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뢰도 23권 7화 – 잃어버린 돈을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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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뢰도 23권 7화 – 잃어버린 돈을 찾아서

잃어버린 돈을 찾아서

-단…….

방안은 불빛 한 점 없이 어두웠다. 남궁상은 그의 마음속만큼이나 새카만 방 안 한구석에 쪼그리고 앉아 궁상을 떨고 있었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아아, 내가 어리석었지, 어리석었어. 궁상아, 궁상아, 넌 어쩜 이리도 어리석기 짝이 없단 말이냐. 저들이 파놓은 함정에 그토록 보기 좋게 걸려들다니, 넌 정말 어리석구나! 참으로 어리석어! 그 결과를 봐라. 하룻밤 새에 오만 냥이라는 초유의 거금을 빚지게 되지 않았느냐! 이제 그 돈을 무슨 수로 갚는단 말이냐?”

아무리 궁리를 해보아도 뾰족한 방법이 떠오르지 않았다. 그들 천무학관 사절단 중 일부가 대단한 명문가의 자제이긴 했지만, 물경 오만 냥이나 되는 빚을 갚을 만 큼 대단하지는 못했다. 게다가 이런 일을 부끄러워서 어떻게 집안과 사문에 알릴 수 있겠는가. 명예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백도의 제자로서 있을 수 없는 일이 었다.

“역시 하는 게 아니었어…….”

그날 밤 왜 그랬을까? 평소의 평정심과 인내는 어디에다가 내팽개쳤던 것일까? 그날, 강호란도에 발을 디딘 첫날, 도박장 ‘정전자’에 발을 들였던 것이 그렇게 후 회스러울 수가 없었다.

처음에 그들은 따고 있었다. 걸었다 하면 잃는 법이 없었다. 그들은 승승장구했고, 도박장 여기저기에선 천무학관 사절단 일행의 즐거운 함성 소리가 높이 울려 퍼 졌다. 모두 승리의 함성이었다. 중간중간 가끔 잃기도 했지만, 그 손해는 또 다른 승리에 의해 금방 메워졌다.

“하오, 또 이겼다.”

“나도 이겼다!”

“너도냐? 나도다!”

등등의 즐거운 대화들이 오고 갔다. 도박장 ‘정전자에선 손님들에게 무료로 술을 제공하고 있었고, 기분이 흥겨워진 그들은 거리낌없이 술잔을 부딪쳤다. 미묘한 흐름의 변화가 생긴 것은 자정이 넘어간 이후였다. 계속 달콤한 승리에 취해 있던 사절단 일행은 이때까지도 계속해서 도박장에 죽치고 앉아 있었다. 오늘 그들에게 불가능은 없을 것 같았다. 승리에 취한 그들은 소리 소문 없이 다가오는 파멸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자정이 넘자 하나둘씩 패배의 빈도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소액의 피해라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러다가 점점 패배하는 횟수가 늘어나더니 액수도 점점 더 늘어나기 시작했다. 가랑비에 옷 젖듯 그들은 서서히 패배에 젖어들어 갔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딴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아져 있었다. 모두들 술이 확 깼다. 그러나 자리에서 일어나는 사람은 남자들 중 아무도 없었다. 잃은 걸 만회해야 해. 그들의 머릿속에 든 생각은 오직 그것뿐이었다. 그들은 금방 잃어버린 것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수십 배로 뻥튀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그들은 승리의 탄탄대로를 달려오지 않았던가. 지금의 패배는 단지 운이 안 좋 았을 뿐이라고 그들은 믿고 싶었다. 좀 전에 승리가 오히려 우연이라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들 전체의 빚은 물경 이만 냥이 되어 있었다. 천무학관 사내들은 혼란에 빠져들었다. 당황하면 할수록 패색은 점점 더 짙어졌다. 그때 저쪽에서 일발 역전의 승부를 제시해 왔다. 그 승부에서 이기면 그들은 잃었던 이만 냥을 회복할 뿐만 아니라, 이만 냥을 추가로 더 딸 수 있었다. 그러나 만약 그들이 이 단판 승부 에서 지면 오만 냥이라는 거금을 빚지게 되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미 이들에게 진다는 생각은 들어 있지 않았다.

