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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25화


  1. 입곡불가(入谷不可).

대파산은 사천과 섬서를 경계하고 서북, 동남으로 뻗어 있는 긴 산맥이었다.

그 굽이쳐 이어진 모습이 흡사 아홉 마리의 용이 한데 뒤섞인 모습과 같다하여 구룡산맥이라고도 하는데, 한중 분지를 끼고 돌아 북산면은 험준했고 남산면은 대체적으로 밋밋했다.

처음 암흑마교는 수색작업에 들어가기에 앞서 이 북산면과 남산면을 놓고 고심했다.

그들이 보유한 천마지 내의 지도를 살펴보자면 북쪽의 지세가 맞아 떨어졌지만 그렇게 자세한 표시가 되어있지 않은 관계로 비교적 지세가 무난한 남쪽의 경우 또한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다.

무슨 말인가 하면, 아무리 남쪽이 밋밋하다지만 그 넓이와 면적을 보았을 때 천마지 내의 조건에 충족될만한 산세(山勢)는 충분히 존재하고도 넘쳐났다는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내린 결론은 3분의 1이 남산면을 맡고, 나머지 3분의 2가 북산면을 맡는 것이었다.

“젠장, 무슨 놈의 수색이 하는 일 없이 매일 산이나 오르고 지랄인 거지?”

약왕전을 대표하여 아수전과 혈각에서 차출된 자들을 이끌고 한 조가 된 동천은 벌써 삼 개월 째 등산만 다니고 있자 왜 이따위 임무에 지원을 했는지 정말 후회가 막급이었다.

더군다나 그가 사천에 도착하고 나서 처음 벌어진 산적 토벌을 구경갔다가 팔 다리가 잘리는 것은 기본이고, 목이 잘리고 배가 갈라지는 목불인견의 참상을 여과 없이 받아들인 그는 일주일간 먹고 토하고 먹고 토하는 것을 반복했다가 겨우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 후로도 한 달간은 방안에서 빌빌거렸었지만 천성적으로 활발한 녀석이라서 그런지 훌훌 털고 자리에서 일어나는 것으로 그 문제는 일단락 됐다.

참고로 동천은 그때의 힘겨운 과정을 잘 버텨낸 자신이 나름대로 성숙했다고 자부했지만 남들이 보기에는 영 아니었다고 한다.

“약소전주님. 아시다시피 우리의 임무가 지도제작이지 않습니까. 저희 또한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본교에서 사활을 걸고 추진한 일이오니 이만 노여움을 거두시지요.”

아수전의 당주 초철산(超鐵山)이 공손히 대꾸했다.

동천은 쓴맛을 느끼는 얼굴로 잠시 멈추어 섰다.

그를 어떻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담당한 산봉우리에 거의 올라와 있자 한숨을 돌리려고 했던 것이다.

“다 알아. 그러니까 말 안 해도 돼.”

“죄송합니다. 소인이 주제넘었나 봅니다.”

알긴 잘 안다고 생각한 동천은 습관적으로 다리를 번갈아 주물렀다.

이어 그는 무심결에 머리 위의 태양을 올려다보았다.

한낮의 기온은 찜통을 방불케 했고 태양은 이글거렸다.

생각 없이 계속 바라보자니 문득 현기증이 일어났다.

“저런, 죽일 놈의 태양 같으니라고! 너 죽을래? 니 엄마가 그렇게 가르치든?”

동천은 주위의 사람들이 어처구니 없어하던 말던 계속 소리치다가 씩씩거리며 멈추었다.

이 할 짓 더럽게도 없는 놈인 동천은 현재 본의 아니게 북산면 쪽을 담당하고 있었다.

어찌된 일인고 하니, 북쪽과 남쪽 중 기왕이면 힘든 쪽을 맡기로 한 사정화 덕분에 덤으로 같이 있게 되었던 것이다.

그로 인해 분노, 슬픔, 짜증, 좌절과 같은 감정들이 치솟아 그녀에게 항의했지만 그 문제는 싸대기 한 방으로 마무리되었다는 슬픈(?) 전설이 있었다.

“어이! 거기에서 그만 쉬고 빨리 올라가서 지도나 그려!”

