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255화
나는 정말로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이자헌 과장이 이 미친 신랑 수업 괴담에서 성공적으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말이다.
‘진짜, 진짜 별 방법을 다 고려했지….’
룰 바깥의 틈새로 빠져나갈 법들을.
사실은 이미 기혼자라서 또 결혼하긴 어렵겠다고 자백하는 방식부터 신랑으로서 치명적인 결함이 있다고 설득하는 방식까지.
하지만 탐사기록의 경향성을 생각하니 등골 섬찟해지는 결과만 예측됐다….
‘애초에 자격이 없는 자식이 왜 거짓말을 했냐고 교육 사감에게 추궁받다가 ‘자격을 만들어주겠다’라며 기상천외한 짓을 당해 검열 삭제되는 엔딩일 것 같다….’
애초에 이 괴담의 탐사기록은 ‘신랑의 미덕을 갖춘다’라는 정답지를 얼마나 돌발상황에서도 재치 있게 맞춰가는가가 스릴의 포인트였다.
혹은, 그것에 실패한 사람이 어떤 어처구니없는 방식으로 처참하게 죽는가가.
결국 불합격이든 결격 사유든 ‘신랑의 기준’에 맞지 않은 자에게는 괴담식 으스스하고 의미심장한 시궁창 결말만 기다리고 있을 확률이 지극히 높다.
신랑 수업.
절대로 교습생을 포기하지 않기에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정신적, 육체적 미궁.
그렇다면….
‘답은… 정면 돌파뿐이다.’
그리고 내가 생각한 ‘정면 돌파’에 필요한 능력치를 갖춘 게 바로….
브라운이다.
강렬한 토크쇼, 엔터테인먼트의 화신.
우리와 다른 문법으로 움직일 수 있는 괴담 속 존재.
-브라운이 신랑 후보가 된다면 분명히 도움이 될 겁니다.
‘시도해 볼 만하다.’
이곳의 특징과 사감이라는 교육자들의 특성, 그리고 결혼식에 대한 묘사 듣고 난 후에 결론을 내린 것이다.
문제가 있다면….
[노루 씨, 아무래도 이 브라운이 수신 신호를 잘못 받았나 봅니다. 세상에, 친구가 설마 나에게 테러리스트의 몸을 쓰라고 했을 리가 없는데 말이지요!]
응.
양쪽을 다 설득해야 한다는 문제다….
-브라운.
[물론.]
[친구의 간절한 부탁이라면 들어줘야겠지요. 그게 착한 친구의 본분이니까요. 그 어떤 대가도 바라지 않으며 친구를 돕는 존재 말입니다.]
…목소리가 가까워졌다.
[하지만 노루 씨, 오, 일방적으로 서비스를 받는 자가 언제까지 친구라는 개념을 이용할 수 있을지는, 조금 아슬아슬해 보이는군요….]
…….
지금 사람의 몸이 아니라 다행이었다.
공포로 얼어붙지 않으니까.
그리고.
-잠깐만 브라운.
이걸 태연하게 말할 수 있으니까.
-이건 서비스를 요청하는 게 아니잖아. 너도 이 자리에 있으니까 같이 해보자고 권유하는 거지.
왜냐하면.
-이러는 게 제일 재밌잖아.
[…!]
-다른 탐사 케이스들이랑 비슷하게 흘러가다가 맞이하는 허망한 엔딩은 싫어할 것 같은데. 설마 그런 예측 가능한 전개를 원해?
-네가 참여하는 상황에서?
당연히 아니겠지.
당연히!
-이 뻔한 상황을, 주도적으로 재치 있게 진행해 볼 수 있다면 기꺼이 그렇게 할 줄 알았거든.
-네 쇼처럼.
[…….]
브라운은 짧게 침묵했다.
하지만.
[노루 씨, 당신은 정말…!]
다소 감격한 것 같은 목소리와 함께 내 어깨를 두드리는 따스한 무게감-대체 어떻게??-이 느껴진다.
[설득하는 방식을 아는군요. 그리고….]
잡힌 어깨에 가해지는 힘이 더 무거워진다.
[자기가 원할 때만 내 엔터테이너로서의 긍지를 들먹일 줄도 알고 말입니다. 때로는 그것에 상처받은 듯, 비난하듯 반응하면서 말이지요.]
심장 떨어지는 줄 알았다.
그리고.
[……흠. 이번까지는 좋습니다! 그 변덕도 스타의 자질이니 말입니다.]