대표로 남궁상이 자리에 앉게 되었다.

“아니… 난 이런 건.

사양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우리들의 운명은 네 양쪽 어깨에 달려 있으니 힘내라는 말만 돌아왔다.

“자, 시작합니다.”

그리하여 일대 승부가 시작됐다. 그리고 승부는 남궁상을 위시한 천무학관 사절단의 패배였다. 그리하여 그들의 빚은 단숨에 이만 냥에서 오만 냥으로 불어나게 되었다.

다음날 새벽, 도박장을 걸어나오는 그들의 얼굴에 쓰여 있는 것은 절망이란 두 글자였다.

“이건 함정이었어!”

하지만 그걸 깨닫는 데는 너무 오랜 시간과 희생이 뒤따르고 말았다.

그 후 남궁상의 고민은 어떻게 하면 빚을 청산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지만 별다른 타개책은 찾을 수 없었다.

“하아… 정말 몸이라도 팔아야 하나…….”

일단 남자이다 보니 여자만큼의 가치는 없을지 몰라도 신체 튼튼하고 무공 실력도 꽤 있는 편이라 자부하고 있으니 어느 대갓집 머슴이나 장원무사 같은 거라도 하면서 돈을 벌 수 있지 않을까? 역시 수익 면에서 머슴보다는 장원무사가 나을 것 같았다. 그중에서 장원주인의 개인밀착호위 같은 전문 직종은 일반 장원무사에 비해 수배나 수입이 좋다는 이야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무런 명예도 없기 때문에 명문정파의 제자들은 그런 일 하기를 기피하고 있었다. 기피만 하면 다행이고, 대부분이 자신의 몸을 헐값에 파는 행위’라며 매우 혐오하고 있기 때문에 아무리 많은 돈을 준다 해도 가는 이는 무척 적었다.

그리고 그런 곳에 가는 이는 간판만 명문정파 제자지 문중에서 찌끄러기인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 만큼 그곳에 진출하는 남궁상의 존재는 희소성을 띠게 될 것이다. 자기 한 몸 희생해서 동료들을 빚더미에서 구제해 줄 수 있다면 그리 나쁜 장사는 아니었다. 무엇보다 그는 자의든 타의든 그들의 대장이었다. 자기 한 몸

받쳐서라도…….

거기까지 전심전력으로 망상을 전개시키던 남궁상은 퍼뜩 놀라 고개를 세게 가로저었다.

‘아아, 내가 정말 이제 미쳐 가는구나. 지금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그래서야 내가 어떻게 진령을 대할 수 있겠는가! 또 나쁜 버릇이 도지는구나. 궁상 아, 벌써부터 포기해서 어쩌겠다는 거냐! 희망을 버리지 마라!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벌컥! 쾅!

그때 문이 활짝 열리며 한 남자가 성큼성큼 안으로 들어왔다.

“남궁 대장, 거기 있나?”

기별도 없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온 인영은 남궁상을 찾기 위해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러나 아직 방 안이 어둡고 구석진 곳에 위치한 남궁상의 궁상맞은 자세 덕 에 그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았다.

“남궁 대장, 방에 없나?”

인기척만은 확실히 감지되고 있었기에 인영은 다시 한 번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여기 있습니다, 비연태 선배님∼”

비실거리는 힘없는 목소리로 남궁상이 힘겹게 대답했다. 무척 뚱뚱한 거구의 사내가 남궁상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반색했다.

“아, 자네 거기 있었군 그래. 너무 궁상스러워 잠시 못 알아봤네.”

“그런가요? 그런데 무슨 일로…….”

사실 그는 지금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저 문밖의 햇빛은 지금의 그에게 너무나 눈부셨다.

“아, 기뻐하게!”

비연태가 두 팔을 활짝 벌리며 말했다.

“기뻐하라고?”

