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04화
내가 마지막으로 장허운 씨를 만났을 때. …아니, ‘불렀을 때’ 호출되어 나타났던 그는 여전히 리조트 직원이었다.
괴담 리조트에서 근무하는 괴담.
한때 인간이었으나 이제는 인간이 아닌, 으스스한 존재.
하지만 지금 눈앞에 있는 건….
“저, 그러니까, 제가… 어?”
사람이다.
“형제!”
너무 사람 같다. 김허운과 눈이 마주치자 눈물을 주륵 흘리더니 서로 얼싸안고 있는 모습까지.
죽은 줄 알았던 가족을 다시 만난 사람의 모습이다.
사람, 사람의 모습으로….
[오, 감동적이군요. 가족 상봉이라!]
……!
그래.
자연스러운 감정표현을 한다고 무조건 사람은 아니다.
‘애초에 사람이면 이렇게 나타날 수도 없어.’
장허운 씨라는 사람은 죽고 리조트 직원만 남았기에, 내가 새로운 리조트 부지로 선정한 이 ‘임대 공간’에 호출될 수 있던 것이다.
그러니까 말하자면….
‘여전히 어둠이지만, 마치 생전 인격을 되찾은 것처럼 보인다’에 가까운 모습인… 것이다.
‘…대체 어떻게?’
경이로움인지 두려움인지 모를 것이 등골을 스친다.
그 사이, 간신히 상봉을 마친 장허운 씨는 나를 돌아보며 말한다.
“저, 마스코트님. 감사합니다…! 이것도 마스코트님이 해주신 일인 건가요…?”
…나는 묵묵히 그 직원을 보다가, 물었다.
너 는
누 구 야 ?
멈칫거린다.
“…예? 저, 그러니까… 들소, 그러니까… 백일몽에서 일하다가, 그, 리조트에서 일하게 된 들소입니다.”
나 는
누 구 야 ?
무언가 눈치챈 듯, 장허운 씨의 표정이 변한다.
“마스코트님이, …노루 씨셨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
“제가 마무리팀이었을 때부터, 많은 도움만 받았고 말입니다. …마스코트님.”
장허운 씨가 침을 삼킨다.
“저는… 죽었습니다. 맞죠?”
…….
“그 리조트 방에서, 다른 직원에게…. 그리고 마스코트님께서 살려주신 거고, 그래서…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직원으로 살아남은 게… 맞습니까.”
맞 아
“……예.”
고개를 푹 숙였던 장허운 씨는 곧 인위적으로 만든 듯 약간 더 밝은 톤으로 말을 이었다.
“저, 분명 요원분들이 계시는 온천 같은 곳에 있었는데, 거기서 희미하게 자의식을 되찾기도 했었습니다.”
아.
‘효과가 아예 없던 건 아니었나.’
물론 유의미한 회복은 불가능 판정을 받을 정도의 미약한 변화라, 도리어 희망고문 당하는 절망감이 더 컸을 것 같아 입이 씁쓸해지는 종류.
그러나 이제 장허운 씨의 눈에서는 기대감과 긴장감이 휘몰아친다.
“그런데 지금은, 의식이 명료합니다. 저, 저는… 회복된 건가요? 이것도 직원에게 해주시는 일인 겁니까?”
그 순간, 김허운이 참지 못하고 초조한 기색으로 입을 열었다.
“저도, 저도 직원이 되고 싶습니다…! 저, 그걸 물어보시려고 저를 이곳에 살리신 것, 맞지 않습니까? 서명하면 되나요?”
죽고, 되살아나고, 인간이 아니고.
이런 정신 나간 오컬트적 일들을 몇 번이나 겪고 있는데도 무명찬란교의 시설에서 자란 두 사람은 이상할 정도로 일상적으로 나를 대한다.
그것이 기이한 오싹함을 자아낸다.
그리고 상념이 깊어진다….
서 명 하 면
일 해 야 해
나는 앞발로 가리켰다.
여 기 서
“여기…라면.”
두 인영의 얼굴에 약간 당혹스러운 기색이 깃든다.
승강장과 연결된, 아무것도 없는 텅 빈 공간.
열다섯 평도 안 될 작은 상가 공간.
한 동 안
여 기 서
나 갈 수 없 어
“…!”
그래.
‘제정신으로는 나갈 수 없지….’
나가는 순간 다시 생전의 인격은 사라지고 리조트 괴담 속 직원만 남을 테니까.
결국, 이들은 거의 이 공간에 갇힌 채로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10평도 안 되는 좁은 공간에.
