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천(冬天) – 677화
챙! 채챙!
“으악!”
“잡아라! 죽이면 안 된다! 산채로 생포햇!”
섬풍마전대(閃風魔戰隊)의 대주인 악현심(岳現心)은 위에서 내려진 명령에 별로 내키진 않았지만 침입한 적들을 기어코 쫓아가서 하나 둘씩 잡아죽이고 있는 상황이었다. 원래는 죽일 생각은 없었고 생포가 목적이었지만 적들은 의외로 강했다.
되려 당한 아군의 피해도 만만치 않았고, 무엇보다 잡히면 적들은 그 자리에서 독단을 깨물었다. 그러니 생포하라고 암만 소리를 내질러봤자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었다. 부하들의 입장에서는 그렇게 떠들 시간에 니가 생포해 보라고 대들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이었던 것이다.
“지독한 놈들!”
악현심이 이를 갈고 있는데 대원 하나가 다가와 말했다.
“이곳은 깨끗이 처리했습니다.”
악현심은 신경질적으로 대원의 복부를 걷어찼다.
퍽!
“어헉?”
“이 병신 새꺄! 아가씨께서 생포해오라고 명하셨는데 이렇게 죄다 죽여놓으면 나보고 어쩌라고? 니들 지금 누구 죽는 꼴 보고 싶어서 이래?”
대원들은 면목이 없는지 고개를 떨구었고 악현심은 발만 동동 굴렀다.
“으으, 하는 수 없군. 시체들을 들춰 메고 돌아간다! 모두들 돌아가서 무사하고 싶으면 다른 놈들을 쫓아갔던 우리편이 단 한 놈이라도 생포해오길 빌어라!”
다소 비장한 각오로 시체들을 하나둘씩 챙긴 섬풍마전대의 대원들은 암흑마교의 주둔지로 방향을 돌렸다.
한편, 적들이 침투했을 때 애초에 깨어 있었던 동천은 운기조식 중에 기분 나쁜 기운이 느껴지자 조속히 내공을 단전으로 갈무리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지?”
가볍게 눈살을 찌푸린 그는 천막을 걷어내고 밖으로 나왔다. 그가 느낀 기운은 양쪽에서 느껴졌다. 그는 주저 없이 그가 서있는 쪽에서 좌측으로 몸을 틀었고 거기에서 절묘한 협공으로 아군의 생명줄을 끊어 놓는 무리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적?’
그는 본능적으로 내심 외친 후 주변에 알리기 위해 입을 벌렸다. 하지만 공교롭게도 정말 근소한 차이로 다른 누군가가 적들의 공격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헉? 적이다! 적이 침입했다!”
이어 적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자가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신속하게 숲 속으로 사라져갔다.
‘저 민첩함을 보건대 최고의 속력을 내고 있다. 저 정도라면…….’
잠시 상대들의 도망치는 속도를 가늠한 동천은 자신이 위라는 결론을 내리고 힘껏 지면을 박찼다. 한발 한발에 두어 장씩 앞으로 미끄러졌고 마치 빙판 위를 달리듯 거침없이 전방을 향해 나아갔다.
서늘한 밤 공기는 매섭게 그의 얼굴을 스쳐지나갔으며 휙휙! 거리는 아우성까지 쳐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적들의 꽁무니를 발견한 동천은 영살(影殺)의 영극류신법(影極流身法)으로 경공을 바꾸어 그들에게 은밀히 다가갔다.
“이제 조금만 더 가면 무림맹의 영역이다! 그들과 마주치지 않게 가능한 기척을 죽이며 움직인다!”
“예, 대장님!”
동천은 처음엔 무림맹인 줄 알았는데 자기들이 알아서 아니라고 말해주자 일단 안심이 되는 것을 느꼈다. 무림맹과 천마동이 발견되기도 전에 싸우는 것은 타 세력들만 도와주는 꼴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저들이 무슨 목적으로 기습했으며 어느 세력인지를 알아내려면 일단 가지치기부터 해야겠군.’