대체 뭘 기뻐하란 말인가? 지금까지 그는 절망하느라 너무 바빠 기쁨이란 감정이 존재하는지조차 까맣게 잊고 있던 중이었다. 그런 그에게 기뻐하라니, 웃기지도 않는 요구였다. 단박에 빚을 갚는 방법이라도 생겨나지 않은 이상엔 말이다. 하지만 그건 불가능…….

“빚을 갚을 방법이 생겼네!”

흐리멍덩하던 남궁상의 두 눈에서 불꽃이 파지직 피어올랐다.

“그게 진짭니까?”

남궁상의 고개가 번쩍 들렸다.

“물론이고말고. 이런 중대한 문제로 허언할 리가 어디 있겠나?”

그랬다면 아무리 마음 착한 남궁상이라도 가만있지 않았을 터였다.

“지, 진짜지요? 진짜가 아니면 전..

그동안 억눌러왔던 광기가 일순간 폭발해 버리면 그 뒤는 그 자신도 책임질 수 없었다.

“걱정 말게, 진짜니까. 이걸 보게!”

그러면서 굵은 손으로 한 장의 종이를 내밀었다. 남궁상은 여전히 미심쩍은 마음을 버리지 못한 채 그 종이를 받아 들었다. 그리곤 조심스럽게 펼치고는 차분히 읽 어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나 차분함은 오래가지 못했다. 금방 그의 눈이 휘둥그레진 탓이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신체권리포기각서(身體權利抛棄覺書).

“이, 이게 뭡니까?”

“보면 모르나? 신체포기각서라네. 다른 말로는 노예문서라고도 하지.”

“그, 그런데 그런 걸 왜 저한테?”

“응? 자네가 빚을 갚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한다고 했잖은가? 내가 모든 정보망을 총동원하여 여러모로 알아봤는데 이게 가장 빨리 빚을 갚을 수 있는 방법일세. 다행히 이 강호란도에 연줄이 최근에 생겨서 말일세. 꽤 비싼 값을 치러주기로 했네. 내가 자네 정도면 많은 손님을 끌 수 있을 거라고 잘 설득한 덕분일세. 요즘은 그쪽 수요도 상당히 늘어서 공급이 딸린다고 하더군. 뭐, 우리 애소저회 쪽에서는 그쪽을 철저한 이단이자 외도로 생각하고 있네만…….”

“손님? 수요? 공급? 이단? 외도?”

비연태의 말이 너무 빨라서 남궁상은 제대로 알아들을 수 없었다.

“아, 그거 강호란도의 유명한 기루인 ‘동인(同人)’에 자기를 판다는 내용일세.”

비연태의 별거 아니라는 듯한 말투에 남궁상은 깜짝 놀랐다.

“기루에서 여자도 아닌 저 같은 남자를 사서 뭐 합니까? 아무 쓸모도 없을 텐데요?”

“아, 걱정 말게. 거긴 남자 전문 기루거든.”

대수롭지 않게 내뱉은 그 한마디가 남궁상에게 있어선 크나큰 문화적 충격이었다.

“여, 여자가 남자를 산단 말입니까?”

“남자도 여자를 돈으로 사는데, 여자라고 그러지 말라는 법 어딨는가? 가끔은 남자가 남자를 사기도 한다더군. 또 아나? 중년 부인들한테 인기를 끌어 지명을 많 이 받다 보면 생각보다 더 빨리 빚을 청산하게 될지도? 그러기 위해서는 부단히 접대 연습을 해둬야 하네. 그 세계의 경쟁은 정말 치열하거든. 물장사를 얕보면 곤 란해. 암, 곤란하고말고.”

거기까지 가서는 이미 남궁상으로서는 수용 불가능한 수준의 이야기였다.

“정말 이 방법밖에 없습니까?”

몸을 팔까 하는 생각도 있었지만 적어도 이런 식은 아니었다.

“아마도, 그런 걸로 알고 있네.”

