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3권 1화 – 어떤 초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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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3권 1화 – 어떤 초대장

어떤 초대장

-서쪽으로부터 온 소식

휘이이이이이잉!

황토빛 바람이 거칠게 몸을 때리고 시계는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을 만큼 어두웠다. 서쪽으로부터 불어온 뿌연 황사바람 탓이었다. 메마른 사막에서 일어난 황사는 바람을 타고 대륙을 가로지르며 오색찬란한 봄빛을 자신의 색깔로 물들이고 있었다.

“쳇. 빌어먹을 똥색 바람, 눈이 다 맵네그려.”

보초를 서고 있던 청성파 출신 강상원의 입에서 자연스레 욕지기가 튀어나왔다.

“올해는 유난이군. 작년에도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함께 보초를 서던 해남파의 정하군이 맞장구치며 대답했다. 두 사람의 입에는 지금 모두 먼지막이용 두건이 씌워져 있었다. 그러나 멀쩡히 드러난 두 눈이 이 황사 바람에 괴롭힘 당하는 것까지는 피할 길이 없었다. 비록 둘 다 명문정파 출신이긴 했지만 여기서는 그다지 큰 간판이 되지 못했다. 왜냐하면 여기서 그런 건 그저 기 본 중의 기본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몸담고 있는 이곳은 구대문파나 팔대세가가 아닌 사람을 찾는 편이 오히려 더 빠를 지경이었다. 그러니 명문정파 출신이 라 해도 보초 신세를 면하기 어려웠다. 좀 더 막중한 임무를 맡기 위해서는 지금보다 훨씬 더 실력을 갈고닦지 않으면 안 되었다.

“젠장. 침을 뱉으면 흙탕물이 튀어나올 것 같군. 입 안이 깔짝깔짝하고 텁텁해서 기분이 구리네그려.”

한껏 인상을 찌푸리며 강상원이 투덜댔다. 빨리 출세하던가 해야지, 이런 날 정문 보초를 선다는 것은 정말 죽을 맛이었다.

“교대하면 둘이서 목구멍이나 씻으러 가세.”

그래도 친구라고 정하군이 그를 위로해 주었다.

“거 좋지. 탁주라도 한 사발 들이켜지 않으면 못 참겠어!”

“그럼 쓰나? 이런 날에는 기름 좔좔 흐르는 돼지고기 요리에 화끈한 청주가 제격이지.”

“캬아~ 생각만 해도 군침이 도는구만.”

둘의 마음은 벌써 객점에 도착해 있었다. 이렇게라도 농을 떨지 않으면 이 희뿌연 세상에 외로이 갇혀 있는 듯한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 같았다. 말이 라도 해야지, 까닥하다간 옆에 친구가 있다는 사실조차 까먹을 정도로 지독한 날씨였다.

“응? 저게 뭐지?”

그것을 먼저 발견한 것은 정하군이었다.

“어디어디? 어느 미친 것이 이런 날씨에…….”

강상원은 눈을 가느다랗게 뜬 채 정하군이 가리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어, 진짜네?”

환영이 아니었다. 허깨비도 아니었다. 진짜로 흙먼지 벽 너머에서 한 인영이 이쪽을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누구지?”

“글세… 이런 날에 꽤나 고생하는구만.”

말을 함부로 끌고 왔다가는 중간에 질식사할지도 모를 지독한 날씨였다. 이런 날엔 포근하고 아늑한 집 안에 틀어박혀 창문, 방문 꼭 닫고 얌전히 두 발 뻗고 뒹구 는 게 최고였다.

사내는 초립을 깊게 눌러쓰고 온몸에 피풍의를 두르고 있었다. 거센 바람을 상대하며 앞으로 나가기 위해 몸을 잔뜩 움츠린 채 한 발짝 한 발짝 힘겹게 걸어오고 있었다. 걸치고 있는 피풍의와 삿갓 모두 황토색이었는데, 처음부터 이런 색은 분명 아니었을 터였다. 마침내 사내는 흙먼지의 황사바람을 뚫고 그들이 지키는 대문 앞까지 도달했다. 강상원과 장하군은 잠시 긴장했다.

“파하! 뒤지는 줄 알았네. 콜록콜록콜록! 헥헥헥! 무, 물 있습니까?”

삿갓사내가 입을 가리고 있던 천을 걷어내며 호들갑스럽게 외쳤다.

“여, 여기 있소.”

사내의 갑작스런 모습에 얼떨떨해진 강상원은 얼떨결에 주전자를 들어 그 사내에게 건네주었다.