무게감이 내 어깨를 털어주며 사라진다.
[하지만, 내게도 그 자질이 있다는 것을 잊지 않길 바랍니다.]
[이대로라면, 그 자질이 노루 씨와 만나게 되는 극적인 순간이 올지도 모르겠군요….]
…….
[지금은 아니더라도 말이지요!]
후우.
-물론이야.
…아슬아슬했다.
‘다음은 없다는 뜻이야.’
이제부터는 정말로 조심해야겠다.
…어쨌든 지금은 설득이 잘 끝나서 다행이었다.
‘좋아.’
나는 안도의 한숨을 참으며, 지금까지의 대화를 묵묵히 경청 중이던 현재 몸 주인에게 말했다.
-과장님.
-딱 한 번만, 도박을 해봅시다.
브라운이….
‘깽판을 쳐줄 겁니다.’
* * *
성 안티쿠스 기숙학원의 흐린 아침.
“음, 음음.”
신랑 후보는 작은 세면대의 거울을 보며 쉐이빙크림을 말끔히 닦아내 면도를 마치는 중이었다. 곧 매끄럽게 손질된 턱이 드러난다.
그리고 향유로 머리를 손질한다. 낮고 듣기 좋은 허밍이 그 목에서 울리고, 곧 머리를 솜씨 좋게 쓸어 넘긴 브러쉬가 내려간다.
하얀 머리 아래로 질 좋은 얼굴이 드러났다.
이자헌.
그는 어제와 동일한 옷차림이다. 성 안티쿠스 기숙학교의 정복.
하지만 묘하게 그 맵시가 다르다. 입는 방법과 깃을 잡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훨씬 낫군.”
전문가의 손길.
카메라 앞에 서는 것이, 대중의 앞에 자신을 선보이는 것이 존재의 근원인 괴이가 거울을 보며 미소 지었다.
그리고 경쾌하게 문밖으로 나선다.
끼익.
기숙학교의 음전하고 금욕적이던 실내는 이제 푸른 촛불과 하얀 벨벳으로 우아하게 장식되어 있다.
장미꽃, 은방울꽃, 안개꽃, 푸르게 타오르는 불꽃에 녹아내린 양초 무늬 아래로 배치된 은장식들이 참….
고전적이고 별 볼 일 없다.
“오. 반갑습니다.”
이자헌은 아침 식사 테이블에 앉았다.
가면, 아니 탁월한 분장술로 만든 이상적인 창백한 몸과 얼굴이 테이블 의자에 진열된다.
오늘의 식사 메뉴는 단촐해졌다. 결혼식 전 몸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이자헌은 단 한 잔에 채워진 버드나무 수액을 입에 대지 않으며 유쾌히 물었다.
“내일이 바로 그토록 기다리던 결혼식이군요. 그렇지요?”
교육 사감이 긍정한다.
동시에 그 신랑 후보의 말투를 부드럽게 지적한다. 지나치게 화려하고 유려한 데다가 악센트가 인상적인 터라 신랑으로서 경건한 인상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발음 또한 지나치게 신대륙적이다.
“오, 유념하겠습니다.”
한 손으로 입가에 지퍼를 채우는 시늉이 재치 있고 우아하게 지나간다.
그 역시 하얀 신부의 신랑답지 않은 처세였으나, ‘불합격’ 정도라고는 판단되지 않은 터라 사감은 따로 벌점을 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판단에는 영향을 줬다.
한쪽 눈썹을 들어 올렸던 교육 사감이 테이블에 둘러앉은 자들을 둘러보며, 한 손을 들어 가볍게 은잔을 울린다.
마치 시간을 알리는 종소리처럼.
♩-
그리고 공표한다.
후보 중에 단 한 명.
내일 결혼식의 ‘신랑’이 될 수 있는, 가장 우수하고 완전한 교습생의 이름을.
그 후보는….
…….
이자헌이 아니다.
그가 이곳에 진입하기 위해 사용했던 가명은 불리지 않았다.
이자헌은 신랑이 되지 못했다.
안타깝게도!
“호오.”
그러나 사감은 모든 신랑 후보를 격려하며, 그들 역시 결혼식에서 맡을 역할이 있다고 말한다.
이자헌은 이미 들은 적이 있는 소식.
그리고 그 소개와 준비를 위해 오후에는 다 함께 식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공표는 마무리된다.
아, 추가로 체험 교습생 중 아침 식사 불합격자가 발생했다. 식탁 아래로 구역질했기 때문이다.
