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룡과 장홍의 눈부신 합격술
-윤준호를 여장시켜라!
“저, 여자 아닌데요?”
자초지종을 들은 윤준호가 얼굴을 수줍게 물들이며 한 첫마디였다. 장홍과 효룡은 그 지나치게 귀여운 모습에ᅳ요즘 들어 더욱 출중해지고 있었다―엄지를 치켜 올려 보였다. 이 정도면 여장을 해도 충분히 먹힐 것 같았다. 윤준호를 설득시키는 데 실패하면 자신이 여장 하고 참가해야 하기 때문에 효룡은 나름 필사적이었다.
“우리 모두 자네가 훌륭한 사나이라는 것을 알고 있네. 그러니 우리들의 우정을 위해 여장 해주게! 어려운 처지에 처한 소저들을 도와야 하지 않겠나? 그것 또한 훌륭한 사나이의 책무라네.”
“그, 그런가요?”
사나이의 책무와 의리라는 말에 약한 윤준호였다. 때는 이때다 싶어 효룡은 연신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물론이고말고!”
“하, 하지만 여장이라니…….”
안 그래도 남자다운 면이 부족하다는 게 항상 신경 쓰이는 윤준호로서는 썩 내키는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사나이의 책무로 여장을 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이상 한 논리였다.
“부처님께서도 그러셨지 않나! 내가 지옥에 들어가지 않으면 누가 들어가리오! 라고 말일세! 이제 믿을 건 준호, 자네밖에 없네!”
효룡이 열띤 어조로 윤준호를 설득했다.
“저… 부처님이 여장 하셨단 얘긴 금시초문인데요?”
의아한 표정으로 윤준호가 반문했다.
“어허, 사소한 것엔 신경 쓰지 말라니까. 자, 우리들만 믿어! 금방 끝나!”
그 말을 들으니 어쩐지 더더욱 믿음이 안 가는 윤준호였다.
“저, 정말이요?”
그리고 윤준호는 이 말을 내뱉은 것을 곧 후회하게 되었다.
“흐흐흐, 자, 얌전히 있어. 앙탈 부리지 말고.”
“왜, 왜 이러세요, 효룡!”
윤준호는 창백한 얼굴로 뒷걸음쳤다.
“괜찮아, 괜찮아. 이 오빠만 믿어. 이 오빠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옆에서 장홍이 수염이 듬성듬성한 얼굴을 내밀며 말했다. 두 사람은 점점 앞으로 다가왔고 윤준호는 점점 뒤로 물러났다. 턱!
등이 차가운 벽에 닿았다. 이제 더 이상 물러날 곳도 없었다.
“흐흐흐. 자자, 순순히 말을 듣게. 나쁘게 하지 않아.”
“추, 충분히 나쁜 것 같은데요…….”
떨리는 목소리로 윤준호가 말했다.
“걱정 말라니깐. 아까도 얘기했잖아, 오빠들만 믿으라고!”
믿음이 가기는커녕 순결에 위협을 느끼는 윤준호였다.
“자, 그러니 그만 벗으시지.”
효룡이 바짝 다가가면 말했다.
“이, 이거 왜 이러세요!”
윤준호가 가슴을 여미며 외쳤다.
“자, 그걸 벗고 이걸로 갈아입으면 돼. 쉽지? 그럼 모든 게 끝나. 앗 하는 순간에.”
효룡이 구슬리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꼬, 꼭 그래야 하나요?”
“응!”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완전히 체념한 윤준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앞으로 닥칠 일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는 듯이.
번쩍!
서로 마주 보며 두 눈을 음흉하게 빛낸 장홍과 효룡은 서둘러 작업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처절한 소동이 벌어지고 있는 방문 밖에서는 세 사람이 초조한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연비와 나예린과 아직 회복이 안 돼서 창백한 안색의 이진설, 이렇게 셋이었다.
“다 됐을까요?”
이진설이 초조한 목소리로 물었다.
“좀 더 기다려 보자꾸나.”
좌불안석, 안절부절못하는 이진설을 나예린이 진정시켰다. 방문 안에서는 자꾸만 괴상한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안 돼요, 그만, 끼악, 같은 소리가 그것들이었 다. 듣고 있기에 영 불편한 소리이기도 했다.
벌컥!
그때 문이 열리고 장홍과 효룡이 파김치가 된 얼굴을 하고 걸어나왔다.
“끝났나요?”
가장 성격이 급한 이진설이 자리에서 벌떡 튕겨나듯 일어나며 물었다. “끝났소.”
효룡이 크게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왜 안 나오는 거죠?”
들어간 것은 셋인데 나온 것은 둘이었다.
“아, 부끄러워서 그러는 겁니다. 별거 아니에요.”
장홍과 효룡이 열려진 방문의 양측으로 가서 시립한 다음 동시에 외쳤다.