사내는 벌컥벌컥 열심히 물을 들이켰다. 이 세상에서 가장 달콤한 감로수를 삼키는 사람 같았다.

“크하아아아아, 좋다! 물맛이 끝내주네요. 덕분에 살았습니다.”

“뭐 별말씀을. 그런데 어디서 오셨소?”

사내가 좀 진정하자 그때까지 보초 된 임무를 잊지 않고 있던 정하군이 물었다.

“아, 서쪽에서 왔습니다.”

“서쪽 어디요?”

서쪽이란 말은 지칭하는 범위가 너무 광범위해서 전혀 대답처럼 들리지 않았다. “아, 동정호에서 왔습니다. 전 중원표국 동정호 지국 표두 영호감이라 합니다.” 중원표국이란 간판은 이곳에서도 충분히 효과를 발휘했다.

“아, 중원표국 분이셨군요. 그럼 영 표두께선 본 맹에 무슨 볼일로 오셨습니까?”

“표사 나부랭이가 하는 일이 별거있겠습니까. 운송할 표물이 있어서지요.”

“표물이오? 말도 한 마리 없이 말입니까?”

아무리 훑어봐도 표물이라 불릴 만한 물건은 몸에 지니고 있지 않았다.

“아, 그 녀석은 오다가 죽어버렸습니다. 황사바람이 어지간히 지독해야 말이지요. 할 수 없이 나머지 길을 걸어서 올 수밖에 없었지요. 저도 하마터면 업무 중 사 망할 뻔했습니다. 올해는 유난히 바람이 지독하더군요.”

“동감입니다. 우리들도 눈 뜨고 있기가 괴로울 정도지요. 그건 그렇고, 말이 죽었으면 표물도…….”

“아, 아닙니다. 말이 죽었으면 사람이라도 짊어지고 끝까지 운송하는 게 표사 된 자의 책무죠. 하지만 운 좋게도 이번엔 표물이 작았습니다. 다행이었지요.” “그럼 그 표물이 뭔지 알려주실 수 있겠습니까?”

표물의 종류에 따라 담당하는 부서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경비뿐만 아니라 잡무도 담당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을 총관리하는 보초장은 지금 저 대문 안 쪽의 초소 안에서 두 다리를 뻗고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아, 종이입니다, 종이 한 장!”

그거라면 확실히 가벼울 만했다.

“종이요?”

강상원과 정하군이 눈을 크게 떴다.

“하하하, 사실은 종이는 종이되 보통 종이는 아니지요. 제가 가지고 온 표물은 서찰입니다.”

그러자 두 사람은 경악하고 말았다.

“아니, 고작 서찰 하나 때문에 혼자서 이 지독한 황사바람을 뚫고 오셨단 말입니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고객이 원하면 어떤 것이든 운반하는 것이 저희 중원표국의 신조니까요. 하지만 이건 보통 서찰이 아닙니다. 중원표국의 표두인 제가 직접 가지고 올 만한 가치가 있는 물건이지요.”

자부심이 느껴지는 말이었다.

“그래요? 그럼 그 서찰이 어느 분께 가는 건지 알 수 있겠습니까?”

그 서찰이 귀중한가 아닌가는 그것을 받는 사람이 누구냐에 달려 있었다.

“아, 물론입니다. 제가 가지고 온 서찰은 바로 무림맹주님이신 나백천 대협 앞으로 보내진 것입니다.”

영호감이 활짝 웃으며 대문 위에 걸린 현판을 올려다보았다. 그곳에는 용사비등한 글씨로 ‘정천맹(正天盟)’이라고 적혀 있었다.

한 장의 서찰이 정천맹의 거대한 문을 두드렸다. 두세 가지 확인 절차가 끝나자 닫혀 있던 문이 열렸다. 서찰은 두 개로 갈라진 굳건한 철문을 지나 회랑을 우회한 다음 포석이 깔린 길을 따라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는 동안 중문 세 개를 거치고 회랑을 두 번 돌자 곧 목적한 곳이 나왔다. 그러나 그 바로 앞에서 서찰의 전진을 막 는 손길이 있었다. 그 손의 주인은 서찰이 가고자 하는 최종 목적지로 향하는 열두 계단 맨 위에 서 있었다.

“거기서 멈추게. 그 앞은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이네.”

서찰이 멈추었다. 서찰을 멈춘 사람은 맹주 직속 좌호법인 전광검(電光劍) 남궁진이었다.

“무슨 일인가, 이칠?”

서찰을 들고 있던 이칠이 대답했다.