“안…!”
벌점으로는 스스로 위를 목구멍으로 꺼내어 세척 하는 작업이 지시되었다.
어쨌든, 그걸로 모든 교습이 정식으로 마무리되었다.
기대와 슬픔, 공포 속에서 이들은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하기 위한 목욕 및 명상의 절차를 거친다.
점심은 제공되지 않는다.
대신 화이트와인 한 잔이 소금과 함께 나왔다.
이자헌은 그 모든 것을 미소 띤 얼굴로 경험한다.
그러고 나서.
♩- ♩-
마지막 종이 울린다.
이제 교육 사감은 교습생들을 이끌고 결혼식이 치러질 장소로 이동한다.
아래로.
기숙학교의 지하로 가는 문이 개방된다. 사감은 교습생들에게 맨발이 될 것을 종용하며, 그들은 신발을 벗어둔 채 발밑 계단을 내려간다. 계단 모퉁이마다 놓인 양초가 녹아내리며 불빛을 낸다.
계단은 돌로 바뀌며 야외로 연결된다. 그곳은….
어두운 동굴이다.
“…….”
아주 오랜 옛날부터 사람의 손길이 닿았던 것 같은, 고대의 석영 동굴이 모습을 드러낸다.
더 안으로 들어가면 넓은 공간이 나온다.
결혼식장.
돌벽마다 읽을 수 없는 문자가 적혀 있는 그곳은 하객이 앉을 의자와 장식, 그리고 맹세를 위한 주례대까지 준비되어 있었다.
녹슬어야 마땅한 오랜 은장식들이 집요한 관리로 아직도 촛불에 반짝이는 기이한 장소.
습한 공기를 양초의 푸른 불빛이 태우고, 이상할 정도로 생생한 장미꽃, 은방울꽃, 안개꽃이 피어나 있다.
그리고….
하얀 옷이 놓인 신부의 자리.
이곳입니다.
하고, 사감이 말한다.
신랑 후보들은 영광스럽게도 결혼식을 빛낼, 중요하고 아름답고 예술적인 요소가 되어, 식이 마무리될 무렵엔 기념으로 하객들에게 나눠질 것입니다.
그렇게 말했다.
기대가 되는가?
“오, 물론입니다. 예술작품이라! 어떤 대단한 작품을 기획 중이실지 두근거리는군요.”
사감은 그 방자한 말투를 신랑답게 교정해 주기에 앞서서, 웃으며 설명해 준다.
그들은 이제부터….
웨딩케이크가 될 거예요.
정말 놀랍지 않은가?
결혼식의 피날레를 장식하는 이 중요한 역할을 맡을 수 있는 것이다. 신랑의 입속에서 그 일부가 될지도 모르는 기회다. 몇몇 신랑 후보들이 감격에 눈물을 훔친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가려 하는 체험 교습생은 자신이 케이크가 되지 못하는 아쉬움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듯하다.
본식 전 연습용 케이크로 써주는 것으로 사감들은 격려와 도움을 주기로 했다. 물론 서빙되지는 못할 테지만.
이는 우리의 땅 아래 계시는 위대한 하얀손의 진노신부의 불만족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신랑 후보가 되지도 못할 기준 미달의 체험생을 사용할 수는 없다.
결혼식의 일부가 되는 것은 그분의 신랑으로서 교습받을 수 있었음을 감사하는 자에게 돌아가야 마땅하다. 규격에 맞지 않은 자는 참석으로 만족해야 할 것이다.
“흐음.”
그리고 웨딩케이크에도 가장 영광스러운 부위가 따로 있다.
바로 맨 윗단.
“어떤 영광이지요?”
신부의 몫이 되는 영광이다.
맨 윗단은 하얀 신부께 올려질 케이크 부위로 잘려 서빙되어, 주례대에 바쳐질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과연.”
그리하여 교육 사감은 그 기쁨의 자리를 누릴 후보를 발표한다….
너.
“저 말입니까?”
그렇다.
이 중 가장 보기 좋은 네 얼굴이 하얀 신부에게 바칠 조각이 될 것이다.
신랑의 기준에 가장 미치지 못했던 혀를 잘 잘라내고, 그 안은 장미 크림으로 채울 것이다.
“…….”
신랑 후보들이 이자헌을 잡는다. 함께 웨딩케이크가 될 그들이 기쁨과 동지 의식으로 웃는다.
이미 죽은 자들.
