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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천(冬天) – 648화


재회. 그리고…….

“허어! 정말로 살려내다니!”

활의당의 부당주 승낙천은 말뿐인 것으로 소문난 소전주가 기적이라고 해도 믿을 수 없는 결과를 내보이자 적잖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솔직히 그는 소전주가 어제 내내 막사에서 나오질 않기에 참견하지 말라는 엄포가 내려진 상황이었음에도 인간인 이상 궁금하여 살짝 안을 들여다보긴 했었다.

그때 그는 박심의 등허리 쪽에 손을 얹고 진지하게 힘을 쏟아 붓는 소전주의 모습에 삽질을 한다며 내심 혀를 내둘렀었고 말이다.

“분명히 진기를 흘려보내 주는 듯 보였는데 어찌 그것만으로 죽어 가는 사람을 살릴 수가 있단 말인가.”

내공으로 사람을 살리는 경우는 종종 볼 수 있는 경우이다. 그만큼 내공은 쉽게 접할 수 없는 고농축의 생명력이라고 보아도 무방했기에 개인적인 능력향상 이외에도 추궁과혈이나 주화입마의 해소, 그리고 내상의 완화와 잔병치레의 치료에도 널리 활용할 수 있는 팔방미인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특출난 사람들을 제외하곤 이름난 의원들 중에 내공의 고수들이 잘 거론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그것은 고도의 집중력 문제를 둘째로 치고라도 하루에 대여섯 명 이상의 환자들을 치료할까 말까하는 활용성의 문제라고 할 수 있었다.

최소 3갑자 이상의 소유자가 아닌 이상 무식하게(?) 내공만으로 환자들을 치료하다간 긴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물론이요, 심력의 낭비로 쓰러지기가 십상이었던 것이다.

사정이 이러하니,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고 침술과 약재만으로도 거의 흡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었는데 누가 구태여 힘들게 내공으로 환자들의 병을 치료하려고 들겠는가.

“분명히 내공만으로 사람을 살릴 수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피 시술자의 기력(생명력)이 끊임없이 빠져나가지 않는다는 전제조건 하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환자는 심각한 내외상으로 인해 쉴새없이 기력이 소모되는 상태였다. 그 말인즉, 툭 건드려서 죽어도 절대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다는 말……. 으음! 그나마 생각해볼 만한 것은 뛰어난 신단의 복용 문제인데 제 정신이 아닌 이상 그 귀중한 것을 복용시켰을 리가 만무하고…….”

흔히들 기가 빠져나간다는 말들을 한다. 일단 사람의 몸밖으로 배출 된 기는 다시 안으로 들어오는 법이 없었고 사람의 신체는 기가 빠져나간 만큼 음식의 섭취나 기타 등등의 흡수로 그것을 다시 충당할 수 있는 오묘한 기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하는 법! 한쪽에서는 과도한 소모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다른 한쪽에서 그것을 충당할 힘이 없다면 결국에는 존재의 소멸로 이어질 수밖에 없었고 바로 박심의 경우가 이에 해당되었다.

이는 물을 흡수하는 솜에 불을 붙이려고 하는 경우를 생각하면 쉬웠는데, 승낙천의 의학적 상식으로는 아무리 진기를 퍼부어 준다한들 이미 회생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에게는 일시적인 도움은 되어줄망정 그것이 근본적인 해결방안이 되어줄 수는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정석이었고 말이다.

“어쩔 수 없다. 직접 찾아가서 물어보는 수밖에.”

상대는 머리는 좋아도 망나니인 소전주였고, 그의 평소지론은 실력보다 올곧은 마음가짐이었다. 그 때문에 소전주에게 가르침을 받는다는 사실이 치욕스러운 승낙천이였지만 직접 보고도 믿을 수 없는 현상을 체험했는지라 달리 어쩔 도리가 없다고 내심 자위했다.

그런 이유로 쉽지 않은 결단을 내리게 된 승낙천은 소전주의 막사로 향하는 도중에 이상한 기운을 감지할 수 있었다.

동천이 머물고 있는 막사에 도착하려면 필요에 의해 작은 공터를 지나치게 되어있었는데, 심상치 않게도 그곳에서 치료를 받는 중인 부상자들이 핼쑥해진 얼굴로 사시나무 떨 듯이 떨고 있었던 것이다.