“자, 소개합니다! 화산파에서 오신 윤 소저이십니다!”
소개가 끝나자 방 안에서 한 사람이 걸어나왔다. 야리야리한 몸매에 연분홍빛 치마를 걸치고 검은 머리는 틀어 올려 옥잠을 찔러 넣었고 세 송이 매화로 방점을 찍 은 아름답다기보단 귀여운 인상의 소녀였다.
“하하하! 어떻소, 진설? 굉장하지 않소?”
자랑스러운 어조로 말한 다음 효룡은 웃음을 터뜨렸다. 이진설은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눈앞에 나타난 귀여운 아가씨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이야~ 확실히 놀랍군요. 이 귀여운 소저가 그 화산파 순딩이 윤 소협이라니…….’
그렇다. 바로 이 매화꽃 소녀는 화산파의 순딩이 윤준호였다. 이렇게 치마를 두르고 보니 자태가 여느 미소녀 못지않았다.
“이제는 윤 소협이 아니라 윤미 소저요.”
효룡이 장난스레 웃으며 말했다. 가명 티가 풀풀 풍기는 이름이었다.
직접 현장에 있었는데도 믿기지 않을 만큼 진짜 놀랄 만한 변신이 아닐 수 없었다. 게다가 화장까지 완벽했다.
“화장은 누가 했나요? 혹시 효룡 당신이?”
이진설은 미심쩍은 눈으로 효룡을 바라보았다. 남자의 솜씨치고는 지나칠 정도로 완벽했다. 그것이 마음에 걸렸다. 여자들 중에서도 이 정도까지 완벽한 화장술을 구사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었던 것이다.
“아, 그건 내가 아니오. 저 화장 솜씨는 장형의 작품이오.”
그 말에 이진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저 시커먼 아저씨가요? 거짓말!!”
이진설이 경악하며 외쳤다. 도저히 믿기지 않는 일이라고 그녀는 온몸으로 세상을 향해 외치지 않고는 참을 수 없었다.
“아니, 정말이오. 진짜 장 형이 했소.”
“화장품은 어디서 났는데요?”
“아, 그것도 장 형이 물론 가지고 왔소.”
“화장품까지 가지고 왔다구요?”
저 정도 솜씨면 현재 여성들이 애용하고 있는 화장품을 모두 가지고 있다고 보아야 했다. 그런데 저런 아저씨가 그걸 왜? 더욱더 수상쩍어하는 시선이 장홍을 향
했다.
혹시 숨겨진 변태? 그녀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어흠, 그냥 예전에 필요해서 배운 것일 뿐이네. 별것 아닐세. 그러니 그런 눈으로 쳐다보는 건 그만둬 주게.”
장홍이 항의했다.
“그렇게 대단한 거요?”
문외한인 효룡이 우물쭈물하며 물었다.
“그럼요. 저렇게 했으면서도 안 한 듯하는 게 핵심이자 기술이라구요!”
이진설이 입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이런 일을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한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해야만 했다.
“응? 화장을 했는데 왜 안 한 듯 감춰야 한단 말이오?”
그렇게 설명해 줘도 전혀 이해를 못하는 효룡이었다. 역시 그는 대부분의 남자들처럼 여자들의 문화에 대해 어두웠다. 그렇다고 그를 탓할 일은 물론 아니었다. 너 무 많이 알면 오히려 이상한 것도 있을 수 있는데 이 경우가 바로 그런 경우였다. 원래 남자끼리도 서로 잘 이해 못하는데 남녀가 서로를 이해하려면 배 이상의 노력 이 필요한 법이다. 문화 차를 극복한다는 것은 시대를 막론하고 쉽지 않은 일인 법이었다.
“어흠, 어흠! 부담되게 그런 눈으로 보지 말게들. 별것 아닌 조잡한 재주에 불과하니. 효룡 저 친구가 벗기는 데만 소질이 있고 입히는 데는 소질이 없어서 좀 도와 준 것뿐이라네.”
장홍이 연신 헛기침을 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
“호오, 그랬단 말이죠~”
벗기는 데 소질이 있다는 장홍의 뼈 있는 말에 이진설이 효룡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했다.
“자, 장형! 그런 누가 들으면 오해할 소릴!”
“오해? 무슨 오해를 한단 말인가? 다 사실인데.”
시침 뚝 떼며 장홍이 말했다. 치졸한 복수극이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조용히 두 사람의 티격태격을 지켜보고 있던 연비가 한마디 했다.
“그러고 보니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은신잠행과 특수 임무를 자주 맡는 사람은 변장변복이 일상이라 화장술까지도 완벽하게 소화할 수 있어야 한다고. 그 들은 언제, 어디서든 어떤 인물로도 변할 수 있어야 한다더군요.”
