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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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의 그 일은 셋으로 나뉘어진 내공의 불균형에서부터 비롯된 일. 스스로 착용자의 신체를 보호하는 것이라 여겨지는 이 운석이라면 이번의 화리혈현단은 전혀 건드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런 내 생각이 틀린 것이라면 이 화리혈현단을 허무하게 날려버리는 꼴이 되겠지만 미래에 더 큰 기회를 생각한다면 이번 기회에 확실한 운석의 성향을 알아낼 필요가 있다.’
드디어 결심이 섰는지 동천은 주저 없이 단환을 집어 삼켰다. 꿀꺽, 하는 소리와 함께 스르르 녹아버린 단환은 그의 목구멍을 넘어갔고 곧이어 뱃속이 후끈 달아오르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천은 삽시간에 퍼지려는 진기들을 추스르며 안도하는 마음을 가졌다.
‘음, 생각했던 것보다 큰 파급효과는 없군.’
화리혈현단의 힘을 제어하는데 어느 정도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동천은 그간에 내공을 쌓아올린 시간이 헛되지만은 않자 일종의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결코 서두름이 없이 진기를 조였다가 폈다 반복하며 천천히 흡수를 시작한 그는 중천의 해가 산 너머로 기울어져 가는 시간이 되어서야 운기조식을 끝마칠 수 있었다.
“후우…….”
소리내어 긴 숨을 내쉰 동천은 영약을 흡수한 사람치고는 무덤덤한 목소리로 말했다.
“피곤하군.”
육체적으로는 힘이 넘쳐났지만 정신적인 피로가 극심한 상태였다. 왜냐하면 오후 내내 역심무극결을 유지시키느라 고도의 집중력을 끌어올렸기 때문이었다. 침대 옆의 긴 줄을 잡아당겨 소연을 부른 그는 피곤함이 역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지금 내가 상당히 피곤한 상태여서 바로 자야겠으니, 수고스럽더라도 외부에서 전해져오는 전달사항은 네가 대신 받도록 하거라. 그것들 중 경중 사항을 따져 보고를 올리면 될 것이니라. 잘 알겠느냐?”
어느 안전이라고 감히 소연이 거절하겠는가. 그녀는 급히 고개 숙여 말했다.
“예, 주인님.”
동천은 살며시 미소를 짓고 숙여진 소연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네가 평소에 여러모로 고생하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나 너도 나를 잘 알다시피 나는 드러내어 위로해주는 성격이 아니다. 그 대신 속마음으로는 항시 네게 고마워하고 있으니 그동안 서운한 감정이 있었거들랑 오늘을 계기로 모두 잊어주기를 바란다.”
순간 소연은 눈을 똥그랗게 떴다. 설마하니 살아 생전 주인님에게 이러한 말을 듣게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 그게 그러니까… 그, 그게에…….”
너무도 당황한 그녀는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동천은 당황한 표정의 소연의 볼을 톡톡 쳐준 후 침대로 올라가 잠을 청했고, 그저 멀뚱멀뚱한 눈으로 우두커니 서있기만 하던 소연은 곧 정신을 차리고 방을 나섰다.
그런데 방문을 닫고 눈 한번 깜박였을까?
동천이 신경질 섞인 어투로 그녀에게 소리쳤다.
“야! 가서 밥 차려와!”
소연은 문을 닫고 나온 보람도 없이 다시 들어가야만 했다.
“주인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방금 전에 주무신다고 하셨잖아요.”
동천은 소연의 말대로 졸려서 하품까지 나올 정도였지만 먹는 집착을 버릴 수가 없었던지 약간은 충혈 된 눈으로 입을 열었다.
“뭔 말이 그렇게 많아? 이 몸께서 기냥 주무시려다 식사 좀 하겠다는데 그냥 차려오면 되지.”
소연은 걱정스러워하는 눈빛으로 대답했다.
“그것은 어렵지 않지만 너무 피곤하신 듯 보여서요.”
소연의 걱정하는 마음이 느껴졌는지 동천은 생각 이상으로 화를 내지 않았다.
