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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26화


“그래? 그거 괜찮군. 그러면 3조는 너무 멀리 떨어져있고, 7조와 2조가 가까이에 있는 것으로 아는데 전부 불러모을까?”

약간 소극적이 된 동천이 두 개 조를 불러 모으려하자 초철산이 잠시 생각한 뒤에 말했다.

“그 정도면 충분한 전력일 듯 싶습니다만……, 그보다는 급할 것이 없으니 산채로 돌아가서 충분한 회의를 마치고 움직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동천은 남들이 “예”라고 하면 “아니오”라고 하는 인간이었기 때문에 울컥 솟아오르는 무언가가 있었지만 한 번 거나하게 당한 이후인지라 상대의 의견을 묵살하지는 않았다.

이렇듯 동천을 신중하게 만들 수 있는 요인은 오로지 경험뿐이었던 것이다.

“음, 자네의 의견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전 조원들은 일단 물러서고 2명이 남아서 입구를 지키고 있도록 하라!”

“옛! 명을 받듭니다!”

자발적으로 제일 말단에 속한 자들이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대답한 자들 중에서도 2명만이 남겨질 테지만 그건 동천이 알 바가 아니었다.

따라오는 것이 버거운 화공에게 호위를 붙여주고 서둘러 산채에 돌아온 동천은 고위급 간부들을 찾았지만 제일 중요한 혈각주가 보이질 않자 눈살을 찌푸렸다.

아울러 그는 수색 대신 신중하게 회의를 하자고 건의했던 초철산을 쳐죽이고 싶었다.

왜냐하면 자리를 비운 혈각주 대신에 사정화가 회의를 주관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씨, 내 다시는 초씨 성을 가진 놈들의 말에 귀를 기울이나 봐라!”

내심 좌측에 앉아 있는 초철산을 노려보며 씨부렁거리는데 사정화가 입을 열었다.

“동천, 무슨 일로 회의를 소집했지?”

아무리 동천이 약왕전의 소전주였지만 아직 어리고 대외적으로 영향력이 없어서 그의 주도 하에 회의를 소집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그것보다는 책임자인 혈각주가 없자 하는 수 없이 모여달라는 청을 올렸다고 보는 것이 맞았다.

그래도 듣기에는 좋았던지 동천은 금세 생글거리며 대답했다.

“다름이 아니라 썩 좋지 않은 일로 수색에 차질을 빚게 되어 회의를 요청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저 혼자 결정을 내리기에는 좀 무리인 것 같아서요. 헌데, 혈각주님과 아수부전주님은 어디가시고 아가씨게서 회의를 주관하시게 된 거예요?”

혈각주가 자리를 비웠다면 그 다음으로는 아수부전주가 전권을 위임받게 되어있었는데 그까지 보이질 않자 물어본 것이었다.

사정화는 어렵지 않은 물음이어서 바로 알려주었다.

“혈각주는 공교롭게도 네가 수색에 나선 지 두시진 후에 일이 있어서 급히 본교로 돌아갔어. 아마도 다른 사람으로 책임자가 바뀔 것 같아. 그리고 다음 후임자가 올 때까지 책임을 맡게 된 아수부전주는 혈각주를 따라나서며 남쪽의 진척상황을 시찰하러 간 상태야.”

그제야 그녀가 이곳을 주관하게된 사연을 알게 된 동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천마지가와 관련된 모든 것들은 아무리 사소한 것일지라도 유출이 불가능했기 때문에 전서구로도 정보를 공유하는 것이 엄금되어 있자 잠시 책임을 맡게된 아수부전주가 직접 살펴보러 내려간 것이었다.

“아! 그 짧은 시간에 그런 일이 있었군요? 그럼, 그 사이에 제작된 지도들은 다 아가씨께서 관리하게 되시는 건가요?”

이곳에서 지도를 볼 수 자들은 한 손에 꼽혔다.

