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 311화
내 그립톡이.
꿈 배양기의 마지막 버튼 부품이었다.
소원권에 해당하는 메인 버튼.
“…….”
나는 멍하니 그것을 보았다.
불이 들어온 버튼은 마치 유혹하듯이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무의식중에 그곳으로 손을 가져다댔….
“포도 요원!!”
“…!!”
퍼뜩 손을 뗐다.
옆에서 최 요원이 내 팔을 잡더니, 반대 손으로 기기에 연결된 전원을 내리고 코드를 뽑아냈다.
“스스로 말했지. 문제가 생기면 바로 뽑아달라고.”
“……감사합니다.”
“방금 거 뭐야.”
나는 불이 나간 버튼을 보다가, 혼이 나간 듯이 중얼거렸다.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아무래도 제가, 이 기계의 가장 중요한 부품을 가지고 있었나 봅니다.”
“…….”
내가 완성시킨 버튼을 관찰한 최 요원의 동공이 확장되었다.
“메모리얼 그립톡.”
“…….”
“그런데 색이….”
나는 잠시 갈등하다가 말했다.
“메모리얼 그립톡이 아닙니다.”
“뭐?”
“모양이나 기능은 분명 메모리얼 그립톡이라 저도 똑같은 건 줄 알았는데, 아니라고 하더군요.”
“누가.”
“어르신께서요.”
“…!”
-이분은 더 귀물이야. 다만 우리 공방의 물건을 흉내 내신 것 같구나.
“…무언가 더 귀중한 물건이, 메모리얼 그립톡을 흉내 낸 것 같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그립톡의 원래 기능은, 유쾌연구소의 소원권 버튼이었고 말이다.
나는 여전히 버튼이 되어 그곳에 있는 그립톡을 응시하다가,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지금은 보이지 않지만, 활성화가 되면 나타나 내 머리맡을 맴돌던 메모장.
<어둠탐사기록> 팝업 스토어의 흔적.
[어둠탐사기록 리얼굿즈 박스]
-새로운 굿즈의 사용 권한 해금!
그립톡은 내가 팝업스토어에서 당첨된 1등 상품 중 하나였다.
리얼굿즈 박스 속에 든 상품.
‘그런데 왜 그게… 유쾌연구소 꿈 배양기의 버튼인 거지?’
머릿속이 얼얼하다.
그래서 나 스스로 정리하기 위해서, 우선 부서진 그립톡을 고쳐준 어르신의 말씀을 설명했다.
이 물건을 반감 없이 신기하게만 보셨다는 점도.
“…….”
이야기를 듣는 최 요원의 눈이 생각에 잠긴 듯 깊어졌다.
“그러니까 삿된 물건은 아니다…. 그런 주장을 하고 싶은 거지?”
“주장이라기보단, 그냥 경험한 대로 말씀드린 겁니다.”
“…그래.”
최 요원이 코드 전선을 손에 쥔 채로 바닥에 앉았다. 그리고 재 묻은 앞자리를 털어내더니, 툭툭 쳤다.
“우리, 할 이야기가 꽤 긴 것 같은데.”
…….
“포도야. 그래서 저거 어디서 났어.”
“못 믿으실 텐데요.”
“그래? 그래도 일단 들어는 볼게. 내가 또 듣는 것도 잘하거든. 에이스 요원의 덕목이야, 그것도.”
나는 빙긋 웃는 최 요원의 얼굴을 보다가, 결국 그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충동적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다른 세상에서 왔습니다.”
상대가 숨을 멈췄다.
* * *
…언젠가, 누군가에게 내 사정을 솔직히 털어놓는 상상을 한 적은 있었다.
하지만 미친 사람 취급받거나, 괴담 세계관다운 취급을 받을 게 분명했기에 말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상했다.
내가 이걸 내 입으로 말한다는 게.
…후련하고 이상하다.
하지만 아무 생각 없는 결정은 아니었다.
“…….”
나는 최 요원을 보았다.
…분명 이 사람의 성향상 내게 말해주지 않은 것들이, 더 숨기고 있는 정보와 상황들이 있을 것이다.
‘그걸 얻으려면, 나도 내 전제조건을 말해야 하는 거지.’
숨기기만 해서는 안 그래도 수상쩍은 내가 더 수상해 보이겠지. 그렇게 서로 의심만 하면서 패를 보여주지 않을 것이다.
이제 그건 안 되겠다.
‘새로운 단서가 나왔으니까.’