“예, 좌호법님. 맹주님 앞으로 온 서찰입니다.”

그러자 낭궁진의 얼굴에 의아함이 떠올랐다.

“이칠, 자넨 정문 담당 보초장이지 서찰 담당이 아니지 않은가?”

“중원표국의 표두 인편으로 방금 도착한 서찰인데, 정문에서 받았습니다. 급한 일인 것 같아 제가 직접 왔습니다.”

“표국에서 보낸 사람은 누군가?”

“적혀 있지 않습니다.”

“줘보게.”

열두 계단 위에서 남궁진이 손을 뻗자 이칠의 손에 들려 있던 서찰이 두둥실 떠오르더니 나비처럼 날아서 사내의 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멋진 허공섭물의 한 수 였다.

부욱!

봉인된 서찰을 이리저리 돌려가며 꼼꼼히 살펴본 후, 남궁진은 거침없이 서찰의 봉인을 뜯었다.

“흡!”

맹주 앞으로 가는 서찰의 봉인이 무참하게 뜯겨 나가자 이칠은 기겁했다. 그러자 남궁진이 그를 진정시켰다.

“아, 자넨 정문 담당이라서 잘 모르겠군. 나에겐 몇 가지 형식의 서찰을 빼고는 모두 개봉해 볼 수 있는 권한이 있네. 특히 이렇게 발송인 불명의 서찰에는 무슨 독 수가 숨겨져 있을지 알 수 없는 일이니 말일세. 간혹 독이 묻어 있는 서찰이나 암기가 든 서찰도 심심찮게 오곤 하거든. 언제나 방심하지 않는 게 나의 일이지.” 남궁진의 말대로 서찰 안에 면도칼을 넣어놓거나 독을 발라놓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모르는 곳에서 온 편지를 받을 때는 특히 더한 주의가 필요했다. 가장 안전한 길은 사전에 검사를 거치는 일이었다. 이럴 경우 그는 호위 역의 입장에서 그 서찰을 개봉해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삐죽한 면도날이 숨겨져 있거나 유리 가루가 붙어 있거나 독이 묻어 있지 않다는 것이 확인되면 그다음에야 비로소 나백천의 손에 쥐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면 무림맹주 자리도 쉬운 자리는 아니었다. “음?”

서찰을 읽어 내려가던 남궁진의 몸이 흠칫 굳었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남궁 호법님?”

봉투 안에는 면도날이나 독보다 훨씬 더 무시무시한 것이 들어 있었다. 그렇다. 가장 치명적인 것은 바로 흰 종이 안에 글이랍시고 적혀 있는 내용 그 자체였다. “아무것도 아닐세. 그만 돌아가서 쉬도록 하게.”

자신을 긴장 어린 눈으로 바라보고 있던 이칠을 돌려보낸 다음 남궁진은 조용히 뇌까렸다.

“이걸 전해줘야 하나? 진짜 싫은데… 허허, 이런 난감한 일이…….”

갑자기 머리카락을 쥐어뜯고 싶은 심정이었다. 돌아올 반응은 무서울 정도로 뻔했다. 이걸 전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한참을 서성이며 고민하던 남궁진은 나름 대로 마음의 가닥을 잡은 다음 결심을 굳히고 안으로 들어갔다. 집무실 안에선 무림맹주 나백천이 책상 위에 쌓인 산더미 같은 서류들과 장렬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중이었다. 최고 책임자라서 놀고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었다. 누구보다 많은 책임을 지고 많은 일을 하기 때문에 최고 책임자인 것이다.

“음, 무슨 일인가, 좌호법?”

나백천이 서류들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

“……”

좌호법 남궁진은 대답 대신 좌우를 살펴본 후 우선 돈 될 만한 값진 물건들을 조심스럽게 들어 바깥으로 하나둘씩 옮겨놓기 시작했다.

“응? 자네 지금 뭐 하는 건가?”

그제야 나백천은 서류에서 시선을 떼어 자신의 호법을 바라보았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을 실천 중입니다.”

남궁진이 바쁜 손을 멈추지 않으며 대답했다.

“뭐?”

남궁진의 움직임이 얼마나 재빨랐던지 집무실 안에는 값나갈 만한 물건들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냥 자그마한 사전 대책입니다. 신경 쓰지 마십시오.”

이상한 대답에 나백천의 의혹은 점차 깊어져 갈 뿐이었다.

“충분히 신경 쓰이는군 그래. 좀 알면 안 되겠나?”

그러나 남궁진의 의지는 무림맹주의 청을 거절할 만큼 단호했다.

