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13화
눈을 뜨기 전.
나는 머릿속에서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지시 사항.
-새로운 보직에 배정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지시를 따르세요. 새로운 보직에 배정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지시를 따르세요….
“안녕하세요.”
눈을 떴다.
“반갑습니다. 제가 당신의 담당… 보조 직원입니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가면이다.
흘러내리는 모자이크로 변한 얼굴이 아니라, 그 위를 덮은 코팅된 종이 가면.
내게 익숙한 현장탐사팀의 가면은 아니다. 그것을 흉내 낸 어린아이의 크레파스 그림처럼 보였다.
하지만 나는 저 동물을 안다.
“최대한 거슬리지 않게 잘 해보겠습니다. …오소리라고 합니다.”
오소리.
보안팀의 활동복을 입고 있는 이 사람을, 나는 알고 있었다….
D조 박민성 주임.
내 선배.
“앞으로 음, 잘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나를 알아보지 못한다.
“저, 오늘은 간단한 소개만….”
당연한 일이다.
현재 상태와 이전 김솔음의 모습은 신체 규격 외에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으며, 상대는 이 외관을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직후, 당연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다.
“…왜.”
다른 사람의 목소리.
그 억양에서, 느릿하고 고조 없는 특유의 어투에서 누군지 알았다.
나는 경비원 유니폼을 입고 있는, 마른 인간의 형상이 문 앞에 모자를 누르고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왜… 여기 있어.”
J3.
“반장님?”
“여기… 있으면 안 되잖아….”
…….
입을 열려 했으나, 내 성대가 제자리에 없으며 녹아내린 몸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는 것을 깨닫는다….
연기가 단어를 만든다.
근로 계약
“…퇴사한다고, 했잖아.”
새로운 근로 계약
: 영속적 근무
“…….”
나는 연기를 내렸다.
“반장님, 퇴사라는 게 무슨….”
오소리 가면을 쓴 인간은 당혹스러운 어투로 바짝 굳어 있다.
이어지는 가쁜 숨소리에서 표출되는 불안함, 의아함, 그리고 상황을 짐작해 보려는 머뭇거림….
그리고 결국 충격적인 사실을 짐작해 낸 듯, 가쁘게 숨을 들이켜는 소리.
떠올린 것이다.
둘의 공통 지인이며 최근에 무사히 이 회사를 퇴사한 사람.
그리고 연락이 끊긴 자.
“……노루?”
대답하지 않았다.
“…….”
오소리 가면을 쓴 자는 얼어붙은 채로 나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경비복을 입은 자를 돌아본다.
경비반장은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문을 열고 이 공간에서 나간다.
달칵.
철문이 잠기는 소리.
“아, 아니… 아니. 이럴, 나, 나는…. 그…….”
숨을 고르는 소리.
오소리 가면에서 난다.
동요로 인해 오염 증상이 뚫고 나오려다가, 가면에 가려진다.
40초 이상이 경과한 후에야 ■■부속유치원 선생님의 정체성을 완전히 떨쳐낸 오소리 가면이 심호흡한다.
그리고 들린다.
“괘, 괜찮을 거야.”
가까이 다가오는 발걸음 소리.
“보안팀에 있다는 건, 일단 그러니까, 의사소통이 된다는 뜻이잖아…? 방법이 있을 거야. 나도 회복했잖아…. 응?”
나는 연기를 움직였다.
불가
“…!”
오염이란 본래 인간이었던 존재가 초자연 현상에 의해 변이되는 것이다.
오염에서의 회복이란 본래의 사람 육체와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노루야.”
불가
나에겐 전자가 없다.
“…솔음아.”
…….
나는 다시 단어를 만들려다가, 연기를 흩어서 방독면 안으로 갈무리했다.
어쩐지 행위를 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기 때문에.
절박한 목소리가 들린다.
“저기… 그래, 본명을 들으니까 이상한 느낌 들지?”
아무렇지도 않다.
“거부 반응 같은 건 없나? 혼란스럽다든가… 있는 게 당연한 거야. 그러니까….”
본래의 이름에 기이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오염의 대표적 현상이다.
나와는 연관이 없다.
“솔음…….”
탁.
다시금 부르려던 박민성 주임이 갑자기 움찔 몸을 떨더니, 자신의 손목을 꽉 잡는다.
보안팀 제어용 손목시계.
째깍, 째깍.
시계가 가는 소리.
그리고 이전에는 들리지 않았던 고지문이 이제는 유사한 계약 관계를 공유하는 내게도 희미하게 들린다.
-안전 수칙을 위반하는 위험이 감지되었습니다. 재교육을 위한 수감까지 남은 시간 7초가 삭감됩니다. 71초, 70초, 69초….
내 머릿속에서 울리는 안내와 유사하다.
보안팀 오염자의 언행을 통제하는 제약.
아마도 업무 중 ‘본명’을 지칭하면 안 된다는 안전 수칙을 위반했다는 것을 스스로 깨달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둠탐사기록>에는 구체적으로 표기되어 있지 않은 구체적 매커니즘 하나를 목격했다.
그러나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새로운 보직에 배정되었습니다. 연구원의 지시를 따르세요.