고개를 갸웃거린 그는 이유를 묻기 위하여 입을 반쯤 열었다가 이내 그 이유를 깨달을 수 있었다.

“악! 으악! 흑흑, 사! 살려주십시오! 크오웩?”

소전주의 막사 안에서 들려오는 비명소리였다.

“아, 거참! 누가 죽인대? 죽일 거면 이 몸이 미쳤다고 힘들여서 널 다시 살려줬겠어? 어어? 안 죽인다니까?”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를 짐작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아니, 저런 소리를 듣고도 영문을 몰라한다면 그게 더 이상한 거였다.

꿀꺽!

절로 마른침을 삼키게 된 승낙천은 때가 아닌 듯하여 그냥 돌아갈 까도 생각했지만 사람의 호기심은 어쩔 수 없었던 듯 그의 신형은 현재의 의지와는 반대로 천천히 막사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잠시 후 문제의 그 막사에 도착한 그는 최대한 기척을 죽이며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헉? 저, 저런 잔인한!’

두 눈을 부릅뜬 승낙천은 쉽사리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도 그럴 것이 박심의 혈도를 제압한 동천이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침(鍼)들을 이용하여 박심의 이곳 저곳을 푹푹 찌르고 있었던 것이다.

“끄아악! 사람 죽네에에!”

왼쪽 옆구리 부분에 장침을 찔러 넣은 동천은 박심이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던 말던, 찔렀던 장침을 두어 번 후비적거리다가 이내 무언가 깨달았다는 얼굴로 말했다.

“아참? 한치를 덜 찔러야 하지? 이렇게 더 찌르면 잘못하다간 죽을 수도 있다고 사부님께서 말씀하셨는데 그것을 착각하다니……. 이봐 호박씨. 미안해. 내 맘 알지? 일부러 그런 거 절대 아니다?”

일부러 한 짓이 빤히 보이는데 아니긴 무슨 개뿔이 아니겠는가.

뒤이어 잔인하게도 찌른 곳 또 찌르기의 수법을 펼쳐 보인 동천은 다시금 미안하다며 장침을 빼는 척하면서 더욱더 깊숙이 찔렀고, ‘켁?’ 소리와 함께 더 이상 빌어댈 기운조차 없어진 박심은 서서히 정신이 무너지는 징조를 보이기 시작했다.

“흐헤, 흐헤! 이히히! 이히히히히히!”

눈이 돌아가고 침까지 질질 흘렸다. 그것을 본 동천은 연기가 아닌 실제 상황인 듯 보이자 박심에게 꽂았다가 고의적으로 빼내지 않았던 수십 개의 침들을 차례차례 뽑아내기 시작했다.

“랄라∼, 한 개 뽑고 두 개 찌르고, 두 개 찌르고 열 개 찌르고∼. 아싸, 후비고!”

치를 떨며 훔쳐보는 중인 승낙천은 노래 같지도 않은 노래였지만 그간의 상황을 알려주는 듯한 내용이자 절로 오한이 드는 것을 느꼈다.

알다시피 이 침이라는 물건은 타점을 최소화시켜줄 수 있는 최적화의 도구라고 할 수 있었는데, 만일 이것이 고문도구로 활용된다면 통각이 느껴지는 혈들을 침만큼 정확하게 집어낼 수 있는 도구는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보면 되었다. 그러니까 동천은 사람을 살리는데 쓰여야할 도구를 고문용으로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으으, 오늘 오전 내내 저렇게 괴롭히는 중이었단 말인가? 이건 듣던 것보다 더욱 잔인한 녀석이로구나!’

그 사이 박심의 수혈을 점한 동천은 잘 놀았다는 듯 힘차게 기지개를 켰다.

“으그그극! 후아! 이제 좀 쉬어야겠군. 그리고 누군지 몰라도 거기에 있는 거 다 아니까 용건이 있으면 빨리 기어 들어와.”

‘헉? 알고 있었던가?’