“금방 아시게 될 겁니다. 우선 이것마저 끝내놓고 말씀드리지요.”

약속대로 물건 옮기기가 끝나자 남궁진은 내키지 않는 손길로 품 안에서 서찰을 꺼내 나백천 앞에 내밀었다.

“이게 뭔가?”

개봉된 서찰의 입구를 보며 나백천이 물었다.

“읽어보시면 압니다.”

약간의 망설임을 담아 그 서찰을 떠나보낸 즉시 그는 재빨리 뒷걸음질로 물러났다. 그러고 나백천의 시선이 서찰 위를 훑어 내려감과 동시에 얼굴색과 표정이 시 시각각으로 변하는 것을 확인하며 재빨리 두 손으로 귀를 막았다.

“뭣이라라라라라라라라!”

곧이어 집무실 전체를 쩌렁쩌렁 울리는 사자후가 터져 나왔다. 집무실을 받치고 있던 대들보와 서까래가 부르르 떨리며 먼지를 토해냈다. 그 요동을 견디지 못한

벽에 쩌적 금이 가버리고 말았다.

붓은 칼보다 강하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 한 장의 서찰은 그 대단한 초절정고수 무림맹주 나백천의 집무실을 초토화시켰다. 다행히 의자에 앉아서 읽었기 에 망정이지, 만일 말 위에서였다면 충격으로 낙마해서 골절상을 입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어이쿠! 매… 맹주님, 고정하십시오, 비싼 기물들 다 부서집니다!”

오랫동안 나백천의 호법 생활을 해왔던 남궁진이 서둘러 나백천의 진노를 진정시키려고 노력했지만 별로 소용은 없었다.

쩌적! 파직!쨍그랑!

나백천 앞에 놓여 있던 찻잔 받침서부터, 가느다란 선이 갈지자를 그리며 찻잔 면을 타고 사방으로 달리더니 그대로 산산조각 깨져 나가 버리고 말았다. 다행히 다 마신 뒤라 서류가 젖지는 않았다. 남궁진이 선견지명을 가지고 값비싼 도자기들과 장식품들을 옮기지 않았다면 그것들도 저 찻잔과 같은 비참한 운명을 맞이하고 말았으리라. 그의 임기응변이 아니었다면 피해는 훨씬 컸을 것이다.

“제, 제발 진정하십시오!”

다시 한 번 남궁진이 나백천을 말렸다.

“진정은 무슨 얼어죽을! 내가 지금 진정하게 됐나!”

쾅!

성난 나백천의 주먹이 자단목 책상을 벼락처럼 후려 팼다.

콰직!

“아아, 내일 책상 주문도 다시 넣어야겠군.’

값비싼 자단목으로 만든 향기 나는 책상은 그 일격을 견디지 못하고 두 쪽이 난 채 운명을 달리하고 말았다.

“자네 같으면 지금 진정할 수 있겠나, 남 호법!”

분을 제대로 삭히지 못한 나백천이 씨근거리며 외쳤다.

“남궁 호법입니다.”

귀찮을 때면 항상 한 자를 빼먹는 맹주를 향해 남궁진이 조용히 항의했다. 정천맹의 좌호법인 그는 맹주로부터 이 집무실을 지켜내야 하는 알 수 없는 역할을 맡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는 나백천의 이성이 본래대로 돌아올 때까지 수많은 기밀과 고가의 장식품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 이 집무실을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었다. 이곳이 무너진다는 것은 정천맹의 중추가 붕괴된다는 것과 같은 의미. 남궁진은 봉인되어 있던 최후의 수단을 쓰기로 했다. 비장한 마음으로 남궁진은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이러시면 사모님께 이르겠습니다!”

남궁진의 그 말 한마디에 나백천의 미칠 듯한 분노가 거짓말처럼 사라졌다.

“자, 자네 설마 진짜 그러진 않겠지?”

떨떠름한 얼굴로 나백천이 물었다. 그의 눈동자에 미미하게 서려 있는 그 빛의 이름은 바로 공포였다.

“봐서요.”

남궁진이 잔인하게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있는 한 맹주의 몸에는 상처 하나 낼 수 없다고 호언장담하고 다니면서도, 자신이 맹주의 정신에 상처를 내는 것은 아무 렇지도 않은 모양이었다. 그리하여 맹주 집무실은 겨우겨우 코앞까지 다가왔던 파멸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

후다다다다닥!

“매… 맹주님?”

