중에 한때 자신의 누나였던, 뼈.
“…….”
무거우니까 버리고 왔어야 했는데.
멍청한 짓인 거 알면서도 그걸 굳이 들고 온 자신이 어처구니가 없긴 했으나, 그렇다고 이제 와서 땅바닥에 버릴 수도 없었다.
다만 그가 신경 쓰는 건 오로지 그것뿐이다.
‘다 죽었으면 좋겠다.’
차라리 잘 됐다.
마을 사람들도, 마을에 온 외지인도, 나를 구조하지 못했던 요원들도.
다 죽고, 이 X 같은 마을이 아예 흔적도 안 남았으면.
머리끝까지 짜릿해지는 상상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그 요원은….’
자신이 ‘특별상’을 뽑게 만든, 그 안경 쓴 젊은 요원.
놀라울 정도로 차분하며 단 한 번도 자신의 말을 비꼬지도, 화내지도 않았다. 자신에게 도움을 주고도 끝까지 요구하는 것도 없었다.
그리고 결국 약속을 지켰고 말이다.
둘 다 살아남는 것.
배신하지 않는 것.
‘…….’
기묘한 기분이 들었다.
그의 인생에서 처음 느끼는 감각일 것이다.
본래라면 절대 하지 않았을 일, 좋은 일을 무심코 시도해서 성취를 거뒀을 때 느끼는 이 묘한 느낌.
사람들은 그걸 보람이라고 불렀다.
‘…….’
그래서였을 것이다. 충동적으로 ‘종이배’를 두고 온 것은.
물론 그 요원이 끝까지 살아남아서 그걸 발견해 주웠을 때에만 의미가 있을 이야기지만 말이다.
‘…주우면 그때나 생각하고.’
아까 지네에 작두에, 별 지랄이 났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를….
그 순간.
“……!”
등골이 찌릿해지는 기묘한 압박감이 목뒤를 찌르듯 섬뜩하게 덮쳤다.
뒤에 뭔가 있다.
마을에서, 무언가 더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게 분명했다.
‘…X발.’
백사헌은 결국 참지 못하고 할끗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
그는 얼굴이 시허옇게 질린 채 다시 산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다시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망할.’
방금 본 풍경.
하늘에서 시뻘건 피가 쏟아져 내리고 있었다.
* * *
나는 엎드렸다.
자동으로 그렇게 되었다. 엎드려 양손을 바닥에 놓아둔 상태가 되었다.
마치 절을 하듯이.
보인다보인다
네가 보인다
후두둑.
머리와 손등 위로 붉은 피가 쏟아진다.
사특한 짐승아 질병아 오래 묵은 여우귀신
비명을 지를 만큼의 통증이 한 손에서 타오른다. 잘리지 않았던 왼손.
죽을 것 같다!
썩은내가 난다
나는 손으로 땅바닥을 긁었다.
“포도 요원!”
청동 요원과 최 요원이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들린다.
“대청봉 범군 아닙니까! 미쳤습니까? 인간에게 호의적이지도 않은 초자연 현상을…!”
“나중에! 일단 조용!”
나는 신음을 참고 황급히 옆을 보았다.
은하제 대리의 모습을 한 호 이사는….
더럽고 천한 것
모습 좀 보자꾸나
피를 맞으며 웃고 있었다.
“여기는 제 지인입니다. 어르신은 괘념치 마시고 가시지요.”
내 한쪽 손등에서 수포가 부글부글 끓어 올라온다.
꼬리가 보인다
“여기는 제 지인입니다. 어르신은 문지방 너머에서 소리나 지르시지요.”
붉게 터지며 고름이 피어난다. 전염병의 흔적이.
꼬리가 잘렸다
“여기는 제 지인입니다. 어르신은 마루에 앉아 식사나 하시지요.”
고름이 터지고 흐른다.
간교한 혓바닥아
은하제 대리의 몸이 허공으로 떠오른다.
“……!”
팔다리가 뒤틀리듯이 우악스럽게 고정되나 얼굴의 온화한 미소는 변함이 없다.
“안….”
“쉿.”
최 요원이 내 어깨를 눌렀다.
죽어라
벼락이 친다.
가죽만 남기고
타죽어라
“싫은데?”
벼락 사이로 호 이사의 표정이 드러난다.
“죽어서 가죽을 남기는 건 호랑이지요.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
여전히 웃고 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정말 무서워요. 저는 여우귀신이 아니랍니다. 제가 여우라는 증거가 있을까요? 귀신이라는 증거가 있을까요? 혹시 이런 건 어떨까요? 악귀야 물럿거라, 나무아비타불 관세음보살, 급급여울령, 하느님 아버지의 나라가 임하옵시며, 소금도 뿌리고 팥도 뿌려보고요.”