현재 이곳에서는 혈각주, 아수부전주, 사정화. 그리고 동천 정도만이 볼 수 있었는데(사실 소전주는 소전주일 뿐이어서 형식상으로는 부전주보다 지위가 낮았다. 더군다나 약왕전은 수색에 도움이 되지 않는 곳이어서 부전주인 소진조차 지도를 볼 수 없었는데 그로서는 사정화의 측근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에 지도를 볼 수 있는 자격을 얻게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들 중에서도 보관은 혈각주만이 담당했고 그 외의 인물들은 참조만이 가능했다.

그동안 제작된 지도들 전부는 혈각주에게 전달되어 그가 일일이 대조해보았으며, 일주일마다 참조가 가능한 사람들을 불러모아 재검토를 하는 방식으로 주관되었던 것이다.

물론, 동천은 보는 척만 했다.

“그래. 아수부전주가 돌아올 때까지는 당분간 내가 모든 권한을 인계 받은 상태야. 그러니까 썩 좋지 않은 일이 무엇인지 자세하게 말해봐.”

하는 수 없게 된 동천은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앞에 두고 짧고도 긴 이야기를 시작했다.

원래는 짧아야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의 성격상 아주 소설을 쓰는지라 불필요한 이야기들이 덧붙여졌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는 한창 열이 오른 상황에서 싸늘해지는 사정화의 눈빛을 받게 되자 바로 이야기를 진척시켰다.

“에에, 그래서 신중하자는 생각에 돌아와 혈각주님을 찾았는데 의외로 아가씨께서 회의를 주관하게 되자 놀라서 물어보았던 것입니다.”

“으음!”

이야기를 듣고 난 사람들은 모두 침음을 흘렸다.

은거기인이 있을 법한 곳을 발견하여 돌아왔다고만 말하면 끝나는 것을 이렇게까지 장황하게 설명하자 어처구니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사정화도 가만히 있는 지라 불편하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그때 사정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이 근처에 은거한 무림고수가 있는지 알고 있는 사람 없어?”

아무도 없는지 잠잠했다.

그러자 서로들 눈치만 보던 사람들 중 살각의 수석교관 형엽산(亨葉山)이 입을 열었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18년에서 20년 전쯤에 이곳 향원산(香園山)자락 근처에서 살인마왕(殺人魔王) 석추양(晳秋楊)을 보았다는 소문이 있었습니다.”

그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헉! 그게 정말이오?”

“아니, 그자가 이곳에 있다는 말입니까?”

형엽산은 사람들의 반응이 생각 이상으로 대단하자 다소 난감한 눈빛을 띄웠다.

그러다가 살인마왕이 아닐 시에는

“어디서 그따위 소문은 들어 가 지고…….”

라는 사람들의 속닥거림을 감내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앞서 말했듯 확실한 정보는 아니외다. 그저 젊었을 적에 호기심이 왕성하여 이곳 저곳을 다니다가 그런 소문을 듣고 이곳에는 얼씬도 안 했던 기억이 있어서 말을 꺼내본 것이오.”

그의 얼버무림 아닌 얼버무림이 끝나자 초철산이 물었다.

“그래도 만약에 그자라면 피해야하지 않겠소?”

형엽산은 대답했다.

“그렇지요. 말씀처럼 만약에 그자라는 것이 확실해지면 일단 혈각주님 정도의 후임자께서 오시지 않는 한 지켜봐야 하는 것이 타당할 듯 싶소이다. 그런 뒤 함께 움직여 양해를 구하고 지도를 그려 철수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할 것이외다.”

“음, 내 생각과 비슷하구려.”

동천은 확실하다는 것도 아닌데 자기들끼리 놀고들 지랄이자 도대체 그놈이 어떤 놈인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이야기 중에 잠깐 물어보겠는데 그 살인마왕 석… 에 또. 석…….”

“석추양입니다.”

“나도 알아! 그저 웃자고 해본 소리야! 험, 어쨌건 그 석추양은 어떤 인물인가?”

그자에 관해서는 제일 먼저 말을 꺼낸 형엽산이 대꾸해주었다.