남궁진 최후의 비술에 의해 겨우겨우 화를 진정시킨 무림맹주 나백천은 서류와 싸우던 백전불토의 역전용사인 붓을 내려놓고는 밖으로 달려나갔다. 비전의 신법 을 발휘한 그 움직임이 질풍처럼 빨라 남궁진은 그만 부끄럽게도 그 움직임을 놓치고 말았다. 그의 손에 잡힌 것은 남겨진 한줄기 바람뿐이었다.

“이런!”

그러나 그도 맹주를 곁에서 보좌한 지 이미 십수 년, 맹주의 다음 행동을 예측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에잇! 서둘러야겠군!”

남궁진은 나백천이 달려간 방향과 반대 방향 쪽으로 급히 신형을 날렸다.

전광석화(電光石) 같은 손놀림이 방 안의 여기저기를 누비자 수많은 물건들이 그 손 안으로 빨려 들어왔다. 이곳은 아무나 발을 들일 수 없는 맹주 전용 침전이 었으나 인영의 손놀림엔 망설임이 없었다. 왜냐하면 그가 바로 이 방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지금 그의 손 안에 딸려 들어오는 것에는 속옷, 버선, 비상약, 여벌의 신발 등등 여행에 필요한 물품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당장 짐 싸들고 동정호로 달려가려는 속셈이었다. 우격다짐으로 물건들을 쑤셔 넣은 행낭이 과식한 개구 리 배처럼 볼록해지자 나백천은 그것을 서둘러 등에 둘러멘 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문 쪽을 향해 몸을 돌려 한 걸음 내디뎠다. 그리곤 두 걸음째를 떼기도 전에 딱

딱하게 꽁꽁 얼어붙었다. 언제부터인가 침전 문 난간에 한 싸늘한 눈초리를 한 미부인이 팔짱을 낀 채 묵묵히 기대어 서 있는 것을 발견한 탓이었다. 궁지에 몰린 나 백천의 이마에 식은땀이 맺혔다.

“부, 부인…….”

그는 이미 호랑이를 앞에 둔 개처럼 꼼짝도 못하고 있었다. 가장 사랑하면서도 가장 두려워하는 존재가 눈앞에 있었다. 그의 젊은 아내, 과거 흑도제일미라고 불리 었던 빙월선자 예청의 눈이 별빛처럼 차가운 빛을 발했다.

예청은 차갑게 표정을 굳힌 채 대답하지 않았다. 나백천이 가장 무서워하는 반응이었다. 이 서늘한 침묵 앞에선 역전의 용사인 나백천도 어찌할 바를 모르게 되고 마는 것이다.

“여, 여긴 어떻게…….”

본래라면 지금쯤 화원에서 다과를 즐기고 있을 시간이었다. 이렇게 딱 맞춰서 나타나다니, 제보가 없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좌호법이 헐레벌떡 달려와 알려주더군요.”

예청이 차갑게 말했다.

“사모님, 맹주님이 폭주하십니다. 그분을 말려주십시오!”

자초지종을 듣자마자 예청은 재빨리 남편이 갈 법한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그리고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고 그녀의 남편은 그곳에 있었다. 맹주다운 품위는 어 디론가 내팽개친 채 팔불출 아빠가 되어서.

힐끔!

예청의 시선이 나백천 뒤에 볼록 솟아 나와 있는 하얀 혹을 향했다.

“그건 또 뭐죠, 여보?”

“그… 그러니까 이건…….”

동정호로 튀기 위한 짐이라고는 입이 찢어져도 말할 수 없었다.

“오늘 처리할 서류들은 다 끝내셨나 봐요?”

예청의 다시 착 가라앉은 목소리가 저승사자의 목소리보다 더 무섭게 들렸다.

“아니… 그건 그러니깐…… 잠시…….”

물론 도중에 다 내팽개치고 달려왔으니 끝나 있을 리가 없었다.

“호오, 업무까지 미뤄두고 어딜 가실 셈이었나요, 여보?”

예청의 목소리는 나백천의 입을 얼어붙게 할 만큼 싸늘했다.

‘하아. 좌호법이 말려도 듣지 않았다더니…….’

하아, 예청은 속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한탄했다.

저 말도 안 되는 딸 사랑 때문에 종종 업무도 내팽개치기 때문에 언제나 그 뒷수습은 좌호법 남궁진의 몫이었다. 그러나 이번엔 나백천도 그 죗값을 받게 되고야 말았다.

“설마 숨겨둔 여인한테라도 가는 건 아니겠죠?”

느닷없는 예청의 질문을 들은 나백천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검공이 조화지경에 이른 그의 안색에서 핏기를 싹 빼앗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인데도 그녀는 단 한마 디 말로 그것을 가능케 했다.

