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572화
#61
증폭(增幅).
“야옹!”
호연화가 나직이 울어댔다. 침대 위에 마주 엎드려 빤히 호연화가 울어대는 장면을 지켜본 동천은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참나, 니가 고양이냐? 어흥! 해보라니까?”
옆에서 가구들을 닦던 소연은 더욱 어이없어 하는 표정을 지었다.
“저기요, 그건 호랑이 울음소리인데요.”
“…….”
동천은 말대꾸 대신 조용히 소연을 노려보았다. 덕분에 시선을 어디에다 둬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편한 쪽을 택했다.
“아? 그러고 보니 설산묘화가 어흥 했다는 소리를 어디에선가 언뜻 들어본 듯……. 호, 호호호!”
누가 봐도 비굴했다. 그러나 어찌하랴. 그녀도 살고 볼일인데.
“뭐 봐주기로 하지.”
다행이 소연을 다그칠 생각이 없었던 듯 동천은 호연화에게 다시 시선을 주었다. 이어 호연화의 목덜미를 잡고 들어올린 그는 대뜸 천장에 닿을 정도로 높게 던져 올렸다.
“아앗?”
기겁한 소연이 한 손으로 입을 가리고 소리쳤다. 그러나 소리쳐준 보람도 없이 핑그르르 회전한 호연화는 안전하게 침대 위로 착지했다.
‘아참, 쟤는 고양이과 동물이었지?’
뒤늦은 깨달음에 소리 친 자신이 부끄러워 주인님과의 시선을 피한 그녀는 호연화에게 여전히 불가능한 짓을 시키는 동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야, 어흥이 안되면 착지할 때 물구나무서기라도 했어야지.”
소연은 심심해있는 주인님의 희생물로 불쌍한 동물이 학대받고 있다고 확신했다. 안되겠다고 생각한 그녀는 그나마 호연화가 해낼 수 있을 법한 제안을 해주었다.
“저어, 주인님. 설산묘화는 어미로 성장했을 때 호랑이와도 대등하게 싸운다는 희귀한 영물이니까 그런 것보다는 좀더 실용적인 훈련을 시켜보는 것이 어떨까요?”
귀가 솔깃했는지 동천이 반응을 보였다.
“실용적인 훈련? 그게 뭔데?”
당장에 말하자니 말문이 막힌 소연은 머리를 굴려가며 천천히 말했다.
“에에, 그러니까 예를 들어…… 앉았다 일어났다가, 아? 사냥개처럼 물어 하면 물고 앉아하면 않고 그런 훈련들 말예요.”
순간 동천의 눈이 반짝였다. 꽤나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호오! 그거 괜찮겠는걸?”
소연은 주인님이 긍정적이자 안도해했다.
“그렇죠? 아무래도 그게 더 연화에게 보탬이 될 거예요. 누가 뭐라고 해도 연화는 맹수의 피를 타고났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그녀에게 물었다.
“근데 훈련은 어떻게 시키지? 앉으라고 하면 그냥 앉는 건가?”
소연은 난색을 표했다.
“저도 그것까지는 잘…….”
동천도 기대하고 물어본 것이 아니었기에 크게 실망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그는 소연에게 명령했다.
“그래? 그럼 나가서 동물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녀석이 있으면 가서 초빙해 와봐. 그놈보고 훈련시켜놓으라고 해보게.”
깜짝 놀란 소연은 말했다.
“예? 그런 사람을 제가 어떻게 알고 초빙해와요?”
동천은 버럭 화를 냈다.
“이씨, 그걸 이 몸에게 물으면 어쩌라고! 띠껍냐? 띠꺼우면 니가 소전주 하던지!”
소연은 말대답 해봤자 소득이 없으리라는 것을 깨닫고 금새 포기했다.
“아, 알았어요. 주위 사람들에게 물어서 어떻게든 찾아올 테니 화 푸세요.”
그것가지고 승리의 기분을 만끽한 동천은 어깨를 으쓱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짜식, 진작에 그럴 것이지. 험! 연화야, 어흥 해봐.”
“…….”
투견 조련사계의 일인자라고 불리는 고손(高孫)은 며칠 후로 다가온 투견 시합을 앞두고 오늘도 자신이 주력하고 있는 밍밍이란 혈통 좋은 투견을 훈련시키고 있었다. 팔에서부터 어깨까지 두터운 가죽을 둘러 싼 그는 팔을 내밀며 확고한 음성으로 명령했다.