벼락이 다시 친다.
“근데 안 통하는데.”
찢어지는 소리.
“어쩌죠. 착각하셨나 봐요. 안타깝네요….”
허공에 들린 자에게서 평온한 목소리가 나왔다.
“못 태우시네.”
하늘에서 떨어지는 핏물 사이에서 거대한 눈이 드러난다.
시끄럽구나
호 이사의 사지가 비틀린다.
오래 묵어 지독하군
더러운 것아
썩 꺼져라
“이런.”
꼬리를 잡고
도망치거라
“정말 패악스러우시네요. 제 지인과 저를 이렇게 억지로 떼어놓으시다니.”
웃는 얼굴이 나를 돌아본다.
“안타깝네요. 솔음 님.”
“…!”
그리고 다음 순간.
사라졌다.
허공에 결박되어 기묘하게 뒤틀리던 은하제 대리의 몸은, 마치 거기 없던 것처럼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
그 몸에 깃든 호 이사도 함께.
“…….”
“…….”
도망간… 건가?
대체 어떤 방식으로 은하제 대리님을 조종하고 있는 건지, 대리님껜 무슨 금제가 걸린 건지, 지금 과연 괜찮을지 머릿속이 복잡하게 추론을 시작했지만.
동시에 하늘을 쳐다보게 된다.
내리던 피가 그쳤다.
그리고 다시 내 손등을 내려다보았다.
수포와 고름이 깨끗이 사라졌다.
핏물에 쓸려 내려간 듯.
더러운 것을
떼어내 주었다
약조대로
“…….”
“아니, 장군님! 아예 고놈 싹싹 빌면서 문안 인사 올리게 하시겠다더니! 도망을 잘만 치는데요?”
시끄럽다 고얀 것
최 요원의 목이 잡혀서 허공에 들렸다.
“요원님!”
“으헉, 하하….”
나는 다급히 하늘을 보고 외쳤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
예의를 아는 아해로다
하늘에서.
뭔가가 나를 내려다본다.
좋다
나를 살피고.
선언한다.
모시도록 하여라
잠깐.
절을 올려라
허락하마
뭔가, 기묘한 힘이 내 어깨와 등허리를 누르는….
“안 됩니다.”
“…….”
최 요원이 팔을 들었다.
“여긴 이미 모시는 분이 있습니다. 보이시죠? 도깨비 어르신이요.”
그 팔의 끝에서 어르신의 도깨비 등불이 흔들린다.
“이제 행차 끝났으니 한 상 거하게 드셔야죠. 식기 전에 돌아가십쇼, 범장군님!”
맹랑한 것
고양잇과 맹수가 콧김을 뿜는 듯한 소리가 났다.
약속한 수라상이나
차려라
그리고.
모든 것이 고요해졌다.
“…….”
하늘에서 내리던 핏물이, 내리치던 벼락이, 거짓말처럼 모두 사라졌다.
“후우…….”
깊은 침성과 함께 요원 셋은 모두 자리에 엎어졌다.
나는 간신히 입을 열었다.
“…그분은.”
“아, 설악산 대청봉 터줏대감 호랑이장군왕보살… 좀 복잡한데 뭐 그렇게 생각하면 돼. 그렇게 불러주길 원하더라.”
아.
그 순간, 무슨 괴담인지 정체를 깨달았다.
대청봉 범장군님
사주팔자에서 대흉, 재앙을 부르는 형살을 뜻하는 백호대살에서 파생된 호랑이 괴담.
그러나 초자연 재난관리국에서는 사주팔자의 해당 살이 칼, 피, 형벌에 관련된 일에 종사 시 도리어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점에서 착안해, 해당 괴담이 액이나 불운을 잡아먹게 만드는 법을 알아냈다.
더 자세한 탐사기록은 여기를 참고.
그리고 그 뜻은….
가장 먼저,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제물을 짊어지고 설악산 대청봉에 올라야 한다.
그걸 최 요원이 했다는 것이다.
“…….”
나는 그것을 묻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힘겹게 화제를 틀었다.
“…청동 요원님의 말에 따르면, 사람에게 우호적인 초자연 현상이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만.”
“아, 그거.”
최 요원이 어깨를 으쓱했다.
“정확히는… 관심이 없는 거야. 수라상만 정성껏 차려 올리면 기분 좋을 때 들어주거든.”