“아, 아니, 부인… 이건… 그건 오해요, 오해…….”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며 나백천이 변명했다.

“아뇨. 오해인지 아닌지는 모르지요. 확실한 건 다만 당신이 저에게 뭘 숨기고 있다는 것일 뿐.”

“수, 숨기다니… 그게 오해라는…….”

“시끄러워요!”

조용한 분노가 서린 날카로운 외침 한마디가 그 말을 중간에서 끊어버렸다.

“합.”

나백천은 서둘러 입을 닫았다.

“변명은 이제 충분해요! 제가 원하는 대답은 다른 것이에요.”

“……?”

충분히 나백천을 궁지에 몰았다고 판단한 예청이 그의 앞에 흰 손을 내밀었다.

“내놔요!”

“뭐… 뭘 말씀하시는 거요, 부인?”

떨리는 목소리로 나백천이 되물었다.

“서찰!”

“그건 안 보시는 편이…….”

나백천이 진심으로 말했다. 그러나 진심이라도 늘 통하는 것은 아니었다.

“서찰!!”

다시 한 번 예청이 짧게 말했다. 그것은 거부를 용납하지 않는 절대적인 명령이었다.

“넵! 부인! 여, 여기…….”

나백천은 분노로 인해 꼬깃꼬깃해진 서찰을 품속에서 꺼내 부인 앞에 공손히 내밀었다.

그러자 나백천의 손에서 서찰이 살랑 떠오르더니 나비처럼 날아가 예청의 손에 사뿐히 안착했다. 그녀는 자신이 받아 든 서찰을 찬찬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남궁진이 너무 급하게 말하는 바람에 그 내용까지 듣지는 못했던 것이다. 서찰의 내용을 죽 훑어보던 예청의 표정이 점점 더 싸늘하게 변했다. 나백천은 그것이 어 떤 상태인지를 알고 있었다. 그는 점점 더 두려워졌다.

축하합니다.

강호란도 원통투기장에서 주최하는 무려 오십만 냥의 막대한 상금이 걸린 ‘제일회 생살여탈 대격전’ 투기제에 귀하를 초대합니다. 아울러 귀하의 자녀께서도 생사를 걸고 다투는 이 성대한 투기제에 참석 하게 되었음을 알려 드립니다. 부디 참석하셔서 자리를 빛내주기 바랍니다.

ᅳ주최자 금적신(金積神) 돈왕.

“이… 이건?”

강호란도가 어떤 곳인지는 예청도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투기제가 어떤 것인지도 잘 알고 있었다. 나백천은 할 수 없이 내키지는 않지만 자초지종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흑, 나 오늘 마누라한테 맞아 죽을지도…….?

나백천은 묘비에 새길 말과 유서에다 적을 내용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아…….”

예청은 그 전전긍긍한 모습을 보고는 또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다른 땐 참 멀쩡한 남편인데 왜 이럴 땐 꼭 다른 사람처럼 이럴까. 그 기제(機制)가 뭔지 예청도 궁 금하기 짝이 없었다.

“뭘 그런 걸 가지고 쫄아요, 무림맹주씩이나 되는 사람이. 부끄럽지도 않아요?”

그러자 나백천이 당당히 가슴을 펴며 말했다.

“하지만 무서운 건 무서운 것 아니겠소.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도 강함이오.”

그 변명에 대한 예청은 반응은 간단했다.

“퍽이나!”

”…….”

나백천은 곧 폭발할 폭탄 옆에 서 있는 사람처럼 아무 말 않고 침묵을 유지했다. 예청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은 어째 한숨만 쉬다가 하루가 다 갈 것 같았다.

“하아, 좌호법이 당황해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봤을 때 짐작은 했었지만 설마 이런 일이었을 줄이야…….”

나백천은 침묵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좌호법이 숨넘어갈 듯한 모습으로 그러더군요. 당신이 갑작스레 모든 걸 뒤로 미루고 출장을 가려고 한다고. 말려도 소용없더라고. 당신이 그럴 때는 단 하나, 린 아의 일이 얽혀 있을 때뿐이죠.”

역시 이십 년을 살을 맞대온 아내였다. 나백천의 행동 방식은 이미 훤하게 꿰뚫고 있었던 것이다.

“아, 알고 계셨소?”

“절 누구라고 생각하시는 거예요?”

“그… 그거야……?”

“전 당신의 아내예요. 부부로서 이십 년을 살아왔다고요. 그런 것도 모를 줄 알았나요?”

“아니, 그건….