근무다.
“…….”
“…….”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침묵 속에서, 그제야 내가 있는 장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녹슨 철문. 막힌 공간. 별관 지하 13층 666호와 유사하나 그곳은 아니다.
하지만 어딘지는 인지할 수 있다.
-백일몽 주식회사 본관 지하 격리실.
이전에, 내가 사람일 때 징계를 받아 청소를 위해 방문했던 그 장소.
‘헝그리 행맨’ 당시에 클리어 후 정신을 잃고 박민성 주임과 함께 이송되었던 장소이기도 했다.
보안팀 대여창고에서만 접근할 수 있는 격리복도, 그 안의 격리실….
그러나 느껴진다.
이곳은 ‘헝그리 행맨’ 어둠에서 구출되었을 때 격리되었던 격리실보다 훨씬 더 깊은 안쪽이다.
징계 청소를 위해 방문했던 곳보다도 까마득히 깊은, 저 내부의 내부…… 중심부 격리 구역에 위치한 곳이라는 걸, 근무자의 본능으로 안다.
그리고 이 밀실의 모양새.
나는 손가락으로 책상에 놓인 램프를 훑었다.
램프, 목재 책상, 침대, 수건.
아는 모양새다.
‘사택.’
사원 김솔음이 사택에서 머물 때의 방과 동일한 인테리어였다.
소품 하나까지 강박적으로 갖춰놓았다.
거의 주술적, 의식적으로 느껴지는 갖춤새.
근로 계약으로 잡아놓은 어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는 듯한, 비위를 맞춰주려는 듯한 구성들.
동시에 내 반응을 기대하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곽제강의 짓인가.’
그 연구원이 할 법한 일이다.
나는 장갑 낀 손가락으로 책상을 훑었다.
화가 나야 할까.
뭉개지고 녹아내린 뇌가 이전과 비슷한 사고를 하려 노력하나, 어렵다…….
‘그렇다면 나는… 이제부터는 별관 지하 13층이 아니라 본관 지하 격리실의 보안을 담당하면 되는 건가?’
이것은 어렵지 않다.
하지만 그렇다면….
저 사람은 필요 없는데.
“…!”
나는 오소리 가면을 응시했다.
오소리 가면의 동요가 느껴진다.
자세가 딱딱히 굳은 그에게 묻는다.
담당 업무 소개 요망
“…노루랑 같이 일하는 게 업무야.”
부적절한 호칭
사유 : 비공식적
“…아.”
오소리 가면을 쓴 자는 고개를 돌리다가 구석의 CCTV 보고 작게 소리를 냈다.
CCTV는 오염을 우려한 것인지 청각과 관련된 기능이 없으나, 그 너머에서 관찰하는 시선이 느껴진다.
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현 상태에 대하여 담당 연구원에게 굳이 확신을 줄 필요는 없다.
연기로 만든 경고의 의미를 눈치챘는지 오소리의 말이 바뀐다.
“그럼…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하하, 별명 하나 더 짓는다고 생각하자. 원래도 노루는 대리님이…….”
밝게 나오던 목소리가 약간 흐릿해졌다가 다시 돌아온다.
“음… 좋아하는 동물 또 있어?”
좋아하는 동물.
나는 무언가 떠오를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나 아무런 감상도 느껴지지 않는다.
알 수 없음
“…….”
…….
“괜찮아. 그럼 내가 잘 생각해 볼게.”
목소리를 가다듬는 소리가 들렸다.
담당 업무 소개 요망
: 구체적 예시 포함
“아, 음, 그러니까… 네가 업무를 받으면, 같이 동행하면서 다닐 거야. 불편한 점이 없도록 돕고.”
오소리 가면을 쓴 자가 친절히 말한다.
그런데….
“혹시 불편한 점이 있으면 나한테 먼저 말하면 돼. 아니면 경비 반…!”
손에 뭘 들고 있는 거지?
“…!”
내 시선을 느낀 오소리 가면 쓴 자가 허겁지겁 주머니에 넣으려던 것을 감추려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은 듯 조심스럽게 다시 꺼내 들어 내 앞에 보여준다.
주사기 형태의 물건.
꿈결 수집기와 닮았으나, 용도는 반대인 것 같다.
주입기.
특수 부서 직원 제압용
내가 만든 글자에 상대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인다.
“걱정하지 마. 누르진 않을 거야. 정말로. 정말로….”
왜?
적합 상황에서의 사용 권고
“……예를 들면?”
▶이족보행 형상의 무너짐
▶연기 제어 불능 상태
▶극도의 불안을 느낄 시
“…네가 불안해 보일 때?”
▶극도의 불안을 느낄 시
기준 : 제어 도구 사용자의 감정
“……. 하하….”
오소리 가면에게서 흐느낌이 나온다.
우는지 웃는지, 안심하는 건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여전하다. 그렇지?”
…….
“그래…. 응, 괜찮을 거야.”
그리고 왠지 안심한 듯, 한결 마음이 편안해진 것처럼 진동과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그리고 내 어깨를 토닥이려는 듯 팔을 뻗었으나… 곧 내린다.
…….
