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71화
#60
“내 환골탈태를 받던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가슴이 떨린다오. 그래, 그분께서는 나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신지 알려줄 수 있겠습니까?”
순간 강소홍이 난색을 표했다. 그도 그럴 것이 사부의 입에서 동천의 이야기만 나오면 싸가지 없고 버르장머리까지도 없는 재수 없는 애새끼가 꼭 단골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냉현은 그녀의 표정이 좋지 않자 예리하게 살펴보며 물었다.
“왜, 평가가 좋지 않았습니까?”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달은 그녀가 재빨리 둘러댔다.
“아? 그것이 아니오라 사부님께서는 그때의 일을 언급하시는 일이 거의 없으셔서 잠시 옛 기억을 더듬고 있었습니다.”
냉현은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하, 난 또 뭐라고. 그래, 이제는 생각이 나셨는지요.”
그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랄까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 같았다고나 할까……. 아무튼 자유분방하셨다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냉현은 탁자 위에 손가락을 툭툭 튕기며 중얼거렸다.
“자유분방함이라.”
암흑마교에서 자유분방함이란 말과 어울리는 사람을 떠올리는 것이었다. 그런 냉현의 심중을 알 턱이 없었던 강소홍은 슬며시 물어보았다.
“그 말이 혹시 언짢으셨는지요.”
냉현은 바로 손을 내저었다.
“하하, 아니외다. 어렸을 적에는 그랬던 기억이 있어 잠시 그때의 일을 회상하고 있었습니다. 음, 그때는 철이 없어 많이 까불기도 했지요.”
강소홍은 약간 짓궂게 물었다.
“표정을 보아하니 소교주께선 그때로 돌아가고 싶으신가 보죠?”
순간 냉현이 움찔했다.
‘그때로 돌아가고 싶냐고? 큭큭, 물론이지! 그때로만 되돌아간다면 쓸데없는 곳에 절대로 시간투자를 안 할 것이 분명하니까.’
그가 세상을 살아오며 후회라는 단어를 떠올릴 만한 실수를 했던 적은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했다. 다만 한가지. 환골탈태를 위해 8살까지 독공을 익혀야만 했던 시절은 그의 얼마 안 되는 일생 중에 가장 후회가 남는 일로 각인이 되어있었다. 오죽하면 독공에 관한 이야기만 나와도 살의의 충동이 일어날까.
“물론이외다.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아련한 추억이 되살아난다오. 만독노조님을 만났을 때의 일. 그리고 내공을 전수 받았을 때의 일. 후후.”
웃음 짓는 냉현의 이야기를 들으며 강소홍은 내심 의아해했다.
‘왜 살의를 품은 것일까?’
그렇다. 자신이 분명 말실수를 한 것은 같은데 그때의 일이 어째서 살의를 느낄 정도가 되는지를 그녀는 도통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녀의 사부가 환골탈태를 시켜주었을 것이 분명하거늘 냉현은 분명 그 당시의 일을 증오하고 있음이 분명했다.
‘왜 일까? 왜?’
생각은 길었지만 그녀의 행동은 빨랐다.
“그때의 일이라면 소녀도 들었어요. 급하셨는지 약속된 날짜보다 약간을 앞당겨서 찾아오시더니 사부님께서 암호가 뭐냐고 물으시니까, 그 뭐더라……. 아? 맑디맑고, 푸르디푸르며,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운 겨울하늘 이라고 하셨나요? 호호, 그 소릴 듣고 소녀가 어찌 웃었던지.”
냉현은 점차 새로운 정보가 들어오자 살의를 풀고 마주 웃었다.
“하하! 그랬었지요. 그때의 암호가 겨울하늘. 즉, 동천이…….”
뚝!
돌연 웃음을 멈춘 냉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동천? 동천이라고?’
스으으으으.