찰나의 생각에서 벗어난 동천이 근처에서 쉬고 있던 사내들 중 한 명에게 명령했다.

그러자 무공을 익히지 않아 보이는 30대의 사내가 냉큼 고개를 끄덕이더니 산꼭대기로 올라갔다.

자나깨나 무공만을 익힌 무공광들이 지도제작을 할 수 있을 턱이 없자 암흑마교에서 인재들을 대거 고용하여 그들을 대신하게 해줬던 것이었다.

뭐 약간의 문제라면 거의 협박해서 데려 온 자들이라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어이, 그리는데 얼마나 걸릴 것 같아?”

동천의 목소리가 다시 지도제작자에게 향하자 위쪽에서 한참을 준비중이던 사내가 다소 주눅이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게 그러니까……, 대략 반 시진은 걸릴 듯 합니다.”

“그래? 어째 오늘은 좀 더 걸리네?”

“예, 이곳의 지형이 조금 복잡해서 그렇습니다.”

의외로 동천은 늦어진다는 말에 화를 내지 않았다.

여기에는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는데 사실 지도제작자는 드문 형편이었다.

더군다나 군부(軍部)와 연결되어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겨우 1명만을 초대해놓고 화공(畵工)들을 불러모아 대략적인 짜임새만을 가르친 뒤 대파산에 투입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가뜩이나 강제적으로 모아와서 사기가 저하된 상황인데 험하게까지 다뤄서는 곤란했던 것이다.

‘에그……. 저 새끼, 지도 하나 그리는데 참 오래도 걸리네. 아예 자라를 처먹었다고 해라, 처먹었다고.’

자신이 발로 그려도 벌써 다 그렸을 것이라고 투덜댄 그는 오늘 하루도 이렇게 지나갈 것 같자 왠지 허무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약왕전에서 놀고 먹었던 것에 비하면 지금의 생활이 훨씬 값진 것이었지만 동천은 절대로 인정하려들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정도가 지났을까?

동천의 계속 되는 눈치에 허겁지겁 그린 화공이 다가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약소전주님, 다 그렸습니다요.”

화공이 내민 지도를 받아든 동천은 품속에 갈무리하며 일행에게 지시했다.

“음, 그런가? 수고했네. 자아, 이제 다들 내려가도록 하지?”

당주 초철산이 대꾸했다.

“알겠습니다. 천천히 내려오십시오.”

고개를 끄덕인 동천은 일행을 앞세워 내려갔다.

특이하게도 그가 내려갈 때 발소리가 들리지 않았지만 아는지 모르는지 이상히 여기고 뒤를 돌아 보는 사람들은 없었다.

지금 동천은 영극류신법을 펼치는 중이었는데, 하루의 일과가 산을 오르고 내려가는 일뿐이자 각대의 무게에서도 벗어날 겸 내공을 끌어올릴 때에는 어김없이 신법을 연습했던 것이다.

그래도 머리는 돌아가는지 동천은 언제나 일행의 제일 뒤편에서 움직였다.

명목상으로는 길 안내를 부탁한 것이었지만 그래야 신법의 유출 없이 안심하고 수련에 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느끼는 거지만 이 신법은 조용히 다가가기에 정말 좋구나. 만약에 이 신법으로 다가가 암습을 한다면 얼마만큼의 성공을 보장할까?’

갑자기 그게 궁금해진 동천은 깊이 생각해봤다.

‘흐음! 현재 이 몸의 영극류신법은 5성 정도. 적어도 7성에 이른 경지라면 정화년도 눈감고 암살(暗殺)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뭐니뭐니 해도 실전이 문제야. 확실히 가늠하려면 적어도 몇 놈은 죽여봐야 할텐데 그놈들을 다 어디에서 구한다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던 그는 문득 밝아진 얼굴을 했다.

‘아! 괜히 어려운 곳에서 찾지 말고 이놈을 중에서 한 명 골라볼까? 흐흐, 혼자 있을 때 쓰윽 해치우면 어떻게든 성공은 할 것 같은데…….’

순간 생명의 위협을 느낀 일행들이 때아닌 추위에 몸을 떨었다.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고 당주급의 고수들만이 본능적으로 살기를 받아들였다.