달칵.
“반장님, 저희….”
문이 열리고 경비반장이 들어온다.
예상하지 못한 상황을 받아들이지 못해 나간 자라고 파악하기엔 그 신체 반응에서 거부감은 보이지 않는다.
도리어 거침없이 걸어와서 오소리 가면을 움찔하게 만든다.
그리고 내 앞으로 왼팔을 뻗는다.
“반장님?”
“저기.”
뻗은 왼팔의 손안에서, 동그란 것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노스텔지어 캔디.
“이거, 먹을래…?”
…….
먹을 수 없다.
내게는 입안이 없다. 어디에 입안이라고 부를 수 있는 기관이 있는지 모르겠다.
필요하지 않아서 애초에 만들지 않았던 걸지도 모른다.
있다고 믿었을 뿐.
무엇보다… 나는 방독면을 벗을 수 없다.
“…….”
조용히, 장갑 낀 손가락으로 상대의 손을 밀었다.
불가
“그런가….”
경비반장이 손을 회수하더니, 마치 생각에 잠긴 듯 가만히 서 있는다.
그리고 묻는다.
“무슨 어둠에 들어갔었어요…?”
소원권
“…….”
나는 오소리 가면이 보기 전에 그 단어를 흩어버렸다.
J3는 더 이상 질문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모자 쓴 머리를 들어 올렸다. 그러자 무너지는 모자이크 같은 생김새 사이로….
얼굴이 보인다.
‘…!’
“노루야, 진정…!”
뭐지?
왜 보이는 거지?
“지금 혹시… 고통스러워…?”
심지어 목소리도 깨끗하다. 구분할 수 있다. 인지할 수 있다! 뭐지? 왜지? 어쩌면 나는 인지하지 못했을 뿐 다른 진실이…….
…….
아.
알았다.
“왜 연기가…!”
상대가 사람이라기보다는 괴담에 더 가까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경비반장의 오염은 보안팀 커리큘럼에서 아무리 제거해도 그를 존재의 경계선에 존재하도록 만들 만큼 강력하고 깊다.
이건 아무 의미 없는 일이다.
“아픈 건, 아닌 것 같고…….”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러면 괜찮아…….”
나는 엘리베이터에서 느꼈던 기이한 아릿함이 다시 생겨나는 것을 느릿하게 느꼈다.
경비반장이 연기 안으로 아무렇지 않게 들어오더니, 어딘가 어설픈 동작으로 손을 들어… 등을 두드린다.
아주 오랜만에 해보는 듯이.
“…괜찮을 거야.”
…….
나는 연기를 들이마셨다. 바닥에서 소용돌이치던 검은 기체 줄기들이 회수된다.
경비반장이 노스텔지어 캔디를 잠깐 본다.
“저기, 다른 걸 가져와 볼게…….”
나는 고개를 저었다.
노스텔지어 시리즈는 근무에 필요하지 않다.
이제는 필요한 걸 들어야 한다.
-당신의 근무시간입니다. 기상하십시오. 당신의 근무시간입니다. 기상하십시오….
시간이 됐으니까.
업무 브리핑 요망
“아, 그건….”
[아하, 열정적이시구만!]
“…!”
두 인영의 고개가 소리가 난 방향으로 휙 돌아간다.
[하하, 시간 딱 맞춰 정확히 연락드렸죠? 좋은 아침입니다. 진짜 아침이라는 건 아니고 그냥 업무 시작용 스몰 토크긴 합디다만.]
구석의 CCTV에서 소리가 나오고 있다.
경비반장이 내 앞으로 나와 섰다.
[아, 스피커와 녹음 기능은 이렇게 상호 대화 중에만 작동합니다. 이렇게까지 윤리적이고 배려심 깊은 근로 조건은 또 오랜만이군요. 하하하!]
“제정신인가….”
[뭐, 각설하고. 업무에 대해서 담당 연구자인 제가 아주 명료하게 말씀드려 보겠습니다.]
나는 경비반장에게 고개를 저어 보였다. 그러나 경비반장은 묵묵히 자리에 서 있다.
CCTV에서 나오는 곽제강의 목소리만이 요란히 밀실을 울린다.
[이건, 그러니까 우리 회사의 목표와 아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중요한 업무입니다. 바로… 좋은 물약을 효율적으로 많이 생산하는 거죠.]
[그리고 그러려면 전제 조건이 있지 않습니까?]
이어지는 당연한 설명.
[물약의 원료, ‘꿈결’을 뽑기 적합한 어둠의 원활한 수급!]
[인간을 주기적으로 투입해서 꿈결을 뽑을 수 있는, 회사에서 ‘관리’할 수 있는 괴담 말입니다.]
다만 무언가 터무니없는 소리가 나올 것처럼.
[그리고 강력한 누군가는 그런 괴담들을 꾸준히 회사까지 가져와 줘야 하고 말이죠….]
어둠을 연구하는 자의 격양된 숨소리가 들린다.
[그중 하나가 당신입니다.]
…….
[회사에서 쓸 만한 괴담을 제압해 주십시오. 효과적으로 꿈결을 생산할 수 있도록.]
새로운 업무가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