“이띠, 그것까지 니가 상관할 필요는 없고 차려주기 귀찮은 것이거나 그것 좀 시켰다고 죽을죄가 아닌 이상 가서 상 차려오라고 해. 알았어?”
“예에, 주인님.”
대답을 마치고 식사준비를 위해 주방장에게 걸어간 소연은 방금 전까지 자신을 노고를 치하해주었던 주인님이 너무도 쉽게 바뀌자 서운한 마음이 왈칵 들었다. 그러나 원래의 성격이 이렇다는 것을 알기에 그녀는 말은 그렇게 하셨어도 속으로는 여전히 고마워하고 있을 거라고 믿는 수밖에 없었다.
“아구아구! 쩝쩝!”
음식이 들어오자마자 게눈 감추듯 먹기 시작한 동천은 화정이가 먹으러 들어왔을 때 다시 내쫓았을 정도로 대단한 식탐을 보였다. 그러나 화정이도 만만치 않은 식욕의 소유자였기에 계속 되는 구박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동천의 옆에 앉더니 결국에는 같이 먹을 것을 다 쓸어 먹었다. 덕분에 식탁 위는 깨끗이 평정되었고 뒤늦게 끼여들어 별로 먹은 것이 없었던 화정이는 입맛을 다시며 손가락만 쪽쪽 빠는 수밖에 없었다.
“소연, 나 배고파.”
화정이가 배고픔을 호소하자 소연이 그녀를 달랬다.
“한 그릇 이상은 먹었잖니. 조금 있다가 야참을 들여오도록 이야기를 해뒀으니까 그때 마음껏 먹도록 해. 알았지?”
눈을 반짝인 화정이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응! 알았어!”
옆에서 그녀들의 이야기를 지켜본 동천은 이쑤시개를 이를 쑤시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
“츱츱, 야참 같은 소리하고 자빠졌네. 여자들이 늦은 시각에 먹을 걸 먹으면 살쪄. 먹지마.”
화정이는 야참이 사라질 판이자 재빨리 말했다.
“나는 살 안 찌는데.”
동천은 화정이가 자신의 말에 토를 달자 눈살을 찌푸렸다.
“안 쪄?”
화정이는 먹게 되는 줄 알고 밝아진 얼굴로 대답했다.
“응, 안 쪄. 봐봐, 난 살 안 찐다고 소연이도 부러워했어.”
제자리에서 일어난 그녀가 한바퀴를 부드럽게 돌았다.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옷가지들이 휘날리고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은 매혹적이었지만 동천은 별 감흥을 느끼지 못하는 듯 가까이 오라고 손가락을 까닥였다. 그는 멋도 모르고 싱글벙글 다가온 그녀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잡아 당겼다.
“안 쪄? 살이 이렇게 두툼하게 잡히는데도 안 쪄? 엉? 안 쪄?”
난데없이 봉변을 당한 화정이는 자지러지는 소리를 했다.
“꺄악! 아, 아파! 동천 나 죽어! 꺄아악! 꺅!”
불필요한 지방 하나 없었던 그녀의 옆구리를 억지로 잡아 당겼으니 안 아플 리가 없었다. 그러나 아픈 그녀도 그녀였지만 이러한 반응이 튀어나올 줄 몰랐던 동천은 깜짝 놀라 쥐었던 손을 놓아버렸다.
“흐미, 누가 들으면 개 잡는 줄 알겠네.”
저만치 피해버린 화정이는 눈물이 글썽한 눈으로 아픈 옆구리를 비비며 말했다.
“히잉… 진짜로 아팠단 말야. 히잉히잉.”
동천은 그녀의 코맹맹이 소리가 영 마뜩치 않았으나 자신이 너무 했다는 것쯤은 알았다. 그는 자신의 체면상 직접 사과하기가 뭐 하자 다른 방법으로 우회적인 사과를 표시했다.
“그래, 다음부턴 볼만 꼬집을 게. 그리고 야참 나오면 너 다 먹어. 그러면 불만 없지?”