‘살기(殺氣)인가? 아냐, 살기치고는 너무 미약해. 그럼 뭐였지?’

느닷없는 현상에 초철산이 고개를 갸웃거릴 때 혈각의 부향주 협포(協抱) 또한 살기는 아닐 것이라고 단정지었다.

만약에 자신이 느낀 것이 살기가 맞다면 그의 생에 이런 조잡한 살기는 처음이었던 것이다.

큰 체구에 단순한 면이 많았던 그는 머리를 싸매고 끙끙거리다가 되려 자신을 의심했다.

‘헉, 이럴 수가! 강철 체력을 자부하는 내가 이 더운 날씨에 추위를 느끼고 몸을 떨었다는 것인가? 으으, 누가 알고 소문이라도 낼까 두렵구나!’

협포는 아무래도 보약 한 첩을 지어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어 그는 언제 떨었냐는 듯 시치미를 떼고 묵묵히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 또한 말을 꺼내기가 뭐해서 유야무야(有耶無耶) 넘어가게 되었다.

‘어느 놈을 고를까요, 알아 맞춰 보십시다. 딩동댕동댕딩동댕동댕……, 우씨 혀 꼬였네? 다시 해야지.’

그 순간에도 동천은 재미 삼아 희생양을 고르고 있었다.

“소전주님 오셨습니까요? 헤헤, 오늘도 많이 힘드셨지요?”

약왕전에 배당된 처소로 돌아온 동천은 딱히 할 일도 없이 주위를 배회하다가 집 지키는 개처럼 쪼르르 달려온 한심이 마중 나오자 내심 조금은 기특해했다.

“오오, 한심인가? 나야 뭐 매일 같은 일상이지. 그러는 자네야 말로 별다른 일 있었는가?”

한심은 의외로 고개를 끄덕였다.

“예, 아침에 일찍 일어나 식사를 하고 여러 의원들과 오늘 사용될 약재들을 가늠해본 뒤 산채(山寨) 주변을 걸어다니며 호연지기를 느끼고 돌아와 현재 점심을 먹고 병사(病舍)를 들러 새로운 병자가 없는지를 확인하고 오는 길입니다. 이제 조금만 지나면 저녁을 먹기로 예정이 되어있지요.”

듣기로는 제법 체계적인 하루를 보내는 중이었지만 해석해보면 이렇다.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해결한 한심은 심심해서 의원들의 아침회의에 참가한다.

거기에서 그는 뭔 소리들을 하는지 모르겠자 은근슬쩍 밖으로 나와 한참을 어슬렁거린다.

그러다가 다시 배가 고파지자 점심을 해결하고는 또다시 심심해져서 잡담을 나눌 병자가 새로 들어왔는지를 확인한다.

그런 뒤 저녁이 오기만을 기다린다.

왜냐하면 저녁밥이 그를 기다리기 때문이다.

참 한심한 인생이다.

각설하고, 이를 모를 리 없었던 동천은 앞서 언급했듯 한심한 인생을 살아가는 한심에게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일어나 애잔한 눈길로 그를 바라보았다.

그는 안 그래도 불쌍한 놈인데 잘 대해줘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 듣고 보니 자네가 맡은 일도 보통이 아니로군. 앞으로도 계속 열심히 해보게.”

“어이구,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요.”

정말로 감사하는 얼굴로 굽실거린 한심은 할 말이 다 끝난 소전주가 그의 곁을 지나쳐가자 무언가 떠오른 생각에 급히 물어보았다.

“아참! 그런데 수련은 잘 되어 가십니까?”

동천은 가다 말고 뒤돌아보았다.

“응? 수련?”

자세한 요지를 모르겠다는 얼굴이자 한심이 그의 발목을 가리키며 실실 웃었다.

“헤헤, 그거 말입니다. 각대.”

동천은 그제야 알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가 이곳에 와서 단 하루도 성질을 죽이지 못한 이유가 바로 각대 때문이었는데 어찌 그가 모르겠다고 하겠는가.

말이 나왔으니 말이지 그동안 각대의 고통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동천은 정말로 죽을 지경이었다.