“살인마왕 석추양은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에 무림에 등장했던 인물입니다. 그자에 관해서는 젊었을 적의 자료가 없는데 그 이유는 그가 등장했을 때가 50대의 나이였기 때문입니다. 대게 마인(魔人)들이 젊어서부터 그 악행을 차곡차곡 쌓아올리는 것과 비교하면 약간 특이한 행적을 지닌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어쨌거나 그자는 근 10년 동안 사천을 주무대로 활보하며 남들이 젊어서부터 그자의 나이까지 이루어야할 악행들을 단 10년이라는 시간에 일궈내고는 다시 행적이 묘연해진 거마(巨魔)입니다. 아마도 제가 말한 것처럼 젊어서 명성을 쌓지 못했던 것에 한이 맺힌 듯도 합니다.”

그것만을 들어서는 그다지 와 닿는 것이 없자 동천은 좀더 자세한 정보를 요구했다.

“고작 악행을 쌓은 것 가지고 그렇게 꺼려한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형엽산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알고 계시겠지만 이곳 사천은 구파일방 중 점창파(點蒼派), 청성파(靑城派), 아미파(峨嵋派). 이렇게 3파가 모여있는 곳입니다. 그리고 그자 살인마왕 석추양은 그 3파의 협공을 당하고도 살아남아 사천에서 활동무대를 옮기지 않은 극강의 초고수입니다. 그 당시 점창과 아미파 장문인 둘이 사정상 빠졌다고는 하지만 청성파의 장문인이 참가했고 각파에서 3할의 정예들을 투입하여 명실상부한 3파의 연합이라고 말할 수 있었는데 그자 하나를 처치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승리는 당연한 것이고 어떻게 석추양을 요리해야 구파일방 답다는 소리를 들을까, 생각했던 3파로서는 참으로 치욕적인 일이었지요. 여하튼, 그런 자이니 저희들로서는 난감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아니, 그런 꼴을 당하고도 구파일방에서 그자를 그대로 묵인했다는 말인가?”

동천이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

그로서는 살인마왕 석추양이 그 사건 이후로도 계속 사천에서 활동을 했었다는 이야기를 납득할 수 없었던 것이다.

형엽산은 간단하게 끝맺으려고 했는데 그것이 여의치 않자 내심 불편해 하면서도 마저 답해주었다.

“그게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처음 사건의 발단이 우연찮게 한자리에 모인 3파의 후기지수들을 석추양이 가볍게 반병신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그들은 대외적으로 이것은 3파의 일이니 그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고 오로지 3파의 주도 하에 그자를 엄벌에 다스리겠다고 공표를 했습니다. 그 말을 반대로 해석하자면 석추양을 도울 시에는 3파의 적이 될 것을 각오하라는 뜻도 되었지요.

듣기로는 석추양이 그들을 따로따로 분리시켜서 각개격파로 무너트렸다고는 하지만 그것도 대단한 능력이라고 칭송되고 있으며 마지막에 청성의 장문인에게 치명타를 먹이고 도주한 사건은 아직도 사천 마도인들 사이에서 유명한 일화입니다. 물론, 석추양도 심각한 내상을 입고 도주를 했었지만 말입니다. 그런 그가 2년 정도 후에 은거한 것을 감안했을 때 내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라는 것을 쉽게 예측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20여 년이 흘렀으니 내상정도야 치료하고도 남았을 시간이지요.”

“그런가? 하지만 그렇게 따지자면 3파도 9파1방의 한 식구나 다름이 없으니 나머지 6파1방에서 궁지에 몰린 석추양을 처단하겠다며 명분을 세울 수도 있었을 터인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았지?”

형엽산은 웃음 띈 얼굴로 대답했다.