지금 이 판에 뭐든 정보와 추론이 필요했다. 누군가와 대화하고 의견을 듣고 싶다.
그러니 정보를 원한다면 나도 내놓아야 했다.
…최대한, 최 요원의 신뢰를 받을 수 있는 방식으로.
“…초자연 재난 ‘반짝반짝 용궁’에서 아이들의 신원이 파악되지 않는 경우를 기억하십니까?”
“…기억나지.”
지구상에 없는 나라의 이름을 대거나, 신체적 특성이 조금 다르거나, 아니면 현실에 없는 주소를 이야기하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이곳의 ‘시민’이 아니었죠.”
“…….”
“저도 비슷합니다.”
괴담에 휘말린 실종자.
“저는 이곳이 아닌 다른 현실에서 왔습니다. …거의 비슷하지만, 약간 다른 점이 있는 서울특별시에서요.”
나는 ‘괴담이 없는 세상에서 왔어요’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최 요원의 사이비 보는 듯한 반응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대화의 신뢰성을 떨어트리기만 하겠지.
‘하지만 평행 세계와 관련된 괴담은 이미 <어둠탐사기록>에도 꽤 등록되어 있었어.’
그러니 이 정도는 충분히 납득할 만한 설명일 것이다.
그래서 쏟아내듯이 말했다.
눈을 뜨니 백일몽 신입사원 오리엔테이션이었고, 내게 몇 가지 장비가 주어진 상태였다고.
“…….”
최 요원은 잿더미가 된 바닥을 고요히 내려다본 채, 한동안 침묵했다.
곧 다행스럽게도 차분한 목소리가 들린다.
“그러니까, 너는 초자연 재난에 휘말려서 여기 떨어진 것 같다는 거지. 갑자기 세상이 바뀌었고, 장비가 생겼고.”
“…예.”
“그래서,”
숨을 들이쉬는 소리가 난다.
“그래서. 집에 가는 게 소원이었구나.”
“…….”
나는 애써 웃으며 대답했다.
“그런데 못 갔죠.”
“…….”
“청동 요원님 말씀대로 소원권으로는 안 되더라고요.”
“포도야.”
“하지만 이 기계에서 또 다른 힌트를 찾아낼 줄 몰랐습니다. …제가 왜 여기 불려 왔는지, 추측할 만한 힌트요.”
나는 다시 전원이 꺼진 기계를 보았다.
정확히는 내 그립톡으로 완성된 ‘소원권’ 버튼을.
“…….”
내 스마트폰에 덩그러니 남은 그립톡 접착 부위는 ‘메모리얼 그립톡’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어둠탐사기록> 위키를 읽으려면, 꿈 배양기의 버튼인 부품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그럼 누군가 꿈 배양기 버튼을 떼어내고 가공해서 메모리얼 그립톡으로 만들고… 그게 팝업스토어 1등 상품으로 주어진 거라고.’
<어둠탐사기록>을 만든 세상에서 <어둠탐사기록> 안으로 소환될 사람을 위해서.
…혹은 꿈 배양기에서 만들어진 ‘괴담 없는 세상’에서 바깥으로 불러낼 사람을 위해서.
‘어느 쪽일까.’
무슨 힌트를 주려는 거지?
내게 뭘 바라는 거지?
무언가 구체화 되는 것 같으나, 아직은 명쾌하진 않다. 단지….
“이 유쾌연구소가 무언가 해놓은 게 아닐까하는 생각만 듭니다.”
“너를 여기로 부른 게 이 연구소라고?”
“정황상 그렇게 추측하고 있습니다.”
사실 거의 확신한다.
나는 이 배양기에서 깨어났으니까.
“그래서 이 꿈 배양기에 대해서 더 알고 싶습니다. 세광특별시에서 사람을 구출하는 것뿐만 아니라… 사실, 저와도 연관된 것 같아서요.”
“…….”
“그게 전부입니다.”
최 요원은 말없이 조용히 앉아 있다.
그 눈이 꿈 배양기와 나를 번갈아 보고, 작두의 손잡이를 잡은 손은 고민하듯이 손가락을 움직인다….
그리고 입을 연다.
“포도야.”
나는 긴장한 채로 상대를 보았다.
“그 지하 연구실, 사실 네가 사라지고 나서 한번 제대로 뒤집었거든.”
“…….”
“…그러다 뭘 좀 찾았어.”
뭐?
“어떤….”
“그런데 하나는 맹세해 줬으면 좋겠다.”
최 요원의 안광이 나와 마주한다.