“밍밍, 물어!”
으르르릉, 컹컹!
황소새끼 덩치의 밍밍은 맹수 저리 가라할 정도의 신속함으로 뛰어들어 정확히 그의 팔목을 물어 제쳤다.
‘윽! 역시, 가장 활동이 왕성할 때의 나이라 물어뜯는 위력이 대단하구나!’
그는 팔이 찢겨져 나갈 것만 같은 아픔을 느꼈으나 조련사란 동물에게 약한 모습을 보여서는 안 되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명령했다.
“좋았어! 밍밍, 떨어져!”
밍밍은 익숙한 동작으로 순순히 떨어져 지정된 자리로 돌아가 앉았고, 고손은 미리 준비해둔 고기 한 조각을 밍밍에게 던져주었다. 그는 게걸스럽게 씹어먹는 밍밍의 모습에 만족스런 얼굴을 했다.
“훗, 이번에도 우승은 밍밍의 몫이겠군. 하하, 높은 분들께서 필시 좋아들 하시겠는걸?”
투견장에는 별의별 사람들이 다 모여드는 만큼 암흑마교의 고위층 인사들이 기분전환 겸 돈을 거는 일 또한 비일비재했다. 대게 기분전환 차 오는 인사들이 대부분이었으므로 우승후보의 투견은 확실히 우승을 해주어야 그들이 만족하고 투견장의 이모저모를 돌봐주었다. 그들이 찾아오는 목적은 돈이 아니라 업무에 지친 심신을 풀고자 오는 것이었으므로 배당이 적은 강력한 우승 후보의 투견은 반드시 이겨주어야 하는 것이다.
“고 조련사님!”
갑자기 투견우리 바깥에서 고손이 아는 후배가 헐레벌떡 달려왔다.
으르르릉!
때아닌 상황에 밍밍은 급격히 흥분했고 그런 밍밍을 달랜 고손은 얼굴을 굳혔다.
“이런 멍청한 놈! 그렇게 말했어도 못 알아듣느냐? 훈련 시간에는 이곳에 얼씬거리지도 말라고 당부했지 않느냐!”
찔끔한 후배였지만 그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었다.
“물론 저도 알고는 있습니다. 하지만 보통 일이 아니라서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고손은 눈살을 찌푸렸다.
“보통 일이 아니라고? 무슨 일인데!”
꿀꺽 침을 삼킨 후배는 아무도 없는 주위를 살피더니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약왕전의 소전주께서 고 조련사님을 데려가기 위해 시녀를 이곳으로 보내왔습니다.”
“헉? 야, 약왕전의 소전주라면 그으…….”
빌어먹을 개새끼, 라는 뒷말은 차마 이어지지 않았다. 고손은 후배가 그렇다고 대답해주자 진땀을 흘려가며 다급히 물었다.
“무,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거지?”
후배는 고손의 다급해하는 분위기에 이끌려 덩달아 긴장된 어조로 말했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겠고, 대충 듣자하니 소전주님께서 키우시는 고양이를 단시일 내에 훈련시킬 수 있는 명 조련사를 데리러 왔답니다. 당연히 왕손 홍칠이 조합장님은 고 조련사님을 추천했고 말입니다.”
“으윽!”
그 정도면 자세히 모르겠다는 녀석치곤 훌륭한 설명이었다. 바로 상황을 이해한 고손은 두려움이 왈칵 밀려오지 않을 수 없었다.
‘으으, 그 어느 명 조련사라 할지라도 단시일 내에 훈련성과를 보이기는 어렵다. 헌데 훈련을 원하는 동물의 주인이 하필이면 약왕전의 소전주라니……. 오오, 부처님이시여! 암한문에 불려가서 병신 아니게 들려나온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그 인간의 악명은 하늘에 닿았거늘, 정녕 저를 버리시나이까아아―!’
고손은 부처가 버리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인간이었다. 그 옛날 암흑마교로 흘러 들어오기 직전에 시주하러 온 탁발승을 투견에게로 인도한 작자가 바로 그였으니까. 지금 그의 경우는 인과응보라는 말이 딱 들어맞는 상황인 것이다.
“어째서 나지? 다른 뛰어난 조련사들도 많잖아!”