순간적으로 살기(殺氣)에 물든 그의 전신은 삽시간에 살을 에이는 듯한 냉기에 휩싸였다. 그의 안색은 급속도로 창백해졌으며 분노에 부릅뜬 그의 두 눈에서는 진한 살기가 흘러나왔다. 마주 앉아있던 강소홍조차 침착함을 잃고 자신도 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으니, 이때의 얼굴이 어떠했을지는 대충 짐작할 수 있으리라.
“소, 소녀가 무슨 실수라도…….”
그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물었지만 냉현의 귀에는 들리지 않았다.
“동천이라.”
“저기…….”
“동천. 겨울하늘. 동천…….”
여전히 냉현은 소홍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아니, 들었다 하더라도 무시했을 것이 분명했다. 그가 혈육에게 배신을 당했어도 이렇듯 충격이 크질 않았을 테니까. 이건 배신의 문제는 아니었지만 비유를 하자면 그랬다는 것이다.
“하, 하하! 아하하하하!”
그는 미친 듯이 웃었다.
“흐음! 먹을만하겠군.”
약간의 시간이 거슬러 올라간 시점의 산관은 눈앞에 차려진 화려한 식탁을 보자 절로 군침이 삼켜짐을 느꼈다. 아침을 먹고 나왔지만 대식가에 속했고 식성이 까다로운 편이 아니었던 그였기에 한번 더 먹는 것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 그것보다 그는 당최 말이 없는 문영에게 먹기를 권해주었다.
“어서 들거라. 나는 먹고 왔으니 혼자서 이것을 해결할 수 없느니라.”
고개를 끄덕인 그녀는 산관의 눈치를 보는가 싶더니 이내 의식하지 않고 하나 둘 집어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위치한 곳은 냉현과 강소홍의 바로 옆방이었기 때문에 산관은 그쪽에 귀를 기울이며 사태를 지켜보았다. 엿듣는 취미는 없었으나 앞으로의 대처를 위해 들어둘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음, 아직은 일상적인 대화들이 주를 이루는군.’
이곳에 오는 길이 불편하지 않았느냐, 오고 나서 마음에 들거나 그 반대의 경우가 있었느냐, 기회가 있다면 멋진 풍경이 어우러진 물놀이를 구경시켜주겠다, 등등. 엿듣는 입장의 산관에게는 다소 무료한 시간이 흘렀다. 그래도 소홀할 수 없는 부분이어서 귀를 기울이는데 그는 어느 사이인가 마주 앉은 시녀 쪽에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반사적으로 시녀 쪽을 바라본 산관은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헉? 그새 다 먹었다니!’
풍성했던 식탁은 어느새 하얀 접시들만이 즐비해져 있었다. 혹시나 먹은 척하며 바닥에 버렸나 밑을 살펴보았지만 바닥은 깨끗했다. 그래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옆방이고 뭐고 관심을 끊은 채 문영에게 물어보았다. 그가 강시 특유의 식습관을 알 리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여기 이 수많은 음식들을 네가 다 먹었단 말이냐?”
끄덕끄덕.
문영은 창피함 대신 수줍은 표정을 내비쳤다. 사람의 감정에 서툴렀던 그녀에게 그나마 수줍어하는 표정이 제일 자신 있었기 때문이다. 산관은 놀라긴 했지만 따지고 보면 먹을걸 먹은 것이고 자신은 이미 먹고 온 상태였기 때문에 이 문제는 그만 언급하기로 했다. 지금의 상황이 자신의 것은 남기지 않았다고 추궁하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하하, 배가 고팠던 모양이구나.”
문영은 천진난만하게 환한 미소를 보여주었다. 산관은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지만 어째 모자라 보이는 그녀의 행동에 의아함을 금치 못했다.
‘정신적으로 결함이 있는 아이인가? 으음, 내가 경황이 없어 만독문 소문주의 신변에 대해서만 서류를 넘겨받았는데 돌아가서 이 아이에 관한 것도 살펴봐야겠군.’
그렇게 결정한 그는 아직도 옆방에서 별다른 진전의 기미가 보이지 않자 배려의 차원에서 멀뚱히 앉아있는 문영에게 말을 걸어주었다.