“굳이 나머지 6파1방의 힘을 빌리지 않았더라도 석추양은 처단할 수 있었습니다. 앞서 말했듯 각 파에서 3할의 정예들만 투입했었기 때문에 그들만으로도 충분한 전력은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지만 석추양을 직접 상대한 청성 장문인의 만류로 2차 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청성 장문인은 순수한 무인으로서 석추양의 무위에 감탄했던 것이었습니다. 석추양으로서는 청성 장문인이 명성에 연연하지 않는 성품이었다는 것을 천만다행으로 여겨야 할 부분이었지요. 뒤늦게 일을 마치고 돌아온 나머지 2파의 장문인들은 제일 명성에 누가 된 청성파가 석추양을 인정하자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나서기도 뭐한 상황이 되었는지라 하는 수 없이 그때의 일을 계기로 삼아 제자들의 수련을 더욱 독려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합니다.”

“뭐?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그것들은 자존심도 없어?”

마치 자신의 일인 양 흥분한 동천은 청성파 장문인도 그렇지만 그가 인정했다고 꼬리를 내린 나머지 2파의 장문인들도 병신이라고 생각했다.

만약에 자신이었다면 그런 놈은 지옥 끝까지라도 쫓아가서 아작을 냈을 것이었기 때문이다.

덕분에 형엽산은 납득할 수 없어 하는 약소전주에게 부연 설명을 좀 더 해주어만 했다.

“하하, 정파에서나 가능한 일이니 너무 개의치 말아주십시오. 점창과 아미의 장문인들로서는 정작 필요할 때엔 없다가 돌아왔기 때문에 청성의 결단을 무시할 수 없었던 것이었으니까요. 개개인이었다면 모를까, 문파간의 일인지라 분하지만 존중을 해주어야 했던 것입니다.”

그제야 어렴풋이 납득할 수 있었던 동천은 다소 누그러진 표정을 지어 보였다.

“흐음! 문파 간의 일이라 그랬다?”

형엽산은 얼른 대꾸해주었다.

“그렇습니다. 비효율적인 일에 목숨을 거는 자들이 그들이니 참으로 어리석다고 할 수 있지요. 그리고 그때의 일을 놓고 내외적으로 참 말들이 많았지만 우리가 알지 못하는 피치 못할 사연이 있었을 거라는 소문이 거의 정설로 통해지고 있습니다.”

그때 침묵으로 일관하던 사정화가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이야기의 논점이 많이 비껴간 것 같아. 본론으로 들어가서 은거기인이 석추양이 맞다면 공연히 건드릴 필요는 없어. 차후에 인원을 보강하던가 아니면 가까이 갈 것도 없이 더 높은 산봉우리를 찾아 멀리에서 지도를 그려도 될 거야.”

아수전의 2당주 평호(枰虎)가 물었다.

“그렇다면 수색은 해봐야 한다는 결론인데 적임자는 누구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사정화는 평호를 비롯하여 사람들을 주욱 둘러본 후에 말했다.

“이런 일에는 살각과 혼천부가 적임일 듯 싶은데, 따로 나서고 싶은 사람 있어?”

적임자가 두 부류로 압축되자 그동안 미소로만 상황을 주시하던 혼천부의 집법당주(執法堂主) 혁필상(赫必相)이 근소한 차로 먼저 말을 꺼냈다.

60대의 관록답게 느긋한 듯 보이면서도 재빠른 행동을 취한 것이었다.

“허허, 이런 일에는 아무래도 정보를 수집하는 혼천부가 제일이지요. 이번 일은 소신이 맡도록 하겠습니다.”

사정화는 대답해주기에 앞서 살각의 수석교관인 형엽산을 바라보았다.

“괜찮겠어?”

양보할 마음이 있냐는 물음이었다.

형엽산은 약간의 주저함으로 선수를 빼앗겨 입맛이 썼지만 공연히 혼천부와 부딪힐 생각은 없었다.

“집법당주님이시라면 안심하고 맡겨도 문제가 없으리라고 봅니다.”

그가 공식적으로 양보를 하자 사정화는 거릴 것 없이 혁필상에게 명령했다.

“그럼, 살각이 양보를 했으니 혼천부에서 이번 일을 맡도록 해. 가능한 소수의 인원으로 조용히 살펴본 후에 3일 내에 결과를 보고하도록.”

“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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