“그런 건 예전부터 알고 있었어요. 다만 그동안은 눈감아줬을 뿐이죠. 하지만.”

흥분하던 여인이 잠시 말을 멈추고 침묵했다. 지금 그녀의 얼굴에 분노는 간데없고 신중함이 가득 차 있었다. “이번에는 왠지 안 좋은 예감이 들어요. 여자의 감이라고 해도 좋아요.”

예청은 딸인 나예린만큼은 아니지만, 감이 뛰어난 편이었다.

“린아가 위험하단 말이오?”

안절부절못하는 얼굴로 나백천이 반문했다. 아내의 예감이 잘 맞는다는 것은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아니요.”

예청은 그 질문에 대해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이 더 걱정이에요.”

그녀의 육감이 그렇게 경고하고 있었다.

“하하, 그… 그렇소? 그… 그랬구려..

노안의 얼굴을 붉히며 나백천이 말을 더듬었다. 사랑하는, 게다가 아름다운―조금 사납긴 하지만ᅳ아내가 자기 신변을 걱정해 주는데 어떻게 그가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는 자신이 행복한 남자라고 느꼈다. 이런 데선 무척 단순한 그였다.

“그럼 어떡하면 좋겠소? 충고해 줄 게 있다면 귀담아들으리다.”

예청은 작게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역시 안 간다는 말은 안 하시는군요.”

나백천은 어정쩡한 자세로 뒤통수를 긁적였다.

“하아…….”

다시 한 번 한숨이 새어 나왔다. 역시 무슨 일이 있어도 갈 생각인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말려도 소용이 없다는 것은 그녀도 경험을 통해 잘 알고 있었다. “충고할 건 없어요. 이미 가지 말란 충고는 먹히지 않았으니까요. 대신.”

“…...?”

나백천의 의아한 시선을 받으며 예청은 선언하듯 말했다.

“저도 함께 가겠어요!”

나백천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지, 진심이시오?”

대답에 망설임이 있을 리 없었다.

“물론 진심이에요.”

농담할 만큼 오늘은 한가하지 않았다.

“부, 부인…….”

그것은 나백천에게 청천벽력 같은 폭탄선언이었다.

“다시 한 번 재고해 보심이..

그는 어떻게든 말리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게 그런 힘은 없었다.

“말려도 소용없어요. 그리고 흑도에 대해선 제가 당신보다 더 잘 알 거예요.”

“그, 그건 그렇지만…….”

그것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다시 예청이 말했다.

“그곳이 어떤 곳이 잘 알아요. 그런 위험한 곳에 당신같이 순진하고 착해빠진 사람을 어떻게 안심하고 보낼 수 있겠어요.”

“아, 아니, 아무리 그래도 명색이 무림맹준데…….’

그를 가리켜 순진남이라고 하는 사람은 무림을 통틀어 그녀 하나뿐일 것이다. 그래도 어쩐지 그렇게 말해주니 기뻤다. 긴장이 조금 풀리자 마음이 조금 편해지는 무림맹주였다.

“어머, 아무리 무림맹주라지만 그래도 여전히 안심이 안 돼요. 당신에게 무슨 일이 있으며 어떻게 해요. 게다가 비류연이란 아이도 만나보고 싶고.”

“그 녀석은 또 왜……?”

떨떠름한 얼굴로 나백천이 물었다. 그의 어조엔 상당히 못마땅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린아, 그 아이가 서찰에 사내 이름을 적은 적이 어디 한 번이라도 있었던가요? 그 첫 대상이 어떤 남잔지 엄마로서 확인해 보고 싶어요. 얼마나 대단한지.” “별거없을 거요. 부인께서도 그 시건방진 녀석을 보자마자 아마 시시한 놈이라 생각할 게 틀림없소. 내 보증하리다. 그런 놈에게 우리 린아를 줄 수야 없지. 암, 없 고말고.”

마지막 말은 거의 혼잣말에 가까웠다. 아마 나백천의 눈에 차는 남자는 세계가 끝나는 날까지 나오지 않을 게 분명했다.

“흠, 만일 당신 말대로 시시한 남자라면 제 손으로 없애 버리겠어요.”

예청의 입에서 무시무시한 선언이 터져 나왔다.

“아니, 그럴 것까지야…….”

저건 분명 진심이야. 나백천은 와들와들 떨며 마누라를 막으려 했다.

“그럼 당신은 린아가 시시한 남자를 사귀어도 좋단 말이에요?”

“아니, 그건 아니지만.”

사실 그에게 있어 시시한가 시시하지 않은가의 문제는 이미 판단 대상이 아니었다. 남자냐 아니냐, 중요한 건 그것뿐이었다.