“생판 모르는 나이든 사람과 같이 앉아 있으려니 상당히 껄끄럽겠구나.”
그러나 턱을 괴고 멍하니 빈 접시들을 내려다보고 있는 문영은 자신에게 한 말인 줄도 모르고 전혀 관심을 보여주지 않았다. 자신의 말이 씹혔다는 것에 약간의 충격을 먹은 산관은 분노하기에 앞서 비참한 마음이 일었다. 안 그래도 소교주에게 찬밥 신세를 당하고 있는 상황인데 시녀까지 자신을 물로 본다고 착각한 것이다.
“으으!”
뒤늦게 분노가 일어난 그가 주먹을 움켜쥐려는 찰나 이상한 낌새를 느낀 문영이 말똥말똥한 눈으로 산관을 바라보았다. 마치 그녀의 눈은 ‘왜 그러세요, 무슨 일이라도 있나요?’ 라고 물어보는 듯 했다.
‘제길, 차라리 그러한 말이라도 했더라면……!”
그는 그녀가 입이라도 열었다면 무사히 넘어가 줄줄 알았느냐며 분노를 터트리려고 했다. 그러나 티 없이 맑은 눈의 그녀를 마주 보고있자니 분노는커녕 되려 힘이 쪽 빠져버리는 기현상을 느꼈다. 덕분에 분노할 시기를 놓쳐버린 그는 약간 어색해진 얼굴로 물었다.
“모, 못 들었느냐?”
무슨 소리인지 갈피를 잡지 못한 문영은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나 대답은 해주어야겠다고 생각했는지 고개를 끄덕이며 활짝 웃었다. 그제야 산관은 무언가를 깨달았다.
“말을…… 못하는 게냐?”
끄덕끄덕.
이러한 경우를 처음 접해보게 된 그는 방금 전의 일을 완전히 털어 버렸는지 다소 신기해진 눈으로 물었다.
“그럼, 모든 대화를 고갯짓으로만 해결한다는 소리?”
도리도리.
귀엽게 고개를 내저은 문영은 쓰윽 손을 움직이더니 산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움찔한 산관이 손을 잡아 빼려고 했지만 문영의 행동이 약간 빨랐다.
-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이렇게 손에다 글씨를 써줘요.
“아?”
산관이 제대로 이해한 듯 하자 손을 놓아준 문영이 생긋 웃어주었다. 괜히 멋쩍어진 산관은 물었다.
“원래부터 그랬느냐?”
“……?”
아무래도 이해능력이 딸리다 보니 상황전개가 있다고 해도 앞뒤 덮어놓고 물어본 말에는 약했던 것이다. 산관은 반응이 없자 하는 수 없이 좀더 자세히 설명해주었다.
“말을 못 하는 것 말이다.”
그제야 깨달았는지 그녀가 다시금 산관의 손을 잡아끌었다.
-어렸을 적의 주화입마로 말을 심하게 더듬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아예 입을 닫고 살죠.
“음, 그랬군!”
쓸데없는 질문에 상대가 상처를 입은 것은 아닌지 내심 미안한 감정이 일었다. 그러나 그는 곧 시녀 따위에게 미안해할 필요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나 참, 난 의외로 이러한 분위기에 약해서 탈이란 말야?’
그저 가벼운 위로라도 건넬 겸 입을 반쯤 열던 산관은 옆방에서 들리는 커다란 웃음소리에 입을 다물었다.
“아하하하하!”
분명 소교주의 웃음소리였다. 그러나 재미있어서 웃었다기 보다는 무언가 내재된 감정을 폭발시키고 있는 듯 보였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십 수년간 냉현을 보필해온 산관은 그 웃음의 차이를 간파할 수 있었다.
‘그 사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길게 의아해할 시간이 없었다. 산관은 재빨리 귀를 기울였다.
“분명 화가 나신 듯 보이는데 소녀가 무슨 잘못이라도 했는지요.”
뒤늦게 강소홍의 존재를 인식한 냉현은 말했다.