미 안
여 기 서 만
그 모 습 이 야
그리고 내가 이 공간을 없애면, 리조트로 복귀해야 한다. 거기서는 이렇게 생전의 인격으로 존재할 수 없고 말이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하지만.
“…그래도 여기 있어 보겠습니다.”
…!
“여기도 리조트라면 괜찮을 것 같아요.”
그러더니 내 눈치를 보는 것처럼 살짝 말을 덧붙인다.
“저, 그리고 형제와 함께 일할 수 있다면… 더 즐겁게 근무할 수 있을 겁니다.”
“예, 저는 좁은 공간에 있는 건 익숙합니다. 잘할 수 있습니다…!”
‘허운’들은 적극적으로 내게 어필하듯 대답했다.
마스코트로서 열정적인 직원을 볼 때 느끼는 기특함과 인간 김솔음이 느끼는 착잡함이 동시에 내 머리를 점령한다.
그리고 둘 모두 인정한다.
지금 답은 하나라는 것.
알 았 어
나는 김허운의 고용계약서에 서명을 받았다.
“저, 그럼 어떤 일을 하면 됩니까?”
기 념 품 판 매
그 순간.
내가 임대한 공간의 바닥과 천장의 재질이 변했다.
“…!”
격식 있는 목재와 황금빛 장식들.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것이다.
그리고 중앙에 불쑥 솟아오르는 목재 가판대에 물건들이 진열된다.
플라워 골든 리조트의 기프트숍에서 파는 상품들, 어메니티.
그리고 가장 중요한… 식품들.
착한 아이 초콜릿바(골든 에디션), 플라워 쿠키, 정원 샐러드, 그리고 유쾌 테마파크의 로고가 붙은 핫도그와 몇 가지 테마파크 음식들까지.
[ 플라워 골든 리조트 ]
기념품 팝업 스토어
망상홈쇼핑의 대체재였다.
‘거기가 날아갔으니, 생존자들은 식료품을 구할 곳이 하나 없어진 상태지.’
그러면 열차에 타 있던 생존자들의 삶이 더 어려워진다는 뜻이며, 고영은 씨에게 어떤 악영향이 갈 확률이 상당히 높았다.
‘그러니 대체해야 한다.’
오염의 위험은 있겠지만, 그래도 최대한 ‘인간이 섭취할 수 있는’ 식료품을 구해왔으니 괜찮으리라.
‘좀 더 많이 팔거나 공짜로 넘기고 싶어도… 여기까지다.’
놀랍게도 리조트 본토에서 여기까지 이 물건을 끌어오는 데에도 ‘운송료’ 같은 것이 발생했다.
‘주화를 급격히 소모해야 넘길 수 있어.’
그나마 여기가 방송국이라는 특성상 세광특별시 너머 괴담과 어느 정도 ‘연결’이 되기에 가능한 일인 것 같았다.
나는 한숨을 참았다.
그리고.
조 심 해
진 상
내 가 쫓 아 내
양산형 마스코트 하나가 배치되었다.
‘리조트 영역이니까.’
골든 마스코트로서 기본적인 기능을 수행하리라.
다행히 직원들은 10평으로 그어놓은 금 너머로도 나올 수 있었다. 리조트의 마스코트인 내가 허락한다면 말이다.
‘후우.’
…오후역 안이라도 다니는 반경이 넓어져서 다행일 뿐이었다.
[인상적이군요. 사실 리조트에 큰 도움이 되는 선택은 아니겠습니다만…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재미가 있는 법이지요.]
[당신의 두 직원도 행복해 보이는군요! 이런, 내 친구처럼 좋은 고용주도 드물 겁니다.]
…그건 아닐 테지만, 그래도 다행이긴 했다.
‘후우.’
하지만 여전히, 평범한 사람처럼 웃고 대화하며 움직이는 두 명의 죽은 자들, 괴담을 보는 것은 기이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어떻게 가능한 거지?
‘박민성 주임님이나 나는… 최소한 죽은 상태는 아니었는데.’
심지어 꿈이라서 그런 것도 아니다. 저들은 정말로 세광특별시 안으로 불려온 것이니까.
그런데도 저렇게 사람 같은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건, 어쩌면….
‘세광특별시의 특성…?’
잠깐만.
-그리고 이상한 말소리가 들렸어요. 천국으로? 낙원으로… 뭐 그런 뜻이었던 것 같은데….
설마 세광특별시의 재난이.