잠시 머리를 굴려본 화정이는 더 굴려볼 필요도 없이 언제 아팠냐는 듯 좋아라 웃었다.
“우와, 정말? 정말 그거 내가 다 먹어도 돼, 동천?”
동천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렇다니까. 넌 이 몸이 언제 거짓말하는 거 봤냐?”
“응.”
“그래, 내가 거짓말을 좀……. 뭐이?”
소연은 진정되는 분위기가 다시 깨지려고 하자 재빨리 나섰다.
“주인님, 주인님이 참으세요. 쟤가 원래 생각이 없는 아이잖아요. 아마도 주인님께서는 약속을 지키셨는데 그걸 금세 까먹어서 안 지켰다고 생각하나봐요. 실제로 저번에 주인님께서 공부를 가르쳐주셨는데 쟤는 안 가르쳐주었다고 말해서 제가 그러면 안 된다고 혼낸 적도 있다니까요?”
그건 안 가르쳐준 게 맞다. 다만 동천은 가르침을 내려주었다고 착각한다는 것이 문제일 뿐이지. 어쨌든 동천은 그러한 일이 있다고 하자 마음이 넓은 자신이 참기로 했다.
“음, 그러하다니 이 몸이 이해를 해줘야겠구나. 좋아, 방금 전의 일은 문제삼지 않기로 하지.”
“감사합니다, 주인님.”
동천은 당연한 인사를 받았다는 듯 개의치 않고 그간의 일을 물었다.
“이 몸이 안 계시는 동안 별다른 일은 없었고?”
소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 주인님. 수련이 놀러 왔었던 것 빼고는 조용했어요.”
동천은 수련의 이야기가 나오자 아니꼬운 표정을 드러냈다.
“쳇! 그 계집애는 지 일이나 열심히 할 것이지 심심하면 놀러오고 지랄이네? 아니, 그렇게도 할 일이 없데?”
소연은 주인님의 눈치를 보며 화제를 돌렸다.
“그런 건 아니고요. 가끔 여유가 났을 때만 놀러와요. 아? 그런데 아까 전에는 무슨 이유로 방안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고 하셨어요?”
그 말에 동천은 소연의 의도대로 더 이상 수련의 문제를 거론하지 않았다.
“그거? 별건 아니고 화리혈현단 한 개를 복용했을 뿐이야.”
소연은 약간 놀라면서도 기쁜 신색을 감추지 않았다.
“와아, 전주님께서 드실 수 있도록 해주셨다더니 생각 보다 빠르게도 드셨네요? 축하드려요.”
그러나 동천은 그다지 기뻐하는 얼굴이 아니었다. 되려 화가 난 듯한 얼굴을 내비쳤다.
“에이 씨, 축하는 개뿔! 예정대로라면 한 개 더 복용했어야 했는데 어떤 개잡놈이 빼앗아 처먹게 되가지고 기분이 더럽구만 축하는 무슨 얼어죽을 놈의 축하야?”
찔끔한 소연은 목소리를 낮춰 물어보았다.
“그랬구나……. 헌데, 그 개잡놈이란 사람은 누구예요?”
“누구이긴 누구야. 바로 그 싸가지 없기로 소문 난……. 음, 이 몸이 뭐라고 했었나?”
무심코 말했다가 입을 다문 동천은 전혀 딴 소리를 했다. 이런 방면에 약간 둔했던 소연은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네, 싸가지 없기로 소문 난. 까지 말씀하셨어요.”
같이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그녀의 머리를 한 대 내리쳤다.
딱!
“아야!”
동천은 그녀의 아픔을 무시하고 다시 물었다.
“음, 이 몸이 뭐라고 했었나?”
“네에… 싸가지 없기로…… 아야! 아, 아파요. 왜 자꾸 때리세요.”
기가 찬 동천은 뭐 이렇게 꽉 막힌 계집이 다 있나 싶었다. 그는 하는 수 없이 직설적으로 말해주어야 했다.
