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5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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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잔 밑이 어둡다.
촤아악―! 촤악!
동천은 시비가 부어주는 물줄기에 손을 들이밀고 깨끗이 씻었다. 벌써 손을 씻는 횟수가 다섯 번째였는데 시비는 반복되는 소전주의 행동에 결벽증이라도 있는 줄 오해할 정도였다. 하지만 알다시피 동천은 결벽증이 없었다. 지금 그가 이렇게 행동하는 데에는 다 그럴 만한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아아, 짜증나! 그 병신새끼가 감시 이 몸의 옥(玉) 같은 손을 만지다니! 으으, 병균이라도 옮았으면 어떻게 하지? 헉? 혹시 이 몸까지 앉은뱅이가 되는 것은 아닐까?>
바로 이런 한심한 생각 때문이었다.
“한번 더 붓거라.”
“예에.”
시비는 동천의 결벽증을 확신하며 물을 부었다.
촤아악!
피부가 벌게질 정도로 손을 씻어댄 동천은 이만하면 되었다고 여겼는지 잠시 하늘 위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음, 시간이 꽤 지체되었구나. 사부님께서 기다리실 터이니 어서 마차로 안내하거라.”
시비는 귀찮은 소문주가 사라져준다고 하자 기쁜 마음에 바로 대답했다.
“그리하겠습니다, 소전주님.”
잠시 후 입구를 벗어나 마차에 올라탄 동천은 사부의 거처로 가면서 무언가를 깨달았다. 바로 점심을 못 먹었던 것이다.
“우째 이런 일이!”
그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식사를 거르다니……. 동천으로서는 있을 수도 없는 일이요, 있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다. 당연히 그는 길길이 날뛰었다.
“캬악, 진짜 짜증나네? 놔, 안 놔? 뭐? 아무도 없어서 붙잡은 적도 없다고? 에이 씨! 그 병신을 그냥, 확!”
휘익―, 퍽!
저 혼자 씨부렁거리다가 분노가 치밀어 올라 손안에 잡히는 것 하나를 내동댕이친 동천은 그것이 공영수가 선물로 준 차 통이자 뜨끔한 마음에 소란을 멈추고 주섬주섬 찻잎들을 긁어모았다. 다행이 대나무로 만든 통은 깨지지 않았고 찻잎들은 다시 집어넣을 수 있었다. 다만 한가지 문제점을 들자면 바닥의 먼지들까지 쓸어 넣은 것이라고나 할까?
“쳇, 오히려 잘 됐지 뭐람? 맛도 더럽게 없는 거였으니까.”
동천은 차 통을 옆자리에다 툭 내던졌다. 그런데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었다.
“아참! 아까는 왜 만진 손끝이 화끈거렸지?”
저만치 굴러간 차 통을 다시 집어든 동천은 할 일도 없는 김에 끈기를 가지고 이리저리 살펴보았다. 그로서는 대단한 인내심을 발휘한 순간이었지만 아무리 살펴봐도 건져낼 것이 없자 확인한 것이라곤 자신의 짜증 밖에 없었다.
“크아악! 개 같은 물건 같으니라고! 누가 병신이 준 거 아니랄까봐…….”
그때 동천의 몸이 앞쪽으로 살짝 기우뚱하는가 싶더니 마차가 멈추었다.
“소전주님, 도착했습니다.”
“호오? 그래?”
반색을 한 동천은 언제 성질을 부렸냐는 듯 마차에서 내렸다. 앞서 문을 열어준 마부는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고 굽실거렸는데 아무 생각 없이 그를 지나치던 동천은 무언가 이상함을 느끼곤 고개를 돌려 마부를 바라보았다. 당연히 움찔한 마부는 이놈이 왜 쳐다보나 했다.
“소, 소인이 무슨 잘못이라도…….”
동천은 고개를 내저었다.
“그게 아니고, 혹시 마부 바뀌었나 해서. 바뀐 거 맞냐?”
마부는 겨우 그런 이유 때문이자 안도하는 한편 서둘러 대답해주었다.
“과연 뛰어나신 안목이십니다! 이 미천한 방삼(舫渗)은 소전주님의 안목이 천하제일이라는 것을 오늘에야 새삼 깨달은 것 같습니다!”
제법 괜찮은 아부에 동천이 겉멋을 잡았다.
“껄껄, 그걸 이제야 알았는가? 음, 그래도 깨달았다는 것이 중요하니 그 부분에 관해서는 문제를 삼지 않겠네.”
“아? 감사합니다, 소전주님.”
만족한 동천은 연신 꾸벅거리는 마부에게 물었다.
“그런데 말일세. 그 전의 마부는 어떻게 하고 자네가 이 몸의 담당을 맡은 것인가?”
<니가 패서 반병신 만들었잖아.>
방삼은 지가 때려놓고도 모른 척 안면을 까자 잠시 기가 막혔다. 그러나 한두 번 겪는 일도 아니었기에 시치미를 떼고 능숙하게 대꾸했다.
“아? 봉팔이를 말씀하시는가 보군요? 후우, 소전주님도 알파시피 그 녀석은 정말로 눈치가 없는 녀석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까?”
동천은 자동적으로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자신과 관련된 불리한 부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음! 그랬지. 참으로 눈치가 없는 자였지.”
“예, 그랬지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소전주님께 가벼운 훈계를 받게 된 녀석은 두 번 다시 누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의 거처에서 심기일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동천은 크게 감탄했다.