비연태가 태평스레 대답했다. 그와 그의 충실한 애소저회 회원들은 도박에는 별다른 관심이 없었기에 사절단 일행과 떨어져 강호란도의 유명 기녀들을 탐방하기 위한 순례를 갔었던 것이다. 물론 애소저회의 방식은 돈으로 기녀를 산다던가 하는 방법을 취하진 않는다. 대신 노래와 춤을 파는 일급 기녀들을 지켜본 후 그녀들 의 정보를 기입하는 것이 그들의 방법이었다. 어쨌든 그는 빚의 마수에서 벗어나 있었기 때문에 이토록 태연할 수 있었던 것이다.

‘정말로… 정말로 다른 방법은 없단 말인가??

남궁상은 비연태가 어느새 소리 소문 없이 건넨 붓필을 든 채 심각하게 고민했다. 붓을 듯 그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무리 그라 해도 그 비어 있는 서명란 에 서명할 용기는 나지 않았다.

“도저히 안 되겠습니다!”

한참을 고민하던 남궁상이 붓을 들고 있던 손을 내리며 말했다.

“그런가? 그렇다면 할 수 없지.”

비연태는 군소리없이 납득했다.

“죄송합니다.”

“자네가 죄송할 일은 아니지. 미안해할 필요없네.”

그때, 문이 벌컥 열리며 또 한 사람의 사내가 들어오며 외쳤다. 용천명이었다.

“이보게, 남궁 대장! 자네도 소식 들었겠지? 드디어 빚을 갚을 방법이 생겼네!”

“예? 무슨 얘기신지?”

얼떨떨한 표정으로 남궁상이 반문했다.

“응? 자네 투기제 대회 얘기도 못 들었단 말인가? 상금이 무려 오십만 냥이 걸렸다는?”

이번에는 용천명이 깜짝 놀라 반문했다.

“오, 오십만 냥?”

눈알이 팽팽 돌아갈 만큼 믿기지 않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양의 상금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네. 빚 청산은 물론이거니와 팔자까지 고칠 수 있는 그런 거금일세!”

순간, 그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어둠을 비집고 한줄기 눈부신 빛살이 내리비쳤다. 그 안에 적힌 것은 바로 원통투기장의 투기제에 대한 도전자 모집 공고였던 것이 다.

“여, 여기서 우승만 하면..”

그렇게 되면 모든 근심은 바람과 모래 속으로 산산이 흩어질 게 뻔했다. 그렇게 되면 책무에 짓눌려 있던 그의 두 어깨도 훨씬 가벼워져 있으리라.

“거기서만 우승하면 기루에 안 팔려가도 되겠군요!”

“기루? 그건 또 무슨 얘긴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용천명이 반문했다. 그러자 남궁상은 좀 전에 비연태와 있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러자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용천명이 비 연태를 보며 말했다.

“비 선배, 혹시 이 친구한테 투기제 얘기 안 해줬던 겁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남궁상이 경악했다.

“서, 설마 비연태 선배도 그 대회 얘기를 알고 있었던 겁니까?”

“알고 자시고, 내가 그 얘기를 들은 건 바로 선배한테서였네.”

남궁상은 기가 막힌 표정으로 비연태를 바라보았다. “아, 깜빡했네.”

심드렁한 어조로 비연태가 대꾸했다.

“그게 깜빡할 일입니까!”

으르렁거리는 듯한 어조로 남궁상이 거세게 항의했다. 분명히 고의로 모른 척하고 있었던 게 분명하다. 다만 아쉬운 점은 증거가 없다는 것이었다, 증거가.

‘크르르르!’

남궁상은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끓어오르는 살기를 억누르느라 상당한 심력을 소모해야만 했다. 게다가 지금 죽이면 곤란했다. 사람은 밉지만 정보를 수집하는 그 능력만큼의 타의 추종을 불허했던 것이다.

남궁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용천명을 보며 말했다.

“당장 접수 신청하러 가지요!”

용천명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세. 다만… 그전에 옷이나 좀 갈아입게나. 며칠 빨지 않은 듯 냄새가 나는군 그래. 며칠 동안 안 빤 건가?”

날짜 개념이 멍해진 관계로 남궁상은 즉답을 할 수 없었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난 거죠?”