“야! 척하면 척하고 알아들어야지! 이 몸이 말실수를 해서 덮어주기를 바랬던 것인데, 그것도 눈치채지 못하고 계속 이야기하면 도대체 이 몸보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거야?”
소연은 슬며시 물러나며 억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런 건 진작에 그냥 말씀해주셨어도 되는 거잖아요.”
동천은 눈을 부라렸다.
“어쭈? 그래서 지금 개기겠다는 거냐? 너 이리 와봐.”
후다닥!
소연은 동천이 잡으려고 일어서기도 전에 벌써 자신의 방으로 대피했다. 설마 도망가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던 동천은 반쯤 일어섰던 엉덩이를 다시 의자에 붙였다.
“빠르네…….”
옆에서 그런 큰 주인을 빤히 바라보던 화정이는 슬그머니 입을 열었다.
“동천동천.”
동천은 그녀 쪽으로 시선을 돌린 후 뚱하게 대꾸했다.
“왜 불러.”
그녀는 자신의 주인이 반응하자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근데 있지. 나 야참은 언제 줄 거야?”
“…….”
이 다음의 상황은 생략하도록 하겠다.
다음 날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사부에게 찾아간 동천은 사부의 거처로 지나가는 와중에 종종 몇몇 사람들의 눈두덩이가 시퍼렇게 멍들어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한두 번은 그렇다 치고 넘어가겠는데 그 이상으로 넘어가자 그도 사람인 이상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결국 그는 맞은 얼굴의 무사 둘이 지나치자 그 중 한 명을 붙잡고 물었다.
“어이, 너 그 얼굴이 왜 그러냐?”
질문을 당한 무사는 꺼려하는 눈빛으로 말했다.
“그게 소인의 자존심과 관련이 있어서 말씀을 드리기가 좀…….”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무사의 발을 걸어 넘어트린 후 원없이 밟아주었다.
퍽퍽! 퍽퍽퍽퍽!
“켁? 끄에에엑!”
“이런! 이런 씹새끼를 봤나! 니 자존심이 니 애비 밥을 먹여준다던? 이런 개늠이 감히 어느 안전이라고 자존심을 찾고 지랄이야?”
시원스레 밟아 준 동천은 개거품을 물고 기절한 무사를 저만치 발로 밀어버린 후 그 옆에서 벌벌 떨고있는 다른 무사에게 입을 열었다.
“너도 자존심을 내세우고 잡냐?”
목이 부러져라 좌우로 돌린 무사는 급히 진상을 이야기해주었다.
“그, 그럴 리가요! 다 말씀드리겠습니다요! 다름이 아니오라 어제부터 벌어진 일인데 전주님께서 지나가는 사람만 보이면 다가가셔서 몇 마디 묻고는 원하는 대답이 아니면 눈깔을 어디에다 달고 다니느냐며 사람들을 구타하시기 시작했습니다요. 저와 여기 이 친구는 전주님께서 원하셨던 대답이 아니었던지 이렇게 얻어맞았고 말입니다.”
무슨 소리인가하면 화리혈현단의 마사지 효과를 제자인 동천이 단박에 알아보자(?) 그것에 재미를 느낀 역천이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만 있으면 붙잡고 그 부분에 관해서 물어보았던 것이었다. 허나, 달라진 게 있어야 사람들이 젊어져 보인다고 대답을 해줄 것이 아닌가! 물론 그 엄청난 영약을 발랐으니 효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주름살 두어 개 펴졌다고 알아챌 나이는 이미 지났기에 거의 모두들 ‘글쎄요…….’ 라고 대답해주었던 것이다.
그러니 영약을 투자하고도 알아주는 이가 거의 없자(그나마 맞춘 사람들도 동천과 같이 대충 얼버무리다가 우연찮게 맞췄다) 화딱지가 나서 눈두덩이를 후려치고 다녔던 것이고 말이다.
그 부분에 관해서 좀더 자세히 들어본 동천은 그제야 이해한 표정을 지었다.