유쾌연구소의 천국이니 낙원이니 하는 연구가….
저 현상과 관련이 있는 건가?
기 다 려
나는 직원들을 두고, 임대 표식이 뜬 상가의 빈 공간 너머를 보았다.
‘역시.’
한빛 도서관 휴관 때처럼 그 너머로 정상적인 대합실이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대합실을 지나, 반대편 승강장으로 향했고.
‘…!’
…그곳의 시설에서 몇 가지 충격적인 소식을 발견하게 된다.
하지만 그 충격도 직면한 과제 앞에서는 일단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당장 중요한 게 코앞에 있었으니까.
청동 요원과 은하제 대리님.
죽은 사람들의 일용직 계약서를 파기하는 것.
* * *
“대리님.”
은하제는 눈을 떴다.
눈앞에는 그녀의 후배가 창백한 안색으로 그녀를 들여다보고 있었다.
“노루야.”
은하제는 반사적으로 사지가 멀쩡한지 확인한 후, 주변을 둘러보며 인상을 썼다.
“우리 아직 세광시냐.”
“…….”
옆에서는 고지식한 공무원 양반이 자신처럼 정신을 차리고 있었다.
그 말이 무슨 뜻이냐면, 여전히 죽은 몸을 다소 뻣뻣하게 일으키고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섬뜩한 모습이었다.
‘별일을 다 겪네.’
시체로도 움직여보다니 말이다.
“죄송합니다. 제가….”
“무슨 소리야, 또.”
은하제는 후배의 이마를 툭 쳤다.
“애초에 다 같이 합의해서 들어온 거고, 우리는 운이 나빠서 먼저 안락사약을 복용한 거지. 안 그렇습니까, 공무원 양반?”
“…예.”
요원의 눈에는 충격이 서려 있었으나, 그보다 침착함과 안도가 컸다.
‘솔음이도 멀쩡하고, 다른 사람들은 잘 나간 것 같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나 본데.’
그건 은하제 본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확인차 묻는다.
“다른 일행들은? 대충 네가 생방송에서 지상최대의 쇼 같은 거 하고, 뭐 홈쇼핑 압류당한다는 소리는 들었다. 우리는 창고에서 짐 정리하는 중이었거든.”
“대충 비슷하긴 합니다만, 지상최대의 쇼 같은 건 아니고…. 아무튼 다른 분들은 무사히 나가셨습니다.”
“오냐.”
그럼 됐다.
은하제는 담배가 땡겼으나, 여기서 빼물지는 않았다. 죽은 몸으로 담배를 피울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에.
게다가 지금 자신들이 있는 곳이 일종의 가게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여긴 또 뭐냐?”
“아. 여긴 안전한 곳입니다. 제가 빌린 겁니다. 임대차 계약으로요.”
빌렸다고?
느낌이 좋지 않았다.
김솔음이 웃는다. 그 뒤로 사람의 인영이 보였는데, 어딘가 익숙해 보이기도 하는….
“…화각 요원?”
“…!”
류재관이 몸을 일으켜 당장 뒤의 인영을 확인하려 들었다. 김솔음이 달려가서 제지한다.
“진정하십시오, 요원님.”
“대체 어떻게 된 겁니까?”
“일단 나가서 이야기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노루야.”
은하제는 죽은 몸을 일부러 다소 익살스럽게 흔들었다.
“우리… 쓰읍. 나가는 건 힘들 것 같다만.”
“아닙니다!”
김솔음이 다급히 품에서 종이 두 장을 꺼냈다. 바로 자신들이 사인했던 일용직 고용 계약서였다.
“두 분의 계약서를 입수했습니다. 이걸 파기하면, 여기서 나가실 수…….”
그리고 표정이 굳었다.
“노루야?”
계약이
파기가 안 된다.
‘…왜?’
추락하듯 눈앞이 아찔해진 김솔음은 다음 순간 깨닫는다.
‘너무 약했어…!’
임대 공간을 극히 일부만 대여하겠다는 발상은, 결국 장악력의 부족으로 이어진 것이다.
고용인들이 마치 살아 있는 사람처럼 운신하게 만들어줄 수는 있으나, 종속 자체를 취소하고 파기할 만한 권한은 이 임대 계약자에게 없었다.
그만한 힘이 없었기 때문에.
하지만 그건 해결할 수 있었다.
보증금은 빌리면 그만이니까!
“…약간 문제가 있었는데, 걱정하지 마세요. 바로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무슨 문제입니까?”
“…….”
“무슨 문제냐고 물었습니다. 포도 요원.”