“아아, 아니외다. 잠시 그때의 일과 요 근래의 개인적인 일이 겹치었던 것일 뿐, 소저의 잘못은 티끌도 없음을 밝혀두겠소이다.”
강소홍은 진실과 거짓쯤은 간파할 안목이 있었으므로 냉현의 말을 믿었다. 이렇게 되자 그녀는 냉현이 이렇게까지 반응한 개인적인 일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근래의 개인적인 일을 여쭈어봐도 될까요?”
냉현은 잠시 생각하는 척하다가 입을 열었다.
“음, 미안한 일이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라고 여겨지는군요. 하지만 정리가 되고 난 후에 제일 먼저 알려주겠다고 내 약조를 하리다.”
강소홍은 하는 수 없이 한발 물러섰다.
“그렇게까지 배려해주시니 기쁜 마음을 금치 못하겠군요.”
“하하, 그 정도가지고 배려라니. 당황스럽소이다.”
냉현은 기분이 풀린 듯 웃으며 말은 했지만, 기실 그는 초인적인 인내심로 끓어오르는 살의를 참고있는 상태였다. 그는 이런 곳에서 말장난이나 하며 노닥거릴 시간이 없다고 생각했는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했다.
“음, 생각이 난 김에 그 일을 처리해야 속이 후련하겠군요. 오늘 참으로 즐거웠소이다. 내 자주 들리도록 하지요.”
강소홍도 내심 바라던 바였기에 기꺼이 허락해주었다.
“소녀도 즐거웠답니다. 빠른 시일 내에 다시 뵙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고개를 끄덕이고 자리에서 일어난 냉현은 갑자기 무언가 떠올랐는지 강소홍에게 물었다.
“혹시, 화리혈현단(火鯉血炫丹)이라고 아시오?”
강소홍은 뜻밖의 질문에 약간의 당황함을 내비쳤다. 그러나 일파의 소문주답게 곧 평정을 되찾았다.
“소녀의 기억이 맞다면 천년화리를 피와 그 밖의 재료들을 정제하여 만든 신단으로 알고있습니다만 그것은 왜…….”
냉현은 해박한 그녀의 지식에 조금이나마 분노가 수그러들었다. 그는 한결 나아진 기분으로 말했다.
“다름이 아니라 내 며칠 전에 그 신단을 우연찮게 얻게 되었는데 알다시피 독공이 주를 이루어서 복용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오. 화와 독은 상극. 그것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는데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겠소?”
의외로 가볍게 웃음 진 강소홍은 냉현에게 간단한 부탁을 했다.
“죄송하지만 간단한 필기도구를 구할 수 없을까요?”
구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가 문밖의 시비에게 명령을 내리려는데 그보다 한발 앞서 필기도구를 준비한 산관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소교주님의 웃음소리가 들려 소신도 모르게 엿들었나이다. 마침 소신이 머물던 방에 필기구가 눈에 뜨여 대령했사오니 사용해주시기 바랍니다.”
냉현은 모처럼 만의 빠른 일 처리에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음, 괜찮아. 확실히 나의 웃음소리가 크긴 컸지. 가져왔으니 됐어.”
“감사합니다, 소교주님.”
산관이 가져온 것을 받아든 강소홍은 가느다란 세필로 유려한 글씨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가까이에서 글의 내용을 살펴본 냉현은 그것이 약재들의 이름임을 간파할 수 있었다.
“아니, 이것은 상당한 고가의 약재들이 아니오. 더군다나 몇몇 것은 인맥과 재력이 어우러지지 않는 이상 구하기가 힘든 것들이고.”
강소홍은 냉현이 물어본 저의를 알고 있었기에 웃음을 머금고 지체 없이 대답해주었다.
“그렇습니다. 이곳에 쓰인 약재를 전부 모으려면 한 마을의 이삼년 치 수입을 소비하고도 남을 액수가 요구되지요.”