어떻게 알아낸 것인지는 몰라도 차고 있는 무게에 익숙해질 즘이면 귀신 같이 알아낸 사정화가 새로운 각대로 바꿔주었던 것이다.

그래놓고도 그녀는 ‘선물이야.’ 라고 말해주는 것을 꼭 잊지 않았는데, 그럴 때마다 혈압이 올라 방안에서 끙끙거렸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치가 떨리는 동천이었다.

여하튼, 현재의 그는 한쪽 당 25근 짜리 각대를 차고 있었고 이젠 어느 정도 요령이 생겨서 각대의 무게를 너끈히 버텨내고 있는 실정이었다.

“아아, 이거? 하하! 너무도 가볍다 보니 자네가 물어보지 않았더라면 각대의 존재조차 모르고 살 뻔했구먼! 가르쳐주어 정말 고맙네.”

“헉? 그 말씀인 즉, 벌써 그 무게에 익숙해지셨다는 말씀입니까? 정말 대단하십니다!”

한심이 진정으로 놀라하자 크게 흡족해진 동천은 특유의 헛소리를 지껄이기 시작했다.

“대단은 무슨! 그저 타고난 신력(神力)이 뒷받침되었던 것일 뿐이라네. 내 자네에게만 특별히 말해주는 것인데, 얼마 전 각대의 무게가 무게 같지도 않아서 나도 모르게 물 위를 거닐었더니 지켜보던 조원들이 다들 놀라 까무러치더구먼. 내 그들의 입 단속을 시키느라 진땀을 좀 흘렸지. 하하하!”

다섯 살짜리 아이가 들어도 믿지 못할 소리를 태연하게 소화시킨 동천은 스스로 생각해도 대견했는지 어깨를 한 번 으쓱했다.

마치, ‘내가 이런 분이야.’ 라고 말하는 것을 몸으로 표현한 듯 싶었다.

“오오, 정말이십니까요?”

동천은 자신이 말하고도 좀 찜찜했는데 그 말에 반응하자 정말 저능아라고 생각했다.

‘쟤는 저렇게 살고 싶을까?’

그는 만검전주 혈귀옹의 자식이 이렇게 덜 떨어진 것을 보면서 세상은 참으로 공평하다는 것을 새삼 느꼈다.

“험! 말이 그렇다는 것이네. 헌데, 그건 왜 묻는가?”

한심은 약간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을 회피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갑자기 소전주님을 뵈니까 궁금해져서 물어보았습니다요. 헤헤.”

동천은 무언가 미심쩍었지만 자신도 한심을 볼 때면 과연 저렇게 사는 게 즐거울까 궁금했기에 그냥 넘어가 주었다.

“그래?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럼 수고하게나.”

“예, 소전주님.”

인사를 마친 그는 갑자기 갈 곳이 생겼는지 서둘러 자리에서 벗어났다.

“웃기는 놈일세, 그려?”

어차피 길게 볼 인간도 아니어서 곧 관심을 끊은 동천은 순간 뇌리를 때리는 것이 있자 부르르 떨며 멈추어 섰다.

“가만! 저 새끼, 저번에도 각대 어쩌고 하면서 물어보지 않았나? 그렇다면……, 혹시?”

짐작 가는 것이 있어서 눈을 번뜩인 동천은 서둘러 한심을 따라갔다.

그가 사라진지 바로 였기 때문에 신법으로 따라 붙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들키지 않게 가능한 멀리 떨어져서 뒤따른 동천은 잠시 후 한심이 경비를 서고 있는 숙소로 들어가자 자신의 불안이 현실로 찾아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역시 그런 거였어? 아냐, 아직은 모르니까 좀더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려 보자!’

기다린다고 마냥 밖에서 기다린다는 말이 아니라 몰래 숨어들어 가서 엿듣는다는 소리였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 들어갈지, 아니면 몰래 들어갈지 잠시 생각하던 그는 새로 익힌 신법도 활용해볼 겸 몰래 들어가기로 결정을 내렸다.

스슷.

목재를 엮어 만든 허술한 담의 뒤쪽으로 다가간 그는 영극류신법을 운용하여 살짝 담을 넘어 착지했다.