“…제가 임대 공간을 너무 작게 계약해서 그런 걸 겁니다. 더 크게 계약하면….”
“하지 마십시오.”
“…!”
“초자연 재난에서 함부로 계약 같은 것을 하면 안 됩니다! 이미 계약했다면 최소한 그 크기를 키우지 마십시오.”
류재관은 김솔음의 팔을 잡았다.
“요원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정도만 계약한 것 아닙니까?”
“…….”
“이 공간을 대여하려고 무슨 짓을 했습니까. 무슨 대가를 지불했습니까?”
“정말 괜찮습니다.”
김솔음은 팔을 빼냈다.
“제가 잘 처리했습니다. 남은 비용도 안전하게 빌릴 방법이 있….”
“제정신입니까?!”
아차.
“초자연 재난에게 빚을 지겠다는 발상은 절대로, 절대로 하지 마십시오!”
“…….”
김솔음의 표정에 피로감 같은 것이 짧게 나타났다가, 곧 사라지면서 태연한 얼굴이 되었다.
“이미 진 상태입니다.”
“…!”
“액수로 큰 차이 없을 겁니다. 그럼….”
“없겠냐??”
이 정신 나간 녀석이!
은하제는 얼른 자신의 후배를 붙잡고 속삭였다.
“너 한 번이라도 어둠에서 괴물에게 뭘 자꾸 빌려서 빚쟁이가 된 자식이 좋은 결말 맞는 거 본 적 있냐?”
“…….”
“없지. 너도 알 거다.”
김솔음의 표정이 흐려지더니, 곧 이를 악물었다.
하지만 은하제는 말을 바꾸지 않았다.
“그러니까 일단 둬 봐.”
“대리님,”
“잊지 마라. 우리 몸은 밖에 멀쩡히 있어.”
은하제가 엄지로 허공을 가리켰다.
저 바깥을.
“이건 꿈을 통한 진입이라고 했잖냐. 일종의 코마 같은 거라고.”
“…….”
“오히려 좋네. 이미 죽어서 아사 걱정이나 오염 걱정 안 해도 되는 거니까.”
“무슨 말도 안 되는…!”
“괴담에 임대차 비용 빚지는 것보다 말 되니까 조용히 해라.”
“…….”
은하제는 입을 다문 김솔음의 등을 쳤다.
요원과 눈빛을 주고받으며.
“좀… 긴 꿈을 꾸는 거라고 생각하자고. 알았지?”
사실 아니라는 건 안다.
가사 상태로 정신은 악몽 속 괴담에서 죽은 채로 붙잡혀 있기? 그야말로 그린 듯한 실종 처리 직전이다….
“길게 보자.”
하지만 이 결론은 진심이었다.
* * *
몇 시간 후.
우리는 승강장에 진입하는 열차 쉘터에 신호를 보내서 탑승했다.
“괜찮…!”
우리를 보며 무언가 할 말이 많은 듯 화색을 띠던 고영은 씨는, 확 줄어든 인원과 분위기를 보더니 그냥 ‘고생 많으셨다’라는 말과 함께 받아주었다.
그리고 나와 두 일행은 서로 갈라져서 이동했다.
목적이 다르기 때문에.
“…….”
이렇게 된 이상 그냥 나갈 수는 없다.
‘다음 역도 확인한다.’
아니, 최대한 많이, 빨리 역의 유쾌연구소 시설들을 확인할 것이다. 숨겨진 요소들을 확인하고, 어떻게든 사람들을 여기서 빼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말 것이다….
나는 떠올렸다.
내가 다음 역에 간다고 하자, 동행하겠다는 두 사람에게 보인 반응을.
-안 됩니다!
-…….
-아니, 그러니까… 최대한, 열차에 있어 주십시오. 만약에 열차에 있는 게 여의치 않으면 오후역에, 가판대 옆에서 절대 일손은 돕지 마시고 계셔주시면….
-알았어.
담담하게 내 어깨를 두드리던 손.
-어떻게든 열차에 엉덩이 비비고 끼어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라. 이 꼰대 양반도 하다 보면 넉살이 늘겠지.
-…….
-뭐든 알아올게.
그 말에 긍정했다.
‘열차에 있으면 온전한 모습으로 있을 수 있으니까.’
그러면 두 사람도 안전할 것이다.
그래서 지금, 두 사람은 이 열차 쉘터의 뒷칸을 관리한다는 고영은 씨의 이모를 보러 간 상황이었다….