그 말에 장홍은 잠시 흠칫하는 것 같았으나 이내 웃으며 말했다.
“무슨 말인지 전혀 모르겠소이다. 그냥 어쩌다가 귀동냥으로 배운 것뿐이오. 그렇게 굉장한 기술은 아니지요.”
장홍이 조심스럽게 부정했다. 그런 의혹이 덧씌워져 봤자 좋을 건 하나도 없었다.
“흐흠, 글쎄 과연 귀동냥일지 아닐지… 저 정도 실력이면 꽤 본격적으로 배운 것인데? 아니면 혹시 아내한테서 배웠나요?”
연비는 의외로 집요했다. 그것도 장홍의 숨겨진 약점의 정곡을 찌르는 말이었다. 그의 치명적인 단어가 나오자 깜짝 놀란 장홍이 극구 부인하며 말했다.
“아, 아내라니! 난 아직 독신이라오. 아, 아내라니…….”
확실히 켕기는 게 있는지 장홍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당황하고 있었다.
“호오~ 그건 어떨지… 두고 봐야겠죠.”
의미심장하게 말을 끝맺는 연비였다.
“크으…..”
순간 장홍과 연비, 두 사람의 시선이 허공에서 얽혔다. 그 순간 조용한 불꽃이 튀긴 것 같았다.
“그래도 이 정도면 어딜 내놔도 손색이 없는 규수로군요. 수고하셨어요.”
연비는 윤준호의 변신이 마음에 든 모양이었다. 이 정도면 써먹을 수 있겠어라는 연비의 생각은 아무에게도 읽히지 않았다.
“고맙소.”
그제야 겨우 제대로 된 장홍의 얼굴에 흡족한 미소가 떠올랐다.
“잘 부탁해요, 윤 소저!”
윤미에게 다가간 연비가 웃으며 인사했다.
“자, 잘 부탁해요, 저… 연 소저.”
그 말투랑 행동은 여자로서 손색이 없었다.
“딱딱하게 연 소저는. 그냥 편하게 불러요.”
“뭐라고요?”
“그야 당연히 ‘언니’죠.”
그 말에 윤준호는 물론이고 모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따지고 보면 윤준호는 연비의 한참 선배였던 것이다. 일단 겉으로는 그러했다.
“저, 정말이요?”
윤미가 눈에 띄게 당황해서 허둥거렸다. 설마 그런 말을 들을 줄은 짐작 못한 탓이다. 그 모습을 보고 연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야 당연히 농담이죠.”
그런 걸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쪽이 더 이상했다.
“좋군요. 이 정도면 완벽해요.”
목소리도 아직 변성기가 오기 전의 소년처럼 가늘다 보니 비록 중성적으로 들리긴 해도 남자라고는 절대로 여겨지지 않을 그런 목소리였다.
“정말 못 알아보겠어요. 그냥 계속 그러고 살아도 될 것 같네.”
이진설이 자신보다 더 여성스럽고 조신한 윤준호, 아니, 윤미를 이리저리 뜯어보며 감상평을 늘어놓았다. 그러자 나예린이 동의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 다.
“확실히 너보다 더 여성스럽긴 하구나.”
나예린 역시 꽤 놀란 모양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가끔 너무 진실을 직접적으로 드러낼 때가 종종 있었고, 진실은 때때로 환상과 외면이라는 보호 장벽을 깨뜨리고 사람을 상처 입히는 법이었다. 이진설은 그 진실 어린 말을 듣고는 약간 쀼루퉁해지는 바람에 효룡이 그녀를 열심히 달래야만 했다.
“자, 그럼 축하를 해야겠군요.”
연비가 들고 있던 잔을 위로 들어 올리며 말했다. 다른 사람들도 자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는 잔을 들었다.
“무엇을 위해서?”
“그야 물론 ‘미소저 전대(美小姐戰隊)’ 결성 축하죠. 상금을 위해!”
“상금을 위해!”
쨍!
잔과 잔이 부딪쳤다. 모두 술 대신 향기로운 차가 든 찻잔이었다.
“자, 그럼 마지막 한 명을 어떻게 채울까 하는 고민도 해결됐고, 처리해야 할 일도 있어서 잠깐 나가봐도 괜찮을까요, 린?”
연비가 나예린에게 양해를 구하며 말했다.
“어딜 가는데요, 연비?”
“아, 잠깐 볼일이 있어서요. 물건을 몇 개 팔기로 했거든요. 오늘 사러 오는 사람들이 오는 날이에요.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어야죠.” 무척 성실한 말이었다.
“뭘 파는데요?”
“배요!”
감출 게 없다는 투로 연비가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배요?”
깜짝 놀란 나예린이 반문했다.
“네, 배요.”
그리고는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웃음을 거두지 않은 채 그대로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