“이틀 지났네.”

그러자 남궁상이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그럼 이틀이군요.”

그러자 용천명이 얼굴을 찌푸리며 부탁했다.

“부디 삼 일은 안 되게 해주게.”

* * *

최근 여기도 저기도 들리는 이야기는 모두 한 가지였다. 어딜 가나 사람이 둘 이상 모이면 오직 대회 얘기뿐이었다. 그 외의 다른 것들, 즉 세상만사의 다양함은 잠 시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당분간 잊혀진 채로 있을 듯했다. 총 오십만 냥의 상금이 가져온 파급 효과는 그만큼이나 대단했다. 강호란도는 물론이고 인접해 있던 마 천각 안까지 미친 여파로 각 전체가 요동쳤다. 눈이 벌게진 모두의 망상 속에서 상금의 주인은 모두 그들 자신이었다.

그러나 이들 중 가장 강하다고 평가받고 있던 이들은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공문에 추가로 붙은 단 한 줄의 문장 때문이었다.

단, 마천각 대장급은 참가 불가!

당장 몇몇 대장급들로부터 항의가 들어갔다. 그들 대장급 인물들에게는 그만한 능력이 있었다. 그러나 어두운 뒷세계에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은 돈왕은 그리 녹록한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그들의 요청을 단호히 거부했다.

“화내지 말아주십시오. 아시다시피 이건 저희의 의사가 아닙니다. 이 마지막 문구를 첨가하도록 요구하신 분은 바로 마천각주 그분이십니다. 이 규칙에 불만이 있 으시면 그분께 직접 따지시기 바랍니다. 저 같은 장사치야 일개 전언자에 불과할 뿐이죠. 제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마천각주에게 가서 집적 따지라는데 그들이 어쩌겠는가!

“……”

돈왕의 그 한마디에 항의하러 들이닥쳤던 이들은 조개처럼 입을 꾹 다물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마천십삼대의 대장급인 그들이 강하고 위상이 드높다 해도 마천 각 최고 권력자의 비위를 거스를 만큼 대단하지는 못했다. 사실 마천각주의 실력이 어떤지 아는 사람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직접 그 실력을 목격한 이들 대부분 은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 대전에서 살아남은 몇몇 이외에는 그가 지닌 무공의 깊이를 아는 자는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그리고 살 아남아 있는 이들이 아는 것 역시 백 년 전의 낡은 정보에 불과했다. 또한 그의 비기를 아는 자는 앞으로도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있었다. 그 말인즉, 그 무공을 견식 한 자는 곧 죽는다는 의미였다.

“그럼 이만 돌아가 주시겠습니까? 전 아직 정산할 것이 남아 있어서.”

돈왕의 집무실에 들이닥쳤던 마천각의 정예들은 소태 씹은 얼굴로 되돌아 나올 수밖에 없었다.

백 년 전 천겁혈세 이후 천겁령의 재발호를 막는다는 취지 아래 마천각이 설립된 이후 이곳의 각주는 한 번도 바뀐 적이 없었다. 몇 번씩이나 관주를 바꾼 천무학 관과는 무척 대조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흑도의 논리였다. 그가 여전히 강자로 남아 있는 이상, 세월이 그의 강함을 부식시키고 풍화시키지 못하는 이상 그 누구도 그를 그 자리에서 끌어낼 수 없었다.

강자존(强者存)!

그것이 바로 흑도를 흑도답게 만드는 비정한 철혈의 법칙이었다. 이 철의 규칙에 정면으로 도전할 용기가 없는 이상 명령에 따르는 것이 현명한 행동이었다. 그리 하여 마지막에 첨가된 단 한 줄의 규칙으로 인해 참가자들은 대폭 줄어들게 되었다.

이 일은 어두컴컴한 지옥의 구렁텅이 밑바닥에 갑작스레 비쳐진 단 한줄기의 구원의 빛에 의지해 단발 기사회생의 기회를 노리고 있는 남궁상에게는 매우 다행스 럽고 바람직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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