“허어! 그런 이유로 바뀌었단 말인가? 내 다음에 복귀를 하거든 포상을 내리라고 명해야겠구먼!”
그때가 되면 생각이 바뀔 테지만 당장에는 그런 마음임이 확실했다. 각설하고, 신형을 움직여 마차 안에 놓고 나왔던 차 통을 빼내 온 그는 한없이 부드러워진 표정으로 마부에게 말했다.
“이유야 어찌 되었건 현재로서는 자네가 이 몸의 마차를 책임져야만 하는 상황일세. 내 자네의 수고로움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좀더 자신의 일에 자긍심을 가지고 버텨내 주기를 바라면서 마지막으로 이 거친 세상에서 한 모금의 여유가 간절해지거든 따스한 작설차 한잔을 권하는 바이네.”
소전주가 내민 차 통에 어리둥절해진 방삼은 절로 긴장하여 물었다. 그가 아는 소전주는 절대로 이유 없이 선행을 베풀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게… 뭡니까요?”
동천은 여전히 부드러운 미소를 띄웠다.
“뭐라니. 자네가 보다시피 작설차 한 통일세.”
“그, 그래서요?”
동천은 마부자식이 혼란에서 헤어나질 못하자 상대의 손에 직접 차 통을 쥐어주었다.
“내 자네와 같은 마부들의 고충을 어찌 모르겠는가. 이 작설차는 이 몸의 사형께서 직접 재배하여 만드신 것이니 집에 가서 맛있게 음미하며 마셔 주게나.”
방삼은 이공자인 공영수가 재배한 차라는 말에 입이 쩍 벌어짐을 느꼈다.
“커헉? 이렇게 귀한 것을 어찌 소인에게!”
“하하, 놀라기는. 내 그만큼 자네를 총애하고 있음이야!”
방삼은 생각했다.
<그걸 누가 믿어.>
감격한 것은 아닐지라도 귀한 물건을 받은 만큼, 그는 진심으로 고마워했다. 하체가 마비된 공영수는 먹는 것에서부터 몸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들로만 선별한다는 소문이 있었기에 소전주가 건네준 이 작설차 역시 보통 재배종은 아닐 것이라 여긴 것이다.
“감사합니다, 소전주님! 정말로 감사합니다! 이 미천한 소인이 정말 정말로 귀중하게 마시겠습니다요!”
흐뭇하게 방삼을 바라본 동천은 쓰레기를 처리했다는 생각에 속이 다 후련해지는 것을 느꼈다.
“음, 그래. 자네에게 소중히 쓰인다니 본 소전주의 기분도 매우 좋다네. 다만 한가지 명심해둘 것은 소문내지 말고 자네 혼자만 마시라는 것이야. 이 몸에게 선물한 사형의 성의도 성의지만 자네 혼자 이 작설차를 마신다는 소문이 돌면 주위의 하인들이 질투를 할게 뻔하기 때문이지. 그렇지 않은가?”
안 그래도 혼자만 마시려고 했던 방삼은 지극히 타당하다고 생각했다.
“소인 또한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으니 명심하고 또 명심하겠습니다요!”
“하하, 내 그 말을 들으니 안심이 되는군! 그럼 자네는 볼일을 보시게. 이 몸은 잠시 사부님께 다녀오겠으니 말일세.”
“예, 소전주님! 안심하고 다녀오십시오!”
“그래그래. 하하하!”
유유자적 팔자걸음으로 걸어간 동천은 건물 내부로 천천히 사라졌다.
끼릭, 끼릭!
간단한 몇몇 물건들을 챙긴 후 의자를 움직여 앞으로 나가던 공영수는 미세한 인기척에 일단 멈추었다. 이어 문이 열리고 시비가 문을 열고 들어오자 살짝 웃고는 물었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는가.”
시비는 약간 가늘어진 눈으로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아직은 확실히 모르겠더군요. 생각이 없어 행동하는 것인지, 아니면 계산적으로 행동하는 것인지.”
내심 그럴 줄 알았다는 듯 피식 웃고 난 공영수가 그녀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시비는 공영수의 뒤로 돌아 그의 의자를 밀어주었고 그는 편안히 등을 기대며 중얼거렸다.
“그럴 것이야. 현 상황에서의 사제는 사악한 놈이라는 둥 상종 못할 말종이라는 둥 온갖 안 좋은 소리들을 듣고 있지만 나는 알고있지. 그 아이가 실은 본교에서 열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심기가 깊다는 것을 말일세.”
끼리릭, 끼릭!
잠시 입을 다문 채 공영수의 의자를 계속 밀어주던 시비가 입을 열었다.
“어느 정도는 인정하는 바예요. 그러나 너무 높게 치켜세워 주는 것은 아닌가요?”
공영수는 기다렸다는 듯 자신 있게 말했다.
“바로 그것일세!”
시비는 되물었다.
“그것이라뇨?”
공영수는 답했다.
“그 아이의 무서운 점이 바로 그것이라는 말이지. 보라고, 아무도 그 아이의 뛰어난 심기를 믿어주지 않아. 소교주님께서 특별히 엄선하여 키웠다며 그토록 자랑했던 자네조차 별 것 아닌 이야기처럼 반응하지 않던가.”
시비는 눈살을 찌푸렸다.
“별 것 아닌 이야기라고 까지는 말하지 않았어요.”
공영수는 고개를 돌려 힐끗 시비를 바라보았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가에는 작은 비웃음이 머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찰나적인 순간이었고, 표정을 바꾼 공영수는 평소의 온화한 얼굴로 돌아가 가볍게 웃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