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15화
출정준비.
“그러나 이사형이라면 몰라도 제가 그곳에 가서 제대로 맡은 바 소임을 다할 수나 있을까 걱정부터 앞섭니다.”
역천은 제자의 고충을 충분히 이해한 듯 껄껄 웃으며 안심시켜주었다.
“푸하하, 내 어찌 책임자로 너나 네 사형만 임명하겠느냐. 그곳에는 이 몸 대신에 부전주가 가게 될 것이니 너희들 중 하나는 그저 옆에서 그의 힘이 되어주기만 하면 된다. 이것은 실로 안전하게 강호경험을 쌓을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말이다.”
“아, 그렇구나!”
공영수는 사제가 고민을 해결하자 조용히 나섰다.
“사부님, 그러한 취지라면 저보다는 사제가 나을 듯 싶습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영천의 일이 마무리에 들어가는 중인지라 이제 서둘러 가보지 않으면 안됩니다. 그러니 이참에 사제에게 사천성의 일부나마 직접 보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 앞으로의 장래를 위해서도 좋을 것이라 사료되옵니다.”
동천은 구구절절 다 맞는 말이어서 어쩐 일로 이 병신이 자신을 생각해주나 했다.
그로서는 공영수가 역천의 그늘에서 벗어나 순천 제조를 자유롭게 행하고 싶어서 양보한 사실을 알 턱이 없었던 것이다.
“음, 그렇기 하다만 네 사랑스러운 사제는 요새 몸이 크게 상하여 함부로 바깥바람을 쐬게 하자니 걱정이 앞서서 이리도 고민하는 것이 아니더냐.”
그 사이, 재빨리 득실을 따지기 시작한 동천은 미지의 세계의 경험과 사정화의 압박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즐거움이 배가되자 짐짓 어려운 결단을 내린다는 표정을 짓고 의지에 찬 눈빛으로 사부에게 말했다.
“사부님! 사형의 말씀을 듣고 크게 깨닫는 것이 있습니다. 이번 은중각의 일로 나갔을 때에도 느꼈던 것이지만 이 제자는 세상을 너무도 모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너무도 천방지축이라 분란의 소지를 만들었으며 주위의 신뢰조차 제대로 얻어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을 기회로 새로운 각오를 다지고 싶사오니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동천의 각오에 적잖이 놀란 역천은 얘가 뭘 잘못 먹었나 싶어 머리도 만져보고 진맥도 해보았다.
그러나 이상이 있을 턱이 없었던 동천은 다시 한번 부탁을 드렸고 신중하게 생각한 역천은 마지막으로 공영수의 의사를 물어보았다.
“이번 일은 네가 공을 세울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사실, 오랫동안 너를 본전의 구석에 방치해놓은 듯하여 못내 마음이 걸렸던 이 사부는 만일 너희들이 동시에 원했을 시에는 너를 이번 출정에 합류시켜주고자 마음먹고 있었다. 어떠냐. 이래도 영천으로 돌아갈 생각에 변함이 없느냐?”
공영수는 실로 황송한 표정을 지었다.
“사부님의 은혜가 하해와 같사옵니다! 허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입니다. 맡았던 것조차 이득에 눈이 어두워 손을 뗀다면 다른 무엇을 하더라도 결국엔 흐지부지하게 되는 것이니 사부님께서는 이 제자의 의지를 깊이 헤아려주시기 바랍니다.”
역천은 너무도 확고한 공영수의 대답에 어쩔 수 없음을 깨달았던지 더 이상 권유하지 않았다.
그는 공영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표시로 고개를 끄덕인 후 동천에게 말했다.
“음, 아무래도 이번 일에는 네가 본전의 주역이 될 듯 싶구나. 너는 이번 출정의 책임자로서 잘 해낼 자신이 있느냐?”
동천이 말로는 무엇인들 못한다고 하겠는가.
“예, 사부님! 맡겨만 주신다면 천마동(天魔洞)이 아니라 만마동(萬魔洞)이라도 찾아내어 약왕전을 빛내겠습니다!”