“흐음, 그런 사연이 있었군. 쯧쯧, 사정이 딱하기는 하지만 사부님께서 분명 달라지신 부분이 계셨는데 무지한 너희들이 알아채지 못하여 대가를 치른 것이니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거라.”
“예, 소전주님.”
그렇게 굽실거린 무사는 내심 욕을 퍼부었다.
‘개새끼! 니가 맞아봐라. 그따위 개소리가 나오나!’
무사에게는 다행히도 동천은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음미하듯 감고 있다가 눈을 뜬 그는 무사에게 말했다.
“안 가니?”
“예?”
무슨 소리인지 몰라 무사가 되묻자 동천은 금세 짜증을 냈다.
“아, 말 다 끝났으면 얼른 여기 이 새끼 업고 니네들 갈 길이나 가라고. 니 주제에 감히 이 몸의 바쁘신 시간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거냐?”
무사는 급히 기절한 친구를 들쳐업으며 부인했다.
“아, 아닙니다요! 그럴 리가요! 소인은 신속히 사라지겠습니다요! 예예!”
전주에게 얻어맞고 소전주에게까지 봉변을 당할 뻔한 그 무사는 재빨리 동천의 시야에서 사라졌다. 동천은 다시 제 갈 길을 걸어가며 혼자 중얼거렸다.
“참나! 하여간 요즘 것들은 바쁜 사람을 붙잡아놓고 쓸데없는 이야기나 주절거려서 탈이란 말야?”
참 낯짝도 두꺼운 동천이었다.
“에잉, 군자의 이상형인 이 몸이 참아야지 어쩌겠는가. 아암, 그렇고 말고.”
공연히 시간만 지체했다고 생각한 동천은 벌벌 떨며 자신의 옆에 서 있던 시비를 재촉하여 안내를 받았다. 잠시 후 그를 무사히 안내한 시비는 도망치듯 달아났고 동천은 엉덩이를 걷어차 주려다가 참기로 했다. 그는 문밖에서 자신을 발견한 초향이 방안의 역천에게 기별을 보내려하자 손을 들어 제지시키고 자신이 직접 도착했음을 알렸다.
“사부님, 제자 동천이 왔습니다.”
그가 공손히 인사를 올리자 안쪽에서 역천의 음성이 바로 들렸다.
“들어오너라.”
“예, 사부님.”
방으로 들어간 동천은 다시 인사를 올린 후 역천의 권유로 원탁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역천은 문밖의 초향에게 물러가라 이른 후 어제의 일이 상당히 궁금했던지 재빨리 물었다.
“그래, 갔던 일은 어떻게 되었더냐? 내 궁금함에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였으나 공연히 너를 찾아가거나 기별을 보내 이곳으로 불러들였다가는 소교주의 사냥개들에게 포착될까 싶어 애써 참았었느니라. 그러니 어서 어제의 일을 상세히 설명해보거라.”
고개를 동천은 천천히 그간의 일을 설명해주기 시작했다.
“사부님, 진정하시고 차분해지신 상태에서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어제 이제자는 소교주에게 불려가면서 정신만 차리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도 살아날 수 있다는 생각에 가벼운 마음을 버리고 진실을 추구하는 자의 눈이 되어 소교주의 거처로 찾아갔습니다. 과연 그곳에 가니 소교주는 직설적인 질문을 피한 채 탐색전을 벌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다음 독공을 몸에 지닌 저에게 화염수 천륜액이라는 남만 산 수입용 액체를 먹이려고 하더군요. 아니, 중원 본토에서 나오는 영약을 권해줘도 드실까 말까 인데 수입용이라니요! 이게 말이 된다고 사부님은 생각하십니까?”
역천은 멋모르고 따라서 흥분했다.
“무, 물론 아니지! 에잉, 내 그렇지 않아도 예전부터 눈여겨봤었다 만은 소교주는 도무지 행동함에 있어 생각하는 게 없더구나. 그래서야 앞으로 뭐가 될는지……. 쯧쯧, 말세야 말세!”
말세까지 거들먹거린 역천이 소교주의 험담을 끝마치자 동천이 바로 이어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