그는 온 몸에 균형적으로 내공을 분배시킨 뒤 이내 자리를 옮겼다. 그러던 와중에 탄력적으로 나무 위에 뛰어 오른 그는 나무와 나무 사이를 건너 이동하면서도 기척은 최소화하며 그들을 앞질러 기다렸다.
적들은 모두 11명!
조심하지 않으면 자신이 위험할지도 몰랐다. 그는 자신의 아래로 지나쳐 가는 적들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제일 뒤쳐진 사내가 자신의 아래를 지나쳐 가는 그 순간, 귀영낙화(鬼影洛花)로 적의 등뒤에 내려와 아혈을 점한 뒤 그대로 목을 꺾어버렸다.
우두둑!
“응?”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 없었다. 죽은 사내와 가장 근접했던 복면인은 흠칫하여 뒤를 돌아보았으나 아무 이상 없이 뒤따라오는 동료의 모습을 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전방으로 돌렸다. 그리고 그것이 사내가 본 마지막 숲 속의 풍경이었다.
‘앞으로 9명.’
두 눈을 빛낸 동천은 처음에 죽인 적의 복면을 빌려(?)쓰고 있는 중이었으므로 이대로만 움직인다면 당장에는 걸릴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의 숫자가 점점 줄어드는 이상 그 다음을 대비해야만 했다.
‘언뜻 보기엔 한 무리로 뭉쳐 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미세하게 다섯과 넷이 떨어져서 뭉쳐있군.’
5명보다는 4명을 먼저 공략하는 게 정석이었다. 하지만 동천은 그 반대로 처리하고자 마음먹었다. 왜냐하면 4명 쪽에 적의 인솔자가 포함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일단 마음을 굳힌 그는 5명 쪽으로 바싹 다가간 후 양손에 힘을 불끈 쥐었다. 이내 투명한 막이 서리기 시작하더니 하얀 선이 되어 두 명의 목을 그대로 꿰뚫었다.
퍼퍽!
“커헉?”
“케르륵!”
고꾸라지는 적들을 뛰어 넘어 동천은 자신을 반쯤 돌아보는 적의 등판을 그대로 내려쳤다.
푸걱!
뼈가 바스러지는 괴이한 소리와 함께 적의 등이 움푹 함몰되었다.
“으아악! 아, 아아…! 쿨럭!”
“뭐, 뭐냐? 어째서 같은 편이?”
“대장님! 우리 쪽의 숫자가 모자랍니다!”
드디어 적들도 완전히 깨달았는지 화들짝 놀라며 서로들 말을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은 동천에게 곧 기회였다. 그는 주저 없이 도를 꺼내 근처의 적들을 베었다.
“큭!”
“으악!”
당황하던 차에 바로 지척에서 당했기 때문에 죽은 자들은 미처 손을 쓸 기회가 없었다. 동천은 잠시 숨을 고르고 남아있는 자들을 무심하게 바라보았다.
‘앞으로 4명.’
목표를 다시 수정하자 투지가 무럭무럭 불타올랐다. 그때 분노한 적들의 공격이 쏟아져 들어왔다.
“죽여라!”
11명에서 4명으로 줄어들었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적은 하나였다. 어쩌면 자신들은 이곳에서 뼈를 묻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죽음은 이미 각오하고 시작했던 일! 그러나 개죽음만큼은 사양이었다. 그들은 한결같이 정신력을 극대화시켰으며 생을 포기한 만큼 엄청난 집중력을 보여주었다.
파슈슈슉!
검의 파도가 동천에게로 밀려들어갔다. 도망칠 공간 따위는 주지 않는다는 듯 4인의 합공은 물샐 틈 없이 촘촘했다. 그들은 옴짝달싹 못하는 적의 모습에 내심 승리라는 단어를 떠올리며 희열에 물들었다.
그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달빛에 의지하며 공격을 가하던 그들은 기묘한 소리와 함께 그 달빛마저 집어삼킬 듯이 쏟아져 나오는 검은 기류에 휩쓸리게 되었다.
지이이이잉!