냉현은 그보다 더 많은 금액이 들어갈 것이라 생각했지만 자잘한 문제는 언급하고 싶지도 않았다. 오로지 본론만이 그의 흥미를 끌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 정도를 웃돈다는 것은 알고 있소이다. 그런데 이 약재들을 기입한 영문을 도통 모르겠군요.”
내심 그럴 줄 알았던 소홍은 알기 쉽게 설명해주었다.
“예로부터 음과 양은 절대로 섞이지 않는 상극으로 대표되어왔어요. 하지만 물을 예로 들었을 때 손이 데일 정도의 펄펄 끓는 물이 존재하는 반면, 따듯하고 기분 좋은 정도의 따스한 물과 뜨겁다와 차갑다의 경계가 사라진 말로 표현하기에 어려운 맹탕의 물도 존재해요. 여기에서 화리혈현단을 펄펄 끓는 물이라고 생각한다면 이 약재들은 그 펄펄 끓는 물을 따듯하고 기분이 좋을 정도의 물로 바꿔주는 역할을 한다고 볼 수 있어요. 좀더 나아간다면 뜨겁다와 차가움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까지 만들어 줄 수가 있죠. 음, 이 정도면 소녀의 설명을 이해하실 수 있겠나요?”
냉현은 충분히 이해했다. 그녀의 말을 끝까지 들을 필요도 없이 중반에 벌써 알아듣고 이해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성격 급한 그가 강소홍의 말을 끊고 들어가지 않은 이유는 이미 다른 생각에 몰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그녀석이 범인이 확실하다면 독공을 익히고도 화리혈현단을 복용했던 문제가 최대의 걸림돌이었는데 혹시나 하여 물어본 것이 이렇듯 뜻밖의 수확을 얻게 만들다니. 이래서 사람의 일이란 아무도 알 수 없는 것이라고 하는 것인가? 큭큭큭큭!’
“아! 그렇다면 그 약재들이 극과 극인 두 성질을 중화해주는 역할을 한다는 말씀이십니까?”
산관은 실실 웃던 냉현이 음산한 표정까지 짓자 재빠른 수습에 들어갔고, 소교주의 광기 어린 표정에 움찔해하던 소홍도 곧 정신을 차렸다.
“그런 셈이에요. 이 약재들로 만든 단환의 이름을 우리 만독문에서는 음양천석순단(蔭陽泉析順丹)이라고 하죠. 그 제조 방법이 까다로워 필기로는 옮겨 적지 않았지만 암흑마교에는 명성이 자자한 약왕전과 독전이 있으니 그 두 곳의 전주님들께 보여드린다면 필시 결함이 없는 석순단을 만들어 주실 거예요. 그렇지요?”
강소홍은 확답을 듣고싶었던지 마지막에 산관에게 되묻듯 말을 끝마쳤다. 만일 여기에서 산관이 부정적인 대답을 해준다면 그것은 약왕전과 독전의 수준을 깎아 내리는 짓. 하는 수 없이 그는 긍정적인 대답을 해주었고, 강소홍은 혹여 만들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을 시엔 자신이 만들어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음양천석순단을 만드는 비법도 비전절기라면 비전절기에 속했기에 강소홍은 재료만 공개한 뒤 재치 있는 말솜씨로 만드는 과정을 숨겨버린 것이다.
‘과연, 아무나 소문주라는 위치를 차지하는 것이 아니로군.’
내심 혀를 내두른 산관이 감탄하고 있는데 생각을 정리한 냉현이 나섰다.
“많은 도움이 되었소이다. 진작에 여러 사람들에게 고충을 털어놓았더라면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을 것을 내가 너무 꽉 막혀 있었나봅니다.”
강소홍은 살며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닙니다. 그것보다는 소녀가 너무 잘난 척을 한 것은 아닌지 염려되옵니다.”
냉현은 호쾌하게 웃었다.
“하하, 그럴 리가요! 그런 걱정은 붙들어 매시고 오늘 하루 즐거운 시간을 보내시길 바라겠소이다.”
강소홍은 마주 웃으며 답했다.