“백일몽, 그 회사에는 이 정보를 넘기면 안 돼. 알았지?”
“……요원님.”
나는 치열하게 갈등하다가, 결국 한숨을 쉬며 말했다.
“저는 백일몽에 고용계약 되어 있습니다. 영구적으로, 영원히.”
“…!”
최 요원도 떠올리고 있을 것이다.
보안팀 제복을 입은 130666의 모습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결과는 유쾌하진 않았다.
“130666인 저는 아마 백일몽에서 회사의 이익을 위해 요구하면, 거절하지 못할 겁니다. 그러니까… 그 약속은 지키지 못할지도 모르겠습니다.”
“…….”
“그런데, 그래도 듣고 싶습니다.”
최 요원이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은 표정으로 날 보고 있다가, 대답했다.
“그래.”
그리고 쓴웃음을 지었다.
“…솔직하게 말하면, 내가 정상 참작해서 냉큼 너한테 말할 줄 알았나?”
“어느 정도는요.”
“대단한걸, 진짜로.”
최 요원이 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정답이거든.”
접어둔 종이였다.
“‘실험일지’라고 적혀 있던 문서를 좀 복원해서 옮겨 적은 거야. 액이 덕지덕지 끼어서 몇 장 안 되긴 한데.”
“……!”
“이게 맞겠지. 어쨌든 네가 찾은 장소에 있던 거니까. 자.”
최 요원은 ‘아까 배양기 챙길 때 같이 챙겼다’라는 말을 덧붙이며 내게 넘겼다.
나는 그것을 잡았다.
[오, 모든 구름 뒤에는 햇살이 있다는 격언처럼, 친구, 그날 그 먼지투성이 연구실에 숨어든 공무원에게 들통났던 위기가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었군요.]
[이렇게 돌아오지 않았습니까?]
브라운의 박수 소리가 이명처럼 머릿속을 울린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문서를 펼쳤다.
그건….
그 계약서!!
백일몽에 대한 고발이었다.
아니, 울분이 글자로 변해서 새겨진 듯한 문서.
제약회사 임원이 내민 계약서에 사인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 ■■ 때문에 속수무책으로 우리 연구가 넘어갔다.
꿈 배양기의 ■■를 빼돌렸다. ■액 수급책이 되어주겠다던 그들의 약속은 꿈 배양기에 용액을 채우겠다는 치졸한 말장난으로 무마되었다.
그러니까….
‘백일몽이 원래는 꿈결 용액을 수급해 주겠다고 유쾌연구소에게 접근했다가, 물약을 만드는 꿈 배양기만 빼돌려서 뒤통수를 친 건가?’
정말 백일몽다운 짓이었다.
다음 내용도 비슷하게 백일몽의 욕으로 도배되는 듯하다가, 이윽고 침착한 내용이 나온다.
연구소 본관을 나와서 따로 연구실을 마련했다. 이곳에서 그 제약회사의 허점을 찾을 것이다.
그다음은 백일몽의 물약을 기반으로 그들이 어떻게 꿈 배양기를 단순한 물약 생산 기기로 사용했는지 정리하고 있었다.
대부분 훼손되어 읽기 어려웠는지 공란으로 삭제된 단어와 문장이 많았다.
그리고 그나마 읽을 수 있는 것을 훑는 내 눈에….
이게 들어왔다.
제약회사에서 생산하는 물약 중 어■■용 낙■ 시럽의 유사품 확인.
명칭은 소■권.
“…!”
검열됐지만 읽을 수 있다.
‘소원권.’
어린이용 낙원 시럽이 역시 원본이었다.
배■기의 배양 기능 삭제 및 제작에 필요한 용액 농도의 설정을 임의로 하향 조정하여 열화된 버전으로 추정됨.
열화 사례 :
언어화된 문장 표현 필요.
세계선 ■■ 기능의 악화.
낙원의 ■■가 아닌 타협적 소원 성취.
거기까지가, 읽을 수 있는 정보의 전부였다.
“…….”
“어때.”
나는 고개를 들었다.
최 요원이 내가 들고 있는 종이를 보다가 너스레를 떨 듯이 말한다.
“완전 대기업의 어두운 면을 고발하는 내용이지? 재난관리국이 환경부만 아니었어도 내가……, …포도야?”
나는 최 요원이 들고 있던 코드 선을 뺏듯이 당겼다.
그리고 다시 연결했다.
“너…!”
“잠시만!”
나는 불이 들어오는 꿈 배양기의 버튼들을 다시 보았다.