“크…!”
“헉? 이, 이런 무공이!”
“아아악!”
“끄악!”
비명소리가 터지고 검은 기류에 휩쓸린 복면인들은 무참히 바닥에 처박히거나 나무에 부딪히며 피 곤죽이 되었다. 그제야 기세를 줄인 동천이 천천히 다가가자 나무에 부딪혔던 복면인들 중 한 명이 사경을 헤매며 미약한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으으, 으으…….”
동천은 그가 직감적으로 적의 대장이었음을 감지할 수 있었다. 사실 치우도법을 쓰면서 이자만 살려주려고 했던 것이 아니라, 그저 우두머리는 살아남을 것 같았고 그래서 주저 없이 한번에 쓸어버린 것이었다. 아무래도 아직까지는 치우도법을 시전하면서 제어까지 가능한 수준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목표달성.”
약간 균열이 간 무기를 버리며 동천이 그렇게 중얼거렸다. 평소의 그였다면 꿈도 꾸지 못할 살행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의 그는 역의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오랜만에 깨어나서 역심무극결을 연마하다가 적의 습격을 목도한 뒤 여기까지 오게 되었던 것인데, 적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지옥행 마차를 타고 질주한 것이나 다름없었다고나 할까?
여하튼 동천은 상대를 이대로 놔뒀다간 위험할 듯 보이자 역심무극결을 유지한 채 귀의흡수신공을 끌어올려서 들끓는 적의 기혈을 진정시켰다. 아무래도 상당히 무리였던 듯 복면 속의 그의 얼굴에서 진땀이 흘러내렸다.
“후우, 이제 적어도 죽진 않겠군.”
그는 거치적거리는 복면을 벗어 던진 후 적을 어깨에 들춰 업고 왔던 길의 흔적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되돌아갔다.
“으그그극! 어째 별로 주무시지도 못한 듯 온몸이 뻑적지근하네?”
아침에 일어난 동천은 삭신이 쑤시는 것 같아서 기분이 별로 안 좋았다. 그래도 운기조식을 마치자 육체적으로는 완벽히 정상적으로 되돌아왔고, 무언가 정신적인 피로만 남아돌았기에 그럭저럭 아침을 맞이할 수 있었다.
“쩝, 그런데 이 계집애들은 어디에서 무얼 하기에 코빼기도 안 비친댜? 아니, 시녀가 아침이 되었으면 알아서 대기하고 있다가 식사부터 챙겨줘야 하는 게 기본 아냐? 에이 씨! 하여간 빠져 가지고!”
소연이나 찾으려고 천막의 입구를 걷고 나가자 동천은 몰랐지만 어제의 습격 이후로 강화된 보초를 서고 있던 사내가 동천을 향해 힘차게 인사를 했다.
“약소전주님! 깨어나셨습니까!”
‘아, 깜딱이야. 이게 주글라고!’
무방비 상태에서 당한(?) 동천은 인상을 쓰며 한 대 후려치려다가 이내 그만두었다. 이놈의 보초가 자신을 바라보는 눈빛이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자세히 살펴보자 초롱초롱(?) 빛나는 사내의 눈빛에서는 ‘존경존경 존경존경존경…….’ 존경이라는 단어만이 무한히 넘쳐 흘러내리는 것만 같았다.
‘이 몸이 존경 그 자체인 것은 당연한 것인데 얘는 좀 심한 것 같네? 에이! 존경한다는데 때릴 수도 없고. 봐줬다, 너.’
“음, 그래. 수고하게.”
“예! 약소전주님!”
아무래도 이상한 놈이라고 생각하며 음식냄새를 향해 걸어가던 동천은 그러고 보니 지나치는 인간들 모두가 자신을 보는 시선이 남다르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었다. 모두 보초를 서던 녀석과 비슷한 눈길이어서 기분은 좋긴 했는데, 이유를 모르고 당하면 아무리 좋아도 꺼려지는 감정이 싹트는 법이었다.
‘파하하! 더 존경해라! 이 미천한 것들아! 더 존경하라니까? 푸하하하!’