깜짝 놀란 승낙천은 자신도 모르게 한발 물러섰지만 결국 도살장에 끌려 가는 소처럼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조제의원 승낙천이온데……, 오해는 말아주십시오. 환자를 치료 중이신 것 같아서 잠시 대기하고 있었던 겁니다.”

딴에는 태연하게 말하는 승낙천. 그러나 동천에게는 어림도 없는 짓이었다.

사실 그는 승낙천의 접근을 처음부터 감지하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 해주고 있었다.

원래는 이런 장면을 보여주지 않아도 되었는데, 어제 그가 보여준 성품을 봐서는 자신을 어려워하긴 해도 무서워하는 것 같지는 않자 일부러 앞서의 장면을 보여주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결과에 만족한 동천은 흐뭇해하는 얼굴로 승낙천에게 말했다.

“이 몸이 뭐라고 하셨는가? 자네는 찾아온 용건이나 말하시게.”

하도 정신이 없는 바람에 소전주를 눈앞에 두고도 진정한 목적을 잊고 있었던 승낙천은 뒤늦게 주위를 환기시킨 뒤 진지한 표정으로 돌아와 동천에게 물어보았다.

“실은 제가 어제 불경스럽게도 소전주님의 치료 장면을 잠깐 입구 밖에서 살펴보게 되었는데 그 당시에는 소용없는 방법이라 여기고 그냥 지나쳤었습니다. 헌데, 다음날 아침까지 열과 성의를 다하신 소전주님께서 기적과도 같이 이 환자를 살리시자 감탄과 더불어 도저히 납득할 수 없다는 옹졸한 마음에 주제넘게도 자문을 구하러 이렇게 찾아온 것입니다. 도대체 어떠한 방법을 사용하셨기에 회생이 불가능하다고 여겼던 이자를 살려내실 수 있으셨던 겁니까?”

사실 승낙천이 회생불능의 환자였다고 말은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박심의 지위를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는 것이었다. 침술은 의원의 능력으로 어떻게 해결을 한다지만 말단무사에 속한 자에게 약재가 지급되어 봤자 얼마나 고급의 약재가 지급될 수 있었겠는가.

지금 승낙천은 그 사실을 전제 하에 물어보는 것이었고 동천 또한 그것을 간파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말했다.

“흐음, 알고 싶은가?”

승낙천은 생각 외로 쉽게 알려줄 태세이자 반색을 하며 재빨리 고개를 끄덕였다.

“예, 소전주님! 부디 가르침을 내려주십시오!”

“음! 알겠네. 잠시만 있어보게.”

확고한 의지를 보여주는 승낙천의 태도에 기다렸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난 동천은 뒤쪽으로 걸어가 길다란 장도(長刀)를 손에 들고 돌아왔다. 당연히 놀란 승낙천은 긴장한 눈초리로 물었고 말이다.

“소전주님. 그 칼은 왜…….”

천천히 접근하는 중인 동천은 능글맞게 웃으며 승낙천에게 말했다.

“왜긴, 왜야. 이 몸이 말로는 잘 설명하지 못해서 자네에게 여기 이 호박씨하고 똑같은 상처를 먼저 낸 다음에 직접 치료를 시행하려고 그러는 거지.”

“예에에?”

정신을 놓칠 정도로 아찔한 공포를 경험한 승낙천은 소전주가 다가오는 거리의 서너 배를 뒤로 물러서며 겨우 말을 꺼냈다.

“지, 진정하십시오, 소전주님! 저, 저는 그렇게까지 해서 알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습니다!”

동천은 두려움에 떠는 승낙천의 말을 씹었다.

“하하, 뭘 그리 당황하는가. 자네는 너무 두려워 말고 이리로 다가오시게. 혹, 아픔이 두려워서 그러는 것인가? 하하,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말게. 피 조금 넘쳐나고 뼛조각이 조금 튀어나올 뿐인데 어디 그런 걸로 사람이 쉽게 죽는다던가? 막말로 아주 쪼오오금 따끔거릴 따름이라네. 흐흐흐.”

승낙천은 너무도 태연스럽게 구라를 치는 소전주의 작태에 이게 진정 현실인가 의심이 생겨날 정도였다. 하지만 그는 꿈과 현실을 구분하지 못할 정도로 심기가 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렇게 죽을 수 없었던 승낙천은 ‘으, 으아아아악!’ 하는 비명소리와 함께 부리나케 막사를 빠져나와 줄행랑을 쳐버렸다.