“그렇다면 방해하지 마세요. 이건 엄마로서 제가 해야 할 일이니까요.”

“아니… 게다가 그 녀석 이번에 마천각 쪽에 가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있어서 말이오. 자세힌 모르지만 가도 만날 수 없을 수도 있소.”

어떻게든 말려보려고 하는 나백천의 노력이 가상했다.

“흠, 그럼 좀 아쉽군요. 할 수 없죠. 그래도 간다는 데는 변함이 없어요. 우리 린아를 본 지도 오래되었으니까요. 이번 외출을 오랜만에 모녀상봉의 기회로 삼아야 죠. 얼마 만에 마천각에 가보는 것인지….”

그곳은 그녀에게 많은 그리움과 추억을 담고 있는 곳이었다.

“하하, 그러고 보니 당신은 당시 그곳의 ‘총부대장’이었으니 말이오. 여자의 몸으로 쉽지 않은 일이었을 거요.”

이젠 웃을 수 있는 용기도 생긴 모양인지 나백천이 미소 지으며 과거를 회상했다.

“그때도 당신은 여전히 무림맹주셨죠.”

“하하, 그랬었나?”

“그럼요. 당신이 마천각을 시찰 방문했을 때, 처음 봤던 일을 아직도 잊을 수 없어요.”

“허허, 뭐 별 볼일 있었겠소? 그냥 늙은 노인네에 불과했겠지.”

나백천은 부끄러운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자 여인은 고운 살결의 손으로 나백천의 흰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그때도 이 머리카락은 지금처럼 새하얗지만 멋있었어요.”

예청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나백천의 귓가에 속삭였다.

“커흠. 커흠.”

나백천이 연신 헛기침을 터뜨렸다. 술 마신 것도 아닌데 얼굴이 화끈거렸다.

“나… 남편을 놀리는 게 아니오! 커흠!”

부끄러운 모양이었다. 그러나 싫지는 않은 듯했다.

피식!

예청은 그 나이를 떠난 모습에 살포시 웃었다. 아마 그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은 이 넓은 천하에 오직 자신 한 명뿐일 터였다.

“귀엽네요, 정말. 역시 순진하다니깐.”

킥킥거리는 부인의 웃음소리를 듣는 나백천의 입가에 고소가 맺혔다.

“천하의 무림맹주에게 귀엽다고 하는 사람은 아마 당신뿐일 거요.”

“그럼요. 그러니까 무림맹주의 아내인 거죠. 그건 아내만의 특권이에요.”

당당히 가슴을 활짝 펴며 예청이 말했다.

“예, 여부가 있겠습니까. 알아모시겠습니다, 사모님!”

나백천이 장난스럽게 절하며 말했다.

“그럼 마차를 준비해 주시겠어요?”

허리를 꼿꼿이 펴고 고개를 위로 든 채 예청이 고고한 자세로 말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곧 대령해 올리겠습니다.”

다시 인사를 마친 나백천이 아내의 볼에 살며시 입을 맞춘 다음 여행 준비를 하기 위해 침전을 나섰다. ““맹주님?”

혹시나 유혈 사태가 나는 게 아닌가 긴장하며 달려온 좌호법 남궁진이 걸음을 멈추며 그를 불렀다.

“왜 그러나?”

헬렐레한 목소리로 나백천이 대답했다. 다행히 남궁진의 지독한 배신은 현재 그의 머릿속에 들어 있지 않은 게 분명했다.

“뭔가 좋은 일이라도 있으셨습니까?”

의문에 가득한 얼굴로 남궁진이 물었다. 설마 맹주가 이토록 멀쩡하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없네.”

나백천은 남궁진의 얼굴을 보지도 않은 채 대답했다. 하늘이 무척 아름답군. 그는 지금 눈부신 삼라만상의 멋진 세계를 음미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신은 행복한 남자였다. 암, 그렇고말고. 파란 하늘 아래서 그의 병은 더욱더 중증으로 발전해 가고 있었다. 그 헤벌레한 모습을 본 남궁진은 부인의 수완에 조용히 감탄했다. ‘과연 사모님!’

이곳의 실세가 누군지는 명백했다.

***

그리고 이 시각, 또 한 통의 서찰이 장강수로채 총채주 흑룡왕 해중신 앞으로 도착했다. 그리고 그날 수채는 발칵 뒤집어졌다. 단 한 장으로 그 무시무시한 수적들 의 총본부를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만든 이 서찰이 쓰여진 경위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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