“말씀 감사합니다.”
“음, 그럼 이만 실례하겠소이다.”
냉현의 뒤를 좇아 바깥 출입구까지 그를 배웅해준 강소홍은 너무 따라 나오는 것도 예의가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이내 안으로 들어갔고 바로 표정을 지운 냉현은 산관에게 물었다.
“소문주의 방을 관리하던 시비는 언제부터 이곳을 배정 받았지?”
산관이 그런 세세한 문제까지 알고 있을 턱이 없었다. 그는 긴장한 눈초리로 대답했다.
“한 시진 이내로 보고를 올리겠습니다!”
우뚝.
걸음을 멈추고 살기 어린 시선을 내비친 냉현은 다시 움직이며 명했다.
“모든 일에 완벽할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빈틈이 보였을 시 그것을 메우는 능력 또한 꼭 필요한 것이다. 너는 이곳에 남아 동태를 살피는 한편, 그 시비의 이동경로를 샅샅이 파해 쳐 놓거라.”
“존명!”
산관의 재빠른 대답에 냉현은 조금 누그러진 목소리로 말했다.
“만일, 3년 이상을 이곳에서 지낸 것이 아니라면 처리해버려. 그 이상을 머물러 있었다면 철저하게 입 단속을 시키고.”
산관은 허리를 있는 힘껏 숙였다.
“알겠습니다!”
“음, 그래.”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인 냉현이었지만 무언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는지 변덕이 죽 끓듯 하는 인간답게 금새 생각을 바꾸었다.
“아니야, 아무래도 확실한 게 낫겠군. 그 계집은 문밖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이미 들은 상태이므로 화근은 애초에 싹을 자르는 것이 속이 편하겠어.”
턱을 쓰다듬으며 비릿한 웃음을 자아낸 냉현은 최종 결단을 기다리는 산관에게 명했다.
“불필요하게 들쑤실 필요 없이 그냥 은밀하게 처치해버리도록 해. 비어있는 자리는 우리측의 믿을만한 계집으로 충원하고.”
“존명!”
산관의 힘찬 대답을 뒤로하고 마차에 올라 탄 냉현은 주저 없이 자신의 처소로 방향을 잡았다. 돌아가는 길은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가는 내내 흥분과 살기가 어우러져 그조차 자신이 어떠한 기분으로 가고있는지를 속단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심정과는 대조적으로 느긋하게 양손을 깍지낀 그는 생각할수록 기가 막힐 따름이었으니까.
“허어! 바로 눈앞에 두고도 아무 의심 없이 지나쳤다니. 이거 소교주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됐는걸? ……큭큭, 그러고 보니 보통내기가 아니라던 그의 확신 섞인 말이 딱 맞아떨어진 셈이 아닌가!”
돌연 공영수의 말이 떠오른 것이다.
“흐음, 그 공영수. 무시할 수 없는 친구로군. 약왕전을 먹어 치울 야심까지는 봐주겠지만 그 이상의 낌새가 보이면 필히 처리를 해야겠어. 아무래도 한번 배신한 자는 미덥지가 못하니까 말이야.”
즉흥적인 결단일수도 있지만 차후 자신의 것이 될 암흑마교였기에 이렇듯 오만한 결단을 내렸다. 생각 같아서는 바로 동천을 불러들이고 싶었지만 아직은 부족한 것이 많았다.
‘교활한 놈이니 허술하게 불러들여서는 안 돼지. 아암, 그렇고 말고.’
완벽에 가까운 준비를 갖춘 뒤 일을 추진하는 것이 낫겠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동천이라는 찢어 죽여도 시원치 않을 인간에게 하루, 혹은 며칠이라는 천금과 같은 시간을 즐기도록 놓아두기로 했다. 그는 끓어오르는 흥분을 억누른 채 천천히 눈을 감으며 중얼거렸다.
“흐흐, 내일부터 재미있어지겠군. 내일부터…….”
그렇게 어느 누구에게나 공평한 시간은 소리 없이 내일을 향해 흘러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