동천이 말한 만마동은 애초에 천마의 천이 하늘 천(天)이었던 만큼 잘못 비유한 말이었지만 역천은 제자가 의도한 바를 잘 알았기에 굳이 거론하지 않고 칭찬해주었다.
“오오, 네 의지가 참으로 가상하구나! 이런 날에 어찌 술이 빠질 수 있으리오! 푸헤헤, 오늘 맨 정신으로 돌아갈 생각들은 말거라!”
아침부터 술을 마시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동천은 먹고 노는 일이라 그러했고, 공영수는 고취되어있는 사부의 흥을 깨트릴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정에 없던 술판이 벌어진 전주전은 아침부터 술 냄새를 풍기기 시작하더니 저녁이 다 되어가서야 그 냄새를 거두어 들였다.
“으히히! 아, 치하다.(취한다)”
사부가 주는 대로 꼴딱꼴딱 얻어 마신 동천은 잘 마신다는 칭찬을 받았지만 그 대가로 돌아가는 길에 만취가 되어 마차에 올라탔다.
‘으이구, 아주 떡이 되도록 처마셨군!’
방삼은 마부석에까지 풍겨오는 술 냄새에 고개를 절래 내젓고는 서둘러 마차를 몰았다.
헌데, 그가 아무리 평소처럼 마차를 몰아도 술에 취한 사람은 그게 아니었던지 동천은 헛구역질을 하며 방삼에게 소리쳤다.
“웁! 우웁! 이 씨부럴 탱탱 부리야! 너 이쒸끼! 마짜 제대로 못모라?(마차 제대로 못 몰아?)”
멀쩡한 사람은 어떻게 머리를 굴리면 넘어간다지만 술 취한 놈 앞에서는 제대로 된 논리가 먹혀 들어갈 리 만무했기에 방삼은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죄, 죄송합니다, 소전주님! 가능한 천천히 몰겠사오니 고정해주십시오!”
그러자 갑자기 마부석과 연결된 창문을 벌컥 열어 제킨 동천은 냅다 그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뻑!
“으엑―?”
흥분한 동천은 언제 취했냐는 듯 또박또박 소리쳤다.
“뭐? 고정해라고? 이씨, 내가 왜 고정해야! 난 동천이라구, 동천!”
방삼은 뒤통수를 얻어맞아 정신이 혼미해졌지만 겨우 의식의 끊을 놓지 않았다.
그는 자신이 여기에서 기절하면 마차가 전복될 수도 있었으므로 무슨 일이 있더라도 기절해서는 안 된다며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쓰, 쓰러져서는 안 된다! 나 혼자 쓰러진다면 얼마든지 쓰러질 수 있지만, 여기에서 쓰러진다면 내 식구들에게도 그 여파가 미칠 수 있음이다!’
그때 또다시 손바닥이 날아 들어와 그의 머리를 후려쳤다.
뻐억!
“켁?”
그 손의 주인공은 당연히 동천이었다.
“이 새끼가 대답을 않네? 너 내가 그렇게 만만해 보여? 앙?”
한순간 시야가 하얗게 변했다가 시력이 회복되었다.
방삼은 평형감각을 잃었던지 몸을 기우뚱거렸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며 불굴의 의지를 끌어올렸다.
‘내, 내가 쓰러진다면! 헉헉, 부인과 아이들이……. 크오오오오!’
차라리 그냥 마차를 세우고 얻어맞던가 기절했으면 되었을 텐데, 그도 지금 제정신이 아닌지라 그런 것은 꿈도 꾸지 못했다.
그렇게 고통을 인내하며 기어코 암한문까지 무사히 동천을 데려다준 방삼은 중간에 서너 대를 더 맞았던 탓인지 안도감과 더불어 마부석에서 굴러 떨어졌다.
그러고는 놀라서 달려온 문지기에게 이렇게 말하고 기절했다고 한다.
“불태웠어. 하, 하얗게 다 불태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