머릿속이 쾅쾅거리며 심장 소리가 울렸다.
‘알았어.’
아직도 기억한다.
아니, 잊을 수가 없다.
소원권을 마시던 그날, 병에 적혀 있던 문구를 읽었던 것을.
소원권의 사용법을.
병을 양손으로 들어 올리세요.
당신의 간절한 소원을 한 문장으로 표현한 후…
눈을 감은 채, 병에 든 액체를 한 번에 섭취하세요.
어떠한 소원이든 이루어질 겁니다.
한 문장.
소원을 정확한 한 문장으로 만들어 비는 것이 사용법이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문서에 따르면….
열화 사례 :
언어화된 문장 표현 필요.
그건 백일몽이 제작해서 만든 부작용이라는 거다.
그렇다면.
그럼 원래 유쾌연구소 버전의 ‘소원권’에서는… ‘한 문장의 소원을 빌 것’이라는 조건 자체가 없었다는 뜻이다.
언어화되지 않아도 마음 깊이 바라는 소원이 이루어지는 거였다고?
그러면,
그렇다면…….
“포도야.”
돌아갈 수 있다.
내가 집에 가길 원한다면 돌아갈 수 있다.
문장을 고민할 필요가 없다. 그냥 간절히 원하기만 하면 된다면, 집으로 돌아가길 원한다면….
유쾌연구소의 소원권, ‘어린이용 낙원 시럽’은 나를 집으로 돌려보내 줄 것이다.
괴담이 없는 세상으로.
내가 본래 있던 장소로.
…원래 모습으로!
나는 손을 들여다보았다. 사람의 손이 보인다. 현실로 돌아가면 볼 수 없는 것이다. 그 녹아내린 부정형의 기이한 형체나 부속으로 받은 도마뱀의 몸이 아니라, 내 원래 몸으로 돌아가서 집으로 갈 수 있다.
상상만으로도 뇌가 찌릿해지는 안도감이 차오른다.
다른 건 다 상관없었다. 세상의 진실이 뭐든, 내가 여기 왜 있든 상관없….
“진정해.”
“…!”
나는 눈을 깜박였다.
최 요원이 바닥에 제압한 내 어깨를 잡고 있었다.
“숨 쉬었다가 뱉어. 어서!”
그 말대로 했다.
심호흡한다….
…….
“최 요원님.”
“…….”
“진정했습니다.”
최 요원이 내가 돌발행동을 하지 않나 긴장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꿈 배양기로 다시 시선을 돌려서 확인했다.
바로 용액 표기란.
DE 00000000
이 탱크를 꿈결 용액으로 채우면 숫자가 올라갔다.
A등급 농도의 꿈결 용액을 넣었을 때 15만 포인트 정도.
‘그리고 다른 이모티콘 버튼은 1만에서 2만 포인트쯤 소모됐어.’
그게 C등급이라고 치면, 소원권에 해당하는 EX급 물약의 수치는….
‘잠깐만.’
나는 번쩍 몸을 일으켜서 일단 불이 들어와 있는 소원권 버튼을 눌렀다.
“…!”
“괜찮습니다. 어차피 용액이 없어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
그래.
하지만 대신 표기되는 게 있다.
‘부족한 용액의 양.’
빨갛게 하단에 표기된다. 그건….
DE 05000000
…오백만 포인트?
머리가 새하얗게 변한다.
‘A등급 용액이 15만 포인트였는데.’
대체 무슨 수로 오백만을 채운단 말인….
‘아냐!’
채울 수 있다. 왜 못 채우지? A등급을 삼사십 번 클리어하면 되는 것 아닌가? 못 할 것 없다. 하면 된다.
그래, 세광특별시 지하철역, 그러니까, 한빛도서관만 클리어하고 나와도 A등급에 가깝게 나온 적이 있지 않은가.
그러니까 차분히 시간을 들여서…….
…….
아니면.
‘그게 아니면.’
한 번에 채우는 방법도 있긴 하다.
방금 내가 떠올린 그 지하철역의 바깥에 있는 것 말이다.
엄청난 괴담.
가령… 도시 하나를 통째로 삼켜버린 멸형급 초자연 재난 같은 것.
그리고 나는 알고 있다.
괴담을 단순히 탈출하는 게 아니라 제대로 파훼하면, 더 고농도의 꿈결 용액이 추출된다는 것을.
“…….”
그러니까.
세광특별시 괴담을 종결시키면
집에 돌아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