앞칸의 차장이라는 자에게 줄 뇌물도 몇 개 지참하고 말이다.
‘괜찮아.’
그리고 여전히 외부인으로 있을 나는, 이전 방문 때 7번 칸의 노점상에서 구매한 것을 사용하기로 했다.
-8번 칸 숙박권 구입 창구
“여기 있습니다.”
‘열차 숙박권’은 교통카드에 송곳으로 일련의 번호를 새겨둔 것이었다.
나는 문 앞을 지키고 선 쉘터 사람에게 해당 물건을 넘기고, 열차 8번 칸에 들어갈 수 있었다.
드르륵.
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담요와 허름한 이부자리가 갖춰진 마지막 열차칸이 모습을 드러낸다.
나는 숨을 몰아쉬었다.
‘하루만… 하루만 자고 이동하자.’
너무 많은 일들이 일어나서 지금, 옳은 판단을 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허운 씨와 허운 씨, 죽은 대리님과 요원님, 세광특별시, 유쾌연구소, 낙원, 토크쇼, 리조트…….
‘쉬어야 해.’
사람의 몸은 130666과 달리 먹고 자고 쉬어야 한다.
일단 자고 일어나서, 다시 생각하자.
나는 본능적으로 맨 끝에 있는 자리로 가서 이부자리에 몸을 넣었다.
하지만 이미 자고 있는데, 또 자는 게 의미가 있는가 등이 머릿속에서 몰아치며 도리어 잠이 오지 않는다.
그래서 물었다.
‘브라운. 네가 계약서를 인수해 준 사람들 말인데, 토크쇼에서 다들… 일을 시작한 거야?’
[그렇습니다. 노루 씨! 흠, 그럭저럭 쓸만한 인력부터 간신히 심부름꾼이나 해내는 종자까지 다양하군요.]
그리고 그중에는 내 일행도 있을 것이다.
‘…내 일행들이 귀가할 때, 내 편지 좀 전달해 줄 수 있을까.’
[어려운 부탁은 아니지요. 노루 씨!]
나는 앉은 자리에서 빠르게 편지를 썼다.
두 사람이 세광특별시에서 죽은 채 빠져나갈 수 없게 되었다는 것.
…이 일에 내 책임이 있다는 것.
하지만 어떻게든 방법을 찾을 거고, 그걸 위해 일단 나는 계속 세광특별시에서 탐사를 지속하겠다는 것.
그러니 내가 깨어나지 않아도 당황할 필요가 없다는 것까지 말이다.
그리고…….
정말 죄송하지만, 해당 편지를 최 요원님께도 전달해달라는 부탁과 함께.
‘…이렇게, 이자헌 과장님께 전달 부탁할게.’
[노루 씨, 나는 내 친구가 왜 칼잡이에게 이토록 저자세로 편지글을 남기는지 이해하기 정말 어렵습니다만…. 세상에, 편지 자체도 과분할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말할 것 같았지만, 나는 그냥 적당히 달래며 브라운에게 부탁을 마무리했다.
‘고마워.’
그리고 다시 정적이 찾아왔다.
“…….”
밝은 열차 안. 바닥에 누운 나는 아무 의미 없이 시선을 돌렸다.
맨 끝 칸이라 문이 없었지만, 대신 그 자리에 마무리가 되어 있기는 했다. 나사로 조인 판을 보는 눈이 점점 멍해진다.
나사, 금속성 색깔, 모두 규격이 같지만 간혹 세월에 흐름에 닳았는지 무늬처럼 구겨짐이 있기도 하다. 가령 왼쪽 두 번째 나사는 마치 로고처럼…….
‘…잠깐.’
백일몽 물약 뚜껑이다.
“…!!”
나는 몸을 일으켰다.
다시 나사를 보았다.
그래도 감상은 변함없다.
‘맞아.’
주머니를 뒤져서 사용하고 남은 저등급 재생물약의 병을 꺼내어서, 그 뚜껑을 나사에 들이댔다….
…중앙의 무늬가 일치했다.
“…….”
나는 그 나사로 위장한 뚜껑에 손을 뻗어서, 힘을 주어 당겼다.
반발감이 들었으나, 결국 놀랍게도 쑥 빠져나왔다.
그리고 뚜껑에 달려 나사처럼 말린 쪽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오~ 이걸 알아봤어?
그럼 이 꿀팁을 읽을 자격이 있지ㅋㅋ
“…!”
잘 읽고 열심히 해봐
그렇게 시작하는 쪽지의 마지막, 작성자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이강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