소리 하나 없는 것이 결과는 대만족이었다.

‘훗! 보잘 것 없는 기술이 이 몸의 몸짓 하나에 빛을 발하는구나.’

“약소전주님. 그곳은 문이 아닙니다.”

“헉?”

앞쪽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기겁을 한 동천이 바라보자 그의 눈앞에 사정화의 호위를 담당한 혈각의 수천희가 서있는 것이 보였다.

바깥의 문지기들만 생각하고 넘어온 것이라 미처 그의 존재를 망각했던 것이다.

그가 폼을 잡고 만족하는 사이에 다가온 수천희는 담을 넘어온 것도 그렇고 놀라는 것도 그렇고 조금 수상하자 진지하게 다시 물었다.

“송구하지만 담으로 넘어오신 연유를 알고 싶습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동천은 무언가 아쉬운 표정을 지으며 그에게 말했다.

“깜짝 놀랬지 않은가. 기척 좀 내고 다니게. 험! 다름이 아니라 아가씨의 경비가 얼마나 견고한지를 가늠해보려고 담을 넘었던 것이네. 잠시 자네의 존재를 깜빡해서 걸렸지만 무슨 경비가 이리도 허술한가! 이래서야 아가씨의 안전을 지킬 수나 있겠는가?”

변명치고는 그럴 듯 하자 수천희는 별로 수긍하고 싶지 않았음에도 꼬투리를 잡지 못했다.

하는 수 없이 그는 보이는 것만 판단하기로 작정했다.

“면목 없습니다. 경비들의 정신 상태를 재무장시키고 가능한 더욱 뛰어난 자들로 교체시키겠습니다.”

어느 정도 숨이 트인 동천은 어깨를 펴고 당당히 말했다.

“되었으니 그냥 놔두게. 모자란 점이 보이면 보완을 시켜야 실력이 느는 것일세. 그렇게 마음에 안 든다고 족족 바꾸면 어디 실력이 늘어날 새가 있겠는가?”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 대답을 듣는 것을 끝으로 더 있어봤자 이로울 것이 없다고 판단한 동천은 서둘러 자리를 피했다.

그리고 다음 날 동천은 사정화에게 선물을 받았다.

물론 그것은 새로운 무게의 각대였다.

아울러 그는 한심을 쳐 죽일 생각까지 했지만 증거가 없음에 한탄하고 다음을 기약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 이게 뭐지?”

그 후로 보름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동천은 계곡 위를 올라가려다가 입구에서 어린 아이 키 만한 비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끼가 끼고 제법 풍화된 것이 오랜 세월을 인내한 듯 보였는데 주위가 산만한 사람이 이곳을 지나쳤더라면 그냥 스쳐갔을 정도로 주변과 동화되어 있었다.

거의 같은 시기에 발견한 초철산은 대답했다.

“입곡불가(入谷不可)라고 쓰여져 있습니다.”

“누가 그걸 몰라? 내 말은 왜 여기에 이 따위 비석이 있냐는 말이야!”

그 옛날, 입곡자사(入谷者死)라고 쓰여진 비석을 무시하고 죽을 사(死)자를 생(生)이란 단어로 바꾸는 만행을 저질렀다가 민묘희(旼苗希)에게 잡혀 죽어라 고생을 했던 동천은 그때의 일이 생각나자 공연히 흥분했다.

그런 내막을 알 턱이 없던 초철산은 그걸 자신에게 물으면 어쩌느냐는 시선을 보냈다.

‘아니, 비석이 여기에 있는 걸 나한테 따져서 어쩌자는 거지? 내가 이걸 세웠어? 어우, 이 새끼 진짜 약소전주만 아니었으면 벌써 반쯤 죽여놨을 텐데!’

초철산은 정말 주먹이 우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무난한 대답은 해주어야겠기에 그는 발로 비석을 걷어차고 있는 약소전주에게 말했다.

“아무래도 은거 기인이 있는 모양입니다. 일단 물러선 뒤 다른 조와 합류하여 수색을 해야할 듯 싶습니다.”

1개조가 30명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을 감안했을 때 적어도 60명이 모여 안으로 들어가자는 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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