그러자 혼자서 키득거린 동천은 들고 있던 무기를 아무렇게나 뒤로 집어 던진 후 손을 탁탁 털며 입을 열었다.

“짜식, 까∼불고 있어.”

성질 같아서는 얼굴에 긴 칼자국이라도 남겨주고 싶었지만 승낙천은 그에게 있어서 소중한 인적자원이었다. 가뜩이나 의원이 모자라는 형국인데 일을 제대로 시켜 먹으려면 상처 없이 말만 잘 듣게 하는 것이 최고였던 것이다.

“어디 보자. 오늘 아침에 보니까 정 의원인지 뭔지 하는 뚱땡이는 고분고분했으니까 그놈은 되었고, 도망친 저놈도 이제는 뭔가 깨달았을 테니 좀 더 지켜보기로 하고……. 이 호박씨 새끼도 약간이긴 하지만 분풀이를 해 놓았으니, 이제 이 몸이 하실 일은 맘 편히 잠시 주무시는 일밖에 없는가?”

새벽에 운기조식으로 몸을 추스르기는 했지만 사실 지금 그는 상당히 피곤한 상태였다.

어제 박심의 치료를 시작하기 전에는 아무리 길게 잡아도 1시진 정도만 수고하면 승낙천에게 떠넘겨도 죽지는 않겠다 싶었는데, 뜻하지 않게 내상까지 부담해야하는 상황에 처하는 바람에 적어도 안정권까지 치료하는 시간이 다음 날 새벽까지 이어지게 되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박심의 치료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났다고는 해도 3시진이면 뒤집어쓰고도 남을 시간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이 시도했다면 백 날을 용을 써도 되려 환자보다 먼저 진기가 고갈되어 세상을 하직했겠지만 이는 동천이었기에 빠른 시간 내에 끝낼 수 있었던 문제였다.

그렇다면 동천은 무엇 때문에 그토록 오랫동안 시간을 할애해야만 했던 것일까?

설명을 하자면 이렇다. 처음에는 오직 살려놓겠다는 일념 하에 치료에만 열을 올렸는데, 어느 순간 위험한 고비가 넘어가자 사정화 때에는 감히 생각도 해보지 못했던 방법들을 하나 둘씩 박심의 몸을 상대로 시도해보았던 것이다.

어느 때는 박심의 내공을 전부 자신에게 흡수도 해보고 그것을 융화시켜 보려고도 해봤다.

짧은 순간이었지만(시간이 길어지면 박심이 위험했다) 상당히 이질적이고 거북한 기분이 들었음에도 일단 자신이 흡수를 하기만 한다면 신체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는 전제 하에 단전의 구석 한곳에 쟁여 놨다가 야금야금 흡수를 시도한다면 아주 못할 것도 아니라는 예감이 들었다.

또한 자신의 진기를 좀더 세분화하여 박심의 세맥 깊은 곳까지 침투에 침투를 거듭하기도 해보았는데, 이때엔 너무 깊숙이 관여를 하려고 해서 그런지 하마터면 내공의 일정 분량을 소실할 뻔하기도 했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어떻게 하면 자신의 진기가 좀더 빠르게 상대의 몸 속을 헤집으며 치료를 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여러 각도에서 시도를 해보느라 시간이 가는 줄도 모르고 늦은 새벽까지 날밤을 꼬박 세우게 되었던 것이었다. 바로 그런 이유로 뒤늦게 긴장 같은 것이 풀리자 상당히 피곤해지는 자신을 느꼈던 것이고 말이다.

“으아함∼! 에이, 몰라! 일단 잠부터 자고 보자.”

재워놓은 박심에게 다가가 왼팔을 잡고 질질 끌고 나온 동천은 약간 떨어진 곳의 환자들에게 만일 이놈의 혈도를 풀어주기라도 한다면 아주 죽을 각오를 하라는 으름장을 늘어놓은 뒤 마침내 꿈만 같은 휴식에 들어갔다.

그는 곧 세상 모르고 꿈나라에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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