동천은 예외인 것 같았다.
“어? 주인님, 깨어나셨어요?”
자기도취에 빠져있던 동천은 그제야 현실세계로 되돌아왔다. 그는 다가오는 소연을 보며 물었다.
“당연히 깨어나셨으니 이 자리에 있지. 그런데 너 말야, 어제 자는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냐? 아 글쎄! 자고 일어나니까 애들이 이 몸의 진가를 이제야 발견하네?”
소연은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와아! 정말 모르시는구나. 어젯밤 그렇게 활약을 하셔놓고.”
“응? 활약이라니?”
“자세한 내용은 주인님의 품속에 있을 거라고 어제 주인님께서 제게 오셔서는 알려주셨어요. 그러면서 현재 자신은 완벽한 역심무극결의 성격이기 때문에 깨어나면 주인님은 기억을 못하신다고 했고요.”
“뭐여? 이런 썩을!”
품속을 뒤지자 별의별 것들이 다 튀어나왔다. 동천은 그런 것에 아랑곳 않고 서찰 한 장을 찾아냈다. 굳어진 얼굴로 차근차근 읽어보자 어제의 일을 언급하면서 이제 곧 천마동에 들어가게 될 터이니, 자신에게 추월 당하지 않으려거든 수련에 박차를 가하라고 경고 아닌 경고를 써넣으며 끝을 맺었다.
찌익! 박박!
동천은 서찰을 갈기갈기 찢어발겼다.
“으으으! 감히 이 몸의 허락도 없이 일을 벌려? 죽었어, 이 새끼!”
자기가 자기를 죽인다는 말이자 소연은 혹시라도 자해를 할까봐 깜짝 놀랐다.
“주, 주인님, 진정하세요. 일단 진정부터 하시고요. 그게 그렇게 꼭 나쁘지만은 않다고 생각을 하시면…….”
“소연아!”
동천은 두 눈을 부라리며 소연에게 소리쳤다. 갑작스레 말을 자르고 들어와 놀란 그녀는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예?”
동천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밥 차려와!”
“예?”
동천은 소연이 얼이 빠진 것 같자 기껏 잡았던 무게를 풀고 원래의 그로 돌아가 윽박질렀다.
“이씨, 아무리 화가 나도 밥은 먹어야 그 힘으로 계속 화를 낼 수 있을 거 아냐! 그러니까 밥 차려와!”
맞는 말이긴 한데, 어째 성질을 내고 보니까 딱히 보복할 방법이 없자 말 꼬리를 돌리려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눈치 빠르게 주인님의 장단에 맞춰주었다.
“호호, 잘 생각하셨어요. 일단 먹고 나서 복수를 생각하시는 거예요. 알았죠?”
동천은 괜히 소리쳤던 게 멋쩍었던지 낮게 헛기침을 했다.
“험험! 안 그래도 그럴 참이라니까?”
“알았어요. 주인님의 천막은 저기 보이는 저곳이니까 먼저 가 계세요.”
“험, 그러지 뭐.”
휘적휘적 걸어가기 시작한 동천은 여전히 우러러 보는 사람들의 눈빛을 만끽하며 바로 들어가도 될 것을 자신의 천막을 기준으로 한바퀴 핑그르르 돌았다.
‘이거 생각보다 기분 나쁘지 않네?’
자신이되 자신이 아닌 상태에서 벌인 일이라 화가 나는 것은 여전했지만 남들에게 존경의 눈빛을 받는다는 것만큼은 정말 마음에 들었다. 그렇게 즐거운 기분으로 한참을 서 있자 소연이 어느새 동행한 화정이와 함께 음식을 가져오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래, 일단 먹고 보자. 먹는 게 남는 거니까!”
동천이 그녀들과 함께 천막 안으로 들어가는 동시에 산마루 위에서 강렬한 햇살이 비춰들기 시작했다. 마치, 앞으로 불어닥칠 시련. 혹은 행운을 상징하듯이 말이다.
그렇게 동천의 새아침은 시작되었다.