후배는 흥분한 고손의 눈치를 보며 말했다.
“그렇긴 하지만 이곳에서 제일 뛰어난 조련사는 고 조련사님이 맞지 않습니까.”
틀린 말은 아니었다. 그것은 자신도 인정하는 바이니까 말이다.
“큭! 어, 어떻게든 손을 써서 나보다 약간 낮은 실력인 추승이가 가게 하면 안될까?”
후배는 재빨리 고손에게서 발을 뺐다.
“거기까지는 저 같은 게 관여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쯤은 고 조련사님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 조합 내부의 알력다툼도 그렇고……. 아차! 그러지 마시고 얼른 가보셔야 할 걸요? 소전주님의 시녀 분을 기다리게 한다는 것은 소전주님을 기다리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니까요.”
‘으으, 내가 너무 급부상하니까 자신의 자리에 위기를 느낀 조합장 홍칠이 새끼가 수작을 부린 것이 분명하다! 제길, 두어 달 뒤였다면 내가 조합장 자리를 꿰어찬 후라서 반대로 홍칠이 자식을 보낼 수가 있었을 텐데! 제길, 제길!’
고손은 속마음은 그렇다 쳐도 한시가 급했기에 서둘러 몸에 걸치고 있던 연습 장비를 떼어냈다. 헌데, 바로 그때 그의 뇌리를 스치는 구원의 손길이 있었으니! 고손은 팔목 보호대를 걷어내는 시점에서 무언가 번뜩이는 묘안을 생각해낸 것이다.
‘그래, 내가 갈 수 없는 상황을 만들면 되는 거야! 이 상황에서 가장 빠른 방법이란 내가 다치면 되는 것이고. 내가 다치면 말이야…….’
긴장된 눈으로 자신의 팔과 밍밍을 번갈아 보던 고손은 이내 결단을 내렸는지 찔끔 눈을 감고 팔을 내밀며 밍밍에게 명령을 내렸다.
“밍밍, 물어!”
으르르릉, 컹컹!
밍밍은 명령하나는 기똥차게 잘 들었다.
“끄에에에―! 우엑? 으엑?”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그의 팔을 타고 뇌를 강타했다. 설마 이 정도로 고통스러울 줄은 몰랐던 것이다.
‘흐억? 과, 과연 투견계의 정점에 오른 밍밍이로다!’
이제는 되었다고 생각한 고손은 헐떡거리며 명령했다.
“되, 되었어, 밍밍! 떨어져!”
그러나 피 맛을 본 밍밍은 벌써 눈알이 뒤집혀있었다.
크릉! 와작, 와작!
“케에엑? 아이고, 고손 죽네! 사, 살려! 사, 꼬르륵!”
공포와 고통에 못 이기던 고손은 결국 기절해버렸고 그 광경을 지켜본 후배는 엉덩방아를 찧고 오줌을 지리다가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다른 조련사들을 부르러 뛰쳐나갔다. 운이 좋아 근처에서 투견훈련을 시키던 동료에 의해 목숨을 건지게 된 고손은 그것에 운을 다 써버렸는지 졸지에 팔병신이 되어버렸다. 그것으로 그의 악몽이 끝났다면 오죽 좋았으련만, 후일 잠만 자면 꿈속에서 밍밍의 뒤집힌 눈알에 시달리게 된 그는 결국 조련사로서의 능력을 다하게 되었고 투견협회에서까지 내쫓겨 쓸쓸히 그 바닥을 따났다고 한다. 이로서 동천과 관련하여 본의 아니게 피해를 본 인간이 또 하나 늘어나게 된 것이다.
“후우, 이를 어쩐다지? 하필이면 도착하자마자 제일가는 조련사가 투견에게 당하는 불상사가 벌어질게 뭐람?”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그 상황에서 그녀는 도저히 다른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나설 수가 없었다. 성격상 모질지 않아 물러선 것이다. 물론 동천이 아닌 다른 사람이 시켰다면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라도 남아서 다른 조련사를 데려왔겠지만 나름대로 편한 동천이 시켰기에 그랬던 것일 수도 있었다.
“조련사 문제야 내가 잘 둘러대면 해결할 수 있다지만 소득 없이 가는 것을 용납해줄 주인님이 아닌데 어쩐다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암한문으로 되돌아오던 그녀는 결국 방향을 틀어 고민거리를 들어 줄 사람에게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