오래전, 땅속에서 눈을 뜬 어떤 기이하고 강력한 존재에 의해 생매장되어 사로잡힌 자들이 반복하는 영혼결혼식이, 곧 시작될 것이다….
“그것참….”
엔터테인먼트 괴담이 방긋 웃는다.
“고전적이군요.”
어?
“하얀 신부라! 오, 인신공양에 결혼이란 명칭을 쓰는 것도 정말이지 클래식입니다. 일종의 비유법 같은 것이지요. 고전적이고 이해하기 쉽고, 간단하니 말입니다.”
말이 쏟아진다.
“아무래도 이해할 수 없는 압도적이고 공포스러운 상대와의 관계를 인류 문명의 틀로 해석하려 무던히 애쓴 모양이군요!”
짝, 짝, 짝….
“이런, 오해는 마세요. 어디까지나 비난이 아니라 안타까움입니다. 전통을 지키는 건 참 중요한 일이지요…. 다만 그게 별 효용 없는 허례허식에 불과해서 안타깝다는 겁니다!”
그가 어느새 주머니에서 꺼낸 장갑을 멋지게 손에 착용하고, 옷매무새를 다시 한번 다듬는다.
그리고 묻는다.
“최근 들어 하얀 신부가 무엇을 좋아하시는지 새롭게 알아낸 분?”
침묵.
“그럴 줄 알았습니다. 모험심이라곤 없는 작자들 같으니.”
“대체 몇 번이나 반복했습니까? 신부도 이제 지겨워서 짜증이 날 지경일 겁니다. 겨우 자기 비위나 맞춰주는, 참아줄 수 있는 제물, 아니, ‘신랑’을 밀어 넣고 있으니 원!”
“하다못해 식이라도 재밌어야 자리에 앉아서 지켜볼 기력이 생기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웨딩케이크? 하객 초대? 답례품? 식상하기 짝이 없군요.”
폐부를 찌르는 폭언이 몰아친다.
멍하니 굳은 자들이 뻣뻣하게 서서 그 목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나 단 한 사람만은 주먹을 쥐고 싶은 마음으로 환호를 참고 있었다.
‘이거다.’
잘한다 브라운!
바로 이자헌의 정신에 들어와 있던 김솔음이다.
이자헌과 함께 브라운이 하는 일을 조마조마한 기분으로 지켜보던 그는 이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중이었다.
‘역시 제대로 통한다….’
이게 바로 정면 돌파법이었다.
바로….
‘결혼식 망치기!’
아예 기숙학교가 멘탈이 망가져서 후보생을 다 내보내고 결혼식을 연기할 만큼 깽판을 놓는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죽지 않고, 보복당하지 않고, 성공적으로 괴담을 설득한다…라는 미친 콤보를 달성해야겠지만.
놀랍게도 그걸 다 할 수 있는 자, 아니, 괴담 속 존재가 그들의 정신에 붙어 있었던 것이다.
토크쇼 사회자.
전설적인 엔터테이너.
심지어 이 기숙학교의 본질은 행사와 관련된 괴담이니 더욱 그 압도적 영향력을 피해갈 수 없는 것이다….
이 광경을 좀 봐라.
‘피 안 뽑아도 되는 건 덤이고.’
좋았어.
“자, 그럼 이제 뭘 해야 하는지 아십니까?”
시야에서 이자헌의 몸을 쓰고 있는 브라운이 한 손을 들어서 치켜세우는 것이 보인다.
그래, 다음 결혼식은 더 제대로 고민해 보라고 하면서, 이대로 해산….
“서바이벌!”
…….
어?
“마지막 하나의 신랑 후보가 살아남을 때까지 벌이는, 품위 있지만 처절한 사투!”
잠깐만.
* * *
툭.
은하제는 입에 물고 있던 스푼을 떨어트렸다.
그저께야 겨우 재난관리국에서 ‘백일몽 퇴사. 혐의없음’으로 풀려나 마이스윗 오피스텔로 귀가한 이 직원은….
“…이건 X발 또 뭐야?”
보았다.
자신이 틀어둔 심야의 오피스텔 TV에서 웬 미친 방송이 나오고 있는 것을.
[당신의 완벽한 신랑 :
신부의 선택을 받아라]
웬 20세기 초 흑백 TV 같은 화면과 효과 속에서 짝짓기 프로그램이 하나 방영되고 있었다.
근데 익숙한 얼굴이 사회를 보고 있다.
“과장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