“그 수라상에 인간이 올라가도 받아주는 게 문제입니다만!”
청동 요원의 눈에서 불이 튀었다. 최 요원이 빙긋 웃었다.
“에헤이, 다 관리국에서 잘 어르고 달래고 있어. 비건 생활 하시고 있다고.”
그리고 다음 순간, 최 요원의 눈이 즉각 나를 돌아보았다.
“아니, 지금 이런 말 할 때가 아니지.”
정확히는, 핏물에 씻겨 깨끗해진 내 손등 위를.
아닌 척하나 그 눈에 살짝 긴장이 서렸다.
“사라진 거… 맞지?”
“…….”
청동 요원의 눈도 내 손등을 향했다.
아까 그 꼴을 봤으니, 방금 대리님의 몸에 깃들어 있던 존재가 내 손등에 뭔가 안 좋은 주박이나 액을 걸어뒀다는 건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것이다.
“포도 요원, 대체…….”
“자세한 이야기는 복귀해서 하고. 일단은 확인부터 하자. …포도야. 아무거나 말해봐.”
나는 갈등하다가 입을 열었다.
“…저는 노루입니다.”
“……!”
할 수 있다.
아무런 거부도 없이.
됐다.
“됐다!”
금제가 풀렸다.
‘맙소사.’
나는 얼떨떨한 눈으로 손등을 들여다보았다.
그리고 때맞춰, 마을 밖에서부터 자전거 벨이 울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주작반이 왔네.”
마무리의 신호처럼.
“이 지산 마을은… 아직 수상쩍은 구석이 많아서 말이야.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수색을 하겠지. 사람도 찾고. 우물도 그렇고.”
우물터 옆을 툭 친 최 요원이 유쾌한 투로 말한다.
“다른 특이사항이 나올 수도 있지만, 당장은 아니겠지. 오늘은 돌아가자고.”
“…예.”
기묘한 안도감이 가슴께부터 퍼져 나갔다.
그래. 이제 금제는 풀렸다.
한 달 안에 죽는 것도 끝이다. 나는 자유…….
…….
잠깐만.
-안타깝네요. 솔음 님.
“…포도 요원?”
착각했다.
순간 감정에 휩쓸려서 터무니없는 안심을 한 것이다. 이건 전혀 기뻐하거나 홀가분할 때가 아니다.
피가 식어야 한다.
‘X 됐다.’
난 여기서 호 이사랑 틀어지면 안 됐다.
임무를 해내지 못하면 한 달 후에 죽는 거? 큰 문제긴 하지만 그보다 중요한 건 임무를 무사히 해내고 소원권을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되어버리면 너무 선명한 배신이지 않은가. 호 이사의 임무를 수행하려면 이렇게는…….
설마.
나는 최 요원을 돌아보았다.
내가… 호 이사와 사이가 완전히 틀어지는 것까지, 노린 건가?
“…….”
“포도야.”
최 요원은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대신 여전히 웃는 얼굴로, 자신의 작두를 꺼내서 날을 점검한다.
이렇게 말하며.
“그런데… 돌아가는 길에 말이야. 재난관리국 절차상 포도가 가봐야 할 곳이 있네.”
“…예?”
작두가 요원의 손에서 부드럽게 한 바퀴 돌려진다.
“재난관리국이 모르는 금제에 걸려 있었잖아.”
“……!”
“요원이 웬 이상한 금제에 걸려 있었으니까,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제대로 검사해 봐야지. 그게 절차야. 안전하게, …격리구역에서.”
작두와 함께 잡고 있던 것이 내 시야로 드러났다.
작은 유리구슬.
“들어가자.”
며칠 전에도 봤던 그것.
유리 감옥 간이 수감기.
안 돼.
“잠….”
툭.
“……!!”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최 요원의 구슬이 만든 공허 속에서 수많은 손이 튀어나와 나를 잡는다.
“요원….”
“쉿.”
기습적으로 발생한 사태에 이번에는 잡고 버틸 것조차 없기에, 나는 금방 구속되었다.
“심문 절차에 협조적이면 금방 풀려날 거야. 걱정하지 마.”
나는 이를 악물고 그를 보았다.
최 요원은 놀라서 달려들려던 청동 요원의 앞을 작두로 막았다.
“좀 돌아왔지만, 괜찮을 거라고.”
“최 요원님, 이게 무슨….”
“잠시만.”
최 요원이 나를 돌아보면서 조용히 말했다.
“좀 쉬고 있어. …포도야.”
나는 공허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유리 감옥으로 이송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